이런 류의 책의 인용구가 소설보다 한 쪽 당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이번이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라는 말이 담긴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기사(297쪽 전문 수록)가 나갔던 2019년 가을 이후로, 세상은 달라졌다. - P18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 앞에 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 P19
내가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더 깊은 라스트 인터뷰를 단행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하자, 지인들은 다정하게 환호했다. "그 대화는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같은 책이 되겠군요. 죽어가는 노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흥미로워요. 우리에겐 특별한 선물이 될 거예요." - P19
근육이 빠져 더욱 얇아진 스승의 팔뚝을 나는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매일 밤 나는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네. 어둠의 손목을 쥐고서 말이야." 어둠의 혈관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포효하는 나의 스승을 상상해보았다. - P22
"글쎄요・・・・・… 내 눈앞에는 없어도, 다른 시공간을 살아도 ‘어딘가에 있다‘라는 인식이 우리를 견디게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그 존재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좀 더 드라이하게 이야기해보지. 고려청자가 있어. 사람이 아니고 사물이네. 고려청자는 무덤 속에 있었어. 이걸 5백 년 후에 발굴했다면, 내 눈앞에 없었어도 고려청자는 5백 년을 존재한 거야. 그런데 이게 깨지면? 그 순간 ‘아이고 이걸 어째‘ 한탄을 하지. 그런데그 청자는 무덤 속에 있을 때, 이미 우리 앞에 없었던 것 아닌가?" - P24
이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보게나. 컵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지?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비어 있어야겠지. 빈 컵이 아니면 제 구실을 못 할 테니. - P24
여기 유리컵에 보이차가 들어갔지? 이 액체가 들어가서 비운 면을 채웠잖아. 이게 마인드라네. - P25
컵이 깨지면 차갑고 뜨겁던 물은 다 사라지지. 컵도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에 있던 컵 안의 void는 사라지지 않아. - P25
"빈 공간이 많을수록 영적인 공간이 커지는 거겠지요?" "만원버스를 생각해보게. 사람이 꽉 차서 빈 데가 하나도 없는 게바로 영혼 없는 육체라네. 유명한 일화가 있어. 스님을 찾아온 사람이 입으로는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하고는 한참을 제 얘기만 쏟아냈지. 듣고 있던 스님이 찻주전자를 들어 잔에 들이붓는 거야. 화들짝 놀라 ‘스님, 차가 넘칩니다‘ 했더니 스님이 그랬어. ‘맞네. 자네가 비우지 못하니 찻물이 넘치지. 나보고 인생을 가르쳐달라고? 비워야 가르쳐주지. 네가 차 있어서 말이 들어가질 못해.‘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 P26
"(눈을 빛내며)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겠네. 태초에 빅뱅이 있었어. 물질과 반물질이 있었지. 이것들이 합치면 빛이야. 엄청난 에너지지. 그런데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으면? 빛이 되다만 물질의 찌꺼기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야. 자네와나지. 이 책상이고 안경이지. 이건 과학이네 상상력이 아니야, 우리는 빛이 되지못한 물질의 찌꺼기, 그 몸을 가지고 사는 거라네. 그런 우리가 반물질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빛이 되는 거야." - P27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난 그러지 못했네.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 P29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 P30
"공포는 없으신지요?"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 했어. (후략) - P32
<토리노의 말> 같은 영화는 우리는 만들기 힘들 거야. 우리는<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받은 봉준호 같은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저런 영화 찍을 사람은 나오기 쉽지 않아. 미국도 어려워. - P36
나는 평생 누굴 보고 겁을 먹은 적이 거의 없어. 헤겔, 칸트도 나는 무섭지 않았어. 나는 내 머리로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흔치 않거든. - P37
자율자동차나 AI 관련 국제 행사를 해도 글로벌 지식인들 앞에서는 날더러 기조 강연을 하라고들 해. 왜 그럴까? 무슨 말을 해도 내가 하면 인문학적 접근이 되기 때문이지. 과학자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할수 있는 자는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야. - P37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쓴 내가 강연자로 나서면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군말이 없다는 거지. 그러나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 문화의 다양성을 동서양 비교 문명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이라네. - P37
중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선왕께서 말하기를 ・・・・・ 이야. 먼저 말한 모델이 있어야 인정을 해줘. 모델 애착이지. - P38
(전략)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은 토머스 뉴커먼이네. 그 사람이 만든 중기기관이 이미 백 대 이상 있어서 탄광에서 물도 퍼내고 있었어. 와트는 그걸 개량해서 효율을 높인 사람이거든. 따져보면 중세 이전에도 수증기로 바퀴 돌리는 도구가 있었단 말일세." - P39
그런데 상상해보게. 열 명이 있으면 열명, 백명이 있으면 백 명, 1억 명이 있으면 1억명의 각각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 그게 정상이라네. 무엇이든 만장일치라면 그건 한 명과 다름없네. - P39
투표결과에 만장일치가 많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그러면 왜 민주주의를 하나? 왕이 다스리고 신이 통치하면 되는 거지. 민주주의의 평등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거라네. - P40
평소엔 잘 안 보이고 거저 달려 있는 것 같지만, 귀야말로 얼굴의지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 고흐도 귀를 잘랐지. 귀의 형태는들락날락이 비정형이고 랜덤해. 일종의 카오스지, 소용돌이야. - P40
시체 해부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네만, 검시관들이 시체를 해부할 때는 반드시 배꼽 중심으로 배를 가른다고 해. 똑같은 배꼽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 P41
혹 배꼽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누워서 몸 위에찻잔을 놓아보게. 어디에 놓을 텐가? 이마? 코? 아냐. 배꼽밖에는 없어. 비어 있는 중심이거든.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있다네. 생명의 중심은 비어 있지. - P41
"(미소 지으며) 모든 게 풀어져도 마지막까지 안 풀리는 것을 배꼽의 수수께끼라고 한다네. 프로이트도 『꿈의 해석』에서 해석 안 되는 것을 배꼽이라고 했어."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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