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M(근대 건축 국제 회의)은 1956년 드브로브니크에서 열린 10차 회의로 그 막을 내리고, 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모였던 건축가들의 그룹인 팀텐에 그 주도권을 넘겨준다. 이것은 발전인가? 아니면 전환인가? 1964년부터 1966년까지 계획된르 코르뷔지에의 베니스 병원은 그가 그 이전까지 설계한 어떤 건물과도 다른 형식을 갖는다. 갑자기 이런 전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 P52

이것은 뉴턴이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어서, 멀리 볼 수 있었다‘는 말처럼, 팀텐이 근대건축의 어깨 위에서, 근대 건축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를 바랬던 코르뷔지에의 격려였는지도 모른다. 팀텐은 근대 건축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발전임과 동시에 또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전환이었다. 그것은 어떤 전환이었을까? - P52

CIAM 10차 회의

팀텐은 앨리슨 스미슨(Alison Smithson), 피터스미슨(Peter Smithson),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ke), 바케마(Jappa Bakema), 조르쥬 칸딜리스(George Candilis), 새드 유즈(Shad Woods)를 구성원으로 하는 10번째 CIAM을 준비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이들은 CIAM의 아테네 헌장(1943)으로 대표되는 근대 도시론에 위기를 느끼고, 이와는 다른 도시론의 체계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 P53

팀텐은 기능적, 합리적 도시가 더 이상 사회적, 문화적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고,
조닝에 의해 발생하는 근린주구의 문제, 변화와 성장의 문제, 기존의 도시 조직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를 보이는 점을 지적하였다. - P53

선형적 순환(circulation linéaire)을 가지는 골든 레인 아파트 계획안(1952)에서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은 건물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서의 순환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칸딜리스, 조식, 우즈는 프랑크프르트 뢰머베르그(Römerberg de Francfort) 도심계획안(1963)과 베를린자유대학 계획안(1965)에서 더욱 명확하게 형태의 사유에서 관계와 구조의 사유로의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 - P55

CIAM의 구성원들이 도시 속에서의 건물 배치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선호한 반면, 팀텐의 구성원들은 도시 건축의 군집적이고 응집(agglomération)적성격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이런 군집적 성격은 CIAM의 근대 도시 계획들에서는완전히 잊혀졌던 것이었다. 팀텐 구성원들은 건물, 거리, 공공 공간 사이의 관계가 보존되어 있는 중세 도시나 아랍 도시들의 군집적 도시적 성격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러한 성격들을 매트-빌딩(mat-building)이라는 형식 안에서 현대적으로 되찾아보려고 하였다. - P55

전환: 기하학적 구성에서 위상적 연산으로, 형태에서 관계와 구조로

그러면 이들의 전환을 어떤 의미로 읽어낼 수 있을까? CIAM이 도시를 기하학적구성의 대상으로 생각한 반면, 팀텐은 위상학적이고 관계적인 연산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말할 수 있다. CIAM이 형태에 대한 사유에 머물러 있었다면, 팀텐은 구조와 관계에 대한 사유에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50년대 초중반에야기된 CIAM과 팀텐의 대립은, 근대 건축에서 현대 건축으로의 전환은 물론 형태적 사고와 구조적 사고로의 전환, 기하학적 구성의 사고에서 위상학적 연산의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¹ - P56

물론 현대 건축 이전에도 관계에 대한 개념이 있었지만, 관계(relation)와 비율(rapport)에 대한 근대적 입장은 현대적인 관점과는 다르다. 근대적 관계가 정확한관계라면, 현대적 관계는 유연한 관계,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관계, 관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 P59

 말레비치, 엘리치스키, 타틀린 등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오장팡, 코르뷔지에의 순수파, 모홀리-나기, 클레 등의 바우하우스, 로스 등의 빈(Wien)학파 등의 여러 아방가르드들은 점, 선, 면, 볼륨들이 만들어내는 거리, 비례, 리듬,
동적 균형, 운동, 형식에 대한 실험들을 펼쳐놓았다. 건축 이외의 분야에서의 추상회화, 순수시, 실험 영화, 무조 음악 등이 그런 예이다. - P59

이런 실험들은 고전주의 낭만주의에서 강요되었던 이야기 (narrative)와 내용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형식 자체를 다루는 순수한 수학과 같아지는 듯했다.


2 ‘관계‘라는 말을 나타내는 프랑스어는 rapport와 relation이 있다. rapport는 주로 비율적인 관계를,
relation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어떤 것과 어떤 것의 연결관계를 말한다. 들뢰즈는 rapport를 잠재적인 차원에서의 관계로, relation을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관계로 사용한다. rapport를 비율이라는단어로 번역하면,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3사실 이들의 운동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논리실증주의나 힐버트의 형식주의 수학과 관련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는 기계적인 미학뿐 아니라, 수학적 형식의 순수성에 대한환상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다.

몬드리안이 표방하는 것처럼, 근대 예술과 근대 건축에서 관계의개념은 "정확한 관계(relation exacte)"로 고려된다. 형태들이, 다른 형태들과의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고려되고 파악된다 할지라도, 비례 (proportion), 리듬, 동적 균형, 운동감과 같은 개념들은 거리와 크기라는 기하학적인 관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들이 사유했던 관계는 형태를 통해서 사유되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들의 관계에대한 개념은 위상학적인 개념보다는 기하학적 개념에 더욱 근접한다. - P60

근대건축은, 도시론적 차원에서도 역시 비슷한 사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테네 헌장(Charte d‘Athène)으로 대표되는 CIAM의 근대 도시론은 독립된 건물들의 구성에 머물러 있고 그 건물들 사이와 그 사이의 관계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생각되어진다 하더라도 형태 다음일뿐 관계 자체가 출발점은 아닌 듯하다.⁵ - P60

형태로 관계를 사유한다고 반론한다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형태를 통하지 않고서도 사유될 수 있는 관계 그 자체, 순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잊지말아야 한다. 들뢰즈적인 용어로 말하면, 관계 자체를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기관 없는 신체 (Corps sans organes)로 나아가는 것이고, 지각불가능한 것이 되는 것(devenir-imperceptible)⁶일 것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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