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잃어버린 시간』 속의 심리 분석은 하나의 강력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프루스트의 진정한 위대함은 『되찾은 시간』을 썼다는 데에 있다. - P462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룩한 프루스트의그 지난한 승리는 오직 기억과 지성이라는 길을 통하여 끊임없이 사라져 버리는 형태들로부터 인간적 통일의 생생하게 살아나 전율하는 상징들을 추출해 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종류의 작품이 신의 창조에 대하여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도전은 그 작품 스스로를 하나의 전체, 하나의 닫히고 통일된세계로 제시하는 데 있다. 이것이야말로 후회 없는 진정한 예술 작품을 정의해 주는 특징이다. - P462
프루스트는 소설 예술이란신의 천지 창조 그 자체를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고 또 우리가 거부하는 바 그대로의 신의 창조를 다시 고쳐 실행하는 것임을 입증했다. - P463
반항과 스타일
예술가는 현실을 처리, 가공하는 방식에 의해 그의 거부하는 힘을 분명히 보여 준다. (중략) 극단에 이르러 거부가 전적인것이 되어 버리면 현실은 모조리 추방된다. 그 결과 얻게 되는것은 순전히 형식적인 작품들이다. - P463
전자의 경우에는 반항과 동의, 긍정과 부정을 긴밀하게 결합하는 창조의 원초적 운동이 훼손됨으로써 오직 거부만 남게 된다. - P463
우리 시대가 그 숱한 예를 제공한 바 있고 우리가 이미 그 허무주의적 기원을 알고 있는 터인 형식 위주의 도피 말이다. - P464
후자의 경우, 예술가는세계로부터 그만이 가진 특유의 관점을 제거함으로써 세계에통일성을 부여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비록 타락한것일망정 통일에의 욕망을 고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464
그러나 결국 어떤 가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허무주의가 없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자기모순에 이르지 않는 유물론이 없듯, 형식 위주의 예술과 사실주의적 예술은 조리에 맞지 않는개념들이다. 어떤 예술도 전적으로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 P464
형식주의는 현실의 내용을 점점 더 많이 비워낼 수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심지어 때때로 추상화(抽象)에서 보게 되는 기하학적 형태들조차 여전히 그 색채와 원근법은 외부 세계에서 얻어 온다. 진정한 형식주의란 침묵이다. - P465
그런데 사실은 그와 반대여서, 예술에 있어서의 통일이란 예술가가 현실에 가하는 변형 행위가 완료될 때 불쑥 이루어진다. 통일은 현실이 없어도 안 되고변형이 없어도 안 된다. 예술가가 자신의 언어에 의해서, 그리고 현실에서 길어 낸 여러 요소들의 재배치를 통해서 실행하는 이러한 수정²⁸⁸을 스타일(양식)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수정은 재창조된 세계에 통일성과 한계를 부여한다.
288) 들라크루아는 "(실제에 있어서) ‘너무나 정확한 나머지‘ 오히려 대상의 모습을 왜곡하는 이 완강한 원근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지적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원주) - P465
소설 예술은 현실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고 현실로부터 절대적으로 유리될 수도 없다. 순수한 상상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어떤 순수한 관념 소설속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예술적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을 모색하는 정신의 가장 으뜸가는 요청은 그 통일성이 전달 가능한 것이라야 하기때문이다. - P466
진정한 소설 창조는 이와 반대로 현실을, 오직 현실만을, 그 현실의 열기와 피, 정념 혹은 절규를 이용한다. 다만 창조는 현실에 현실을 변형시키는 그 무엇인가를 보탤 뿐이다. - P466
현실의 제 요소를 아무런 취사선택 없이 다 재현한다는 것 - 만약 이러한 시도가 상상 가능한 것이라면은 신의 창조를 무익하게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주의는 단지 종교적 천재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거나 - 이 점은 스페인 예술을 살펴보면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 - 아니면 또 다른 극단의 경우,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만족하고 그 현실을 모방하는 원숭이의 예술이 될것이다. - P466
예술은 가끔 사실적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따름이다. 진정으로 사실적이 되려면 묘사가 끝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스탕달은 뤼시앵 뢰벤²⁸⁹ 이 살롱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단 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사실주의적 예술가라면그 논리상 당연히 인물들과 배경을 묘사하는 데 여러 권에 달하는 긴 서술이 필요할 터이고 그러고도 세부를 완전히 다 묘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략)
289) 스탈당이 쓴 동명 소설의 주인공. 이 소설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 P467
그러나 이 미학은 이미 그 불가능성을 증명했다. 사실주의 소설들은 본의 아니게 현실에서 취사선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실의 선택과 초월은 사유와 표현의 조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²⁹⁰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이미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주의에서 관념의 자의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듯 사실주의에서 현실의 자의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후략)
290) 들라크루아는 이 점을 의미심장하게 설명해 준다. "사실주의가 무의미한 낱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정신, 사물을 이해하는 똑같은 방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원주) - P467
그래서 소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그 허무주의적 논리에 의하여 교훈 소설과 프로파간다 문학의 이점들을 활용하려고 부심하게 된다. - P468
창조는 문명과 마찬가지로 형태와 소재, 변화 생성과 정신, 역사와 가치 사이의 줄기찬 긴장을 전제로 한다. 만약 이 긴장과 균형이 깨어지면 독재 아니면 무정부 상태, 선전 아니면 형식의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두 가지 중 어느 경우에든 이성적 추론과 자유가 일치되어 이루어지는 창조는 불가능하다. - P468
현대 예술은 현기증 나는 추상과 형식적 난해성에 빠져 버리거나, 가장 노골적이고 가장 소박한 리얼리즘의 채찍을 휘두르거나 간에 거의 대부분이 창조자의 예술이 아니라 폭군과 노예의 예술이 되어버렸다. - P468
예술가가 택한 관점이 어떤 것이든 간에 모든 창조자들에게 공통된 하나의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현실과 동시에 현실에 형식을 부여하는 정신을 전제로 하는 양식하다. - P468
프루스트가 인간의 경험을 현미경처럼 확대해 보여 주는 경우든, 아니면 그 반대로 미국 소설이 그 인물들을 거의 부조리하다 싶을 정도로 왜소하게 만들어 놓는 경우든 작품 속에 나타난 현실은 어느 정도 억지로 변형시킨 현실이다. - P469
예술에 있어서의 가장 위대한 스타일은 당대의 편견과 충돌하지만, 그것은 지고한 반항의 표현이 된다. 진정한 고전주의는 순치된 낭만주의일 뿐이듯이²⁹¹ 천재는 그것의 고유한 척도를 창조해 낸 반항이다.
269) 앙두레 지두가 고전주의, 그리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관계에 대해 내린 유명한 정의. - P469
동시에 이것은 위대한 스타일이란 단순한 형식적 미덕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스타일이 현실을 희생시키고 양식 그 자체만을 위하여 추구될 때 그것은 형식의 미덕이 된다. - P469
반면에 진정한 창조란 나름대로 혁명적이다. - P469
위대한 스타일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식화의 산물이다. 다시말해서 구체적인 것 속에 녹아 있는 스타일인 것이다. "예술에 있어 과장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고 플로베르는 말한 바 있다. - P470
이와 반대로 현실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가감 없이 드러나서 양식화가 무의미해지면 구체 그 자체가 통일성 없이 그냥 제공된다. 위대한 예술, 스타일, 반항의 진정한 모습은 이 두 가지이단 사이에 존재한다.²⁹²
(후략)
292) 수정 행위는 주제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고유의 언어 (그의 어조)는 언제나 스타일의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근거이므로 언급한 미학에 충실한 작품에서도 양식은 주제와 더불어 변할 것이다(원주) - P470
궁지에 몰린 한 사회를 향해 우리 시대가 이제부터 제기하는 두 가지 질문, 즉 ‘창조는 가능한가‘와 ‘혁명은 가능한가‘는 결국 어떤 문명의 새로운 탄생과 관련된 동일한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 P471
결국 자본주의 사회와 혁명적 사회는 둘 다 산업 생산이라는 똑같은 수단, 똑같은 약속에 얽매여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똑같은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는 구현시킬 능력도 없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수단이 부정하는 형식 원리의 이름으로 그런 약속을 하고 있다. 후자는 오직 현실만의 이름으로 그의 예언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훼손하고 만다. 생산의 사회는 오직 생산적일뿐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 P471
현대 예술은 허무주의적이기 때문에 형식주의와 사실주의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더구나 사실주의는 사회주의적인동시에 그에 못지않게 부르주아적이고 - 이때 사실주의는 어둠침침해진다 - 그리하여 교훈적이 된다. - P471
결정론적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언어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예술은 그 양자 사이에있다. 만약 반항하는 인간이 허무의 광란과 전체성에의 동의를 동시에 거부해야 한다면 예술가는 형식주의적 광란과 전체주의적 현실 미학을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 - P472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과 사회, 창조와 혁명은 거부와 동의, 특수와 보편, 개인과 역사가 가장 팽팽한 긴장 가운데 균형을 이루는 반항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반항은그 자체로서는 문명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반항은 일체의 문명에 선행한다. - P4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