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반항
대체로 보아 우리는 고대 및 고전주의 시대와 일치하는 동의(同意)의 문학과 근대와 더불어 시작되는 이의(異意)의 문학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전자의 문학 가운데 소설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설사 소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이야기가 아니라 공상물이다.(『테아젠과 샤리클레』 혹은 『아스트레』등) 이것들은 콩트이지 소설이 아니다. - P446
"산문으로 쓴 꾸민 이야기"라고 리트레²⁷²는 소설을 정의한다. 겨우 그것뿐일까? 하지만 어느 가톨릭 비평가²⁷³는 이렇게 썼다. "예술은 그 목적이 어떤 것이든 간에 언제나 신을 상대로 죄가 되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과연 소설에 관한 한 호적부와 경쟁한다기보다는 신과 경쟁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²⁷⁴
272) 막시밀리앙 폴 에밀리트레(Maximilien Paul Émile Littré, 1801~1881) 프랑스 언어학자, 사전학자 오귀스트 콩트의 제자로 실증주의자였으며 기념비적인 ‘프랑스어 사전(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çaise)』(전 4권, 보유 1권 흔히 "리트레 사진"이라고 부른다.)의 저자.
273) 스타니슬라스 퓌메(Stanislas Fumet).
274)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그의 방대한 구조의 인간 희극 속에 담으려는 야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호석부와 경쟁한다."라고 말했다. - P447
소설이란 창조자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통속적 설명이 옳다고하더라도, 그렇다면 대체 무슨 필연성이 있기에 꾸며 낸 이야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즐거움과 흥미를 가지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P448
일상적으로 쓰는 말 역시 서투른 저널리스트의 날조된 이야기를 두고 ‘소설 같다.‘라고 한다. 십여 년 전에는 터무니없게도 처녀들이란 ‘로마네스크 (소설적, romanesque)‘하다고 여기는 관습이 있었다. 그 말은 상기 좋아하는 그들이 생활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었다. - P448
그렇다면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무엇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인가? 너무 힘든 현실로부터? 그러나 행복한 사람들 역시 소설을읽는다. 그리고 극도로 고통스러울 때는 독서 취미를 잃게 된다 - P448
헤겔에 따르건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실망을 맛보게 되면 오직 도덕만이 지배하는 인공의 세계를 스스로 창조해 내 그 속에 살고자 한다. 그렇지만 교훈적 소설은 위대한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연애 소설의 백미인 『폴과 비르지니』²⁷⁸는 그야말로 가슴을 에는 작품이지만 아무런 마음의 위안이 되지 못한다.
278)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뎅 드생피에르 소설 - P449
모순은 이런 것이다. 즉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면서도 그 세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들은 세계에 집착하며, 거의 대부분이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P449
그리하여 우리는 이 타인들의 삶에 근거하여 예술을 만든다. 초보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그 삶을 소설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셈이다. 우리는 사랑이 지속되기를 갈망하지만, 사랑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설사 기적에 의해 사랑이 일생 동안 지속된다 할지라도그것은 여전히 미완성일 것이다. - P451
소유욕이란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의 무력한 광란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소유욕이다. 우리는 어떠한 존재도, 심지어 우리가 가장 사랑하며 우리를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조차 결코 소유할 수 없다. - P452
요컨대 의식의 기초적 수준에서부터, 자신의 삶에 결여된통일성을 그 삶에 부여할 수 있을 공식이나 태도들을 찾아내고자 고심하지 않는 인간이란 없다. 겉으로 보이기 위해서든행동하기 위해서든, 댄디든 혁명가든 누구나 다 존재하기 위해서. 이 세계 속에 존재하기 위해서 통일성이 요구된다. - P453
라파예트 공작 부인은 자신의 가장 가슴 떨리는 경험으로부터 소설 『클레브 공작 부인』을 이끌어 냈다. 그녀는 분명히 클레브 공작 부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클레브 공작 부인이 아니다.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라파예트 부인은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녀 주위의 그 누구도 절망으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그런 비길 데 없이 고통스러운 사랑의 가슴 찢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 P455
소설의 세계는 이처럼 스스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반드시 어떤 정연한 연속성을 갖추고 있다. 그 연속성은 실생활에서 겪은 상황들 속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현실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루어진 몽상의 흐름 가운데서나 발견되는 것이다. - P457
바로 이런 것이 이 현실 세계의 수정에 의해 창조되는 상상의 세계다. 이 상상의 세계에서는 고통은 원한다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수 있으며 정열은 결코 식지 않으며 인간들은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채 서로서로 마주 보고 있다. - P457
이렇게 하여 소설은 신의 창조와 경쟁하고 일시적으로나마 죽음에 승리한다. 가장 유명한 소설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작품마다 매번 다른 전망 속에서 예술가가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가하는 이 끝없는 수정(修正)에 소설의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P457
미국 소설²⁸²은 인간을 초보적인 것, 혹은 그의 외적 반응및 행동으로 환원시킴으로써 통일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중략) 미국 소설은 인물의 행동을 설명하고 요약해 줄 기본적인 심리적 동기의 분석이나 탐구를 거부한다. 그런 까닭에 미국 소설의 통일성은 조명의 통일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282)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물론 1930년대와 1940년대의boiled 소설들이지 19세기의 경탄할 만한 그 미국 개화기 소설이 아니다. (원주) - P458
이러한 기계적 묘사에 이르면 사실 인간들은 서로 비슷한 모습이 되어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육체적 특징에 있어서 조차 상호 치환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세계는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 P459
미국 소설의 세계는 어떤 절단에서 생겨난다. 현실에 가하는 고의적인 절단 말이다. 이런 식으로 얻어지는 통일성은 타락한 통일성이며 존재와 세계의 평준화다. - P459
프루스트로 말하자면, 그의 노력은 집요하게 관찰한 현실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닫힌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오직 그만의 것인 그 세계는 사물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미국 소설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무엇보다 먼저 소설가가 자신의 과거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으로부터 선택한 많은 유별난 순간들을 세심하게 수집하는일이다. - P460
프루스트는 현실 속에서 잊히고 마는 것, 즉 기계적인 것이나 맹목의 세계와맞서서 내적인 삶을, 내적인 삶 그 자체보다도 더 내적인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거부로부터 현실의 부정을 이끌어 내지는 않는다. 그는 미국 소설의 과오와 대칭되는 과오, 즉 기계적 세계를 말살해버리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는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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