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시작되어 신입생 대상 가입 홍보 기간도 끝났고, 1학년이 몇 명 들어온 뒤로 대립 상황이 바뀔 계기가 있었다. 실은 훌륭한 만화를 그리면서도 주위에 그 사실을 숨기고 읽기만 하는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고치 아야코 선배가 다른 3학년보다 한발 먼저 은퇴한 것이다. 직접 그려보고 싶은그룹 안에는 이로써 이겼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 - P193
만연이 부실로 쓰는 제1 예비 교실에서 읽기만 하는 그룹은 교실 앞쪽에, 직접 그려보고 싶은 그룹은 뒤쪽에 뭉쳐 있다. 출입할 때도 다른 문을 쓴다. - P193
"잠깐 시간 돼?" 만연에서 만화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으니 부끄러울 건없지만 반사적으로 공책을 덮어버렸다. "응, 왜?" - P194
축제에서 고치 선배와 대립한 건 나였지만 그후 직접 만화를 그려보고 싶은 그룹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만연의 주도권을 휘어잡으려 한 게 아사누마였다. - P195
"이번에 동인지를 낼건데, 이바라 네 작품도 싣고 싶어." 무심결에 주위를 살폈지만 우리를 쳐다보는 기색은 없었다. 예상도 못 한 일이다. 나는 내 만화를 동인지로 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사누마하고 같이 내본 적은 없었다. - P195
"이대로 가다간 올해 축제 때도 감상문만 내놓게 될 거야." - P195
"만연하고는 별개의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뜻이야?" 아사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P196
비릿한 걸 삼킨 기분이었다. 기습으로 기정사실을 만들어사태를 유리하게 끌어나가려는 거라면 쿠데타나 다름없다. 서글프게도 현재 만연이 파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건사실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는 나의 행동이 읽기만 하는 그룹에게 공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 P196
"나, 다이, 니시야마, 하리가야, 그리고 이바라 너. 이제부더 설득할 거지만." 전부 직접 그려보고 싶은 그룹의 사람들이지만 내가 아는바로는 어느 정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있는 이는 아사누마뿐이다. - P197
"스토리 만화도 그릴 수 있대?" 아사누마가 슬그머니 웃었다. "아마 못 그릴 테지만, 그렇게 긴 만화는 안 그려도 돼. 네다섯 페이지면 족해. 여차하면 양면 두 페이지라도 괜찮아. 가급적 많은 인원이 참가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 P197
"아예 새로운 걸 그려달라는 게 아니야. 주제는 정해놨으니 편하게 그려주면 돼." 내 만화에 자부심을 갖기에는 너무 이를지 모르지만 ‘편하게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아사누마도 잘 알 텐데 저렇게 말하는 건 그만큼 필사적이라는 증거라고믿고 싶다. - P198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동아리에서는 책한권못 내 실적을 확보하려고 만드는 동인지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가미 고 만연의 이름을 등에 업고 그린 만화를남들에게 보여줄 기회는 졸업하면 평생 다시 오지 않아. 그런건 싫어, 이바라 너도 그렇지?"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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