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기가 끝나고 그 소년이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순간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크 트웨인조차도 말이다. 나는 그런 순간을 목격했다. 그 소년은 당시 열한번째 생일을 얼마 앞두고있던 딘이었고 그 ‘순간‘은 1992년 8월 23일, 온화하고 화창한 한여름의 일요일 오후였다. 장소는 뉴욕주 조지 호수 인근에 있는, ‘위대한 탈출 Great Escape‘이라는 정말 멋지고 독특한 놀이공원이었다. - P205

그러므로 광활한 애디론댁공원 Adirondack Park의 동쪽 경계선을 따라 미들베리에서 남서쪽으로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탈출 놀이공원은, 더 위대한 탈출로부터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이행의 과정에서 이상적인 기착지가 되어주었다. - P206

작긴 하지만 둘도 없이 특별한 이곳은, 사실 놀이공원이라기보다 놀이공원의 박물관에 더 가깝다. 공원 안의 작은 ‘묘지‘에는 ‘정글랜드‘, ‘대니 더 드래곤‘, ‘크랙 액슬 캐넌의 악몽‘ 등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놀이기구와 테마들을 기념하는 푯말이 꽂혀 있다. - P206

마치 모든 방문객이 매표구에서 미국인의 습관적인 초조함을 스무디 한잔과 바꾼 뒤 칼로리의 환희를 맛보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한번은 고개를 들어보니 대머리에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격투기 선수처럼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EVERLAST" 라고 적힌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차림으로 권투 장갑을 낀 채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허공에 펀치를 날리며 구르듯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그는, 마지막 순간 예의 바르게 나를 피해 옆으로 지나갔다. - P207

그 일요일, 우리는 위대한 탈출에서 오후를 보냈다. 지는 해가 아이들의 실루엣을 드러내며 케빈의 금빛 머리카락과 딘의 적갈색 머리카락에 이글거리는 빛을 던졌다. - P207

며칠 뒤 딘이 소년기를 뒤로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 소년기는나의 주문 속에 영원히 멈춘 채 남겨졌다. 그로부터 5년 뒤면 영원히어릴 것 같던 날들의 모든 흔적이 영영 사라질 터였다. - P208

딘의 행동은 점점 더 반항기를 보이며 천천히 변해갔고, 사춘기중반기에 이르자 변화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아너리와 나는 여전히 그 변화를 거쳐 가는 단계‘로, ‘호르몬‘ 탓으로, 부모에게서 ‘분리되고자 하는 정상적인 심리 욕구에서 촉발된 ‘부모에대한 반항‘으로 치부했다. 우리가 그 시기를 무리없이 넘기고 딘과대치하는 일을 최소화하면 언젠가는 그것도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 P208

딘이 막무가내로 반항적인 태도만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기타 교습을 받아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래서 우리는 케빈의 선생님에게 교습을 받게 했다. 딘은 빨리 배웠다. 딘의 취향은 포크와 록 음악쪽이었다. 중학교 교내 재즈밴드에서는 색소폰을 연주했다. - P208

 우리 집 마당은 나무들이 시작되는 숲의 가장자리 근처에서 위쪽으로 경사가 져있었는데, 딘은 자기가 팔을 뻗었을 때 손가락 끝보다 조금 높게 날아가게끔 공을 던져주면 좋아했다. 공을 잡든 놓치든, 드라마틱하게 몸을 날려 비탈 위에 부드럽게 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쉬운 동작은아니라, 내가 경기를 챙겨 보는 몇몇 팀에도 이 기술을 완벽히 구사하는 프로쿼터백들은 많지 않다). - P209

그리고 자기만의 신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경기장에서 작전 회의가 진행되던 중 경기에 참여하라는 의미로 자신의 등번호 "36"을 처음으로 부른 순간이었다. 짐작건대 딘은 그 일을 잊었을리 없고, 어쨌든 나는 분명히 잊지 않았다. - P209

다음 시즌에 딘은 패스를 하고 오른쪽으로 날렵하게 돌아 경기장 가운데로 45미터를 전속력으로 달려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딘이 골라인을 넘는 순간 엔드 존 가까이 서 있던 코치는, 나중에 내게 그날 딘이 달려오는 내내 웃고 있었다고 말해줬다. - P210

그러나 딘은 질문받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집밖에서의 생활이나 친구들에 관한 질문을 싫어했다. 아너리와 나는 딘과 케빈에게 맥주를 포함해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 담배와 마약의 경우 절대 손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 P210

 아이들을 집 안에가둬두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는 집 안에 가두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리가 매일 밤희망한 것은..……… 그랬다, 우리는 희망을 품었다. 매일 밤. - P210



1997년 가을 케빈이 갓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케빈의 기타 선생님이 케빈을 경연에 내보내자고 제안했다. 경쟁의 세계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 P211

우리에겐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필요 이상 호들갑을 떨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격주로간행되는 미들베리의 지역 언론에 케빈의 2관왕 소식을 알렸고, 편집자는 케빈이 기타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실었다. 친구들과 친척들에게도 당연히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 P212

8장. 광기와 천재 - P215

예술적 천재성을 지녔거나 전반적 인지능력이 비범하게 높다는사실이 조현병과 관련이 있을까? 이는 조현병의 특성을 둘러싼 여러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물론 나에게는, 그리고 아너리에게도 이 질문은 단순한 학술적 관심사를 넘어선다. - P215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시험관을 흔들며 바로 그런 가정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용하는 것이다. 미친 과학자 영화는 공포영화라는 더 큰 장르의 하위 장르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신 또는 신들의 의지에 함부로 간섭하는 일(마치 영화가 광기 어린 눈을 번득이는 주인공에게 "미치지 않고서야 네가 그런 일을 시도라도할 수 있겠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에 사람들이 느끼는 원초적 불안을표현한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독보적이다. - P215

오늘날 전반적인 반지성주의 정서의 거대한 흐름이 과학자들을향한 증오를 키우는데, 특히 지구온난화, 낙태와 성교육, 특정한 기반의 경제적 현실에 맹목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그 흐름을 대표한다. - P216

그 세력이란 성서 속 절대론을 인용하는 기독교 복음가, 그 인용 또는 주장을 믿고서 ‘현실에 근거한‘ 공동체를 가리켜가소롭고 순진하다며 업신여기는 정치 지망생, 과학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상업과 교육의 거대 시스템, 그리고광기를 지나치리만치 이성적인 사고의 부산물로 의심하도록 훈련된 대중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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