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시 읽는 책, 어디서 산 것인지 기억도 안 나는 책.









카를 마르크스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다음과같이 말했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고, 그의 인생에 있어가장 큰 목표는 자본주의와 그 부산물인 국가 기관을 타도하는 데 협력하는 것이었다." - P393

마르크스가 태어난 시기는 무척이나 어지러웠다. 폭동과 불안정이사회에 만연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은 아직도 생생했고, 다른 혁명이 곧 불어닥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체제에 대한 비판, 불만과 고통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 P393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라인 지방의 트리어 Tier 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유대인 혈통이었지만, 그가 어릴 적에모든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마르크스를 반유대주의자로 만들었다. - P394

 그러나 그는 이단적인 사고로 인해 철학을그만두고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1842년에 창간된신문인 <라이니셰 차이퉁 Rheinische Zeiting에서 기고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곧 편집장이 되었다.  - P394

마르크스는 이후 파리로 옮겨 사회주의를 공부했고, 단명했던 또다른 간행물인 <독일-프랑스 연보 Franco-German Year Books>에 기고하기도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의 미래의 이력을 볼 때, 이 기간 중 가장 큰 사건은 평생의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만남이었다.  - P394

마르크스가 프로이센 정부에 대해선동과 비난을 멈추지 않자, 이에 부담을 느낀 프랑스 정부는 그를 불순한 외국인으로 낙인찍어 추방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브뤼셀에서 3년 동안 난민으로 머물렀으며, 그 후 잠시 독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망명을 떠나 1848년 혁명 기간에 파리로 돌아왔다. 같은 해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 Manifest derKommunisticben Panel』을 집필했다. - P394

마르크스는 가는 곳마다 노동운동을 조직했고 공산주의 잡지를 만들며 반역을 선동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선동가였다. - P395

 마르크스의 유일한 돈벌이는 유럽 정세에 관한 기고로 <뉴욕 트리뷴 New York Tribune>지로부터 받는 주당 1기니 (영국의 옛 금화로 21실링에 해당함; 옮긴이)와 간헐적으로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에 대한 원고료가 전부였다. - P395

『자본론』의 저술을 위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으기위해 수년 동안 하루에 16시간씩 대영박물관에서 연구에 몰입했다. 다른 활동에 보낸 시간과 아파서 작업을 하지 못한 시간을 제하면, 준비기간만 18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 P396

엥겔스와 마르크스 둘 다 『자본론』을 저주 받은 책‘이라 불렀고, 마르크스는
"완벽한 악몽"이라고 했다. - P396

공식적으로는 은퇴한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마르크스는 지도부의 핵심으로, 협회의 문서와 연설문 대부분을, 그리고 규정과 프로그램을작성했다. 1871년 파리코뮌이 실패하고, 조직 내부의 분열과 리더십을둘러싼 경쟁이 심화되자 협회는 해산되었다.  - P396

그런 와중에 오랜 준비를 거친 『자본론』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1866년 말에 완성된 제1부의 원고가 함부르크로 보내졌고, 다음해 가을에인쇄되었다. 원본은 독일어로 출판되었고, 20년이 지난 후에나 영어 번역서가 나왔다. - P396

 빅토리아 시대 중기, 최악에 이르렀던 자본주의 제도의 잔혹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공장의 작업 환경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는데, 마르크스는 정부 감사관들의 보고서에 입각해 정확한사실을 『자본론』에 기록했다. - P397

이런 처참한 환경에 대해 항변했던 사람은 마르크스만이 아니었다.
찰스 디킨스, 존 러스킨, 그리고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tyle 과 같은 온정적인 인도주의자들은 방대한 저술을 통해 체제 내의 개혁을 요구했고, 그 결과 의회는 관련 법안의 개정을 논의했다. - P397

마르크스는 사회·경제적 문제점에 대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엥겔스에 따르면, "다윈이 유기체의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인간 역사에서 진화의법칙을 발견했다." - P397

마르크스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굳게 믿었다. - P397

 마르크스는 계급투쟁론을 다윈의 진화론과 연계시켜 신뢰도를 높였기 때문에 반박이 불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 P397

변증법적 방법론은 독일의 철학자인 헤겔로부터 마르크스가 취한것이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정·반· 합의 3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 P398

이 논리로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 혹은 역사의 경제적 해석론을 만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주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군주와 농노, 선생과 제자, 즉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고, 그들은 끊임없이 투쟁한다" 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주장했다. - P398

요컨대 음식과 주거공간에 대한 투쟁이 인간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봤던 것이다. - P399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의 역사이다. 원시시대는 계급 부재의 종족 사회였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되면서 계급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 P399

 변증법적 유물론을적용하면서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반란이 불가피하고 그 결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가능해지며, 그 후 공산사회가 도래하고결국 계급이 없는 사회로 회귀한다고 했다. - P399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빌려 쌓이고 비축된 노동의 양이라고 자본을 정의했고, 리카도의 이론을 빌려 어떤 상품의 가치와 가격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399

 현존하는 경제체제하에서 고용주는 가능한 가장 낮은 가격에 상품(노동)을 살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실제 노동가치보다 턱없이 낮게 된다. 노동자는 6시간 노동으로 4실링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10시간을 일한다. - P400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는 모두 착취당한 노동의 잉여가치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자본주의는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사악한 체제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P400

마르크스는 과학, 기술, 예술 혹은 조직과 같은 것들로 인해 가치와 가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P400

 바르장Jacques Barzun 이 논평했듯이 "현대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파괴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검증된 ‘과학적인 이론을 찾지 못했다." - P400

자본가들은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기계를도입하고 생산성 증가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기계를 활용하면 힘센 노동력이 필요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좀더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게되어 여성과 아동이 성인남자를 대체하게 된다.  - P401

따라서 마르크스는 생산 속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기계의 도입이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실업(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므로), 여성과 아동의 노동 착취, 상품의 과잉생산, 노동자의 업무능력 감소 등과 같은 해로운 결과를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 P401

마르크스는 맬서스의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적인 인구 증가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 P402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임금만을 받기 때문에,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은 시장에서 전부 소화되지 않아 재고가 넘치게 되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실업 사태가 이어지면서, 결국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진다는 것이다. - P402

즉 자국의 노동자들이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재고로 쌓인 상품을 내다 팔려고 후진국에서 시장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공장을 계속 돌리는 데 필요한 원자재의 확보를위한 쟁탈전은 국제적인 갈등과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 - P402

마르크스는 "한 명의 자본가가 항상 다수를 희생시킨다" 라고 하면서, 자본가들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은 종국에는 자본의 집중과 독점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 P402

중산계급은 사라질 것이고 소 자본가는 대자본가에게 먹혀, 결국 한 명의 거대자본가와 다수의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 P402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고, 국가를 장악한 후에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마르크스가말했듯이 이 시기는 모든 계급을 타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이행 단계일 뿐이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독재가 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P403

 사회의 제1의 목표는 "각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 이며, 지도 원칙은 " ‘각자의 능력에 따라‘로부터 ‘각자의 필요에 따라‘ "로 바뀔 것이다. - P403

마르크스에 의하면 기독교와 같이 상대적으로 오래된 종교들은 포기와 겸손을 찬양하면서 인간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수동적인 자세를 가르친다. 따라서 종교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운명에 눈멀게 해 혁명의 완수에 큰 걸림돌이 되는 "아편"과 같은 존재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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