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는 은평구 뉴타운의 기초공사 현장에서 발견됐다. 3개월 전이다. 시공업자에게는 현실이 악몽으로 다가왔을 터다.
파일을 설치하려고 땅을 파고들던 굴삭기가 사람의 정강이뼈를 파냈다. 굴삭기 들통이 하늘로 솟았다가 누군가의 다리였던 것을 마른 흙과 함께 땅 위에 쏟았다. 현장에 있던 모든 인부들이 그걸 봤다. 즉시 경찰이 들이닥쳤다. 공사는 기한 없이 중단됐다. - P10

내 변론의 요지는 간단했다. 맞다. 피고 조구환은 살인을 교사했다. 피고 조구환은 사체를 은닉했다. 1992년에 사건 당시의 개정 이전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이 죄목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므로 이 공소는 이유 없다. 그러자 법의 규정에 따라 입증책임은 검사에게로 넘어갔다. - P11

그는 사건이 종료된 지 얼마 안 돼 종적을감췄다. 그 후로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누구도 보지 못한자를 증인으로 세울 수는 없다. 검사도 추측은 하고 있겠지만,
나는 그 불쌍한 살인범이 어떻게 됐는지 잘 안다. - P11

검찰이 본 사건의 피해자를 실종신고한 때는 1998년입니다. 피고가 사체를 매립한 대지를 소유한 건 1997년부터입니다. 범행은 그 사이에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1992년일 리가 없습니다. 1992년 이후 피해자를 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 P12

 내가 가진 건 소수의견이다. 나는 차를 가지고 나왔다. 지금까지는 내 쪽이 유리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비가 내릴까? 창이 불투명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검사의 언어는 여전히 1997년과 1998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건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시기였다. - P13

판결이 나왔다. 재판장은 내 주장을 받아들여 면소를 선언했다. 방청석에서 짧은 법정모독이 있었다. - P15

만약 조구환이 단지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했다면, 끝까지자신의 무죄만을 주장했다면 검사의 수중에 내가 모르는 증거가 하나만 있었어도 살인교사의 유죄판결이 떨어졌을 것이다.  - P15

새로운 쟁점이 죽은 자와 죽인자에 대한 판단을 법의 영토에서 밀어냈다. 처음 내가 변론전략을 설명했을 때 조구환은 그게 ‘될 법‘이나 한 이야기냐고 되물었다. 그게 됐다. - P16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
_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 이 구절이 정확히 어디있는지, 한 번은 읽으며 찾고 싶다. - P18

 염만수는 서울대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사직한 후에는 하버드 로스쿨 연구원을 지냈으며, 한국에 돌아와 모교의 민법학 교수로 채용됐다. 그가 쓴 2,800페이지짜리 논문 한 편이 개정 및 신설 법조항 200여 개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는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도 선출되었다. 변호사들의 추대를 받아 염만수는 임기가 시작되자 불법을 행한 변호사에 대한 통상의 징계 수위를 벌금에서 정직으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협회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 P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