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다락방에 들어간 게 다섯 살 때였는데 일곱 살이 다 되어서야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는 생각납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리에 관한 게임을 하곤 했는데, 가령 내가 태어난 도시인 졸로치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러면 어떤 바다를 건너고 어느 항구를 거쳐야 하는지 일일이 짚어가면서 대답해야 했죠. 콩이 담긴 자루를 베개 대용으로 썼던 기억도 납니다. - P15
교수님은 194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셨고 1981년에 ‘화학반응 경로에 관한 이론‘으로 후쿠이 겐이치와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교수님의 고향에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건립하는 데 기여하셨습니다. - P16
호프만 교수님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책과 희곡을 발표하신 작가이기도 합니다. 삶을 돌이켜볼 때 교수님의 첫사랑은 과학과 예술 중 어느 쪽이었을까요?
프리모 레비는 훌륭한 작가였죠. 내 첫사랑은 과학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으로 과학의 경이로움을 접했을 무렵에는아직 예술과 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예술과 시가 인간의 정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지요. - P17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 경계는 결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예술은 창조의 본질을 공유합니다. 그럼요, 과학도 단지 발견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학문입니다. 과학과 예술은 둘다 정교한 솜씨를 가치 있게 여기고 서술이나 강도의 경제성을 중시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비슷한 미학적 원칙을 공유합니다. - P17
만약 주기율표에서 원소를 하나 골라서 그 원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원소를 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규소를 고를 것 같습니다.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한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 P18
규소는 화학적 성질 면에서 탄소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완전히 다르기도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꼭 필요한 기체인반면에 이산화규소는 석영입니다. - P19
화학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화학, 어느 쪽을 정의하기가 더쉬울까요?
아름다움에 화학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배우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는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요. 아마도 화학의 아름다움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 P21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은 결코 깜짝 놀랄 만한 의외의 일이 아닙니다. 물론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과학계에는 논문을 통해서 훌륭한 성과를 인정하고 승인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의 깜짝 수상 같은 것은 없습니다. 연구에 관한 논문을발표하면 1년 안에 학계에서 반응이 옵니다. 노벨상을 받을 만큼 중요한 연구 성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 P22
보통 스웨덴의 신문사로 수상 소식이 먼저 흘러나와서 수상자에게 연락이 오는데, 후쿠이 겐이치와 내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의 동료인 로버트 번스우드워드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공동 수상자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바로 2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호프만이라는 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을지도 모르지요. - P23
교수님은 미래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는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과학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절제하지 않는다면 과학에 매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P23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건이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오로지 두뇌에만 의존해서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0.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가르치고 설명하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서 자신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 P24
인공 대 자연, 간단함 대 복잡함, 정체 상태 대 역동성. 오늘날의 화학과 미래의 화학은 이 세 가지 대립항과 어떤 연관성이있을까요?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다룰까요?
앞으로도 화학은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뒤섞어버릴 것입니다. 더욱 간단해지지도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세상이 단순해지기를 바라는 공상가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미시적인 측면에서 화학 반응의 세부 사항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 P24
이 책에서는 앞으로 과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무엇‘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에 관해서도 논의할 생각입니다.
차기의 돌파구는 전 세계의 젊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될 것입니다.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세밀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을 최대한 접하려 하는 사람들말입니다. - P26
하지만 ・・・・・・ 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은 인생의 도덕적, 사회적, 예술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육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학은 쉬워요.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죠. - P27
화학은 쉽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
로알드 호프만 Roald Hoffmann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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