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가상 재화가 돈이 된다는 점을 노린 해킹이나 사기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가장 흔한 경우가 계정 도용이다. 다른사람의 게임 계정 비밀번호를 몰래 탈취한 후 해당 캐릭터가 가진 재화를 다른 캐릭터에게 모조리 아이템 현금 거래를 통해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킹당한 계정도 피해를 볼 뿐만 아니라 장물을 구매한 사용자 역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피해를 본다. - P153

이런 구조의 네트워크가 갖는 장점은 다수를 형성하는원이 제거되더라도 전체 조직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잔챙이가 몇 명 잡힌다고 해도 조직 전체가 받는 피해는 미미했다. 반면 이런 구조의 단점은 네트워크의 중심이되는 소수가 제거되면 네트워크 전체가 해체된다는 것이다. - P160

어쨌든 가상 세계의 불법 조직이 현실 세계의 불법 조직과 유사한 구조임을 실제 데이터를 통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키건의 연구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게임과 현실은 네트워크 측면에서도 서로 닮아 있었다. 어쩌면 작업장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 범죄 조직의 관리 방식을 참고한 것인지도모르겠다. - P161

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작업장 조직은 대체로 <그림 13>과 같은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었다. 즉, 다수의 일꾼 캐릭터가 획득한 가상 재화를 소수의 캐릭터에게 전달해 관리하는방식이다. 이는 키건 교수나 권혁민 연구원이 분석한 바와 일치하는 결과다. - P162

더 나아가 나는 이런 특징을 활용해 전체적으로 아이템 현금 거래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규모를 추정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어떤 두 캐릭터가 서로 가상 재화를 주고받는 기록은 게임에 남는 로그를 이용해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 거래의 목적이아이템 현금 거래인지 아니면 단순히 두 캐릭터간에 친화의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인지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아이템 현금 거래에서는 가상 세계의 거래와 현실 세계의 거래가 동시에 이뤄지는데, 이 두 거래를 동시에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P165

이때 한 캐릭터는 작업장 조직의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고 다른 캐릭터는 일반적인 캐릭터들이 형성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다면, 이 거래를 작업장 조직원이 일반 사용자에게 가상 재화를 판매하는 목적의 거래라고추정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나는 게임에서 발생한 전체 가상 재화의 거래 기록에 대해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했고, 그 결과 아이템 현금 거래 규모를 상당히 높은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었다. - P166

이보다 거래량이 더 감소한 시점이 있는데, 그래프에서 왼쪽에 있는 동그라미다. 이 기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이 포함되어 있다. 다소 무리한 추측일 수도있지만, 하필 그 전후 기간에 비해 유독 큰 폭의 하락이 있어서이 그래프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스갯소리로 <리니지> 사용자들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기간에도 게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리니지>사용자들도 아이템 현금 거래를 중지할 만큼 그날은 우리에게충격을 준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 P168

나는 계정들의 유료 아이템 구매명세와 이렇게 구매한 아이템을 다른 캐릭터에게 넘겨주는 기록을 추출한 후 앞서 소개한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이용해 이동 흐름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이들이 구매한 아이템을 몇 단게에 걸쳐 소수의 몇몇 계정에 넘겨주고, 이렇게 아이템을 취합한 계정은 다시 여러 계정에 아이템 현금 거래를 통해 판매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전자금융사기로 획득한 돈을 가상 세계를 통해 세탁한 것이다. <그림 17>은 이를 도식화한 자료다. - P169

그래서 이들이 돈세탁의 도구로 최근 활용하는 것이 가상재화다. 현재의 수사 제도로는 현실 세계에서 가상 재화를 구매하고 나면 이후 거래 내용을 추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상 세계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게임 회사 또한 현실세계의 재화 흐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여기 소개한 사례처럼 특별한 사건이 발생해 사이버수사대의 공식 요청을 받을 때 단편적인 분석이 진행되지만, 아직 체계적인 연계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런 허점을 노린 금융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 P170

아이템 현금 거래는 탈세의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2020년《전자신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일부 자산관리 업제에서 증여 및 상속의 수단으로 아이템 현금 거래를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세법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나 상속을 할 때는 최대 50%의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때는 이보다 훨씬 낮은 비율의 부가가치세 및 소득세만 부과된다. 가령 아이템현금 거래를 하면 6개월 단위 매출에 따라 판매자에게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600만 원 이하 : 면제
•600-1,200만 원 : 사업자 등록 및 매출 신고는 필요하지만 부과되는 세금은 없음
•1,200만 원 이상 : 매출의 10% 부가가치세 부과, 소듯 금액에 따른 소득세 별도 납부 - P171

아무래도 가상 세계 재화의 양도나 증여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면 아이템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는 셈인데, 이럴 때 생길수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게임회사에서 게임을 업데이트했는데 이 때문에 특정 아이템의 가치가 하락하면이 아이템을 보유한 사람은 재산상 손실을 볼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게임 회사에 소송을 걸지도 모른다. - P172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들은 현실 세계의 범죄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가상 세계 안에서 발생한 범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이를테면 가상 세계 속 캐릭터에게 모욕을 가하거나 원치 않은 폭력을 행사한 캐릭터가 있다면 이에대해 어떤 처분을 해야 할 것인가?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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