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1년에 쓰여진 책이다.








간호사는 동정심 가득한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기억 안 나세요?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예요. 선생님이 수술을 잘해주셨으니까 곧 회복될 거예요." - P20

"아아, 내 얼굴·-어떻게 된 거죠?"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마세요. 자, 진정하세요."
"내 얼굴을 보여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몸부림을 치자 간호사는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수술이 무사히 끝났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P21

"그는……… 나와 함께 있던 남자는 어떻게 됐죠?"
나는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경 뒤에서 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나를 외면했다. 나는 곧 사태를 파악했다. - P22

"사토나카 지로를 알고 계시죠?"
딱딱하고 위엄 있는 얼굴의 중년 형사가 침대 옆에 앉더니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지로의 이름에 경칭을 붙이지 않는게 거슬렸다. - P23

"왜 모르는 거죠?"
"자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은, 사토나카가 올 줄 몰랐다는 거군요."
"예, 몰랐어요." - P23

"그럼, 당신을 만나서 무얼 했죠?"
나는 머뭇거렸다. 심리적인 효과를 노린 행동이었는데, 형사는 쉽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내가 망설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 질문은 나중에 다시 하죠. 그건 그렇고, 화재가 난 것을기억하고 계십니까?"
"단편적으로요." - P24

"지금은 어떻습니까? 왜 사토나카가 당신 옆에서 잤는지짐작가는 게 있습니까?"
나는 눈을 내리깔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형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글쎄요.......그 화재와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형사는 수긍했다. "사토나카는 당신이묵고 있는 방에 불을 지른 후, 자신도 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P25

"뺑소니였습니다. 사토나카의 아파트로부터 몇 킬로미터떨어진 국도에서 노인을 치었습니다. 노인은 머리를 세게 부딪혀 즉사했고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사고 현장에 차량 파편이 떨어져 있어서 바로 차종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회랑정 옆에 버려진 사토나카의 차와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알아본 결과, 동일한 차량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P26

"자고 있는데 갑자기 ・・・・・・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차려보니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었어요."
"상대방의 얼굴을 봤습니까?"
"아뇨. 어두웠던 데다 눈을 떴을 때는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습니다." - P27

"무슨 약을 먹었나요?"
시안화수소입니다. 사토나카가 공장에 들른 건 그 약품을훔치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비공장에는 청산가리 같은게 상비되어 있으니까요."
"왜 나한테는 그것을 먹이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자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는 사람을 일부러깨워 약을 먹이는 것보다는 목을 조르는 편이 손쉬울 거라고생각했겠지요." - P29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소녀처럼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울면서 마음속으로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절규를 터뜨렸다.
사토나카 지로는 살해당했다. - P30

"만약 그렇게 됐다면 더 복잡해졌을지도 몰라요." 가나에가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잖아요. 만약 큰외삼촌이 그 언니와 결혼했다면 대부분의 유산이 그쪽으로 갔을 거예요.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 이렇게 모일 필요도 없었을걸요? 그런 의미에서는 그 동반자살사건을 고맙게 생각해야겠네요." - P51

하지만 이 또한 공허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다카아키 씨가 여성성을 보고 선택했다면, 주저 없이 회랑정의 지배인인 고바야시 마호에게 청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다. 고바야시 마호는 다카아키 씨에게 애인과 같은 존재였다. 일찍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고바야시 마호를 곁에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가 성불구자가 되면서 고바야시 마호의 애인으로서의 임무는 끝이 났다. - P56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과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걸알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가 가장 염려했던 건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려고 한 것에 불과했다. - P57

그리고 노력했다. 업무가 끝난 뒤 외국어를 배웠고, 여러 강습에 나가 몇 가지 자격증을 땄다. 이윽고 동료들 사이에서 고립되었지만 무능한 사람들이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 P55

이런 식으로 나는 못생긴 외모를 발판 삼아 최고의 스피드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인정해야 했다. 연애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이치가하라 다카아키 씨는 내 능력을 내다보고 비서로 지명했다. - P56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과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걸알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가 가장 염려했던 건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려고 한 것에불과했다. - P57

"그랬군요. 그런데 기리유 씨가 어쨌는데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만, 에리코 양은 이 료칸에서 사고를 당한 뒤 자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 듯 대부분의 사람이 순간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그런 반응과는 전혀 대조적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 P59

"에리코 양이 죽고 나서 2~3일쯤 지났을 때 이 편지가 도착했어요. 보시다시피 보낸 사람 이름은 기리유 에리코라고되어 있습니다."
"그러네요. 어렴풋하지만 필적도 맞는 것 같네요." 나오유키가 봉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에리코 양의 필적이 틀림없어요." - P60

그리고 다카아키 씨의 유언장 공개는 적당한 때와 장소를 선택한 뒤, 한정된 사람들 앞에서만 행해질 거예요. 아마 부인께서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 자리에 이 봉투를 꼭 갖고 가셔서, 유언장을 공개하기 전 모두 앞에서 개봉한 뒤이 편지를 읽어주세요. - P62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봉 시기를 지정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요 오빠의 유언장을 공개할 때라고 지정한 이상 유언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하잖아요. 가나에 말처럼 원한을 푸는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그 유서의 내용이 밝혀지면 오빠의 유산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생긴다든가요." - P70

"뭐, 어차피 추리에 불과한 얘기예요. 어쨌든 내일이면 알게 되겠죠. 저 안에 쓰여 있을 테니까."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요코가 말했다. - P71

적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병원 침대에 누워서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복수보다 먼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범인이 여전히 내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목숨을 건진 건 범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 P72

자살미수 사건 이후, 간호사의 감시가 심해졌다. 나는 여전히 죽음에 대한 동경을 입밖에냈고, 언제 또 이상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험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풍겼다. - P73

"...... 이런 곳에서 괜찮겠습니까?" 택시기사가 오랜만에입을 열었다.
"예. 사람이……… 애인이 올 거예요."
"아아, 그렇다면야." 택시기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애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에 내는 승객을 경박하다고 생각했는지 뺨이 약간 경직되었다. - P75

스웨터 위에 걸친 가운을 벗었다. 병원에서 항상 입고 있던옷이다. 그 가운을 둥그렇게 말아 힘껏 바다로 던졌다. 연분홍색 가운은 바람에 약간 밀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바다에 떨어졌다. 나는 그 장면에 나 자신을 이입했다. 나는 방금 이곳에서 떨어졌다. 기리유 에리코는 죽었다………. - P76

그런 상황과 이전의 행동으로 볼 때, 기리유 에리코는 자살했을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이 경찰과 관계자들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기리유 에리코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녀에게는 위장 자살을 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P79

복수를 계획했을 때부터 내가 갈 곳은 여기라고 정했다. 이곳에는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혼마 기쿠요 부인이 살고 있었다. - P80

"괜찮아요. 사실은 에리코 양만 오는 게 더 좋답니다. 다카아키 씨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회사 실적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뭐 하겠어요. 하품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역시 여자끼리가 편하죠. 이런 할머니도 여자로 생각해 준다면 말이에요." - P81

아니, 만났지만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집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거실에 쓰러져 있는 부인의 시체였다. - P82

나는 한참 동안 기쿠요 부인 옆에서 울었다. 시체가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고 그냥 슬펐다.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동반자살 사건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 P83

이 최초의 거짓말로 나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기쿠요 부인의 죽음을 숨기자, 그리고 내가 부인으로 변장하고 적에게 다가가는 거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 P84

장례식이 끝나고 1주일 뒤, 이치하라 소스케에게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다카아키 씨의 유언장 공개에 대해 적혀 있었다. 사십구일재를 회랑정에서 지낼 예정인데 유언장과 관련해 기쿠요 부인의 이름이 올라 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참석 의사를 서면으로 전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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