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소메이 출판사의 월간지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노노구치 선생님의 글이 실린 잡지 말입니다."
나는 겸연쩍은 것을 감추려고 잠시 얼굴을 찡그린 뒤에 약간 퉁명스럽게 잡지 이름을 말해주었다. 가가 형사는 그것을 수첩에 메모했다. - P47

히다카의 죽음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벌써 실려 있었다. 어젯밤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봐서는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11시가 넘어서도 뉴스 방송이 나온다. - P48

신문기사가 전하는 바로는, 경찰은 외부인의 우발적인 범행과 평소 안면이 있는 자의 범행이라는 양쪽 방향으로 수사할 전망이라고 했다. 현관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범인은 작업실 창문을 통해 드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 P49

"아, 노노구치 선생님이십니까?" 여자 목소리였다. 몹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런데요."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XX텔레비전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어젯밤 사건에 대해 잠깐 여쭤볼 수 있을까요?" - P49

"어젯밤에 히다카 구니히코 씨가 자택에서 살해된 사건에대해서 여쭤보려고 합니다. 부인 리에씨와 함께 사체를 발견하신 분이 노노구치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요, 그게 사실입니까?" - P50

"선생님께선 무슨 볼일로 히다카 씨 댁을 방문하셨던 건가요?"
"아, 미안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경찰에 다 했어요."
"히다카 씨 댁의 상황을 보시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리에씨에게 연락하셨다고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죄송하지만 경찰 쪽에 문의해주세요." 나는 인터폰을 껐다. - P50

하지만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는데 다시 차임벨이울렸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잠깐만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이번에는 남자 목소리였다. "전국의 시청자들이 자세한 정보를 원하고 있습니다."
히다카의 죽음이라는 비극만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터져버렸을 듯한 과장된 말이었다. - P51

"그래도 아주 잠깐만요." 남자는 물고 늘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고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어서는 이웃 사람들에게 폐가 될 터였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 P51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셨는데, 노노구치씨가 보시기에 히다카 씨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여성 리포터가 큼직한 목소리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화면 속의 나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침묵의 시간이 의외로 길어서 영상으로서는 지나치게 틈이 벌어졌다. 아마 편집할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있던 리포터들이 답답해하는 것이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 금세 느껴졌다. - P52

"히다카 씨를 살해한 범인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 속물스러운 몇 가지 질문 끝에 여성 리포터가 닳아빠진 감상을 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내 대답에 리포터들이 잔뜩 실망한 눈치였다. - P53

사회자뿐만 아니라 우연히 오늘 게스트로 불려 나온 탤런트까지 히다카의 죽음에 대해 저마다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댔다. - P53

"어젯밤에는 친정집에서 보냈어요. 여기저기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러시겠죠. 지금은 어디에?"
"집에 와있어요. 오늘 아침에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건 현장을 보면서 다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요."
"그건 끝났습니까?"
"네, 끝났어요. 아직 경찰 몇 분이 계시지만." - P54

"그보다 노노구치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댁에 몰려들고정말 큰 고생을 하셨죠? 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출판사 직원이 알려주더군요. 정말 큰 폐를 끼쳤다 싶어서 전화 드렸어
"아뇨, 나는 괜찮아요. 취재 공세도 이제 어지간히 끝난 모양이고."
"정말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하는 말투였다. - P55

전화를 끊은 뒤, 잠시 리에씨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직 젊고 친정이 운송회사여서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니까 생활에 부족함은 없겠지만, 이번 사건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히다카와 결혼한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것이다. - P56

가가 형사가 찾아온 것은 저녁 6시쯤이었다. 또다시 매스컴사람들이 찾아왔나, 지겨워하면서 나가보니 그였다. 하지만 혼자 온 게 아니라 그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마키무라라는 형사와 함께였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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