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난 날은 4월 16일, 화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오후 3시반에 집을 나와 히다카 구니히코의 집으로 향했다. 히다카의 집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전차로 역 하나 거리다. 역에서 잠깐 버스를 타야 하지만 그래도 걷는 시간까지 합해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 P9
몇 년 전 히다카에게서 이쪽에 집을 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역시나 하고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 동네에 산다는 건 큰 꿈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 P10
남의 집이기는 하지만 친구라는 입장을 앞세워 널름 들어가보기로 했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중간에서 갈라져 건물남쪽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위를 걸어 정원으로 돌아 들어갔다. 벚꽃은 그새 많이 떨어져버렸지만 아직 기분 좋게 바라볼만큼은 꽃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곳에 낯선 여자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 P11
"미안해, 잠깐 쇼핑하려고 나갔는데 길이 막혀서 말이지. 아, 힘들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히다카는 얼굴 앞에서 손을 내저었다. "오래 기다렸어?" "아냐, 별로. 내 마음대로 여기 정원 벚나무를 구경하고 있었어." "이제 많이 떨어졌지?" "조금 그래도 정말 근사한 나무야." - P13
"아, 내일까지 보내야 할 원고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지?" 내 질문에 히다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재 1회분이 남았어. 오늘 밤 안에 팩스로 보내주기로 했어. 그래서 아직 전화는 해지 수속도 못 하고 있고." "소메이 출판사의 월간지?" "응." "앞으로 몇 매나 써야 하는데?" "30매, 뭐, 어떻게든 될 거야." - P14
"글쎄, 모르겠네. 이번에 가서 살게 될 집 근처에는 없었던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히다카는 커피를 마셨다. "근데 아까 좀 이상한 여자가 정원에 와있었어." 나는 약간망설였지만 역시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말하기로 했다. "이상한 여자?" 히다카가 미간을 좁혔다. - P15
"꽤 자세히 알고 있네.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지?" "그 여자하고? 천만의 말씀." 히다카가 창문을 열자 모기장덧문만 남았다. 부드럽게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에는 잎사귀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 반대야." 히다카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 여자한테 원한을 산 것 같아." - P16
"내가 독을 넣은 경단을 뿌려놓아서 고양이가 그걸 먹은 게아니냐고 의심하는 모양이야." "자네가? 그 여자는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게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유라니까." - P17
그것은 반 페이지 정도의 수필이었다. 제목은 인내의 한계」 옆에 히다카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었다. 나는 그수필을 대충 훑어보았다. 글의 내용은, 내놓고 기르는 고양이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나가 보면 정원에는 반드시 고양이 똥이 널려 있고, 주차장 자동차의 보닛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다. 화분의 꽃이며 잎사귀를 물어뜯기도 한다. 흰색과 갈색의 얼룩 고양이가 범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대책을 세울 도리가 없다. 페트병을 주욱늘어놓으면 고양이가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것도 해봤지만 전혀 효과가 없고, 그야말로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나날이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 P17
"지난주였던가. 그 여자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 우리 집에 쳐들어왔어. 차마 독을 뿌렸다는 말까지는 못 했지만 거의 그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는 그런 짓 안 한다. 하고 리에가 화를 내면서 돌려보냈는데, 오늘도 정원을 어정거렸다는 걸보니 아직도 의심하는 모양이네. 혹시 독이 든 경단이 어딘가 떨어져 있지 않나 하고 살펴봤겠지." - P18
"내가 그 고양이를 죽였다고. 독 경단을 정원에 뿌렸었어. 설마 그게 그렇게 잘 먹힐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그 말을 듣고서도 여전히 나는 히다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느물느물 웃고는 있어도 그 얼굴은 농담할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독 경단 같은 걸 어떻게 만들어?" "별것 아냐, 캣푸드에 농약을 섞어 정원에 던져두기만 하면돼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는 뭐든 덥석 집어먹는 모양이야." - P19
"부동산 중개소에서 계속 세입자를 찾고는 있는데, 지난번에 약간 마음에 걸리는 소리를 하더라고." "어떤 소리를?" "집 앞에 페트병을 늘어놓으면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거야. 그야말로 고양이한테 시달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래, 당연히 그래서는 아무도 이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겠지." - P20
"그래서 죽였어?" "이건 기르는 사람한테 책임이 있어. 그걸 그 니미라는 여자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히다카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 P20
"편집자야?"라고 나는 물었다. "응, 소메이 출판사의 야마베씨. 내 원고 늦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역시 이번만은 애가 타는 모양이야. 아무튼 지금놓쳤다가는 내일모레면 나는 일본에 없으니까." "그럼 자네 일 방해되지 않게 이만 슬슬 가볼게." - P21
"서둘러 가시게 해서 미안해요." 손을 맞대고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죄송하다는 듯 그녀는 말했다. 몸집이 작고 마른 편이라서 그런 식의 몸짓을 하면 소녀 같은 분위기가 났다. 도저히 삼십이 넘은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모레는 공항으로 배웅하러 갈게요." - P23
집으로 돌아와 잠시 일을 하고 난 참에 현관 차임벨이 울렸다. 내가 사는 곳은 히다카와는 달리 겨우 5층짜리 건물의 원룸맨션 한 칸이다. 작업실 겸 침실로 쓰는 세 평짜리 방 하나에 네 평정도의 거실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이다. 그리고리에 씨 같은 아내도 없다. 차임벨이 울리면 내가 직접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 P24
"여전히 시간에는 정확하군." "제 특기가 그거 하나뿐이거든요. 이거 좀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모유명 제과점의 상호가 새겨진 과자 상자였다. 그는 내가 단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24
"바쁘다고 할까, 지금 손님이 와 있어." "그래? 몇 시쯤 끝날까?" 나는 벽시계를 보았다. 6시를 조금 넘어선 참이었다. "앞으로 조금 더 걸릴 거야. 근데 무슨 일이야?" "응, 전화로는 말하기가 어려워. 잠깐 자네하고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래. 이쪽으로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 P25
내가 무선 전화기를 내려놓자 오시마 군이 소파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볼일이 있으시면 저는 이제 그만………." "아냐,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에게 어서 앉으라고 손을 흔들었다. "8시에 누구하고 좀 만나기로 약속한 것뿐이야.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까 마음 편히 읽어봐도 돼." - P26
히다카에게는 『수렵 금지구역』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어느 판화가의 생애를 묘사한 소설이다. 일단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이 작품에는 실재 모델이 있었다. 후지오 마사야라는 사내였다. - P26
하지만 이 소설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즉 작품 속에 후지오 마사야에게 그다지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일까지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특히 그의 중학교 시절의 수많은 기행에 대해 히다카는 거의 실제 사실 그대로 써버렸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물론 다르지만, 그 부분만 읽어보면 나처럼 후지오 마사야를 아는 사람은 도저히 픽션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또한 후지오 마사야가 창녀의 칼에 찔려 살해되는 대목도 완전히 실제 사건과 똑같았다. - P27
후지오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항의에 나선 것은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그녀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소설의 모델이 후지오 마사야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소설의 집필을 허락한 적이 없다. 또한 이 소설 때문에 후지오 마사야의 사생활이 폭로되고 그 결과 부당한 명예훼손의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이 소설책의 회수와 전면적인 개고(改稿)를 요구한다ー. - P27
조금 전에 걸려온 히다카의 전화 목소리를 통해 추측해보자면 후지오 미야코와의 협상은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자기 집에 와달라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일이 크게 틀어져버린 건가. 그렇다고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 P28
"히다카 씨하고 아는 사이예요?" "응,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어. 내 본가가 바로 이근처였거든. 여기에서라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야. 지금은 그 친구 집이나 우리 집이나 다 철거되고 맨션이 들어섰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군요." "뭐 그렇지. 그래서 요즘에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고." "와아." 그의 눈에 선망과 동경의 빛이 떠올랐다. "저는 그건 또 몰랐네요." - P29
"언젠가는 써볼 생각이야. 기회만 닿는다면, 이라고나 할까?" 이건 나의 진심이었다. 7시 반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나와 역까지 둘이서 나란히 걸었다. 반대 방향의 전차를 타고 가는 오시마 군을 플랫폼에서배웅했다. 곧바로 내 쪽의 전차도 왔다. - P30
그때는 내가 뭔가 착각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히다카가아까 전화로 8시에 와달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꼭 자기 집으로 8시에, 라는 의미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 P30
"여보세요, 히다카입니다." 리에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노구치인데요. 히다카, 그쪽에 있습니까?" "아뇨, 아직 호텔에 안 왔어요. 지금 집에 있을 거예요. 일이 남았을 테니까요." - P31
"호텔에는 서둘러도 한밤중에나 올 거라고 했었는데?" "그럼 잠깐 어디 나간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리에 씨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하더니 이윽고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40분쯤이면 도착할 거 같은데, 노노구치씨는 지금 어디 계세요?" - P31
내가 찻집이라고 말한 곳은 히다카가 기분 전환을 위해 자주 찾는 커피 전문점이었다. 나도 몇 번 와본 적이 있었다. 찻집 주인은 나를 기억해주었다. 오늘은 히다카 씨와 함께 안 오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더라고 나는 대답했다. - P32
"정말로 컴컴하네." 그녀가 말했다. "아직 안 돌아온 모양이죠." "하지만 외출할 예정이 없었는데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며 그녀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P32
"외출할 때 항상 문을 잠가줍니까?" 내가 물었다. 그녀는 열쇠를 꺼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즘에는 거의 문을 잠근 적이 없어요." 열쇠를 꽂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작업실도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어두운 건 아니었다. 컴퓨터를 끄지 않았는지 데스크톱의 모니터 화면이 빛을 뿜고 있었다. - P33
나도 멈칫멈칫 다가갔다. 히다카는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틀어 왼쪽 옆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이미 죽은자의 눈빛이었다. "죽었어...………." 나는 중얼거렸다. - P33
사코다 경감은 선 채로 우리가 사체를 발견하기까지의 경위를 질문했다. 이야기의 흐름상 나는 후지오 미야코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다카 씨가 선생 댁에 전화를 한 게 몇 시쯤이었어요?" "6시 지나서였어요." "그때 히다카 씨는 뭔가 그 후지오라는 여자에 관한 얘기를했습니까?" "아뇨, 그냥 나한테 상의할 일이 있다고만 했어요." - P35
"어디 보자, 오늘 밤과 내일 밤은 크라운 호텔에서 머물고모레는 캐나다로 출발할 예정이었군요. 그런데 남편분은 일이 다 끝나지 않아서 혼자 이 집에 남았다...…." 자신이 메모한 내용을 보며 그렇게 말한 뒤에 사코다 경감은 얼굴을 들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누구입니까?" "나하고, 또・・・・・・." 리에 씨는 내 쪽을 쳐다보았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 밖에는 소메이 출판사 편집부 직원이겠죠." 히다카가 오늘 밤에 하려던 작업이 소메이 출판사에 건네줄 원고였다고 나는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범인을 특정하는 건 좀・・・・・…" - P36
한바탕 질문이 끝나자, 자택까지 부하 경관이 차로 데려다줄 거라고 경감이 내게 말했다. 나는 리에 씨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경감의 말로는 그녀의 본가에 연락했으니 곧 누군가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 - P37
제복을 입은 젊은 경관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를 문 앞에 세워둔 경찰차 쪽으로 안내해주었다. 경찰차에 타보는 건 속도위반에 걸렸을 때 이후로는 처음, 이라고 이번 일과는 아무관계도 없는 생각을 했다. - P37
"엇, 자네는?" "저, 아시겠어요?" "물론 알지, 알아. 이름이..." 머릿속에서 확인한 다음에나는 말했다. "가가 교이치로였어." "예, 가가예요." 그는 공손히 인사를 건네왔다. "그때는 제가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냐, 나야말로." 나도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그를보았다. 10년, 아니, 좀 더 오래전인가. 예리한 얼굴 생김새가 한층 더 연마된 것 같았다. "경찰관으로 전직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 P38
가가는 내가 전에 교편을 잡았던 중학교에,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부임했던 사회 과목 교사였다. 그 역시 수많은 신임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기백과 열의가 넘쳤다. 검도의 달인이기도해서 검도부를 척척 인솔하는 모습은 그의 열의를 한층 더부각시켰다. - P39
"노노구치 선생님, 요즘 근무하시는 학교는 어디예요?" 차가출발하자마자 가가 선생이 물었다. 아니, 이제 선생이라는 호칭은 이상하다. 가가 형사라고 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까지 이 구역의 제3중학교에 있었는데 올 3월에 사직했어." - P39
"교직에 계시면서도 계속 글을 썼던 거예요?" "그런 셈이지. 근데 1년에 두 번, 30매 남짓한 단편을 쓴 것뿐이야.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해야겠다 싶어서 결심 끝에 학교를 그만뒀어." "그렇습니까. 정말 대단한 결단이었네요." - P40
"죄송합니다. 이름은 들었지만 그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어요. 요즘에는 특히 독서와는 답을 쌓고 살게 되었어요." "하긴 일이 워낙 바쁘겠지." "아뇨 그냥 게으른 거예요. 한 달에 두세 권은 꼭 읽자고 항상 생각은 하는데." 그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최소한 한 달에 두세 권의 독서는 필요하다. 그건 내가 국어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에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가가가 그 말을 기억하고 그렇게 말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 P41
"저도 읽을 만한 소설이에요?" 가가 형사가 물었다. "이를테면 추리소설이라든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소설도 있지." 나는 대답했다. "참고삼아 대표적인 소설을 좀 알려주세요." "흠, 글쎄." 나는 야광충』이라는 소설 제목을 알려주었다. - P41
"리에씨라면, 부인 말이죠? 아직 한창 젊은분으로 보이던데." "바로 지난달에 혼인신고를 했어. 리에씨하곤 재혼이야." "그렇군요. 그러면 전부인과는 이혼?" "아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벌써 5년 전 일인가." - P42
"그런데요." 가가 형사는 수첩을 펼쳤다. "니시자키 나미코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그 밖에 오사노 데쓰지, 나카네 하지메라는 이름도 있었어요" - P43
"사망직전까지 히다카 씨가 그 소설을 집필했던 모양이던데요." "그러고 보니 컴퓨터 전원이 켜져 있었어." "그 화면에 이 소설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가가 형사에게질문했다. "그 소설, 어느 정도나 쓴 상태였어?" "어느 정도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 P43
"글쎄, 어느 정도일까. 아, 전에 한 시간에 4매쯤 쓴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 "그러면 아무리 서둘러 썼다고 해도 6 매쯤인가요?" "그런 정도겠지?" 내 말을 듣고 가가 형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머릿속에서뭔가를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내가 물었다. - P44
"그 점에 대해서는 내일 출판사에 문의해볼 예정입니다." 나는 재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리에씨의 말에 따르면 후지오 미야코가 돌아간 것은 5시쯤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히다카가 전화를 했던 게 6시가 지난 시각, 그사이에 집필을 계속했다면 아마 5매에서 6매는 썼을 것이다. 문제는 그 외에 몇 매가 더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 P45
"사망 추정 시각이라는 게 있지? 경찰에서는 몇 시쯤이라고 보고 있어?" "그건 분명 수사상의 비밀이죠."가가 형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뭐, 말해도 괜찮을 겁니다. 자세한건 부검 결과에따라 달라지겠지만, 5시부터 7시 사이라는 게 우리 쪽 판단이에요. 아마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6시 조금 넘어서 전화를 받았으니까..………." "예, 그렇게 되면 6시부터 7시 사이라는 얘기가 되겠죠." - P45
"히다카를 어떤 방법으로 살해한 거야…………." 그런 나의 중얼거림에 가가 형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체 발견자가 하는 말이라기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가 어떤 방법으로 살해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무서워서 사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 P46
"그리고 또 한 가지, 외상이 있었습니다. 후두부를 맞은 것같아요. 현장에 떨어져 있던 놋쇠 문진을 흉기로 썼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내리치고 정신을 잃은 참에 교살했다는 건가?"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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