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어야하는데, 중반까지만 읽다가 손이 안 갑니다.










대학을 못 다닌 것에 관해 복희는 유감이 없다. 오래된 일이기때문이다. 국문과에 합격했던 열아홉 살의 자신과 등록금을 내줄 수 없어서 울던 가난한 모부의 시절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복희의 삶은 대학과 상관없는 일들로 채워지며 깊어져왔고 이제 그는 손주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 P100

"복희가 대학만 갔어도 인생이 달라졌는디 ・・・・・・ 속상해서 워쩌....." - P101

복희네 가족은 매년 초겨울마다 이 중대한 행사를 치른다. 모부인 존자와 병찬, 그리고 복희, 영희, 윤희 자매가 모여 김치를 담그느라 분주하다. 마당에는 백이십 포기의 배추가 쌓여 있다.
존자와 병찬이 직접 농사지은 배추들이다. 자매들은 수돗가에앉아 배추를 다듬는다. 씻고 썰어낸 뒤엔 소금물에 흠뻑 적신다.
적신 배춧잎 사이에는 굵은소금도 켜켜이 넣어야 한다. 배추를 절이는 건 그렇게 징한 작업이다. 마당에 부는 겨울바람이 차다.
그들은 모두 기모바지를 입고 일한다. - P101

노동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얼추 마무리된다. 복희가 먼저 부엌에 들어가 저녁을 차린다. 존자의 부엌이지만 복희가 온 날이면 존자는 요리를 쉰다.  - P102

"우리 아는 워찌 지내냐? 아픈 데는 없는겨?"
밥상에서 존자가 묻고 복희가 대답한다.
"엄청 바빠 정신없어." - P102

19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여자아이에게는 자로 끝나는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흔했다. 향자, 미자, 순자, 혜자, 명자,
숙자, 희자 ・・・・・ . 그중에서도 유독 강렬한 우리 외할머니 이름은 ‘존자‘다. 있을 존과 아들 자. 태어나보니 아들이 아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기가 아닌 다음 남자아이를 희망하는이름으로 평생 살아온 존자씨의 기구함에 대해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막상 존자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와서 워쩔겨~ 뭘 그런 걸 가지구 그랴 시방 코앞에 할 일이 태산인디~" - P104

존자 한번은 복희가 대학 합격했는디 입학금을 내일까지 내야 된다. 복희가 나한테 사정을 해. 엄마가 입학금만 내주면자기는 분명 선생님이 될 거래. 학비는 아르바이트해서 어떻게든 낼 테니까 입학금만 도와달래. 선생님이 되어서 다 보답할게, 엄마한테 잘해줄게. 하고 막 사정을 하고 울더라구. 아침에 그거를 뿌리치고 출근을 했어. 돈이 없으니께 나도 방법이 없어 밤에 퇴근하고 돌아가니까 복희가 얼마나 울었는지두 눈이 퉁퉁 부어서 뜨지를 못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만큼공부를 했는디 입학금을 못 넣어서 학교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분하고 슬프겄어. 다 무효가 되었으니 복희는 복희대로다락에서 울고 나는 나대로 부엌에서 울었지.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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