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할 때 남들한테 들어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습관이배어 있지 못해, 그래서 내가 말하는 걸 중간에 끊을 방도가없는데, 하물며 내가 메인 주(州) 근방의 어느 시골마을에서태어났다는 둥, 종교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둥, 선생님들이죄다 성직자였다는 둥, 바싹 메마른 여자들이 자기 평생을희생한다는 것에 열렬한 자부심을 느꼈고, 앙드레는 안느 자매, 쥘리는 잔느 자매라는 식으로 저희끼리 처음부터 가짜이름들을 갖다붙이는 이 여자들에게 나는 또 꼬박꼬박 수녀님이라 불러야 했고, 자매인지 수녀님인지 내게 가르치기를, 부모란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지을 능력이 없으며, 하느님 앞에서 자식들을 적절하게 규정하기엔 너무도 무능한 존재라나, 그리규 또 뭘 알고 싶을까, 그래 어쨌든 난 정상적닌 아이인데다, 공부에 소질까지 있었고, 그엏게 내가 자라난 바로 그 카톨긱 마을엔 신부들의 구마술 요법으로 치료받고자 각지에서 몰려든 정신분열즐 환자들로 넘쳐났지만, 작는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신안만 있다면 그런대로 썩 괜찮은 삶을 누릴 만한 곳이 또한 마을이었다는 둥 이따위 애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당신인들 어찌 질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10
, 내가 칠 피아노가 없고 악보도 한 장 모자라는 거야, 지난 수년간 단 한 곡조도 피아노를 연주한 적이 없고 지금 이나이에 그런 데 있는 게 한참 우스꽝스럽다는 걸 의식하면서도 그곳으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무언가가 내게 귀띔하기를 원장수녀님 앞에서 피아노 칠줄몰라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그쯤에서 발길을 돌리는 게 나을 것이며, 사실 그녀는 내가 결코 피아니스트가 될 리 없고, 유치하게 딩동거리는 게 고작이라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에연주를 하든 안 하든 별로 상관도 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마른기침 한번 하면 사방이 다 울리는 그 붉은 벽돌의 자그만 학교에선,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옮겨갈 때마다 똑바로 줄을 서서 가야만 했지, 키가 작은 애들이 앞이고 키가 큰애들이 뒤에서 나는 제일 작은 애여야만 했어. 왠지는 모르지만 그게 구호(口號)였거든,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 작은애들과 큰 애들 사이에 끼여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 제일 작아지자는 거 해서 신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수녀님이 한 해동안의 정렬순서를 정해줄 때가 되면, 나는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치마 아래로 무릎을 살짝 구부렸지, - P11
기억이 나, 이불 속에 있던 그녀의 몸과 동그랗게 웅크린고양이처럼 베개 위에 반쯤만 내밀고 있던 그녀의 머리, 그나마 그녀의 잔해마저 서서히 평평해지면 거기 그녀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건 머리카락 몇 올뿐, 그것만이 그녀의 존재와 그녀를 덮은 이불을 구분해주는 전부였지, 그 머리카락의시절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어, 글쎄 한 삼사 년쯤, 그건 내게 마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전성시대와도 같았지. 내어머니가 그렇게 이불 속에서 삭아들던 그 시절 나는 이미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큰 처녀도 아닌, 예의 그 머리카락 색깔이 서서히 변해가는 한편 내 치골의 금빛 솜털 가운데 느닷없이 까만 거웃 두세 가닥이 돋아나는 참으로 어중간한 영역을 배회하고 있었어. 그러곤 알았지, 어머니가 완전히 자는 게 아니라 한 반쯤만 잠들어 있다는 걸, (중략) - P13
그리고 또 전혀 잠은 안 자고 하느님만 믿는 우리 아버지, 사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느님을 믿는 일뿐이었어. 하느님을 말하고,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예견하면서 최후의 심판에대비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항상 떠벌리길 제3세계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이때 이처럼 손쉽게 기름지게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며 무슨 뉴스라도 되듯 사람들 흉을 봐대는 일뿐이었다구 하여튼 내가 사랑하는 족족 도로나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 나를 사랑하기를 두세 배까지 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다구차스러울 정도, 외부로부터 들이치는 나에 대한 관심의 눈초리엔 단호히 대처하시는데, (중략) - P14
그의 활력을 다른 데, 즉 머나먼 공간인 낙원으로 늘 쏠리게해준다는 사실이지, 일요일에 우린 성당으로 갔지.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맨 앞 나무의자에 둘이 나란히 앉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제단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빛의 다발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지. 나는 벌써 삼켰어야 할 성체(聖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어, 일단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그것은 곧장 내 방으로 옮겨졌고, 거기 침대 밑에 숨겨둔 책의 갈피에 얌전히 처박혔지, 매일 밤 나는 책을 펴서 그것이 아직도 무사한지 살폈는데, 하얗고 자그마하고 동그란데다 연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안에 도무지 뭐가 들어 있다고는 볼 수가 없었어, - P15
그리고 내 인생이 있었어, 이상 모든 것, 어머니나 아버지혹은 언니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만의 인생 말이야, 친구들과 좋아하는 음악들, 사랑의 아픔과 최신 유행을 노리고감행한 헤어스타일, 하지만 막상 그 결과 앞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 바다, - P17
두 분 생각에는 필경 우리 둘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함께 같은 침대를 쓰며 서로에게 버릇을 들이다 보면, 애무와사소한 욕구로 이루어진 일종의 공동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신 게지. 하긴 녀석은 새로운 상황들로 긴박하기만 한 세상에서 늘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유일한 요소였어 노곤하게 졸음을 즐기는 녀석의 지조를 지켜보노라면 사람들이 스스로의 과도한 가능성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지하철의 넘치는 환승 노선 때문에 얼마나 피곤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지, 녀석의 이름은 자주(Zazou), 사팔뜨기 푸른 눈을 가졌지. 그 때문에 내 눈동자처럼 볼수록 푸른빛이더하는 것 같아,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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