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천만뜻밖이었다. 중국어판이 한국어판보다 훨씬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나는 우리나라의 번역 수준이 중국보다 못한 것을 개탄했다. 하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본도 4종이나 되고 코플스턴의 철학사 시리즈(전 9권) 번역도일찌감치 완간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역자의 머릿수가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 내 생각은 틀렸다. 번역학에서는 번역 텍스트의 특징으로 ‘명시화‘라는 것을 꼽는다. 번역문은 원문보다 일반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한편, 원문의 논리를 강화하고 함축적 내용과 복잡한 통사구조를 명료하게 정리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의 조건 중국어판이 한국어판보다 쉽게 읽힌 것이 꼭 번역의우월성을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어려운 어휘가 난무하고 미로같은 문장구조를 가진 한국어판이 오히려 원작의 속성을 더 잘살렸는지도 모른다. - P49

하지만 역시 보증하건대 번역가는 자기가 번역하는 작가,
즉 원저자의 스타일을 훼손한다. 도착어로 출발어의 언어 효과를 재현하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원저자의 ‘일탈‘이 번역가와 독자와는 거의 무관한 일이라는 게 더 중요하다. 원저자가 그토록 일탈하려 한 자국어의 상투적 언어습관이 그들에게는 아예 존재한 적이 없어서다. 그래서번역가는 원문을 통해 원저자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도예외 없이 모국어의 정연하고 정상적이며 표준적인 스타일을 더존중한다. 원저자의 스타일은 그저 은연중에 제한적으로 거기에스밀 뿐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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