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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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출간된 신경숙님의 장편소설. 표절 문제가 불거지고 나온 작품이라서 그녀의 작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두에 오른 것 같다. 하지만 벌써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신경숙 작품을 띄엄띄엄 볼 수는 없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펑펑 울던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번에도 책을 완독하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왜 책 제목이 <아빠에게 갔었어>가 아닐까. 아빠와 아버지가 주는 어감은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아빠라는 단어보다 무겁고 뭔가 더 책임감이 느껴지는 단어랄까.

엄마의 입원으로 J시 집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기 위해 ‘나’ 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고로 딸을 잃고 한동안 고향집에 가지 않았던 '나'는 딸에 대한 슬픔 반, 아버지를 보살펴야겠다는 마음 반으로 J시 집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그때 알게 된다. 아버지가 한밤중에 잠에 깨어 수면장애를 겪는 것도, 예전에 죽었던 고모를 언급하며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도. 자신만의 슬픔에 갇혀 지내고 있다가 아버지의 노쇠함과 병증에 당황스러워하던 그녀는 아버지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형제자매들과 아버지의 병에 대해 의논하기도 한다.

P.70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방패를 치고 살아온 시간들. 그러나 방패는 쳐지지 않았다.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릴 때는 이것이 언지 자라서 심고 키워서 추수를 하나 싶어도 하루가 금세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어느 한밤중에 아버지가 담담히 내뱉은 말이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을지. 아버지를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고향에 내려갔던 그녀지만 오히려 아버지라는 존재에 위로를 받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아버지를 괴롭히는 병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위암이라는 육체적 병을 얻는 것과 달리 전쟁통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아버지는 그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따라다닌 것인지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것이다.

가족이긴 하지만 제 삼자의 눈으로 아버지의 일생을 들여다보며 몰랐던 사실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한때는 꿈 많은 청년이었을 텐지만 부지불식간에 4남 2녀라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가장이 되어 버린, 지금은 노쇠한 아버지.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산 아버지인 줄 알았지만 형제들과 엄마가 전해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전쟁통에서 만나 서로 의지했던 박무릉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아가게 된다.

나 역시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인 줄 알았다. 내 부모님도 부모이기 전에 어린아이 시절을 겪고 꿈 많은 청춘을 지내온,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보통의 사람이었을 텐데 나는 부모님의 과거나 지나온 시절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었을 텐데 당연하게도 나는 자식 노릇에만 충실한 채, 부모님의 인생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살아왔으니까.

P.409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오래 굽어 살펴온 것들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어룽져 있던 빛이 내게까지 번져왔다. "이런 날이 올 줄을 모르고 살었구나. 밭이 있어도 고구마를 안 심고 논이 있어도 농사를 못 짓고..."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뿜어내지만 가장 쓸쓸했던 느낌을 주었던 것은 적막한 시골 풍경을 묘사한 장면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수면장애로 밤에 깊은 잠을 못 잘까봐 일부러 낮잠을 못 자게 하고 낮에 아버지와 산책을 한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노인들과의 대화에서는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날들에 대한 인사가 있다. 사람 없는 빈집에 노인 혼자 마루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풍경은 너무 흔해졌고, 멧돼지와 고라니가 사람들보다 더 많아져서 산에서 내려와 동네로 출몰하고, 산밭에 매실을 심어놔도 따먹는 사람이 없어 다음 해에는 더 풍성하게 열린다는 아버지의 말은 애잔하고도 슬프다.

꾹꾹 눌러왔던 슬픔이 터진 것은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생전 자신이 아껴왔던 물건들을 하나둘씩 자식들에게 남기고 넷째인 그녀에게는 헛간에 세워둔 자전거를 남긴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웠고, 학교가 끝나고 늦은 밤에 혼자 집에 돌아올 때도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데리러 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3년 전에 새 자전거를 사놓고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P.414 아버지는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니가 오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아버지는 니가 밤길을 걸을 때면 너의 왼쪽 어깨 위에 앉아 있겠다, 했다. 그러니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모님은 자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식들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리는 일도 많아 언제나 자식들은 뒤늦게 후회한다. 이제는 작고 초라해진 부모님의 몸을 보며 더 잘해야겠단 생각만 들 뿐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세상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와 버팀목의 존재가 된다. 소설 속 아버지는 자식들 덕분에 용케도 살아냈다고 말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면서도 단단하고 강인한 인생을 살아내왔던 세상 모든 아버지의 생과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신경숙 #신경숙소설 #아버지에게갔었어 #창비 #아버지 #가족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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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 최고의 나를 이끌어내는 부의 심리학
롭 무어 지음, 이진원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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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큰 빚을 떠안고 파산했지만 30세에 부를 거머쥔, 영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수성가한, 신화적인 인물인 롭 무어의 신간이 나왔다. 그의 책들은 나오기가 무섭게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되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저자는 지금껏 출간된 그의 저서 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롭 무어는 15년간 수십만 명의 사업가과 기업가를 대상으로 부의 시스템과 공식을 설파하고 다니며 멘토링을 진행했지만 이들이 결국 공통된 함정에 빠진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다. 자기 가치를 깨닫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한 확신과 자존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돈을 벌어도 부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

각종 심리학 분야나 힐링 에세이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모두 영향을 주는 자아 개념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자존감을 높이고 낮출 수 있는 일들에 직면하겠지만 자존감을 잘 보호하고 높이려면 타협할 수 없는 자신만의 행동 원칙을 정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자존감을 해치는 행동을 몇 가지 정해놓고 이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책 도입부에는 마치 철학서처럼 가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외부의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허황된 인식을 만들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가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자신의 현실을 바꿀 힘이 있으므로 자존감 역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에 항상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아리송한 문체이지만 이 말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수긍하지 못한다면 뒷장을 읽어도 크게 깨닫는 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와 자존감을 연결 지어 자존감을 원천으로 한 성공사례와 행동 전략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P.47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자존감이 역대 최저처럼 느껴지지 않는 누구라도 겁을 줄 생각이 없다. 이 책이 일반적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억만장자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은 백만장자처럼, 자존감을 전반적으로 높이고 싶은 누구에게라도 유용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실패라는 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과학자나 운동선수 등 셀럽들이 말하는 대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패를 거듭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동굴에서 나와 무엇이라도 시작하자.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마음을 열어라. 저자는 용기를 내어 꿈을 꾸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행동력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부를 거머졌지만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부자 마인드를 가졌어도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면 일을 그르치거나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강하거나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는 최대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경솔하고 변덕스러운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 254"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관리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는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자유와 행복을 얻지 못한다."


저자는 부를 쫓기에 앞서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마인드를 바꿀 것을 먼저 권한다. 이 책은 부를 얻기 이전에 부를 대하는 태도 및 자신의 가치를 확고히 할 것을 당부하고, 이미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부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하우를 알려준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고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 뒷받침되어 준다면 이미 창과 방패는 준비가 된 것이다. 롭 무어가 알려주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섭렵하여 나 자신의 가치를 믿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겠다.

#확신 #다산북스 #롭무어 #robmoore #롭무어확신
#부의심리학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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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김리하 지음 / SISO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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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부터 감동적인 이야기가 쓰여 있다.
작가에게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와서 한창 힘들었던 시기에, 친한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려고 만났는데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후배가 딸아이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쥐여주었다고 한다. 작가는 아이한테 왜 이리 돈을 많이 주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후배는 언니도 자기에게 그런 적이 있지 않았냐며 서둘러 사라진다. 알고 보니 작가는 20년 전, 우연히 떠난 해외여행지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던 후배를 조우했는데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찔러 주었던 것. 그 용돈이 세월을 돌고 돌아 작가의 딸아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 미담 같은 이야기를 통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깨달음이 왔다. 타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도우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더라도, 행여나 그것이 돈이나 물질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해져온다면 충분히 보상받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을 통해 기운을 얻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책에는 작가의 따뜻하고도 흐뭇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어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하구나 느낀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다는 작가는 하루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이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생각과 감정을 기록했다고 한다. 나도 일기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쓰고 있는데, 하루의 일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인듯싶다. 남한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거나 화가 나서 분노에 가득 찼을 때에도 일기를 쓰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차분해진다. 숱하게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본인의 경험을 글로 쓰면서 상처를 회복함과 동시에 타인의 고민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깨우쳤다는 작가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작가의 지속적인 글쓰기 덕분에 이 에세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이겠지.

P.104"내 상처를 극복한 기억과 극복하면서 생긴 힘은 나만 살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고민과 상처를 지닌 누군가에게로 가서 닿는다."

작가에게는 내가 본 받을 점이 많아 보인다. 그녀는 새벽 공기와 함께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또한,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운동을 하고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30년 동안 함께한 믹스커피를 끊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다.작가는 이러한 습관을 들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흔들림을 겪었다고 하니 역시 모든 일은 노력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하나보다.

P.81"어떠한 것에 중독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제품 혹은 대상이 사라졌을 때 우리 자신의 삶이 혼란 속으로 빠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은 삶에서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만 한다."

작가는 친한 후배로부터 고충을 듣는다. 후배가 이사 간 아파트 윗집과 친해져서 얼마간은 잘 지냈다고 한다. 윗집을 비롯한 다른 엄마들 무리랑도 어울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윗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거나 잦은 연락으로 부담을 느낀 후배가 윗집을 피하는 기색을 보이니 윗집에서도 이를 눈치채고 일부러 층간 소음을 내며 후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분노 유발 이야기. 결국 후배는 다시 이사 갈 마음을 먹는다. 너무 씁쓸한 이야기 아닌가. 이웃 때문에 집에서조차 내 시간과 공간을 방해받다니.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 두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일화이다. 나 역시 주변에 투 머치 토커나 오지라퍼들이 있으면 먼저 손절하는 스타일인데 이 일화는 남일 같지 않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나와 맞지 않고 왠지 자꾸만 오해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돌아서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듯이 나 또한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주위에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그 사람들에게 노력하면 그뿐이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면서 그녀가 느끼는 고민과 슬픔에 나도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면서 내 삶을 더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유난히좋아지는어떤날이있다 #김리하 #에세이
#시소출판사 #s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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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
서지은 지음 / 혜화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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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느낌의 에세이는 아니다. 작가가 고스란히 경험하고 느낀 글들이 조각처럼 널려 있는데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다. 그런데 아프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글들이 나에게도 사무치게 와닿고 씁쓸함을 주어 공감을 받고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끊을 수 없나 보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기에 밥을 굶을 수 없는 것처럼 공감과 위로를 먹고살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외로움은 고약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외로움 앞에 속수무책이 되고 세상 혼자된 기분에 슬퍼진다. 인간이기 때문에 외롭다는 말은 진부한 말이지만 일단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마음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난다. 외로움이 가장 많이 묻어나면서 담담하게 표현한 에피소드를 꼽자면, 작가가 홀로 떠났던 여행지의 숙소에서 일부러 시계를 두고 온 내용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준 시계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을 그곳에 묻혀두고, 다 잊고 오고 싶었나 보다. 과거의 지난 일은 모두 다 잊고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

P.138 "잘 사는 일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말고 그저 고요히 살자고 결심한다. 가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웁게 묵례를 나누며, 참 다행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P.194 "뭐든 한 방에 바꾸려는 건 내 욕심이며 스스로를 완벽하게 변모시키려 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곤조곤 실천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바뀐다."

아마 자기 계발서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면 다 알고 있는 흔한 말이라며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글을 읽을수록 마흔 중반이라는 작가의 나이가 체감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이게 비단 나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성향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불행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작가의 긍정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글들도 많아서 충분히 좋다.


작가는 살아 있는 일에 오만 정이 떨어졌을 때 sns 계정에 곱지 않은 언어를 쓰며 응어리를 풀어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악담을 하는 밉고 싫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당했던 것처럼 욕을 퍼붓고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 응징을 위해 본인이 끌어올 어두운 에너지가 무서웠다고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타인에게 공격을 가하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타인에게 악담을 하고 고통을 가하는 것은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나 역시 경험상으로, 복수한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마냥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나 자신이 치졸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복수는, 그 어두운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려 나 자신이 더 좋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용서와 이해. 이 두 가지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대학시절, 일본 유학 시절, 연애 시절,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일부라고는 해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관통한 역사를 마주한 느낌이다. 거창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책 한 권에 담아낼 수는 없지만 오늘도 나는 책 한 권 속에서 인생을 배워 나간다. 나보다 인생 선배인 그녀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평범한 인생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느껴본다.

#혜화동 #내가이토록평범하게살줄이야 #서지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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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 - 베스트 컬렉션 5대 희극 5대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은경 옮김 / 아이템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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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5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니. 그것도 명화를 감상하면서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부끄럽지만 그의 작품은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밖에 읽지 않아서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이 기뻤다.

희곡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고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책의 순서는 5대 비극이 먼저 나오고 5대 희극이 뒤에 이어진다.

나는 희극 중에서 <뜻대로 하세요>라는 작품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두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남장까지 하면서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는 여자와 사랑을 갈구하며 힘들게 쟁취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랑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남녀관계에서 적극적인 것은 여성보다는 남성일 것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사랑을 다루지 않는다. 수동적인 여성과 적극적인 남성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성별에 상관없이 사랑에 눈이 멀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 재밌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들이 흥미진진하다.

사랑을 위해 가짜로 독약을 마시고 죽은척했던 줄리엣에 이어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곤경에 빠진 남편의 친구를 위해 아내인 포셔가 남장을 하고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게 한다. 욕망을 위해서 살인과 악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결말.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말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하는 관객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쫄깃쫄깃하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안에 각종 인간 군상들을 집대성하여 인간의 오욕 칠정과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인 남자, 샘이 나서 동생을 쫓아낸 형, 권력을 위해 충직한 신하에서 왕을 죽이고 살인자로 전락한 남자, 아버지를 속이고 사랑하는 남자와 도주하는 여자 등등 수많은 인물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하고 악한 마음을 이야기로 엮은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짚어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메시지를 던짐과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그는 가끔 우스꽝스럽고 괴기한 인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의 희화화는 작품을 연극화하는데 있어 플러스 요소가 됨과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유머러스한 면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장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원래 배우를 꿈꾸다가 극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수백 년 된 작품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연극과 뮤지컬로 성행 중이다. 사람의 내면을 깊이 꿰뚫어보고 탐색하여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써낸 그는 공감 능력이 유난히 발달한 천재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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