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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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은 총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작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메인 PD이다. 그래서 더욱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아 읽기도 전에 기대가 컸다. 작가는 어느 정도 실화를 기반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각기 다른 열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냥저냥 무난한 이야기도 있는 반면, 충격적이면서 엽기적인 이야기도 있다. 나에게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가 맨 마지막 작품에 해당되었다. 제목이 ‘가해자 H의 피해 일지‘인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가해자인데 피해 일지라니! 평범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30대 우체부 남성은 어느 봄날에 늘 다니던 교회에서 운명의 여자와 만난다. 그녀와 깊이 사랑에 빠졌고 동거를 하기에 이르지만 그녀는 결혼만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뭔가 이상했지만 남성은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덤덤히 그녀 곁을 지킨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매일 아침 우편 등기가 오고 있고, 그녀 역시 매일 누군가에게 우편 등기를 보낸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인플루언서인 그녀에게 SNS로 악플을 남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날리고 협박하며 보상을 받고 있었다. 남성은 묵묵히 그녀를 도우며 어느샌가 같이 그녀와 함께 보상금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재산이 늘어가는 걸 즐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가 만취한 사이에 그녀의 핸드폰과 경찰서 사이트에 몰래 접속해서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아버리고 그는 패닉에 빠진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뒤에서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다면 어떨까.



나는 요즘 OTT로 크리미널 마인드를 시즌 1부터 보고 있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왔을 때 무척 흥미로웠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도 하고 주변 지인 중에도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으로만 봤을 뿐. 하지만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프로파일링은 그냥 덤덤한 루틴이다. 범죄 현장 속 사진과 서류상의 기록만 보고 범인을 유추하고 브리핑하는 것인데 매번 운 좋게도 그녀가 말한 대로 용의자가 좁혀지고, 주위에서는 그녀를 치켜세운다. 비법은 따로 없다. 그냥 임기응변에 강한 것이 장점일 뿐. 그녀는 사건 해결을 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헤어지자는 남친의 문자를 받고 분개한다.


삼십대의 인턴기자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이야기도 있다. 대학교수가 여제자를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 이 일을 기사로 낼지 고심한 끝에, 피해자 가족들과 출세를 위해 기사를 내버리고 만다. 정규직이 되긴 했는데 결국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교수쪽 변호사가 제기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씁쓸한 결말.


소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소설을 읽고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는 씁쓸해 할 것이며,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욕망과 어두운 내면이 고개를 들고 발현되었을 때 불행이라는 것이 어김없이 쫓아오는데 이것을 인지할 때쯤이면 이미 늦는다. 그래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불행만을 논하고 있지 않다. 인생의 밑바닥을 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행운을 거머쥐고 역전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돌이켜보면, 불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의외로 행운으로 작용해 좋은 쪽으로 흘러간 적이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나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언젠가 그 불행의 씨앗이 나에게 날아온다는 서늘한 교훈을 남겨주는, 정신이 번쩍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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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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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를 ‘아웃‘이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아주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고,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의 여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소설 또한 ‘아웃‘에 뒤지지 않는 사회적 논쟁이 될 수 있는 소재라는 것과, 뒤통수를 치는 아찔한 결말에 역시 기리노 나쓰오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이름을 외울 수 있을 만한 개성있는 중심 등장인물 몇 명, 사회적으로 불편한 부분을 건드려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소재, 예측할 수 없는 결말. 이 삼박자가 제대로 어우러져 가독성은 물론,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결말이 궁금해서 초조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리키는 인구가 5천 명도 안 되는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도쿄로 상경한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다. 도쿄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서 언제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비싼 도쿄 물가와 생활비에 허덕이며 생활고에 시달린다. 요시코 이모가 돌아가셨지만 고향으로 갈 차비조차 없고, 매일 편의점에서 값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이 지긋지긋해져 그녀는 고심 끝에 난자 제공을 해서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리키에게 난자 제공을 넘어서 대리모를 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대리모의 경우, 단순히 난자 제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과 함께.


리키가 대리모를 선택했다는 점이 가장 비극적이다.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로 내린 결정이지만, 이 대목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선택을 과연 진정한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사회는 개인의 절박함을 거래로 정당화하며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끝단을 목격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유전자, 자궁,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미래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된 비즈니스 플랜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의뢰인 부부의 남편인 모토이는 이것을 프로젝트라 지칭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하다. 생명을 잉태하는 숭고해야 할 행위가 비즈니스나 프로젝트라는 차가운 경제 용어로 치환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숫자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윤리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리키의 아이가 과연 누구의 아이인지도 너무 궁금하다. 기리노 나쓰오는 끝까지 명확한 친부 확인 검사 결과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을 아주 지독한 궁금증 속에 남겨둔다. 굳이 친부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누구의 아이인가보다 누구의 아이여도 상관없는 시스템의 비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리키는 결국 누구의 아이인지 확인하기보다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길을 택한다. 이는 아이를 누군가의 소유물로 확정 짓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아이로서 마주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통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요즘은 이처럼 열린 결말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제비는 해마다 둥지를 틀 곳을 찾아 돌아오지만, 현대 사회의 가혹한 자본 논리 속에서 리키 같은 인물들에게는 돌아갈 따뜻한 집이나 안전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단정적인 표현은 생명조차 거래의 대상이 되는 비정한 현실에서 감상적인 구원이나 해피엔딩은 없다는 작가의 냉철한 시선을 반영한 것이겠지. 어쩜, 책 제목을 이렇게 찰떡같이 지었을까. 역시 기리노 나쓰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추악한 욕망이나 치졸함이 미화 없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그 날것의 서늘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과연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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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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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들의 실패​

김연수 작가는 손동하라는 인물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사건 뒤에 결국 상처받은 개인의 사소하고도 아픈 기억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엔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다. 손동하는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되어,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안 가결 등이 이루어지기까지 핵심적인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일본으로 도망친 손동하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는 다급하게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엮는다. 국내에서는 손동하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그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는 죗값을 치르더라도 진실을 폭로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자가 손동하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손동하의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 이야기, 개발되기 전 서울 강남의 이미지라든가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만나게 된 정혜인이라는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언급된다.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는 ˝서울에 남았더라면˝이라는 말은 손동하의 입장에서 결국 지금 가족이 겪는 가난과 고생이 실력 때문이 아니라 운이나 타이밍 때문이었다고 변명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후회만 하고 있을 때, 손동하는 그 ‘지긋지긋함‘을 동력 삼아 서울로 입성하고 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간다. 손동하가 보기에 아버지는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손동하 본인 역시 권력의 핵심에서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파국을 맞이하며 또 다른 방식의 실패를 겪는다. 아버지가 과거를 후회하며 보낸 시간들이나, 손동하가 권력을 휘두르며 보낸 시간들이나 결국 본질적인 허무함은 같다는 점이 이 소설의 서늘한 점이 아닐까.

결정적 순간

손동하의 딜레마가 국가적 파국이라는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있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결의 현대적이면서 서구적인 윤리적 갈등이 느껴진다. 주인공 가스미의 고민은 예술의 자율성 대 사회적 윤리라는 아주 날카롭고 실제적인 칼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인 가스미에게 사카키의 사진전은 경력의 정점이 될 기회지만, 그녀가 발견한 사진은 그 기회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시한폭탄이다. 사카키의 사진이 예술적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 대상이 착취된 것이라면 그것을 예술로 여길 수 있을까? 가스미는 미학적 가치가 도덕적 결함을 덮을 수 있는가라는 고전적이고도 괴로운 질문에 직면한다. 가스미는 사진을 본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를 묵인하고 성공을 쟁취할 것인가, 아니면 폭로하여 예술계를 뒤흔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크로스 인터뷰 : 전시되지 못한 것들의 자리

p.189 ˝간절히 원하던 미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윤리적 딜레마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품에서 이토록 곡진하게 표현하다니! 두 작가 모두에게 경외감이 느껴진다. 작품 해설 대신에 두 작가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것 또한 마음에 든다. 작품 속 두 주인공 모두 성공을 눈앞에 두고 윤리적 위기를 맞이하지만, 그 태도와 시점은 사뭇 다르다.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이미 ‘실패‘라는 결론이 난 상태에서 시작하며, 손동하가 정치적 파국을 맞이하고 그 기원을 찾기 위해 유년 시절의 먼지 쌓인 기억들을 하나씩 들춰내는 방식이다. 반면 가스미의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카키의 사진을 발견한 그 ‘결정적 순간‘부터 시계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결국 두 소설 모두, 우리는 우리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무언가(정치적 신념 혹은 예술적 심미안)가 사실은 아주 추악한 바탕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두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실패)를 견디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미래(결정적 순간) 앞에서 도박을 하겠습니까?˝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다. ‘근접한 세계‘라는 제목을 생각했을 때, 단순히 시간이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미래의 어느 지점을 이미 결정짓고 있다는 감각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 자유의지와 운명론에 대해서도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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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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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p.137 ˝고이치는 독특해.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이유는 주위 수준이 너무 낮아서야.˝

작품의 주인공인 고이치는 단순히 성격이 독특한 수준을 넘어, 사회적 신호를 읽지 못하거나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뚜렷한 어려움을 겪는 고등학생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잉 행동으로 또래들 사이에서 눈에 띄거나 몹쓸 짓을 하지는 않지만, 평소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고이치가 원하는 것은 그저 또래처럼 생각하고 또래처럼 행동하는 것.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서 타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고이치 엄마 역시 고이치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지만 그냥 자신의 아이가 독특한 것뿐이라는 말로 고이치를 타이른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이치가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타인을 밑으로 보며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고이치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위안을 얻기보다는 자신에게도 뭔가 특출난 장점이 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고이치의 무료한 일상에서 유일하게 즐길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 서점에 나가 성인만화를 들여다보고, 몰래 훔쳐서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성인만화의 작가는 학교 미술 선생님인 니키. 고이치는 우연찮게 니키가 소아성애자인걸 알았고, 니키가 학교 선생님이라는 본업이 있음에도 성인만화를 연재한다는 사실이 괘씸하기도 하지만 자기 혼자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서점에서 성인만화를 훔친 것이 발각되어 담임선생인 니키가 서점으로 호출되고, 그 일을 계기로 그날부터 고이치와 니키의 팽팽한 대립과 신경전이 벌어진다.

서로의 약점을 하나씩 쥐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고이치가 니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말하자, 니키는 머리를 짜내어 소설을 쓰고 고이치에게 자신의 소설이 어떠한지 평가받고자 한다. 그리고 니키는 고이치에게 정식으로 소설을 써 보라고 권한다. 소설 중반부는 고이치가 소설을 쓰는 일에 매진하며 고군분투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고이치가 니키의 비밀을 까발릴지 말지 같은 갈등으로 초점이 맞추어질 줄 알았는데 내용이 약간 산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왜 고이치는 니키를 혐오하면서도 동경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소설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난제이다. 고이치는 사회적 규범과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사는 인물이다.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범주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연기하며 살아가는 반면, 니키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논리와 세계관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이 지점에서 고이치는 자신이 갖지 못한 순수성과 확신을 니키에게서 발견하고 그에게 매료된 것이리라. 세상은 니키를 이상한 아이로 치부하지만, 고이치는 니키의 비범함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라는 자부심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즉, 니키에게 인정받음으로써 고이치는 지루하고 평범한 다수에서 벗어나 니키와 같은 특별한 소수로 격상되고 싶어 한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고, 어떤 식으로든 밝혀진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설 후반부는 니키의 비밀에 초점이 맞춰지며 긴장감이 더해진다. 고이치가 소설을 집필하고 있고 응모전에 도전할 거라고 니키가 반 아이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고이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니키의 비밀도 드러날 위험에 처한다. 니키는 왜 그런 말을 해서 고이치를 곤란하게 했을까.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흥미진진한 소설이라서 결말이 날 때까지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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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방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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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작품은 정통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적 추론보다는 한국 사회의 병폐와 인물들의 축축하고 어두운 심리 묘사에 치중한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 그래서 사건의 아귀가 딱딱 맞는 쾌감보다는 읽고 난 뒤의 찝찝하고 서늘한 뒷맛을 강조하다 보니 결말의 전개가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내가 특히 그렇게 느꼈던 부분은 담임 선생님과 미희의 관계였다. 이 둘의 관계가 이 소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결정적인 지점이 아닐까. 충분한 복선 없이 둘 사이의 관계가 결말부에서 폭로되듯 드러나다 보니 서사가 빈약하게 느껴졌고 촘촘한 빌드업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이 지점이 개연성의 구멍으로 보일 수 있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영 엄마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체 저 여자는 소영 아빠와 소영에게 왜 저러는 건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었고, 끝부분 반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기에 놀라움과 허탈감을 주었다. 누에나방은 고치를 뚫고 나오지만 입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곧 죽고 마는 비극적인 존재이다. 소영이는 결국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났지만, 소영이 곁에서 그녀를 도우려 했던 동기가 뒤틀린 애정이었다는 점은 완전한 해방이 불가능함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안겨준다.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재창조해버린 치밀한 가스라이팅. 소영이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사고 과정 전체를 통제하고,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소영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모습은 정말 소름 끼친다. 나는 내심 소영 아빠가 소영이를 도와주거나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소영 아빠 또한 가족 놀이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처럼 취급받았고, 집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매일 눈으로 보면서도 바로잡지 못한 채 서서히 무너져 내린 또 하나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어쩌면 소영이보다 더 무력하고 비극적인 인물일지도.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어 옆에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영. 소영이를 퇴원시키고 집으로 데려왔지만 소영이의 물건과 옷가지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아빠가 있는 방에는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소영 엄마. 휠체어에 앉아 거동할 수 없는 말 없는 소영 아빠. 그리고 소영의 기억을 되찾게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 민지. 한결같으면서도 입체적인 등장인물 덕분에 소설이 주는 재미가 더해졌다. 단연 이 소설의 재미는 소영 엄마의 정체일 것이다. 그녀의 정체를 알면 누구라도 탄식하지 않을까. 소영이 엄마에게 벗어나기를,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인간의 집요하면서 이기적인 집착과 서늘한 욕망을 비극적으로 잘 그려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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