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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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으로 까발려지는 비밀들 앞에서 인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밀을 지켜내기엔 변수가 너무 많고, 의도치 않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자들 또한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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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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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영역을 담아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분리된 영역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사명을 이끌어내는, 결국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곡진하게 담아낸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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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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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 있는 해인데, 이금이 작가의 신간이 이렇게 딱 맞춰 나오다니 기쁜 일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뒤잇는 3부작으로, ‘슬픔의 틈새‘라는 제목은 읽기 전부터 어떤 스토리일지 예상이 되는 동시에, 표지에 그려진 한복을 입은 여성이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그림에서조차 뭔가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한인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여성의 이름은 주단옥이다. 단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사이다 보니, 마치 그녀의 생생한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하고 꿋꿋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간 한 여성의 위인전 같기도 하다. 소설임에도 어쩜 이렇게 시대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서사를 구현했을까. 사할린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사할린 한인들의 삶에 대한 자료 조사와 관련 도서 및 논문 등을 찾아 읽는 등 가능한 사실에 기반하여 작품을 쓴 이금이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느껴진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자리를 준다는 일본의 회유책에 속아 남사할린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40년간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지배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사할린이 다시 소련의 지배 체제로 넘어가면서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조선인도 아닌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조국에 끝내 가지 못한 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죽음을 맞기도 한다.

단옥의 아버지인 만석 역시 일본과 계약을 맺고 남사할린에 머무르며 탄광촌에서 일을 하는 노무자다.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만석은 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사할린으로 초대한다. 사할린에 오는 길에 장남 성복은 돈을 벌겠다는 편지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어머니 덕춘과 단옥, 남동생인 영복은 사할린에서 만석과 재회한다. 만석 가족들은 조선에 남겨진 조부모님과 둘째 딸인 영옥, 행방이 묘연한 장남 성복이 다 같이 모여 살 날을 꿈꾸며 힘든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이들의 팍팍한 삶에 의지가 된 것은 유키에 가족이다. 유키에의 의붓아버지 정만은 만석과 의형제 사이다. 유키에보다 한 살 많은 단옥은 유키에와 자매처럼 지내며 같이 학교를 다녔고, 유키에의 일본인 엄마 치요 역시 덕춘과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어느 날, 탄광촌에 사고가 나서 정만은 다리를 크게 다치고 만석은 강제로 본토 이송을 당한다. 1년 안에 노무자 가족을 일본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날 바닷가로 아버지를 배웅한 것이 단옥이 본 생전 만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만이 다리를 다쳐 생계가 어려워지자 유키에 가족은 사택촌에서 시내로 나간다. 치요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키에 가족이 시내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덕춘은 사택촌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유키에 가족에게 부탁하여 같이 살자고 한다. 소련의 지배 체제에 놓인 1949년, 단옥은 그토록 꿈꿔왔던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푼다. 사할린에 살면서 대부분 조선말을 잊어먹거나 배우지 않는 한인들이 많았지만 단옥은 끝까지 조선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학교조차 소련 세력이 장악하면서 단옥은 교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중반은 단옥의 혼인, 정만 부부의 귀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키에는 단옥 곁에 남으며 사할린에 정착하기로 한다. 단옥은 매 순간을 성복 대신 장녀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자신의 뿌리인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고 언젠가는 가족이 다 같이 만나서 함께 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의 삶은 불투명하고도 불안했지만 가족과 고향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 후반은 조국의 배신으로 큰 상실에 빠진 한인들의 고독과 애환을 여실히 드러내며 노인이 된 단옥과 그녀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만 먹는데 과연 단옥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너무 초조했다. 힘없는 우리나라와 무책임하고 잔혹한 일본, 권력 앞에서 모든 것을 통제한 소련.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하고 고된 인생이었으나, 단옥의 삶은 슬픔의 틈새 가운데서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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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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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품집에는 이희주 작가의 글이 두 편이나 실려 있다. 대상 수상작인 ‘사과와 링고‘, 자선작인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사과와 링고는 결론부터 말하면, 대상작답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띵작이었다. 결말 부분이 다소 충격과 공포였지만 사라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동생 사야에 대한 애정이였을 테니 이해는 간다. 사야의 죄는 그 날, 언니 사라에게 집 비밀번호를 들킨 것뿐이다. 아니다. 사야의 죄는 그것만이 아니다. 빌려 간 돈을 갚지도 않으면서 뻔뻔하게도 또 돈을 요구한 죄, 꼬박꼬박 네일아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손톱을 치장한 죄,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건사할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며 병수발을 하고 있는 죄. 그 날, 그렇게 사라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악마가 깨어났고 그녀는 흑화하고 말았다.


어느 집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K장녀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더해, 그 현실을 넘어서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소설의 결말은 이토록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라는 그냥 장녀로 태어났을 뿐이다. 태어나고 보니 뒤치다꺼리해야 할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은 서른살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엄마와 사라에게 돈 뜯어갈 궁리만 한다. 심지어 소설 도입부부터 사라는 동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매라는 명목으로 자신에게 기대되는 이 지긋지긋하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사라는 <더 라스트>라는 공연을 보고, 또 본다. 사라에게 그 공연은 생명줄이었고, 산소통이었다. 그 공연을 보고 있을 때만 사는 것처럼 사는 것 같았으니까. 자매의 애정과 애증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한,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사라가 언제 폭발할지 조마조마했고, 마냥 철없이 구는 사야의 행동도 너무 거슬렸다. 사라의 극단적인 행동은 사야에 대한 복수였을까, 진정 어린 염려였을까.

두 번째로 실린 작품은 이희주 작가의 자선작이다. 소설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데 나는 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나 보다. 나는 최애의 아이를 읽어보진 못했고 대충 내용은 알고만 있다. 최애의 아이, 그 후에 몇 년이 지나고 작은 언론사의 기자가 된 우미가 팬픽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 나로서는 영 흥미가 당기지 않는 스토리이고 관심 밖의 소재라서 그런지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난해했다. 다행히도 뒷장에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작품론이 쓰여 있다. 덕분에 이희주 작가의 아이돌에 대한 세계관이랄지, 성애에 대한 욕망 표출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김남숙 작가의 ‘삽‘이라는 소설이다. 덤덤하고도 의연한 결말을 맺고 있어서 나로서는 조금 놀랐다.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격지심까지 갖고 있는 재구라는 남자. 어느 날,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으로부터 재구가 자기를 성추행 했다는 고소가 들어온다. 8년이나 근속한 학원을 그만두고 도망치듯 원주로 이사 온 재구.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가 자기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끝까지 도발하는 그 여학생. 재구는 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 원인일까. 여학생을 상대로 무고죄라도 걸었어야 했나. 마지막 그의 도피처가 자기가 직접 구매한 삽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사회의 힘없고 빽없는 약자들은 이렇게도 무너지는구나 섬뜩한 소설이었다.

손보미 작가의 ‘자연의 이치‘는 내가 얼마전에 읽은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살을 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닮아 있는데, 치유의 빛 주인공이 다소 맹목적이면서 타의적 노력이었다면 자연의 이치 주인공인 영유는 자의적인 노력이랄까. 아무도 살을 빼라고 권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컴플렉스도 없었다. 어느 순간 살이 조금씩 빠졌고 저녁을 안 먹었다. 저녁을 먹더라도 토해냈다. 그녀가 왜 살 빼는 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으니 도입부부터 의문스러웠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영유에게 여름 무렵에만 찾아왔던 서울 언니. 영유는 막연하게 서울언니를 동경했던 것 같다. 서울 언니가 해를 넘겨도 찾아오지 않게 되고, 영유는 서울에서 온 친구의 사촌 오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오빠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아파서 투병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일 수 있도록 영유가 도와주려 하지만 2년 만에 찾아온 서울 언니는 영유의 행동을 말리며 타이른다. 영유가 그 오빠한테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일 년에 한 번씩 오던 서울 언니가 오지 않게 됨으로써, 그 동경과 갈망이 그 오빠한테로 옮겨간 것일까. 서울 언니와 그 오빠 모두, 영유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이자 자신과 철저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일 뿐인 것을. 어쩌면 영유의 살 빼려는 노력은 자의를 가장한, 타인에 의한 모조된 욕망일지 모르겠다. 살이 빠져서 예뻐졌다고 칭찬해주던 친구들은 어느새 영유로부터 멀어졌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서까지 노력했던 것들은 무의미한 결과를 낳았다. 어렵고도 다소 공감하기 힘든 소설이지만 자연의 이치라는 제목이 찰떡이면서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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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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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글과 말과는 다르게 간접적이라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우리는 그림 감상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작품 속에 숨겨진 에피소드를 알아가며 화가가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그림 감상을 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이 책은 그림과 화가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미술 에세이다. 처음 보는 그림도 많고 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이름도 있는데 미술가 25인과 그들의 작품을 테마별로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보통 이러한 미술 관련 책은 시대사나 작가의 생애 주기로 목차를 만드는데 작품을 테마별로 묶어 두어, 나중에라도 다시 화가의 작품을 본다거나 기억했을 때 그 테마가 생각나게 되어 유용할 것 같다.

괴짜 같고 성격이 독특한 화가가 참으로 많은데 그중 오딜롱 르동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안구가 열기구에 담겨 있고 그 눈동자는 위로 치뜨여져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르동은 음울하고 어두운 이미지에 집착하여 이와 같은 그림을 그렸는데, 집 안의 어두운 구석과 커튼 뒤로 숨어 지내는 걸 좋아하던 그의 성장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한다. 르동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부터는 무채색의 그림이 점점 컬러풀하면서 화사한 색채를 띠었고 밝은 이미지들이 많아졌다. 이처럼 우리는 그림을 통해 사람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다. 내면의 감정과 무의식을 탐색하고 그림 심리 치료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림이 주는 힘이겠지.

2장 행복 챕터에서는 기억에 남는 화가가 두 명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국력이 강하고 부유했는데, 시민들은 그만큼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해학 넘치는 풍속화로, 그림 속에서 세태를 유머러스하게 꼬집은 얀 스텐의 그림은 가정 주제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림을 통해 갓난아이의 진짜 남편은 따로 있다던가, 사치스러운 가정은 패가망신하기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림이 정말 생생하면서 역동적이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 풍경이 유행이었다. 우리 집 주방 한 켠에도 베네치아 풍경이 걸려 있는데, 잔잔하게 흐르는 강과 그 옆의 웅장한 건물들, 곤돌라 아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카날레토는 이러한 웅장한 도시 풍경을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을 이용하여 생동감과 사실감이 넘치게 그린 화가이다. 카날레토는 젊었을 때 현장을 직접 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당대 건축물이나 고대 유적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니, 사실적 원근법에 기반한 재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키르히너는 시대의 굴레 속에서 인간의 깊은 고독과 무기력함, 정체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은 다소 거칠고 강렬하다. 원색적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시대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 가운데서도 활기차고 밝은 그림들 중 하나가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다. 키르히너는 이 그림을 통해 네이처리즘을 강조했으며 당시 사회에 느낀 불만과 저항을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 5장 챕터는 순수라는 테마이다. 말 그대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시각의 본질적인 면에서 그림을 그리려 했던 화가들이 등장한다. 이 챕터에서는 순수한 시각의 경험을 그린 폴 세잔, 점묘법 그림으로 유명한 쇠라의 그림들과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화가가 얼마나 큰 수고를 들였을지. 무엇보다 화가의 성장 배경을 알고 나니 왜 저렇게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위안을 받고,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시각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미술이 치유의 일환으로써도 작용하고 있음이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고 싶은 마음은 본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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