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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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품집에는 이희주 작가의 글이 두 편이나 실려 있다. 대상 수상작인 ‘사과와 링고‘, 자선작인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사과와 링고는 결론부터 말하면, 대상작답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띵작이었다. 결말 부분이 다소 충격과 공포였지만 사라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동생 사야에 대한 애정이였을 테니 이해는 간다. 사야의 죄는 그 날, 언니 사라에게 집 비밀번호를 들킨 것뿐이다. 아니다. 사야의 죄는 그것만이 아니다. 빌려 간 돈을 갚지도 않으면서 뻔뻔하게도 또 돈을 요구한 죄, 꼬박꼬박 네일아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손톱을 치장한 죄,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건사할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며 병수발을 하고 있는 죄. 그 날, 그렇게 사라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악마가 깨어났고 그녀는 흑화하고 말았다.


어느 집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K장녀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더해, 그 현실을 넘어서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소설의 결말은 이토록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라는 그냥 장녀로 태어났을 뿐이다. 태어나고 보니 뒤치다꺼리해야 할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은 서른살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엄마와 사라에게 돈 뜯어갈 궁리만 한다. 심지어 소설 도입부부터 사라는 동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매라는 명목으로 자신에게 기대되는 이 지긋지긋하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사라는 <더 라스트>라는 공연을 보고, 또 본다. 사라에게 그 공연은 생명줄이었고, 산소통이었다. 그 공연을 보고 있을 때만 사는 것처럼 사는 것 같았으니까. 자매의 애정과 애증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한,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사라가 언제 폭발할지 조마조마했고, 마냥 철없이 구는 사야의 행동도 너무 거슬렸다. 사라의 극단적인 행동은 사야에 대한 복수였을까, 진정 어린 염려였을까.

두 번째로 실린 작품은 이희주 작가의 자선작이다. 소설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데 나는 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나 보다. 나는 최애의 아이를 읽어보진 못했고 대충 내용은 알고만 있다. 최애의 아이, 그 후에 몇 년이 지나고 작은 언론사의 기자가 된 우미가 팬픽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 나로서는 영 흥미가 당기지 않는 스토리이고 관심 밖의 소재라서 그런지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난해했다. 다행히도 뒷장에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작품론이 쓰여 있다. 덕분에 이희주 작가의 아이돌에 대한 세계관이랄지, 성애에 대한 욕망 표출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김남숙 작가의 ‘삽‘이라는 소설이다. 덤덤하고도 의연한 결말을 맺고 있어서 나로서는 조금 놀랐다.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격지심까지 갖고 있는 재구라는 남자. 어느 날,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으로부터 재구가 자기를 성추행 했다는 고소가 들어온다. 8년이나 근속한 학원을 그만두고 도망치듯 원주로 이사 온 재구.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가 자기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끝까지 도발하는 그 여학생. 재구는 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 원인일까. 여학생을 상대로 무고죄라도 걸었어야 했나. 마지막 그의 도피처가 자기가 직접 구매한 삽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사회의 힘없고 빽없는 약자들은 이렇게도 무너지는구나 섬뜩한 소설이었다.

손보미 작가의 ‘자연의 이치‘는 내가 얼마전에 읽은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살을 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닮아 있는데, 치유의 빛 주인공이 다소 맹목적이면서 타의적 노력이었다면 자연의 이치 주인공인 영유는 자의적인 노력이랄까. 아무도 살을 빼라고 권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컴플렉스도 없었다. 어느 순간 살이 조금씩 빠졌고 저녁을 안 먹었다. 저녁을 먹더라도 토해냈다. 그녀가 왜 살 빼는 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으니 도입부부터 의문스러웠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영유에게 여름 무렵에만 찾아왔던 서울 언니. 영유는 막연하게 서울언니를 동경했던 것 같다. 서울 언니가 해를 넘겨도 찾아오지 않게 되고, 영유는 서울에서 온 친구의 사촌 오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오빠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아파서 투병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일 수 있도록 영유가 도와주려 하지만 2년 만에 찾아온 서울 언니는 영유의 행동을 말리며 타이른다. 영유가 그 오빠한테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일 년에 한 번씩 오던 서울 언니가 오지 않게 됨으로써, 그 동경과 갈망이 그 오빠한테로 옮겨간 것일까. 서울 언니와 그 오빠 모두, 영유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이자 자신과 철저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일 뿐인 것을. 어쩌면 영유의 살 빼려는 노력은 자의를 가장한, 타인에 의한 모조된 욕망일지 모르겠다. 살이 빠져서 예뻐졌다고 칭찬해주던 친구들은 어느새 영유로부터 멀어졌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서까지 노력했던 것들은 무의미한 결과를 낳았다. 어렵고도 다소 공감하기 힘든 소설이지만 자연의 이치라는 제목이 찰떡이면서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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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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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글과 말과는 다르게 간접적이라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우리는 그림 감상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작품 속에 숨겨진 에피소드를 알아가며 화가가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그림 감상을 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이 책은 그림과 화가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미술 에세이다. 처음 보는 그림도 많고 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이름도 있는데 미술가 25인과 그들의 작품을 테마별로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보통 이러한 미술 관련 책은 시대사나 작가의 생애 주기로 목차를 만드는데 작품을 테마별로 묶어 두어, 나중에라도 다시 화가의 작품을 본다거나 기억했을 때 그 테마가 생각나게 되어 유용할 것 같다.

괴짜 같고 성격이 독특한 화가가 참으로 많은데 그중 오딜롱 르동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안구가 열기구에 담겨 있고 그 눈동자는 위로 치뜨여져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르동은 음울하고 어두운 이미지에 집착하여 이와 같은 그림을 그렸는데, 집 안의 어두운 구석과 커튼 뒤로 숨어 지내는 걸 좋아하던 그의 성장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한다. 르동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부터는 무채색의 그림이 점점 컬러풀하면서 화사한 색채를 띠었고 밝은 이미지들이 많아졌다. 이처럼 우리는 그림을 통해 사람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다. 내면의 감정과 무의식을 탐색하고 그림 심리 치료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림이 주는 힘이겠지.

2장 행복 챕터에서는 기억에 남는 화가가 두 명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국력이 강하고 부유했는데, 시민들은 그만큼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해학 넘치는 풍속화로, 그림 속에서 세태를 유머러스하게 꼬집은 얀 스텐의 그림은 가정 주제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림을 통해 갓난아이의 진짜 남편은 따로 있다던가, 사치스러운 가정은 패가망신하기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림이 정말 생생하면서 역동적이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 풍경이 유행이었다. 우리 집 주방 한 켠에도 베네치아 풍경이 걸려 있는데, 잔잔하게 흐르는 강과 그 옆의 웅장한 건물들, 곤돌라 아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카날레토는 이러한 웅장한 도시 풍경을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을 이용하여 생동감과 사실감이 넘치게 그린 화가이다. 카날레토는 젊었을 때 현장을 직접 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당대 건축물이나 고대 유적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니, 사실적 원근법에 기반한 재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키르히너는 시대의 굴레 속에서 인간의 깊은 고독과 무기력함, 정체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은 다소 거칠고 강렬하다. 원색적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시대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 가운데서도 활기차고 밝은 그림들 중 하나가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다. 키르히너는 이 그림을 통해 네이처리즘을 강조했으며 당시 사회에 느낀 불만과 저항을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 5장 챕터는 순수라는 테마이다. 말 그대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시각의 본질적인 면에서 그림을 그리려 했던 화가들이 등장한다. 이 챕터에서는 순수한 시각의 경험을 그린 폴 세잔, 점묘법 그림으로 유명한 쇠라의 그림들과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화가가 얼마나 큰 수고를 들였을지. 무엇보다 화가의 성장 배경을 알고 나니 왜 저렇게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위안을 받고,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시각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미술이 치유의 일환으로써도 작용하고 있음이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고 싶은 마음은 본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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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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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일흔여덟의 할머니를 떠올려 봤을 때, 오시 하나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보통의 할머니들과는 사뭇 다른 패션 감각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나는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슈퍼에 갈 때조차 자신을 빈틈없이 치장하는, 이른바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할머니다. 그녀는 10년 만에 열린 동창회에 나가서 꾸미지 않고 그대로 나온, 세월에 꺾인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는 게으르다고 욕을 하고, 본인은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안심을 하면서 내면보다는 외면을 중시한다.


하나의 남편인 이와조는 하나보다 한 살이 많고 종이 접기를 평생 취미로 삼고 있다. 그는 언제나 다정하게 하나 옆에 있어주는 믿음직한 남편이다. 부부는 젊었을 때 같이 고생하며 일궈나갔던 일용품점을 장남인 유키오와 며느리인 유미에게 물려 주고 둘만의 유유자적한 황혼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하나는 며느리인 유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정성껏 치장을 하는 본인과 비교했을 때, 아직 마흔다섯 살인 유미는 점프슈트와 색바랜 셔츠 따위를 입고,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화가도 아니면서 아틀리에에 처박혀 그림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키오는 가게일을 도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말이다. 역시, 세상에 사이 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따위는 없는 건가 보다.

p.144 _나이를 먹는다는 건 잃는 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체력도 기억력도 기력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도 있었다. 남편도 있었다. 이제 아무도 없다. 다들 사라졌다.


오래도록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였던 이와조가 죽고, 하나는 혼자가 된다. 그리고 무기력해졌달까.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더 살고자 하는 목적도, 의지도 없다. 사이좋은 부부가 그렇듯, 갑작스러운 이와조의 죽음에 하나는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을 겪는 동시에 가족들에게는 입만 열면 나는 이제 곧 죽을 거다, 이와조가 빨리 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라고 하며 삶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며 가족들을 걱정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는 이와조가 접은 종이접기 컬렉션을 둘러보다가 이와조를 추모하고자 전시회를 열기로 계획한다. 딸과 손녀와 함께 이와조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어느 사진과 진찰권.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는 하나씩 하나씩 진실에 다가선다. 남편 이와조가 4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두 개의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내연녀와의 사이에 자식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p.205_후려갈기고 불 싸지르고 싶은 건 유키오 네 아버지야. 무덤을 파헤쳐서 유골함을 열고, 펄펄 끓는 기름을 부어주고 싶어.


생전, 의연하게 살자는 말을 모토로 삼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온 이와조와 하나. 그런데 이렇게 배신을 때릴 줄이야. 하나가 더욱 안쓰럽게 생각된 것은 남편이 죽었으니 분노를 표출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하나. 더구나 내연녀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 그 어느 때보다 의연하게 살 수 없는 하나는 내연녀와 자식이라는 실체를 보지 않으려 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고만 싶다. 하지만 의연하게 살자고 씌어진 족자(이와조와 하나의 추억이 담겨 있는 좌우명 같은 족자)는 내연녀에게 주겠다고 이와조의 유서에 명시되어 있다. 굳이 왜 그 족자를?? 하나와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족자를 계기로 내연녀와 자식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시 하나는 정말 멋진 할머니다. 내면만큼 외면도 중요하다는 이 말, 절실하게 동감한다. 가꾸고 치장하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비록 자기만족이라 할지라도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책에는 통쾌하고 유쾌한 주옥같은 말들이 많다. 깔깔대며 웃다가도, 애잔하고 씁쓸하고, 또 통쾌한 감정들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노화와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나와 같은 일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나의 곁에 자식과 손주들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금방 무너졌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진실을 알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확고히 할 수 있었던 하나. 하나와 가족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지막 장까지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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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요람
고태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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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 신앙, 민속학에 미스터리가 결합된 장르적 기교가 뛰어난 작품이다. 작가는 이런 류의 작품에 있어서 독보적이고 특화되어 있는 듯. 다만 구시대적인 화법과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개연성은 좀 아쉽다. 호불호가 강한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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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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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마지막 동굴에서 빠져 나온 것일까? 결국, 최초의 기억에 이르고 그토록 동경하던 벗을 만났지만 자신을 옭아매고 가둔 것은 자기 혐오에 빠진 본인이라는 것. 우리는 본연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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