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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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깔끔하게 사건을 종결짓기 때문에 읽고 나서 뒷맛이 아주 개운하다. 이렇게 단순명료하고 논리정연한 추리라니! 하지만 구라치 준 특유의 유머러스한 비틀기는 마지막에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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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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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폴 오스터의 유작인 바움가트너의 책장을 덮고는 아련하면서도 복잡한 심정으로 한동안 멍해졌다. 누군가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해 달라고 하면 선뜻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도, 사건도 명확히 잡히지 않아서 내가 독서를 잘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소설은 선형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기억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적으로 화자인 바움가트너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마치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그의 과거와 회상 속에서 천천히 유영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 애나를 잃게 된 바움가트너. 사별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바움가트너의 의식 속에는 애나가 항상 자리한다. 타버린 냄비 하나를 보다가도 자연스레 애나가 떠오르는 것처럼, 팔다리가 없는데도 통증을 느끼는 환지통 현상처럼, 애나는 더 이상 없지만 그녀의 존재가 바움가트너의 모든 생각 속에 유령처럼 머물고 있다.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암 투병 중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작가 특유의 지적인 유희보다는 삶의 유한함과 기억의 연쇄에 더 집중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애나가 쓴 시나 원고가 삽입되는 등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는데, 결국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텍스트와 기억은 계속 흐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바움가트너가 계속 애나의 미발표 원고를 읽거나, 일상 속에서 그녀를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가 곁에 없다는 물리적 사실보다는 그녀가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심리적 사실이 더 강력하게 그를 지배할 수 있었고 결국 이것이 그가 외로운 삶을 꿋꿋이 버텨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결국 기억은 죽은 자들을 다시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우리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있다는 주제 의식이 또렷하게 남는다.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이 남는다. 운전 중에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피하려다가 피를 흘리며 부상을 입는 바움가트너. 그는 망가진 차 밖으로 걸어 나와 그를 가두고 있던 고립된 생활에서 강제로 튕겨 나와 세상과 다시 마주한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 이는 생존을 향한 의지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호이리라. 이 장면은 소설 초반, 바움가트너가 타버린 냄비 때문에 손을 다치고 과거에 집착하다 상처 입는 노년의 정체된 모습과 상반된다. 폴 오스터는 바움가트너에게 넘어져도 괜찮으니 이제 그만 애나를 보내주고 당신의 남은 삶을 살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마지막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글에는 폴 오스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이 드러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다정한 위로를 준다. 김연수 작가는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이 소설을 썼다는 점에 주목하며 바움가트너가 애나의 유고를 정리하고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듯, 폴 오스터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삶을 긍정했음을 헌정 글을 통해 강조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죽음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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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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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음울하고도 기괴한 표지만큼이나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한 아쿠타가와의 단편집이 성림원북스에서 새로이 출간되었다. 작년에도 성림원북스에서 출간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을 읽었는데 그때와 동일하게 감각적인 표지가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 매끄러운 번역과 주석 덕분에 옛스러운 문체가 간간이 있었지만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단편이 각각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공통된 주제를 찾자면 바로 인간이 품은 본성이다. 특히 <거미줄>이라는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가장 날카롭고도 간결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주인공 간다타는 생전에 살인과 방화를 일삼던 악당이었지만, 딱 한 번 거미를 밟지 않고 살려준 적이 있다. 부처님은 그 단 하나의 선행을 보고 기회를 주지만, 간다타가 지옥에서 거미줄을 잡고 올라갈 때 보여준 모습은, 그가 거미를 살려주었을 때의 마음조차 사실은 아주 얇고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구원의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비극이라는 점을 강조한 작품인데, 간다타 입장에서는 그 얇디얇은 거미줄이 끊어질까 봐 공포심이 작용한 것이리라. 아쿠타가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존 본능과 이기심 사이의 딜레마를 아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한 편의 전래동화를 읽은 듯한 <용>이라는 작품은 아쿠타가와의 다른 심오하고 어두운 소설들에 비하면 훨씬 유머러스하다.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용이 승천할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스님 이야기인데, 나중에는 거짓말을 지어낸 스님 본인조차 정말 용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결국 인간은 보고 싶은 것을 믿고, 믿는 대로 보게 된다는 메시지가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다.


아쿠타가와의 데뷔작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극찬을 받은 <코>라는 작품은 인간의 묘한 심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포착한 것 같다. 긴 코를 가진 스님은 코가 작아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코가 콤플렉스였다. 드디어 제자 덕분에 코가 작아졌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는 관대하지만, 그가 노력해서 결점을 극복하고 애쓰는 모습에는 오히려 묘한 거부감을 느끼고 비웃기도 한다는 것을 작품 안에서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성형수술이나 외모 지상주의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남의 시선을 중요시 여기는 현대 사회의 폐단을 꼬집고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지옥변>은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시히데의 딸이 가마 안에서 불타 죽는 장면은 이 소설의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설정이다. 그녀는 왜 그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가장 섬뜩했던 사실은 처음에 딸이 죽는 모습에 절규하던 요시히데조차 불길 속에서 딸이 타 죽는 모습이 지옥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황홀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술이라는 괴물에게 바쳐진 무고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대신은 요시히데에게 진짜 지옥을 목격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뒤틀린 복수심과 소유욕이 이 사건의 근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잔혹한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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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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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고딕 소설 특유의 서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잔상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고딕 소설은 초자연적 공포를 다루어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근원적 공포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작가는 최선을 다해 공포를 발산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독자는 최선을 다해 공포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의 정체를 파헤쳐야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고딕 소설로서 성공한 작품일까.

모유리의 할머니 최무자의 죽음은 이 소설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최무자는 평생을 타인의 시선과 과거의 비밀, 그리고 죄책감을 쓰레기라는 물성으로 치환해 집 안에 쌓아두었다. 그녀를 짓누른 것은 물리적인 쓰레기 더미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평생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온 과거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정보하는 그 집의 상태를 모유리만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최무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죽음 이후의 상황을 가장 먼저 인지했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고딕 소설에는 보통 주인공의 일상을 흔드는 외부인이나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 등장한다. 정보하는 이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독자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안개 같은 존재이다. 쓰레기더미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과거 모유리의 연인으로서 둘만의 친밀했던 관계)과 산1번지 외부 세계(현재 구청 직원으로서 모유리를 관찰하는 입장)를 연결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듯한 이질감을 풍기기 때문이다. 마치 방관자처럼. 정보하는 한때 모유리의 남자 친구였고 모유리를 아주 좋아했다. 모유리를 도와줄 조력자처럼 보였지만 끝내 모유리의 결핍을 건드리고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 건 아닐까. 어쩌면 모유리에 대한 기괴한 집착이었을지도. 모유리가 막대한 상속을 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는 본인도 모유리에 대한 진심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이다.

모유리에게 할머니 최무자는 유일한 혈육인 동시에 자신을 옥죄는 굴레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모유리에게 해방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런데 그 쓰레기 더미 집에서 할머니 시체뿐 아니라 생존자처럼 보이는 신원 미상의 사람과 유골이 같이 발견되다니. 고딕 호러적 공포가 정점에 달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쓰레기 집인 줄 알았는데, 그 쓰레기가 인간의 잔해와 생존자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준다. 이 모든 것이 쓰레기와 뒤섞여 있었다는 건, 그 집이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무덤 그 자체였음을 보여주니 말이다. 최무자가 죽기 전까지 그 더미 속에서 산 사람과 죽은 자의 뼈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지 상상하면, 단순히 불결한 집을 넘어선 심연의 공포가 느껴진다.

p.209 ˝여자들은 힘이 세잖아. 살인마가 될 아들을, 살인마가 될 애인을, 그런 것도 인간이라고 살려놓으면 안 되지.˝

p.345˝너를 죽이고 그 아이를 살렸다. 너를 살리고 그 아이를 죽여야 했는데 너를 죽였다. 어쩌자고 나는 그런 짓을 했을까.˝

대체 신원 불상자는 누구이며 유골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무 궁금해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진실에 다가서자 그 진실 앞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최무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신원 불상자는 누구인지, 유골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순간에 퍼즐이 맞추어지며 소름이 쫙 끼쳤다. 사실 나무 밑에 뼈들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고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속마음과 독백들이 뒤엉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맥락을 놓치기 쉽다. 모호하면서도 안개 속에 파묻혀 있는 이 소설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것인가.

끔찍하고 기괴한 결말을 마주하고 나면, 공포보다도 최무자라는 한 여성의 생애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 차오른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가장 가해자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처절하게 망가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모유리에게조차 그녀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자작나무 숲이 겉으로는 하얗고 고결해 보여도 그 뿌리는 차갑고 습한 흙속에 있듯, 최무자는 그 숲의 가장 추악하고 아픈 뿌리 역할을 했던 셈이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들에 짓눌려 소리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이 처연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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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미술 책방 - 삶의 시선을 넓혀주는 첫 미술 교양수업
김유미 지음 / 미디어숲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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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감각의 연결에 초점을 맞춰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미술 서적을 만났다. 일반적인 미술 서적들이 시대순 혹은 연대순으로 화가 개인의 생애에 집중하는 강의형이라면, 이 책은 독자가 미술을 어떻게 느끼고 일상으로 가져올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화형에 가깝다. 그래서 더욱 신박하게 느껴졌고 작가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들 덕분에 마치 미술 에세이를 접한 기분이다.

미술관의 높은 문턱을 넘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미술과 연결 지어, 전문 용어를 남발하기보다는 일상적인 언어로 작품을 설명하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고 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모자리나 그림 하나에도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림의 기법부터 모나리자의 정체, 도난 사건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사연들이 숨겨져 있다.

이제 미술은 단순히 독립된 예술 작품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핵심 동력이 된 것 같다. 단순히 스토리가 좋은 것을 넘어 화면 속의 색감, 구도, 소품 하나하나가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술 감독의 역할이 커진 이유이기도 하다. 웹툰, 애니메이션, 게임 등 현대의 핵심 콘텐츠 산업은 모두 미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이나 독창적인 세계관의 비주얼이 갖춰져야만 굿즈, 전시회, 팝업스토어 같은 2차 산업으로의 확장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미디어 아트, VR/AR, 가상 현실 전시 등 기술과 미술이 결합하면서 콘텐츠의 경계가 더 넓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디지털 콘텐츠 속에 미술이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미술을 아는 것은 이제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즐기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유럽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는다면 나는 웅장한 성당 건물들을 꼽을 것이다. 웅장하고 압도적이며 화려한 건축물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박해받던 기독교 미술이 어떻게 제국의 중심 예술로 우뚝 섰을까? 기독교가 합법적인 지위를 얻으면서 미술사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온(콘스탄티노폴리스)으로 옮기며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하 예배당의 상징적 이미지에 머물던 미술이 거대한 돔과 황금빛 모자이크를 통해 그 위엄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벽화와 모자이크는 하나의 압도적인 시각 콘텐츠였다.

샤갈이 살았던 20세기 초는 전쟁과 격변으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어둠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삶의 고통 속에서 오히려 사랑의 힘과 기쁨을 화폭에 담아냈고, 인간이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샤갈에게 그림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여 팍팍한 현실을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도구였던 것이다. 중세 미술이 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한 엄격한 도구였다면, 샤갈의 미술은 철저히 인간의 내면적 감정과 사랑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대비되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책에 실린 그림들이 너무 작다는 것 정도? 좀 크게 보고 싶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그림들이 다소 작다. 그래서 일부러 압도적인 실물 크기와 실제 물감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는 미술관에 가는 것이겠지. 책을 통해 미술의 철학과 역사를 훑었으니, 나중에 미술관에서 원화를 직접 보게 된다면 훨씬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책 말미에는 미술을 감상하는 법과 함께 우리나라 미술관에 대한 정보, 관람 팁 등이 실려 있어서 미술관 방문 시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독서하는 내내 유익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가져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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