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철학 책은 여전히 난해하고 어렵다. 자기계발 책과 달리 이렇다 할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과 달리 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흐름을 놓치고 무슨 의미인지 몰라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철학 책을 멀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철학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사유의 고증과 삶에 대한 태도를 재정립하고 싶어서다.그렇다면 아이러니스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저자는 이 책에 소개하는 철학자들을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규정한다. 아이러니스트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창안한 개념으로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가는 시인이나 소설가와 같은 사람을 지칭한다. 저자는 철학자 12명이 내세우는 철학적 이론을 기조로 하여 총 12개의 탄탄한 주제를 제시한다.P.30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제 해결을 통해 깨닫는 데서 발현됩니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빅데이터 등의 기계화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없어지는 것인가? 빠른 해결과 목표 달성만이 답일까?실천적 지혜란 특정 상황을 인식하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행동에 주목한다. 또한 실천적 지혜는 숙성의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숙성의 시간 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 타인의 아픔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공감 능력, 연상작용에 의거한 상상력, 현실 구현의 실천력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지혜는 결국 인간의 체험적 각성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P.56 "모든 경험은 과거에 겪었던 경험과 연결되는 동시에 미래에 직면할 경험과도 연결되어서 종적인 시간축을 따라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됩니다."듀이 이전에는 경험을 거의 모든 철학에서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경험은 이성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성보다 낮은 단계로 본 것이다. 하지만 듀이는 경험 없는 이성은 근거 없는 관념적 사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의 인간적 면모와 정체성은 결국 그 사람이 쌓아온 경험과 연관되어 있으며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도 경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험을 했다고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인 것이다.P.252 " 자기 배려는 스스로를 삶의 능동적 주체로 부각시키는 삶의 기술입니다."챕터 8장에는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가 등장하는데 '자기 배려'라는 개념으로 자기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푸코는 누군가가 정한 통념이나 규칙, 슬로건에 대해 이것이 과연 올바른 기준인 건지 의문의 화살을 던진다. 또한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경계는 과학적이지 않은 것이며 자기 배려는 자기 인식의 중요성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나는 8장 챕터에서 가장 많은 자극을 받았다.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모방하거나 타인의 스타일을 흉내 내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왜 자기계발을 한다면서 경쟁상대를 어제의 내가 아닌 타인으로 두는가? 정곡을 찌르는 말에 허를 찔렸고 나 자신의 가증스런 욕망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나의 색다름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의 본래 모습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책은 읽을수록 어려운 용어도 등장하고 아리송한 내용을 품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예를 들어서 쉽게 풀어주기 때문에 마냥 난해하지만은 않다. 괴짜 같은 철학자의 엉뚱한 상상과 이론도 재밌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방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옛 성인들 또는 철학자들의 사유들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문제에 대입하다 보면 그 실마리가 풀리거나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철학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아이러니스트 #유영만 #철학 #철학서 #인문 #EBS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