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 《타임》에세이스트가 권하는, 개정2판
로저 로젠블라트 지음, 권진욱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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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살아가면서 인간 관계를 더 유들유들하게, 그리고 조금이라도 골칫거리 없이 살아가기 위한 삶의 처세술이 적혀 있는 책이다.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담도 있고 지인의 이야기들도 있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웃음이 배어 나오기도 하고 기발한 법칙들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지식이나 지혜를 얻고자 진지하게 덤벼들며 읽기에 이 책은 너무 유쾌하고 가볍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 있는 58가지의 법칙은 생각보다 실천하기 쉽다.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법칙도 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있는 와중에 왠지 신빙성이 있어서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론과 입장을 읽고 있으니 신박하고 재밌었다. 역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식도 중요한 것 같다.

P.9 "세상살이에서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타성으로 굳어버린 반응과 충돌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각 법칙에는 차례대로 숫자가 붙여져 있다. 저자는 번호를 기억해두면 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내려놓고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고민하고 심각하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갖는 고정관념과 타성으로 굳어버린 반응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고방식과 틀에 굳어진 관념들을 조금만 비틀고 전환해도 창의적이고 좀 더 유들유들하게 살 수 있을 텐데.

P.144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재는 가장 좋은 척도는 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저자는 명성을 좇는 삶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인기와 명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하고 건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 현대인이 깨닫기 가장 어려운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꾸준히 능력을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움, 혁신, 흥분이라는 개념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꾸준함과 묵묵함이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저자의 시크함이 묻어나는 58가지 법칙들. 인정하기 싫지만 곱씹어 생각하면 맞는 말이 많아서 수긍하게 된다는 점이 씁쓸하다. 객관적이고도 통찰력 있는 저자의 조언과 뼈 있는 말들이 결국 법칙들을 만들어내고 마치 금지조항처럼 차례대로 번호와 함께 적혀 있는 책이지만 인간관계에서나 삶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분명 맞는 말이 더 많아서이기도 하고 나도 유쾌하게 나이 들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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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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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낙엽이 뒹굴고 쓸쓸한 정취가 공기를 타고 맴돌면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외롭고도 담담한, 혹은 세련되고 시크한 문체가 생각난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거의 다 읽어봤지만 그중 웨하스 의자는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에서도 가장 쓸쓸함이 묻어나면서도 죽음과 절망에 대해 객관적인 사유를 할 수 있게 한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유부남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나, 대학원생과 사귀고 있는 동생.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주인공 나는 과거로부터 얽매여 있다고 해야 할지, 과거의 기억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야 할지...특히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부모님과의 기억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특별히 부모님과 애틋했던 것은 아니지만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라는 아빠의 말, 한밤에 부모님이 레코드를 듣던 기억, 부모님과 친했던 지인들과의 추억이 그녀의 뇌리 속에 계속 남아있다. 주인공 나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아빠는 교통사고, 엄마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동생과는 따로 살고 있지만 연락을 자주 하며 지낸다. 심지어 각자의 애인들을 끼고 밥을 먹고 놀러 가기도 하고 말이다.

P.127 "아빠도 엄마도 죽어 이 지상에 없는데, 여기서 나와 애인과 동생과 대학원생이 이렇게 그들의 레코드를 듣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묘하고, 그러나 아주 자유로운."

P.166 "나는 자고,일하고, 산책하고,목욕하고,그리고 또 잔다. 가끔 애인이 찾아온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또 만나자는 말을 하고 헤어진다. 내 생활은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고, 덜한 것도 더한 것도 없다."

나는 이 문장이 너무나도 쓸쓸하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무미건조한 일상을 숨기면서 처절하게 외롭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해서일까. 죽음은 딱히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는 것이 죽음이고 여기와는 다른 세계에서 머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생의 순간순간마다 죽음에 대해 각인하며 살아간다. 서른 여덟 살 밖에 안된 여자가 벌써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지배하는 생각의 고리들- 갇힌 세상, 세계의 끝, 절망, 그리고 죽음.

언니는 유부남을 사귀고 있고, 동생의 남친인 대학원생에게는 4년이나 사귄 여자가 따로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자매는 서로의 연애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2004년도에 나왔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세련되고 쿨하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본인이 좋아하면 그뿐.

P.86 "왜일까. 나는 이제 어른인데, 때로 어린아이의 시간에 갇혀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 딱히 불행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고통스럽게 기억한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스파이로 생각하며 스파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을 만큼. 자신이 어른인 것을 자각하고 있긴 하지만 갇혀 있는 또 다른 내 안에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때만큼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만 자고 싶은- 그러다 또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p.105 "나와 애인의 계획은 완벽하다.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문제도. 다만,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란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위태위태한 그녀의 연애. 애인이 곁에 없으면 어김없이 절망이 그녀를 찾아온다. 이렇게 매일 외로워할 거면 빨리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거나 동생과 같이 살던가 하지..하지만 그녀는 애인에게 한 번도 이혼하라거나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녀의 사무치는 고독과 외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애인이 유부남이 아니라면 그녀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일까.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P.238 "나는 애인에게, 자살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려 했다.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란 것을, 그냥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갇혀있는 걸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그녀에게 어쩌면 애인이란 존재는 그녀를 가장 구속하는 덫이자 절망이다. 그녀는 애인이랑 헤어진 후에 막연히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라고. 그녀 말대로 자살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가만히 누워서 죽음이 올 때까지 말이다.

​고독했던 그녀는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살지만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슬픈 일도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유, 진정한 해방을 꿈꾸지만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스파이라는 것을. 웨하스 의자라는 책의 제목. 당연히 가질 수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지만 한때는 주인공에게 행복을 상징했던, 그러나 결국 허망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 웨하스 의자가 갖는 상징성에 마음이 아프다. 어쩜 책의 제목이 찰떡이다. 이래서 나는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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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흔들리는 나를 일으켜 줄 마음 처방전
오왕근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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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오왕근 법사의 책 제목은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사주팔자나 운명은 아리송하고도 아이러니하지만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힘들고 답답할 때는 한 번쯤 사주팔자를 보러 가거나 점을 쳐서 자신의 운을 상승시키고자 한다. 설사 점이나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심심풀이로 해가 바뀔 때마다 신년운을 점치거나 가볍게 타로를 보기도 하고 말이다.

오왕근 법사는 각종 방송이나 유튜브등 나름 매체에서 얼굴이 알려져 있다. 책 띠지에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를 보니 나도 절로 마음이 평안해진다. 작가의 이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가 법사라는 신분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생담과 경험이 책에 낱낱이 적혀 있어 역시 모든 일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왕근 법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사실 자기 계발서나 마음 치유서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을 모시고 있는 역술가 또는 예언가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고 곳곳에 뼈를 때리는 문장이 책 곳곳에 숨어 있어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걸 다시금 알았다. 오왕근 법사는 인생을 바꾸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을 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눈앞의 일들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나는 이번 일만 이렇게 넘어가게 해달라고, 제발 이번에만 이렇게 지나가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주팔자나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책을 꺼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것들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아예 무시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 이쪽에 흥미가 있다. 작가가 역술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상담을 하면서 개인적인 고충이나 에피소드들이 나와 있는데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오왕근 법사가 던지고 있는 메세지는 명확하다. 말 그대로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죽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사주팔자와 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욕심을 내려놓고, 운명이나 사주팔자에 갇히지 말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단지 자신이 선택한 운명에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꿈과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행복할까? 얼마 전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다. 그토록 바라던 간호사 시험에 가까스로 합격한 기쁨도 잠시, 선배 간호사들에게 혹독한 갈굼과 괴롭힘을 당해 목숨을 끊은 23살 후배 간호사의 이야기였다. 차라리 이 여성이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 이처럼 인생은 모를 일이다. 행복한 순간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괴로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니까. 오왕근 법사도 사람에게 환멸을 느끼고 속세를 떠나 꽁꽁 숨어버렸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지겨운 인간들에게 벗어나 이제 다시는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말아야지 마음을 닫고 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사람 인연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만날 사람은 만나지고 헤어지게 될 인연은 억지로 붙잡아도 떠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그냥 받아들이고 좋은 사람은 내 곁에 두면 된다.

오왕근 법사가 들려주는 말들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 맞는 말이다. 욕심을 짊어지고 살면 항상 뺏길까 봐 노심초사 불안하고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살다가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면서 못되게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좋은 말들이 많아서 읽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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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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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의 말만이 넘쳐 마음에 질문을 던진다. 답 같은 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 질문은 고통으로 변한다.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요?" P.228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가자미 게이스케. 그의 아들 시게아키는 자기 방에서 칼로 목을 긋고 자살했다. 책은 아들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자미와 현재 학교폭력을 당하는 도키타라는 고등학생이 번갈아가면서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야기는 11월 6일의 저주로 시작된다. 마치 괴담처럼 11월 6일마다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죽음이 삼 년째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6일의 첫 희생자는 바로 시게아키이다. 시게아키가 죽고 일 년 뒤, 아내는 아들의 뒤를 따라 자살한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가자미는 자책하며 아들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간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끼리 모인 인터넷 모임에 가입하여 조언을 얻기도 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그는 아내가 이 사이트를 알았더라면 목숨을 끊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자미는 책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이다. 아들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까지 잃은 그의 고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자미는 인터넷에서 대화할 때 쓰는 닉네임을 '죄지은 부모'라고 지었다.

도키타 역시 학교폭력의 희생자이다. 도키타는 류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와중에 피에로 분장을 한 페니를 만나게 된다. 페니는 자신이 대신 류지를 죽여주겠다고 도키타에게 제안하고 도키타는 은밀히 살인 계획을 세우며 페니와 함께 류지를 죽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사실 도키타는 하루이치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하루이치의 배신으로 곤경에 빠지에 된 것이다. 도키타는 하루이치도 잃고 싶지 않았고 하루이치의 여동생 마키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류지를 죽이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학교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학교폭력과 자살, 복수라는 세 가지 소재가 맞물려 가해자의 끔찍한 폭력 앞에서 무참히 당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처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이 절절하게 나타나 있어 더욱 슬프고 안타깝다.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어서 더욱 남일 같지 않고 말이다.

​페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왜 도키타 앞에 갑자기 나타나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일까? 페니와 도키타는 같이 류지를 죽이고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도키타는 아버지보다 페니를 의지했고 더 좋아했다. 그래서 결말은 더 슬프고 감동적이다. 소설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정한 죄인은 누구일까? 어떠한 이유든 살인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살인을 함으로써 누군가는 구원을 받고 마음이 평안에 이르렀다면 사회적으로 법의 제재를 받았더라도 진정한 복수를 이룬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의 끈을 놓고 싶을 정도로 절망에 이른다면 그런 것들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테니까.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복수라기보다 가해자들에게 응당 갚아야 하는 빚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결말이 내 맘에 들지도 않았지만 진정한 복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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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어 보여도 꽤 쓸모 있어요 - 분명 빛날 거야, 사소한 것들의 의미
호사 지음 / 북스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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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데없는 것이 있을까? 이 책은 다른 에세이와 좀 결이 다르다. 작가는 살면서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소소하고 작은 것들에서 큰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삶에도 적용하여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들이 알려주는 쓸모 있으면서도 색다른 발견!

P.105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무게 중심을 바깥에서 안으로 들이게 된다."

작가는 한때 파우치에 로드샵 화장품 대신 명품 화장품을 가지고 다니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았다. 지금도 남의 시선을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이가 들면서는 내 기준에서 더 편하고 좋은 물건들만 찾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다 남들에게 보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은 좋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연말 시상식을 보다가 시상식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된 작가는 매년 연말이면 '나만의 시상식'을 연다고 한다. 다이어리와 비공개 블로그 등에 쓴 글을 읽으며 한 해를 돌이켜보고 잘한 일과 성과를 이룬 일, 기억에 남는 여행지 등을 꼽아보면서 별의별 항목을 만들어 셀프 시상식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다이어리를 매일 쓰긴 하지만 다이어리를 쓰기만 했지 다시 읽으며 추억을 반추하는 일은 잘 하지 않는데 연말에는 나를 위한,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년을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뜻깊은 행사가 될 것 같다.

살면서 크고 작은 시그널이 있다. 도어락 배터리가 닳아서 여러 번 신호음이 울린 걸 알면서도 그냥 방치했다가 결국 배터리가 방전돼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작가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도 시그널을 무시했다가 곤란을 겪었던 일들이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무심함과 게으름, 혹은 귀찮음의 결과가 나한테 고스란히 나타나는 일인데 이런 일을 한두 번 겪고 나서야 그제야 깨닫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인간관계를 돌이켜보면 이별의 징후,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 배신할 것 같은 예감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다 시그널이었다.

P.93 "기준을 낮추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만족도를 높이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열등감과 경쟁심, 불만이 쌓이는 것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은 걸 가지지 못해서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낀 것이었으니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를 볶아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너무 기준을 낮게 잡아서도 안되겠지만 남 신경 쓸 것 없이 나만 만족하면 되는 일이 세상에는 은근 많다. 좋은 사람의 기준, 행복한 삶의 기준.. 이런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천년만년 살지도 못하면서 악착같이 살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말인가.

후배의 신혼집 집들이에 갔다가 다꾸 스티커를 뿌듯하게 자랑했다는 에피소드를 읽고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깜놀. 나도 몇 년째 다꾸 스티커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자기만족이고 소확행의 일부이다. 나는 귀엽고 이쁜 스티커를 획득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초코비를 먹을 때에도 짱구 스티커가 뭐가 나올지 흥분된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이쁜 스티커를 모으고 다이어리에 부칠 때 희열을 느낀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쓸모를 깨닫고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주변의 것들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필요 없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물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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