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빈 - 숙종시대 여인천하를 평정한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 숙빈 최씨
김종성 지음 / 부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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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왕의 여자>를 읽다가 보게 된 최숙빈의 일화. 몇 줄 안 되었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았고, 이 여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극적인 신분 상승의 주인공 최숙빈은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 이상으로 최숙빈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크지만 남겨진 사료와 이에 대한 연구는 변변치 않다. '드라마 동이'의 동이란 이름도 허구고, 출생지는 물론 무수리라는 신분도 추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 여인의 삶을 끌어다 책으로 재탄생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첫 장에 잘 나와 있었다. 최숙빈이 태어난 조선 후기는 서민들의 변화가 격동적인 시기였다. 부농, 부상들을 주도로 많은 서민들은 사회적으로는 신분 상승의 꿈을 실현했고, 문화적으로는 그들 본유의 서민 문화를 가꾸어 즐겼다. 그렇지만 정치적 진출은 예외였다. 최숙빈을 제외하고.

책에서는 고아 출신 궁녀로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왕의 어머니까지 된 이 여인을 '걸어서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표현한다.

 

 

이 여인의 무엇이 조선의 예외를 무너뜨렸는지, 역사적으로 재조명할 필요성이 크다. 당시의 기록, 후대 발견된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꼼꼼하게 최숙빈과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되짚는다.

 

 

최숙빈은 애기 항아로 궁에 첫 발을 내딛었다. 후에 고종이 들었다는, 왕자 이금(영조)과 최숙빈의 이야기에 추측해 볼 때 최씨는 침방 나인으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 후에야 인현왕후를 모시는 지밀 나인으로 중궁전에 배치되었는데, 두 사람의 인연은 여러 가지로 최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최씨와 숙종의 만남를 기록한 일화를 볼 때, 그녀가 얼마나 인현왕후를 따랐는지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최씨의 의리있는 성품에 숙종은 반했고, 최씨는 숙종의 신임을 받게 되면서 인현왕후와 서인 세력의 복귀를 도울 수 있었다.

 

 

최숙빈은 당쟁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었다. 치열한 궁 안에서 의탁할 곳 하나 없었던 그녀는 자신과 아들 연잉군을 보호하기 위해 당파를 이용해야 했다. 최씨는 정치적 색을 띠지 않은 무소속의 신분으로 서인의 편에 가담했고, 이는 당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장희빈 사사에 기여했던 것이다.

 

 

책에서는 당시의 당쟁사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며 남인과 서인의 대결에서 서인이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된 뒷배에는 최숙빈의 간접적인 역할이 숨어있었음을 말해준다. 최숙빈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방식을 보고 자란 영조도 노론의 힘에 의존해 목숨을 보존하여 마침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로 영조의 통치 스타일에서 최숙빈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노론 정권을 통치 기반으로 삼았지만 탕평책을 실시한 균형 잡힌 왕이었다.  

 

이렇듯 최숙빈은 현명하면서도 영특했다. 그러나 장희빈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인생도 실상 내리막길이었다. 숙종이 후궁이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이후 금하게 한 것이다. 최숙빈은 오래도록 아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렇게 외로이 지내다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얼마지 않고 병이 들어 끝내 눈을 감게 되었다. 너무 젊은 나이였다.

 

 

훗날 우여곡절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어머니를 왕의 후궁이 아닌 왕의 어머니로 기억되고자 온 힘을 쏟는다. 근 30년 동안의 반대를 무릅쓴 추숭 사업 끝에 최숙빈의 '소령묘'도 '소령원'으로 격상되는데, 이 때 영조가 남긴 묘갈을 보면 영조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아! 이십 오년 동안 애쓰신 은혜에 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붓을 잡고 쓰려 하니, 눈물 콧물이 얼굴을 가린다. 지난날을 추억하노니, 감회가 갑절이 되는구나.

 

 

 

최숙빈을 통해 조선 후기 정치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조선의 격동기를 잘 이끈 성군 영조와 정조가 최숙빈의 대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최숙빈이야말로 정말 걸어서 하늘까지 오른 여인이 맞다! 몇 구절 안 되는 기록으로 이만한 책의 분량이 나온 것은 이 여인이 한국사에 있어 반드시 살펴볼 가치 있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할 것이다. 뜻깊게 본 책이었다.(그래도 은근히...아니 좀 많이 남는 것은 생생히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아쉬움...)

 

 

최숙빈을 기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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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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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p20)

 

 

 

이 책에서 남자는 다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아버지를 가리킨다. 그는 저자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다.

 

'나'가 담은 아버지란 노동자로 소상인으로서 평생을 살면서 배운 것 없다는 열등감을 최대한 숨기고자 했으며 어색한 표준어를 쓰며 애썼던 아버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존심의 큰 문제라고 여겼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세계가 있었고, 행복을 위해 지키고자 했던 자리가 있었다.

 

그는 그가 얻지 못해 딸이 가졌으면 했던 교양과 성공을 바랐다. 딸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뒤적거리며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느끼곤 했다. 바란대로 그렇게 그의 딸은 다른 세계로 걸어갔고,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인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그 세계의 욕망'에 굴복했다. 두 공간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으며 끝내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멈춰버렸던 시점부터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기까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던 그 차이, 그것을 글로 기록했다. 아버지가 변하지 않았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라는 것과 그에게 있어 삶의 문제란 먹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또 배고프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적었다. 그가 그런 아버지라는 것을 아버지의 자리, 한때 나고 자랐던 그녀의 세계로 돌아가 담담하게 어떤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어갔다. 그것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방식인 것처럼.

 

간혹 난 내게 감동되고, 공감 되는 정도에 따라 글을 바라본다. 열린책들에서는 이 책을 개정 출판하면서 제목을 <아버지의 자리>로 내려했다고 한다. 제목이 그랬더라면 읽으며 생각했다. 아마 며칠의 잊을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을 받았지 않았을까 하고. 그 아버지를 내 아버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아버지들로 바라보면서...

 

내게도 해당되는 아버지인지 생각하며 읽었고, 덮고서도 생각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세계를 먼발치 떨어져 단순하거나 하찮은 사람들의 것으로 바라보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어린 '나'가 내 아버지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책의 제목이 <남자의 자리>이기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던 내 아버지만의 자리를 볼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뭔가를 얻은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애정과 낯섦, 저자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나도 내 아버지를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다.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과 문장들은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나 또한 살았던 한 세계의 한계와 색채를 있는 그대로 그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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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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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제목이 내용 전부를 말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욕망을 품고 산다. 죽어 사라져도 기억으로든 기록으로든 존재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인간이 품는 욕망이 정말 끝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존재하니까 욕망한다. 그러니 사랑도 욕망의 표현 아닐까.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내 존재 그리고 누군가를 통해 기억되는 내 존재…

 

이 책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욕망을 담고 있다. 남성 위주의 공쿠르 상에 반한다는 의도로 제정된 페미나 상 수상작이라 한다. 상의 심사위원이 모두 여자인데, 수상작의 작가는 남자다. 왜 그럴까 했는데, 작품 자체가 여성적이었다. 여성이 좋아할 만한 삼각관계 구도. 또 나른 나른하다고 하나? 여하튼 뭔가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필력(나한텐 좀처럼 책장 넘기기 힘든 필력이였지만). 이런 것들이 뭉쳐서 자극된 감성으로 한 여자를 욕망하는 두 남자의 흔하고 흔한 사랑 이야기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블레리오는 파리에서 프리랜서 번역가 일을 한다. 그에겐 지적이고 유능한 아내가 있긴 하지만 같이 살긴 해도 이미 벽을 둔지 오래다. 그는 따분한 일상을 깨고 다가온, 운명이라 확신하는 노라를 그리워한다. 눈앞에 없어도 블레리오 머릿속에는 언제나 노라가 있다. 블레리오가 그러는 동안 노라와 함께 살았던 머피, 하버드 출신의 경제력 좋은 증권 중개인으로 런던에 살고 있다. 어느새 머피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과거 모든 것들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믿게 한 사람.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사라졌다.

 

노라는 이렇듯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블레리오 앞에 나타나 그의 욕망에 동참하여 함께 웃고 즐기기를 하다가 돌연히 사라져 머피에게로 간다. 곧 노라는 그녀의 사랑도 진실 되기를 바라는 그러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머피에게 기대고 있다.

 

불 같고 물 같고 바람 같다. 각자의 사랑 방식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결국 이 차이가 이들을 지치고 또 미치게 했다.) 이해도 공감도 잘 되지 않는다. 특히 바람 같은 여자 노라가 그렇다. 그녀가 정말 원하는게 사랑인지 아님 자유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게 그녀의 욕망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다.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작가는 현재형으로 진행된 문장을 통해 이것을 눈앞에 생생히 펼쳐 보였다. 한편의 영화 같이.

 

생각해보니 이 책이 페미니 상을 받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때때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을 보다가 안타까운 삼각관계가 등장하면 이 사람과 잘 되면 좋겠는데 하면서도 그럼 저 사람은 어찌 되는 건지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냥 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둘 다 함께 할 수는 없나? 욕망 비슷한게(?) 생긴다. 이 책의 노라가 여성들의 그런 욕망을 대변해줬다고 해야 할까. 노라를 이해하려고 했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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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지시면 낫지 않을 상처가 없다
김정석 지음 / 두란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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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난이 축복이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살다보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이 지나고 보니 사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계기였다는 말이겠다. 이것은 고통 받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는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저 말을 되새길지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인생은 고통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삶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 살게 바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로 해결될 수 없는 상처가 해결된 역사를 경험한 이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고난을 축복으로 치유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고.

 

<하나님이 만지시면 낫지 않을 상처가 없다>는 치유의 손길을 갈망하는 크리스천을 위한 책이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치유를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바람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치유자심을 아는데도 왜 치유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 김정석 목사님은 새 사람이 자꾸 옛 모습을 얽매이다가 주신 약속을 잊어버리고는 한다고 말하셨다.

 

지금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살더라도 과거의 쓴 뿌리와 죄악을 자꾸 꺼내 보면 자기 연민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입니다. (P23)

 

'전진하는 그리스도의 삶'의 방해물은 두려움과 연약함이다. 인내할 줄을 모르니 기도를 해도 믿음 없는 간구만 하게 된다. 예수님은 혈우병 여인과 맹인 두 명을 보시고 "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그들이 깨끗이 낫게 되었다. 이들처럼 믿음대로 믿는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함을 알아야 한다. 또한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신뢰하며 전적으로 의지했음을 알아야 한다.

 

목사님은 십자가의 은총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십자가 아래에 나와 두려움과 불신, 겸손 하지 못함을 못 박고, 새 생명을 얻어야 한다. 매일 새 사람으로 태어나 죄를 떨칠 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셨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함은 그 분이 우리 구원자심을 고백하는 삶이다. '예수 안에서' 살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의지하고 그 분의 성품을 닮아 가는 삶이다. 곧 나를 무너뜨리려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는 삶이기도 하다.

 

책은 하나님은 우리의 치유를 우리보다도 원하신다고 적고 있다. 오로지 믿음의 기도로 십자가 아래 겸손히 서서 인내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점은 고난이 축복이 되려면 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변화 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변화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다. 겸손히 그 앞에 나올 때 치유의 역사가 내게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믿는다.

 

이 책은 막연한 기적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관계를 말하는 책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 치유와 축복의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예레미야 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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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선배의 수능 전략노트 - 삼수 끝에 경찰대에 합격한 선배가 100% 효과를 본 특별한 공부 노하우!
김효진 지음 / 작은씨앗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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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스쿨을 가지 못한다면 하는 슬픈 만약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시험이 수능이다. 시험에 해당하는 범위를 공부를 하긴 했으니 꼭 도전해 보고 싶다. 그래도 낯선 시험인지라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찾게 된다.

 

이 책은 경찰대를 삼수 끝에 합격한 저자의 이야기다. 제목을 보고 기대를 많이 했었다. 아쉽게도 경찰대를 가게 된 자세한 계기부터 삼수 생활의 자신과의 싸움, 꿈을 성취한 후의 기쁨 등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내용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페이지는 언어 영역 푸는 비법으로 채워졌다.

 

경찰관이 된 지금도 언어 영역을 풀어 보곤 하는데, 언제나 만점이 나왔다고 한다. 솔깃한 비법이다.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했다. 문제를 먼저 읽고 마지막 지문을 읽어 글의 성격, 내용, 주제를 파악한 후 첫 문단으로 돌아가 빠르게 읽는 방법이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글의 요지를 먼저 알고 읽는게 비문학에서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밖의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는 크게 도움 되는 책은 아니었다. 다만 기억할게 저자가 공부하는 동안 자신을 알고자 노력했다는 점이었다. 또 교과서에 많이 의존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알고 공부 패턴을 바꾼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고민했던 것처럼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한번 참고하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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