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 강영우 박사 유고작
강영우 지음 / 두란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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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능성이 어디에 있을까? 앞을 못보는 장애를 안은 채 평생을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축복이고 감사인가? 인간적인 생각은 이랬다. 그런데 강영우 박사님의 삶을 눈물로 보면서 장애는 죄의 결과가 아닌 축복의 씨앗임을 확인하니, 하나님의 생각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는 희망엔 걸림돌이 없음을 증거하는 강영우 박사님의 유고작이다. 장애인의 인권, 삶의 질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눈이 많이 나빠 안경과 함께 자라서 강 박사님이 시력을 잃게 된 과거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따갑게 아프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연이어 닥친 불행을 읽으면서는 이것이 소설의 일부는 아닌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시력을 되찾을 가망성은 사라졌고, 부모님도 누나도 다 떠나보냈고, 두 동생과 자신만 남겨진 막막하고 암울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나의 고난에는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박사님은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온몸으로 편견과 차별에 맞섰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인데 장애의 시련으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고, 불평등한 세상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사님은 이렇게 감사한다. 만약 온전한 눈이었다면 그간의 성과를 조금도 이루지 못했을 거고, 시각 장애는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헌신을 바친 사람들의 삶을 박사님의 말로 듣고 보면서, 나라면 나의 장애는 물론 다른 이의 장애까지도 보듬을 수 있는지? 반성이 되었다. 눈을 돌리면 나눌 마음과 희망이 많은데, 내 상처만 보고 불평만 하는 게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이들을 쓰셔서 장애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탄이 나왔다.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희망에는 장애가 없다, 하는 강 박사님. 만약 고난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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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 - 아는 것 같은데 잘 모르고 있는 역사 용어 상식 톺아보기 대한민국 역사상식 1
전병철 지음 / 살림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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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거나 사극을 시청하다 보면 흐름을 이해하기에 앞서 용어에 익숙해야함을 실감한다. 역사 용어 상식을 톺아보자며 다가온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팔만대장경을 화장실 빨래판 보듯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유쾌한 제목만큼 내용도 재밌을까 하여 첫 권을 펼쳐 들었다.

 

저자는 '기본 역사 용어와 역사 상식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한다' 며 이 책을 쓰고 개정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차례를 보다가 재밌는 부분 먼저 찾아 읽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먼저 호기심을 발동시킨 것은 역사에서 칭하는 존칭이었다. 신이 나서 펼쳤는데 웃음기가 싹 가시는 게, 목적 여부와 무기 사용 여부에 따른 의사와 열사의 미묘한 차이를 읽는 대목에서였다.

 

막상 마주한 이면의 역사에 마음이 쓰렸다. 윤봉길 의사의 사적지의 현판을 작성한 이가 친일 경력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란 사실 때문에 갈기 부서진 현판인데 이걸 은근 슬쩍 다시 복원시켰다는 건 안 그래도 억울한 독립 유공자들의 삶을 더욱 눈물 나게 하였다. 또한 추모각에 봉안되었던 유관순 열사 영정을 왜곡하여 그린 화백이 대표적 친일파라는 것도, 다행히 철회되었다 하지만 다시 추진된 영정 작업에 그 화백이 연이어 선정되었다는 것도 이런 우연이 어디 있나 싶었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자를 사살한 박기서를 열사로 칭해야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나 그보다 그런 암살범이 먹을 것 입을 것 다 누리면서 살았다는 것 역시 화가 났다. 부당한 세력에 맞선 사람들의 아름다운 희생에 눈물이 났다.

 

1부는 그리 관심 가지 않는(그래서 많이 지루했던) 내용도 있기는 했지만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다. 죽음을 부르는 말, 제사의 절차, 각기 다른 묘의 생김새와 정의는 복잡한 한자어 때문에 한 장 한 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지배자들을 일컫는 칭호로 황제의 유례, 전하와 저하, 청동기 시대와 고대 시대의 낯선 지배자들의 호칭의 의미를 배운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지나치고 말았을 텐데, 풀어서 하나하나 설명하여 주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극이나 역사 공부할 때 덕분에 이해가 빨리 될 것 같다.

 

역사적 상식만 나열하지 않고, 학생들이 알았으면 하는 교과 이외의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이 재밌고 유익하다. 사전 보듯 관심 가는대로 읽으니 따분하지도 않다. 역시 재치있는 제목만큼 유익할 것 같은 2권 <빨래판도 잘 보면 팔만대장경이다>에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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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세계문학의 숲 16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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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세계 문학의 숲'에서의 첫인상이 좋았다. 표지 속 환하게 핀 연분홍 장미꽃이 사랑에 빠질 연인을 예고한다. 진실한 사랑을 맞이하는 설렘은 늘 새로움을 안긴다. 바라만 봐도 행복한 표지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을 읽을 때마다 새롭고 즐거운 건 이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그만큼 다채롭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시집 잘 가는 것을 취집이라고 하던데,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베넷 부인은 삶의 목적이 자식 취집 잘 시키는 데 있는 사람이다. 시집 잘 보낸 덕 누리고 싶은 속없는 아줌마지만 머리 굴리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도 순진하다고 느껴지는 게 나름의 매력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언니 제인은 다행히도 그런 속물근성을 닮지는 않았다. 그래서 응원할 수 있는 이들. 로맨스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여주인공들이다. 가난한 여자가 가진 돈만큼 깐깐한 남자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주변인들과는 달리 자존심 강하고 당찬 여자에게 끌려 포로가 되는 남자. 여자가 독하지 않고, 배려 깊고 착할 수도 있다. 온갖 방해물을 이겨 마침내 사랑을 완성한다는 결말은 변함없지만.

 

이 두 가지 유형이 여기다 등장한다. 오스틴만의 발랄한 분위기가 결합하여 진부한 그저 그런 로맨스로 느껴지지 않고 읽을 때마다 즐거운 게 참 신기하다. 얄미운 다른 인물들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게 현실 세계에 존재할 법한 사람들이고 그들로 인해서 <오만과 편견>이 개성 넘치는 소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깨우치기 직전의 엘리자베스가 읊었던 명대사, 여전히 멋지다. 사람을 바꾸는 사랑의 힘은 정말 대단한 듯.

 

"나 자신의 분별력에 그토록 자부심을 품고 있던 내가!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긴 내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솔직한 언니의 진심을 비웃고, 남들을 쓸데없이 의심하면서 허영심을 채우던 내가! 너무나 수치스러워! 하지만 수치심을 느끼는 건 당연해! 사랑에 빠졌다 해도 이렇게 눈이 멀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부터 한 사람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어 기뻤고 다른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분개했던 거야. 그래서 두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스스로 선입견과 무지를 키우고 이성을 몰아냈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나 자신을 몰랐던 거야."(.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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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속임 공부법 - 잠재력을 깨우고 자신감을 채우는
니시다 하쓰미 지음, 정미애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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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할 틈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부정적 생각은 집중력의 최대 적이다. 힘들게 쌓아올린 탑이 '이거 어렵다'는 생각 하나에 무너져 내린다. 미리 비관적인 생각을 차단하여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하는 특효 방법 없을까? 하다가 발견하게 된 이 책.

 

'뇌속임 공부법'은 뇌가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속이기 전에, 내가 먼저 뇌를 설득하자는 공부법을 말한다.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으로 뇌를 속이는 이 공부법이 다른 공부법에 비해 더 특별하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단순하고 간단하다. 그냥 긍정의 힘을 뇌 깊숙이 심어서 원하는 대로 이룰 거라고 세뇌시키는 게 비법의 전부다.

 

그런데 나같이 고민 많은 사람한테는 이 방법 정말 매력적이다. 의욕만큼 생각도 많을 때 그러나 생각은 지우고 싶을 때, 억지로라도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효과가 크다니 충분히 시도 하고 싶은 방법이 맞다.

 

책에서 말하는 공부 비법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뇌를 지금 공부하는 내용만 받아들일 수 있는 바보로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래 왔으니까 힘들 거야, 틀리면 창피하잖아, 라는 복잡한 논리는 필요 없다.

 

우선 공부에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하지만', '그렇긴 한데', '안 될 거야' 하는 하찮은 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재미와 흥미는 본질적인 목적의식에 기초한다. 합격과 점수 같은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합격 후의 상황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버거운 짐’이 아닌 ‘목적지로 데려다 주는 즐거운 작업’이라 여기라는 뜻이다.

노력하면 반드시 내 손에 들어올 꿈임을 알게 된다면 설렐 수밖에 없다. 가슴이 설레는 곳을 목표로 삼아라. (본문에서)

 

이렇게 공부하자는 마음을 즐겁게 먹었으면 0.2초 안에 긍정적인 말을 일부러라도 입 밖에 낸다. 나쁜 생각이 스며들 조금의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기억할 내용은 바로 뇌를 유쾌하고 즐겁게 했을 때 좋은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되풀이 하여 자신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또 정상에서 현재를 보며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조언한다고 생각하라.  

 

저자가 잠재력을 키우는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이해가 쉬웠고 스스로 능동적인 힘을 기르게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유용한 걸 배운 기분이다.

 

어떤 잡음에도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림 액자를 내 뇌 속 깊이 걸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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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의 아이들 - 이민아 간증집
이민아 지음 / 시냇가에심은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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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소로 환히 웃던 이민아 목사님. 언젠가 텔레비전에 비친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지난날 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간증하는 목사님은 핼쑥한 투병의 흔적에도 행복과 즐거움이 넘쳐났다. 그런데 내게는 미소보다 눈물이 더 기억에 남았다. 신실한 신앙을 가지려면 저토록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겁이 덜컥 났었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저 때 보았던 미소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사님이 하나님과 하나 된 삶을 살다 가셨고 그 삶이 햇살 가득한 빛의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빛이 싫어서 도망간 깜깜한 땅끝에서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저를 주님이 찾아오셔서 구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멀었던 저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문둥병자 같이 병들어 있던 저의 영혼과 육신을 사랑이라는 기적으로 치유하셨습니다.(p8)

 

이 책 <땅끝의 아이들>은 어둠에서 살았던 과거와 빛 되신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의 삶을 담은 이민아 목사님의 간증집이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를 땅끝의 아이들이라 칭한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으로 어둠 속에서 외로이 보냈던 자신의 지날 삶을 들려주며 어떻게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빛이 되었는지, 어떻게 사람들과의 불완전했던 사랑의 벽을 허물 수 있었는지를 간증하고 있다.

 

내 삶의 주인은?

목사님이 질문받았던 것처럼 내게도 질문이 던져졌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 습관적으로 고백하여도 돌아서고 나면 이 고백이 얼마나 대단한 고백인지 잊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부활하셨음을 믿으면 반밖에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구세주라 진심으로 시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시는 하나님처럼 나도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왜 괴로움 안에 갇혀 있는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내 문제는 알아서 다 해결할 수 있다 믿었던 것처럼.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를 깨닫지 못하니 내 사랑은 늘 온전하지 못하였구나.  

 

내 마음 깊이 숨어있는 땅끝의 아이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지금의 시험을 목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만 의지하여 견뎌내고 싶다. 목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늘 빛으로 살고 싶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살리시고,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을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변하게 만들어 춤추게 하시는 분이십니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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