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진 살인사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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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을 읽어 보았습니다. 장편인 <혼진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미공개 중편작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흑묘정 사건>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묶어 두어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앞서 있었던 사건과 조사 작업, 그리고 인물들이 계속해서 거론되어 작품들끼리 약간씩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팔묘촌><밤 산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보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그렇게 생명력을 얻어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인기를 얻을 수 있었고, 또 두터운 매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었나 봅니다. 



    <혼진 살인사건>은 일흔작품이 넘도록 오랫동안 인기를 받아온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과연 이 명탐정의 탄생과 첫등장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신화와 같이 여겨지는 한 거대한 제국의 건국시조의 비범한 탄생 비화를 읽는 마음으로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습니다. 

 


    하쿠비 선의 기요시 역에 내려 어슬렁어슬렁 가와 촌쪽으로 걸어오는 한 청년이 있었다. 나이는 스물대여섯 정도로 보이고, 평균 체구보다는 살짝 작은 몸집의 청년이었다. 붓으로 그린 것 같은 잔무늬의 하오리와 기모노, 그리고 가는 줄무늬의 하카마를 입고 있었는데 하우리, 기모노는 주름투성이고 하카마는 주름을 어디 잡아놓았는지 모를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감색 버선은 발톱이 튀어나올 것 같고, 나막신은 끝이 닳았고 모자는 찌그러지고……. 즉, 그 연배의 청년치고는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피부는 흰 편이었으나 용모는 내세울 수준이 못 되었다. (100쪽)



    긴다이치 코스케의 등장. 지금까지 읽은 모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 이 같은 소제목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더벅머리에 허름한 차림새로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매번 등장하고, 더듬거리는 말투에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망의 첫 등장 모습에서도 크게 다른 점 없이 마찮가지의 모습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등장 장면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언제쯤 나올까 기다려지고, 결국 그 장면이 나오니 자신도 모르게 묘한 미소가 입가에 맺히더군요. 나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팬이 다 되어버렸구나 싶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한번쯤 다뤄보고 싶어 하는 것이 이 '밀실 살인사건'이다. 범인이 들어갈 곳도 나올 곳도 없는 방 안에서 자행된 살인사건, 그것을 멋지게 해결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엄청 매력적인 작업일 것이다. (12쪽)



    그럼 추리 소설 작품으로의 <혼진 살인사건>을 이야기하자면, 요코미조 세이시는 그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첫 트릭으로 밀실 살인사건을 선택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밀실 살인사건이야말로 미스터리 작가가 한번쯤 다뤄보고 싶어하는 트릭이라는 뜻을 살짝 내비취기도 합니다. 본격 추리 소설의 거장이 낸 문제이니 만큼 <혼진 살인사건>에서 나오는 밀실 살인의 해법에 도전해서 꼭 이겨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우타노 쇼고<밀실 살인 게임>에서 처럼 게임을 위한 인위적인 밀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있는 기계적인 트릭을 풀며 밀실 그 자체에 대해 신성시하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 사건이라는 점(그만큼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니)에서 그 사건이 밀실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현실적이고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혼진 살인사건>은 그런 점에서 점수를 모두 잃었다가 한번에 본전을 되찾아온 도박 게임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자칫 잘못 했다가는 삼류 트릭을 이용한 추리소설이 될 수도 있었지만 소설 속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의문을 품을 독자가 없을테니 일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부님, 제가 지금 보여드린 마술 트릭,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개 마술 트릭이란 건 알고 보면 그런 식으로 어처구니없는, 오히려 애들 속임수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짜 무서운 점은 어떻게 해서 그런 짓이 행해졌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행해져야만 했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드시 겐조 씨라는 사람의 성격과 이치야나기 가문의 분위기부터 이해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8쪽)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흔편이 넘는 한 시리즈가 꾸준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는 점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동일한 등장인물과 본격 추리의 트릭들이라는 공통되고 일관된, 어찌보면 단순하고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를 서술 형태의 변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려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서술 형식의 변화를 꾀한 작가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까다로운 입맛의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흑묘정 사건>에서는 긴다이치 코스<혼진 살인사건>에서의 활약상을 잡지에 투고한 작가 Y씨가 긴다이치 코스케 본인에게 직접 본격 추리소설의 단골 트릭으로 괜찮을 것 같다며 <흑묘정 사건>의 자료를 받아서 쓴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작가 Y씨는 요코미조 세이시 본인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런 서술은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소설 속 인물이 다시 한번 생명력을 얻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순간 아주 잠깐이었지만 설마 긴다이치 코스케가 실존 인물이었나, 라는 착각과 상상에 빠지며 "아차, 작가에게 당했구나." 하는 마음에 대상없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또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나>에서는 이 이야기를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긴다이치 코스케는 주변인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사건이 이미 종결된 상태에서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일을 직접 겪었던 등장 인물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시간순서대로 나열하는 형태로 사건 속의 인물이 느낀 사건에 대한 의혹과 진상에 대한 상상, 나름의 추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서술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반칙적인 반전을 보인 <밤 산책>과 용의자의 신분이 되어보는 <팔묘촌>에서도 변화무쌍한 서술 형태를 보이고 있으니,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는 본격 추리는 물론이거니와 서술적인 재미도 같이 느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Y씨, 저는 새삼 '사실은 소설보다 기이하다.'는 케케묵은 속담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진 살인사건' 서두에 이런 사건을 계획한 범인에게 감사해도 좋겠다고 당신은 쓰셨죠.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 무서운 '얼굴 없는 시체'사건을 계획한 간악무도한 범인에게 일단 감사하십시오. (중략) 당신이 이 소재를 어떤 식으로 소화하실지, 갖가지 잡다한 서류들을 어떤 식으로 편집하실지 솜씨를 보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긴다이치 코스케 올림 (348쪽)



    서술 형식뿐만 아니라 본격추리의 트릭에서도 영미 추리소설(요코미조 세이시의 시대의)에서 등장했던 간단한 기계적 트릭을 넘어서고자 하는 변화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흑묘정 사건>에서는 본격 추리 소설의 단골 메뉴이면서 A가 범인인줄 알았지만 B가 사실은 범인이라는 뻔한 결과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얼굴없는 시체' 트릭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요코미조 세이시는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뻔한 트릭은 오히려 현실 세계가 아니라 소설 속에서만 완벽히 들어맞게 나올 수 있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오히려 트릭뿐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로 인해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것이라 합니다. 하물며 <흑묘정 사건>은 겉으로는 '얼굴없는 시체'의 트릭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형태(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어떤 형태인지는 숨겨서)의 본격 추리 트릭의 단골 메뉴가 나오고 있으니 참신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혹시 미스터리에서 얼굴 없는 시체, 즉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난도질 당했다든가 목이 잘려 없다든가 시체가 불에 타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다던가 혹은 시체 그 자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든가 하는 사건에 부딪치면, 이건 십중팔구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게 틀림없다. (354쪽)



    <혼진 살인사건>은 종합 선물세트 입니다. 1946년의 첫번째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인 <혼진 살인사건>을 필두로, 이어 집필한 1947년의 <흑묘정 사건>과 1955년에 발표한 중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까지 완전히 다른 색깔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한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3개의 이야기를 묶어 놓은 편집자의 의도가 어렴풋이 보일려고 합니다. 따로 읽었더라면 덜 했을 수도 있는 재미와 감동이 같이 읽음으로서 작품들 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소소한 발견들을 독자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 결국에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매니아가 되어버리게 만들려는 악랄한 의도 말입니다. 아아, 그 의도에 당했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더 많다는 사실과 모험은 아직도 무한하다는 설레임 때문입니다. 그리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아직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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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90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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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의 사나이로부터 협박을 받아온 그리모 교수, 그가 자신의 방에서 수상한 복장을 한 한 남자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수상한 남자는 마술과 같이 홀연히 사라지면서 눈이 내렸던 그 저택은 거대한 하나의 밀실을 형성합니다. 또 그날 밤 근처 길거리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다른 한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주위에 어떤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상태라 사방이 개방된 거대한 밀실에서 의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두 사건 모두 다수의 목격자들이 혼란스러운 증언을 하고 있고, 그 증언을 바탕으로 명탐정 기디온 펠 박사는 마술같은 수수께끼를 풀어 나갑니다.



    - 우리 세 사람은 생매장된 적이 있네.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사람뿐이었지.

    - 자네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지?

    - 탈출한 건 내가 아니야. 알겠나? 난 탈출하지 못한 두 사람 중의 하나였어. (26쪽)


 


    추리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혹시나 놓쳐버린 명작이 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찰라에 주위에서 많은 추천을 해준 작가가 바로 본격 추리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다며 입을 모아 칭찬하던 작품이 이 <세 개의 관>이었습니다. <세 개의 관>은 고전 추리소설 중에서도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이 시절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분명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작품이고 수수께끼같은 트릭을 푸는 맛도 충분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우선,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읽어 내려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읽어 내려가다가 지금 누가 대화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일장연설을 하는 지루한 대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식이라 마치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신문지 상의 사회면에서 '증인의 말을 인용하여' 라는 기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고전 작품에서는 인상깊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소소한 재미들이 존재했지만 <세 개의 관>에서 명탐정으로 활약하는 기디온 펠 박사는 그런 작업이 전혀 없이 "음, 그렇군." 하며 혼자말만 하고는 "자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해볼까." 하며, 말 그래도 마술과 같이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럴 때는 정말 셜록 홈즈에르큘 포와로가 그리울 지경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것을 싫어하는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법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오. 그들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사용하여 비난의 낙인을 찍어버리지요. 그리고 그런 편견에 따라,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나쁘다'는 말처럼 인식되면서 자기들도 그렇게 믿게 되고, 경박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오. (248쪽)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입맛에 맞지 않은 작품에 대해 비판하는 독자들에게 존 딕슨 카는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법칙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의 작품에 대해 일개 추리소설 팬 따위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입장은 아니어서 욱하던 심정을 수그러트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존 딕슨 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작품이 번역될 것을 예상했을까요. 추리소설 팬으로서 안타까웠습니다.  



    읽어 나가기 힘든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나간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펠 박사는 '밀실 강의'를 합니다. 밀실이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밀실을 만들 수 있는 유형들에 대해 69가지가 있으며 이것들은 순서대로 하나둘 이야기해 나갑니다. 결국 10개도 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럼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고 하면서 마무리를 지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설명은 추리소설 매니아들이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해야할 지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런 밀실 강의를 한다면 요즘의 작품들에 비교되어 진부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과 노력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세 개의 관>고전 명작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물 이야기를 하자면, 명탐정 기디온 펠 박사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모와 말투가 아니라 사건을 다루는 미지근함이랄까, 꼭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긴다이치 코스케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얻어서 부분적으로 해결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경감에게나 사건을 의뢰한 의뢰자와 상의를 하고 정보를 교류해야 할 것인데, 꼭 끝까지 미지근하고 굼뜨게 움직이다가 극적인 효과를 한껏 받은 후에서야 "에헴,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하며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왜 죽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다 죽이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없는 회상에 잠기며 멋있는 척 하는 것일까요. 사건의 진장을 밝힌 것이 아니라 이것은 그냥 단어 그대로 '진상' 이었습니다.



    내가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네, 해드리. 난 또 진상을 알아내고 말았어. (338쪽) 



    정말 신비로운 마법의 힘으로 미스터리한 현상이 이루어진 것인지. 과연 어떤 트릭을 사용하여 이런 판타스틱한 연출을 만들어 낸 것인지. 마술의 신비함은 그런 트릭이 가능하게 한 해답을 알기 전까지는 무한한 기대감에 흥분하여 절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술의 트릭을 알게 된 다음에는 겨우 그런 것이었냐는 듯이 내팽게치고 별 것 아니었다는 식으로 무시하기에 이릅니다. 불과 몇초 전까지만 해도 마술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애원하던 관객이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오로크라는 곡예사가 이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혹시 밀실의 트릭과 본격 추리소설의 결과를 알고 난 뒤에 이를 얘들 장난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존 딕슨 카의 말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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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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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명의 미스터리 동호회 대학생들이 외딴 섬에 위치한 십각형의 모습을 띈 건물, 십각관으로 여행을 갑니다. 그 섬은 반년전에 기이한 살인 방화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십각관은 그 살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한 인물이 특별히 설계해서 건축한 건물입니다. 미스터리 체험에 들떠 있던 동호회 학생들은 하룻밤을 보낸 뒤, 소설에서만 봐왔던 사건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공포에 떨며 나름의 추리를 펼쳐봅니다. 그 일곱명의 동호회 학생의 이름은 엘러리 퀸, 존 딕슨 카, 가스통 르루, 에드가 앨런 포, 아가사 크리스티, 바로네스 오르치, 반 다인 입니다.


 


    <십각관의 살인>에 등장하는 이 일곱명의 인물들은 모두 유명 추리작가의 이름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동호회 전통으로 추리작가들의 이름을 별명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일본 추리소설의 신본격의 장을 연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격 고전 추리소설 대가들의 이름을 빌린 설정이 본격 추리소설의 부활을 염원하는 작가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한때 일본을 풍미했던 사회파 식의 리얼리즘 추리소설은 고리타분하다는 비판도 서스럼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그의 <십각관의 살인>은 고전 추리 소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나에게 있어 추리소설이란 단지 지적인 놀이의 하니일 뿐이야. 소설이라는 형식을 사용한 독자 대 명탐정, 독자 대 작가의 자극적인 논리 게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 미스터리에 걸맞는 것은 명탐정, 대저택, 괴이한 사람들, 피비린내 나는 참극, 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 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요컨대 그 세계 속에서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15쪽)



    외딴 섬에 기이한 형태의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한명씩 죽어가는 친구들. 범인은 외부의 인물일까, 내부의 인물일까. 어디서 많이 본듯한 플롯입니다. 추리소설하면 빼 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대작, 아가사 크리스티<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하나 둘씩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들과 그 아래에 쓰여진 이상한 시. 그리고 그 시가 예언이 되어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이야기. <십각관의 살인>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호회 대학생들 모두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이미 읽었고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각관의 살인극이 책의 내용과 비슷했다면 그들도 당연히 살인극을 눈치채고 범인에게 당하지 않았을 테죠. 



    간단하다고 비밀을 밝혀도 되는 건 아니야. 맨 처음에 보여 줬던 것은 어린애도 알 수 있는 간단한 트릭이지만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미스터리를 가장하는 연출력이지. (50쪽)



    그러한 연출력이 필요했던 이유, 그것이 범인이 바라던 바였을까요. <십각관의 살인>을 다 읽은 후에 범인의 행동을 다시 따라가보며 읽어봤습니다. 이런 살인극이 가능할 것이라고 범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더군요. 그러면서 우연까지 철저하게 대비한 준비성과 때에 따른 임기응변으로 훌륭한 연출극을 선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사건에 심리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하고 있고, 그런 점까지를 모두 예상했다, 라는 이야기라 범죄 과정을 납득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으니 두 작품을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네요.



    정말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만한 작품입니다. 특히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그 한줄, 모두를 죽여버리는 그 한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전율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소설 팬으로서 느낄수 밖에 없었던 몇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로...



    '피해자'가 된다는 의미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서 였을까. 또는 미리 '형(刑)'의 선고를 해두지 않으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묘한 의무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보다 다른 차원의 통렬한 풍자를 담을 생각이었을까……? (324쪽)



    추리 소설은 무대가 중요합니다. 눈내리는 산장, 외딴 섬,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배경과 밀실의 살인 사건. 십각관은 이름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무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전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트릭과 기이하고 공포스런 오묘한 분위기의 느낌을 좋아하는 추리소설 팬들에게 추천합니다. 마지막까지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심경과 찝찝한 여운 때문에 마치 범인과 일심동체가 된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서평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가, 이렇게 끝내야 하는가, 라는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글을 보내는 것 마저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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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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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문학의 아버지라고 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합니다. 그 외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들 역시 입을 모아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런 마쓰모토 세이초가 생각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은 어떤 모습의 소설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물리적 트릭이 아닌 심리적 작업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작가가 만들어 낸 특이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정을 찾으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을 등장시킨다. 또 누구나 경험할 만하고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추구" 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제로의 초점>을 읽어 보았습니다.

 


 


    낯선 땅, 사실이 그랬다. 남편의 발자취가 남은 곳이지만 삭막하기만 하고 감정이 스며들지 않았다. 신혼여행 때 먼발치에서 보았던 북국의 하늘 아래, 그 땅에 대한 동경은 참으로 덧없는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우하라 겐이치와 결혼했다는 것조차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78쪽)



    데이코는 중매를 통해 우하라 겐이치를 소개받고 결혼을 합니다. 중매 결혼이라 신랑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차차 알게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흐리고 가늘게 뜬 멍해보이는 그의 두 눈과 그녀에게 가끔씩 했던 묘한 말들로 인해 복잡한 과거를 가진 남자라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아차린 데이코, 하지만 별탈없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도쿄의 신혼집에 도착하였고, 겐이치는 예전에 일했던 가나자와에 업무 인계를 위해 곧바로 그녀 곁을 떠납니다. 그런데 12일에 오겠다는 엽서 한장을 남긴채, 그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연락도 없습니다. 



    홀로 이런 곳에 서서 북쪽 바다를 바라보는 자신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사라진 남편을 찾아 헤매는 가련한 아내였다. 의지할 데 없는 젊은 아내가 여기에 있다. (135쪽)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실종을 경험한 데이코, 그런 데이코에게 겐이치는 남편이지만 타인과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한 남자입니다. 남편이라고 부르기에도 이상할만치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북국의 노도 반도를 헤매입니다. 마치 원래 없었던 존재였던 유령을 쫒듯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사건은 점점 커져서 실종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살인 사건으로 발전합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점점 미스터리해집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말했듯이 이 소설의 처음은 평범한 일들의 반복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남편과 관련된 미스터리한 사건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을 향해갈 땐 그것이 한 사회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큰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가 말하는 소설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섬세한 전개와 구성이 돋보인 소설이었습니다.



    1959년 소설이라 오래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영화 한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보니, 역사의 유물이 된 각종 소품들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들, 당시 일본 사회의 풍경들까지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보였습니다. 대단했습니다. 특히 북국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멋있다'가 아니라 '무겁다'입니다. 곧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 파도를 따라서 올라오는 거센 바람, 그 때문에 살을 애는 듯한 추위와 차가워져 있는 마음, 그리고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검은 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풍경의 장소를 등장인물을 따라서 수없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추위 때문에 얼굴이 다 터서 하얗게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데이코는 홀로 그곳에 내렸다. 그녀는 흩날리는 눈 속을 뚫고 절벽으로 향했다. 메마른 풀들이 깔렸다. 구름도 낮다. 언젠가 이곳에 왔을 때는 멀리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발이 비쳐 그 부분만 바다가 반짝였었다. 그러나 오늘은 하늘이 온통 검은 구름으로 덮였다. 햇살도 없고 구름도 무겁게 내려 깔렸다. (281쪽)



    작년 즈음에 본 다카노 가즈아키<13계단>이 생각났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한 쪽은 바다, 반대 쪽은 험준한 산이었던 배경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로의 초점>과 정 반대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계단>은 한여름 태풍이 불어오는 날의 해안이 주 배경이었고, 시작부터 법과 제도에 대한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그림인 <제로의 초점>은, 겨울의 눈내리는 날들, 그리고 일상의 시작으로 잔잔한 파장이 일다가 그 파장이 점점 커지면서 사회 문제가 두각되는 이야기입니다.



    패전으로 상처 입은 일본의 여성이 1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했음을 말해준다.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오래된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394쪽)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회 문제라는 것은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웠던 일본 여성들에 대한 애매한 위치와 그 때문에 겪게되는 아픔을 말합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본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길을 걷는 일본 여성들, 그런데 어둠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아픔 때문에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져야만 했던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본격 미스터리를 더 좋아합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일본 사회에 국한된 내용을 간혹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공감하기가 힘든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면이 약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역시 대단한 소설이구나를 느꼈습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를 말이지요. 문득 이 소설의 제목, '제로의 초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데이코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가면서 혼자서 사건을 추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준경 속의 범인 X를 찾기 위해 초점을 마춰가다가 결국 시야가 하나로 좁혀집니다. 하지만 망망해대에서 바닷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뜬 가늘고 멍한 눈빛을 하며, 사라져가는 과녁이 하나의 점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과 심정이 제로의 초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아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제로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테고, 사회 문제 역시 제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나간 일을 재조명하려는 작가의 초점있는 시선이 없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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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클로즈드 써클' 추리소설의 로망이라고 일컫는 환상적인 밀실 무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십각관의 살인>과 같은 바닷가 외딴 섬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눈사태로 길이 막혀버린 폭설 속의 산장과 같은 밀폐된 공간을 말하는데요, 자연 상태의 커다란 밀실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꿈과 같은 밀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격 추리소설에서는 단골 손님처럼 자주 등장하는 배경으로 매우 자주 사용되고 있어서 단골 중에서도 VVIP 정도로 취급됩니다. 이 소설의 작가 구라치 준도 자신의 작품을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라 본격 미스터리의 패러디다'라고 하고 있으니, 본격 추리소설의 아이템은 돌고 도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바로 아래에서 길이 막혔습니다. 산비탈에서 눈이 무너져서요. 바람 때문에 그렇게 됐겠지요. 가벼운 눈사태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지나갈 수 없습니다. 눈 속에 차가 처박혀서 하마터면 오도 가도 못할 뻔했습니다. (192쪽)



    그런데 구라치 준<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돌고 도는 클로즈드 써클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맛과 색깔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제목처럼 몇명의 인물들이 살인사건이 일어날 무대가 되는 산장으로 갔다가 고립되고, 그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또 그 속에서 추리를 펼쳐나가며 용의자를 좁혀나가고, 결국엔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 한 줄로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이렇게 요약을 했지만, 이건 이 소설이 가진 표면적인 부분을 이야기한 것 뿐이지, 이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소설로 완성시켜내는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이니, 그 능력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면 될 것입니다. 그래도 간단하게 조금만 알려 드리자면, 방금 제가 간단하게 요약했던 이야기가 무려 45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이어집니다. 구라치 준 특유의 '유머'와 함께 말이죠. 특히 각 장이 시작하려고 하는 부분에서 미리 독자에게 넌지시 스포일러를 던지는 부분들-사실은 스포도 아닙니다-이 있습니다. 그런 것쯤은 독자가 다 알아서 눈치 챌테니까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줄래?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모습의 간단한 코멘트를 달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그것이 싫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소설을 '직구로 승부하는 추리소설이다'라는 비유를 많이 하던데, 맞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식으로 직구를 던지겠다고 독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풀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범인이 밣혀지는 순간까지, 어쩌면 이렇게 본격 미스터리 패러디를 강행하는 '재미'로 똘똘 뭉쳐져 있을 수 있는지,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찬이 시작되자 화제가 UFO까지 뻗어나가면서 이야기꽃이 핀다.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루해하지 말 것. 중요한 복선 몇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93쪽)


    시체가 발견된다. 살해 방법은 눈으로 확인한 그대로이고 부자연스러운 트릭 따위는 사용되지 않았다. (163쪽)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다. 나중에 나올 피해자와 범인 역시 이 가운데 있다. ○○는 종반의 추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75쪽)



    이런 블랙코미디식의 유머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도 물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쓰려면 이것만 지키면 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온 거의 모든 규칙들을 철저하게 따른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등장인물들은 매우 개성있는 인물이어야 추리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는데, 특히 남자는 잘 생긴 꽃미남 스타일이어야하고, 여자는 은근히 육감적인 매력을 뽐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늬앙스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은근히 잘 살리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의 화자의 입장이 되어서 화자가 품고 있는 풋풋한 마음과 혼잣말들까지 중얼거리게 했던, 묘한 맛과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억지 웃음이 아니라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자연스런 웃음이었습니다.



    살인과 인스턴트 라면. 이 조합도 어쩐지 조금 우스꽝스럽기는 하다. 서민적인 살인 현장. 사회파 추리소설인 셈이군. (217쪽)



 

크롱의 혼자놀기 성분표입니다. 재미로 봐주세요.



    그러면 이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추리의 논리성은 어떠했는가,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겠지만 범인이 아니고서야 마지막에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독자가 범인의 살인 동기까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건 이 소설 안에서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살인 동기는 맞출 수 없더라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독자가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명쾌한 맛이 존재합니다. 여기서는 소거법이라는 방법으로 등장인물들 중에서 범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을 지워나가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처럼 탐정 역을 하는 인물이 마지막에 무려 2페이지가 넘어가는 일장 연설을 통해서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똘망똘망한 모습으로 또박또박 논리 정연하게 사건을 정리하고 말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도 독자가 범인을 추론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같은 것을 심어뒀으니, 독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범인을 맞춰보는데 주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선 정정당당한 승부와 함께 독자를 배려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씨까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추론에 구멍은 없을 겁니다. 다만 어떤 조건의 대전제가 잘못됐다면 이야기는 별개지요. 논리적으로 올바르게 추론을 거듭한 결과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조건 중에 어느 것의 전제가 근본부터 틀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릇된 결론이 도출된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제가 사실과 다를까요? (418쪽)



    범인이 드러나기 일보 직전에는 구라치 준이 말했던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패러디가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극적인, 이 장면 역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맺어지는 엔딩씬까지 만화 같은 형국을 보이고 있는데요,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나오는 당연한 끝맺음이겠지만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나오는 극적인 전개는 아마도 '웃음'과 '재미'를 위한 끊임없는 패러디에서 온 당연한 전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보다 더 본격추리소설다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그런 극에서 추리소설에 대한 향수, 그리고 꿈, 낭만. 뭐, 이런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이 될까요.



    '교훈이 없는 소설이다', 주로 본격추리소설에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훈이 없는 책이라도 그 책을 봤던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이드는 소설 몇 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도 그 소설 중에 하나입니다. 낭만과 여유, 모험, 세상과 떨어져서 모든 것을 잊고 잠시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설말입니다. 이 소설을 읽었던 시간은 저에게 눈내리는 산장같은 밀실에 몸을 내던져 맡길 수 있는 그런 꿈, 그리고 밀실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이 내려오는 꿈과 같은 산장에서 정말로 제 자신이 사흘간의 대모험을 즐겼던 것만 같은 오롯한 감정들이 아직도 이 두 손에 남아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볼 때, 저는 그 멀고 힘들었던 여행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빛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염원을 품고서 우리 인간을 향해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 한결같은 마음, 순진한 마음은 제 마음을 감동으로 떨리게 만듭니다. 여러분도 오늘 밤 만약 날씨가 좋으면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별은 분명히 여러분의 마음에도 말을 걸어줄 테지요. 그러면 잠시만 별의 말에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청정하고 평온한 시간을 맞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청아한 보석과도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자, 섭섭하지만 시간이 다 되었네요.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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