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90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의문의 사나이로부터 협박을 받아온 그리모 교수, 그가 자신의 방에서 수상한 복장을 한 한 남자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수상한 남자는 마술과 같이 홀연히 사라지면서 눈이 내렸던 그 저택은 거대한 하나의 밀실을 형성합니다. 또 그날 밤 근처 길거리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다른 한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주위에 어떤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상태라 사방이 개방된 거대한 밀실에서 의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두 사건 모두 다수의 목격자들이 혼란스러운 증언을 하고 있고, 그 증언을 바탕으로 명탐정 기디온 펠 박사는 마술같은 수수께끼를 풀어 나갑니다.



    - 우리 세 사람은 생매장된 적이 있네.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사람뿐이었지.

    - 자네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지?

    - 탈출한 건 내가 아니야. 알겠나? 난 탈출하지 못한 두 사람 중의 하나였어. (26쪽)


 


    추리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혹시나 놓쳐버린 명작이 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찰라에 주위에서 많은 추천을 해준 작가가 바로 본격 추리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다며 입을 모아 칭찬하던 작품이 이 <세 개의 관>이었습니다. <세 개의 관>은 고전 추리소설 중에서도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이 시절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분명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작품이고 수수께끼같은 트릭을 푸는 맛도 충분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우선,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읽어 내려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읽어 내려가다가 지금 누가 대화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일장연설을 하는 지루한 대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식이라 마치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신문지 상의 사회면에서 '증인의 말을 인용하여' 라는 기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고전 작품에서는 인상깊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소소한 재미들이 존재했지만 <세 개의 관>에서 명탐정으로 활약하는 기디온 펠 박사는 그런 작업이 전혀 없이 "음, 그렇군." 하며 혼자말만 하고는 "자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해볼까." 하며, 말 그래도 마술과 같이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럴 때는 정말 셜록 홈즈에르큘 포와로가 그리울 지경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것을 싫어하는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법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오. 그들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사용하여 비난의 낙인을 찍어버리지요. 그리고 그런 편견에 따라,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나쁘다'는 말처럼 인식되면서 자기들도 그렇게 믿게 되고, 경박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오. (248쪽)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입맛에 맞지 않은 작품에 대해 비판하는 독자들에게 존 딕슨 카는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법칙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의 작품에 대해 일개 추리소설 팬 따위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입장은 아니어서 욱하던 심정을 수그러트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존 딕슨 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작품이 번역될 것을 예상했을까요. 추리소설 팬으로서 안타까웠습니다.  



    읽어 나가기 힘든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나간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펠 박사는 '밀실 강의'를 합니다. 밀실이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밀실을 만들 수 있는 유형들에 대해 69가지가 있으며 이것들은 순서대로 하나둘 이야기해 나갑니다. 결국 10개도 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럼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고 하면서 마무리를 지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설명은 추리소설 매니아들이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해야할 지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런 밀실 강의를 한다면 요즘의 작품들에 비교되어 진부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과 노력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세 개의 관>고전 명작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물 이야기를 하자면, 명탐정 기디온 펠 박사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모와 말투가 아니라 사건을 다루는 미지근함이랄까, 꼭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긴다이치 코스케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얻어서 부분적으로 해결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경감에게나 사건을 의뢰한 의뢰자와 상의를 하고 정보를 교류해야 할 것인데, 꼭 끝까지 미지근하고 굼뜨게 움직이다가 극적인 효과를 한껏 받은 후에서야 "에헴,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하며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왜 죽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다 죽이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없는 회상에 잠기며 멋있는 척 하는 것일까요. 사건의 진장을 밝힌 것이 아니라 이것은 그냥 단어 그대로 '진상' 이었습니다.



    내가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네, 해드리. 난 또 진상을 알아내고 말았어. (338쪽) 



    정말 신비로운 마법의 힘으로 미스터리한 현상이 이루어진 것인지. 과연 어떤 트릭을 사용하여 이런 판타스틱한 연출을 만들어 낸 것인지. 마술의 신비함은 그런 트릭이 가능하게 한 해답을 알기 전까지는 무한한 기대감에 흥분하여 절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술의 트릭을 알게 된 다음에는 겨우 그런 것이었냐는 듯이 내팽게치고 별 것 아니었다는 식으로 무시하기에 이릅니다. 불과 몇초 전까지만 해도 마술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애원하던 관객이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오로크라는 곡예사가 이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혹시 밀실의 트릭과 본격 추리소설의 결과를 알고 난 뒤에 이를 얘들 장난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존 딕슨 카의 말이 아니었을까요.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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