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핀 댄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2 링컨 라임 시리즈 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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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마비 천재 범죄학자 링컨 라임의 두번째 시리즈. 소설 제목 <코핀 댄서>와 동명인 코핀 댄서라는 별명을 가진 암살자로 부터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 두뇌싸움을 펼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긴 이야기지만 분량에 비해 빠른 진행으로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런 기분을 아쉽다고 해야하는지 실망이었다고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A는 B였으니깐 C는 D이다. 뭐, 이런식의 추리였다고 할까요. A부터 D까지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데 그럴싸하게 어려운 문제인 것 처럼 포장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영문으로 된 추리물 혹은 스릴러의 소설들 대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링컨 라임의 외모에 대해 묘사를 할 때 톰 크루즈와 매우 닮았다, 라는 설명에서 아하 영화 시나리오가 되었으면 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긴 작품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가 흘러가는 느낌이 007 시리즈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링컨 라임은 전신마비 환자로 액션을 소화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나름의 액션과 현장에서 범인과 벌이는 격렬한 장면은 링컨 라임의 동료이자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가 대신하는 모양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유를 알기도 전에 이미 빠른 속도감으로 독자를 자극하다가, 갑자기 멜로풍의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오묘한 러브라인이 형성되고, 다시 어디선가에서 걸려온 전화벨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급반전 되면서, 빠른 속도로 제트보트를 타고 범인을 쫒고 있는 느낌. 딱 007 시리즈 영화네요. 취향차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몰입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아아, 하드보일드물이여. 시간 죽이기 소설이었다고 할까요. 그래도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이런 말을 했어. 힘든 일을 꼭 해야만 할 때, 그럴 때는 힘든 부분을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나의 요건으로 생각하라고. 그냥 염두에 두어야 하는 대상으로. 내 눈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지. '문제란 없어. 그냥 하나의 요건일 뿐이지.' 난 그 말을 항상 기억하려고 해.



    물론, 암살범이 자기 합리화하는 소리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얼마전에 노르웨이의 브레이빅이라는 살인마가 100여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미친 살인 행각이 있었습니다. 실제 세상의 이야기가 더 소설같이 느껴지는데, 코핀댄서라고 하는 이정도의 살인마는 어디 살인마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을까요. 자극이 필요하다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것이 아니라 뉴스를 보면 될 것을.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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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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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2탄이라고 불리우는 책입니다. 왜 1탄인 <졸업> 부터 읽지 않고 2탄인 <잠자는 숲>을 구입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마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마구 읽어 나가고, 팬이 되면서 충동구매한 책중에 한권이지 싶습니다.



셜록 홈즈, 탐정 포와로, 소년탐정 김전일명탐정 코난까지 시리즈물로 등장하는 주인공 탐정(혹은 형사)은 개성이 뚜렷하고, 유머도 있으며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관찰력으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그런점들이 주인공 인물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 됩니다만, 가가 교이치로 형사개성있는 인물이라고 하기에 조금 애매한 점이 있어서 살짝 아쉬웠습니다(어쩌면 2편 이외의 작품에서는 개성이 뚜렷한 인물로 나올지도). 그래도 인간적인 면과 부드러운 느낌의 여느 다른 형사와 다른, 도덕 선생님 같은 느낌의 캐릭터라는 점에서 하드보일드물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형사들에 실증이 막 나려고 하는 찰라에, 한줄기 단비와 같은 신선함과 촉촉함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촉촉함은 흔히 추리소설에서 볼 수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접목되어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네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추리소설이지만 사랑 이야기를 통한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다시 읽어 보게끔 한다는 책 표지의 설명이 있습니다만, 역시 추리소설은 범인을 알게되면 맥이 풀리기 마련이죠. 다시 또 읽어보기에는 글쎄요. 하지만 한번 읽어 보기에는 흥미 진진합니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내내 "아아, 제발 미오만는 안돼."를 외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등장인물 속의 미오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사랑스럽던지, 츤츤한 것은 아니지만 데레데레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백야행><용의자 X의 헌신>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처럼 말이죠. 결국 미오는, 결국에는 음. 아악! 나머지 가가 시리즈도 봐야할 것 같습니다.



발레단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기 때문에 발레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아는 누나가 예전에 발레를 배워서 몇가지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그때의 지식들이 개안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예전에 본 <블랙 스완>이란 영화에서, 도도해 보이는 발레리나의 호수 위에서 보여지는 백조의 모습과는 반대로,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하는 호수 아래 백조의 모습,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자극적인 색채와 영상들이 생각나면서 소설을 읽는데 한층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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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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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구치 마사야<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워킹데드>라는,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본 미드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소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 저런식의 좀비들이 대거 등장하는 호러물은 아니구요,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추리 소설입니다. 1998'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과거 10년간 베스트20 2위1998~2008년 베스트 오브 베스트 2위에 빛나는 타이틀을 거머쥘만큼 대단한 작품이군요. 지금까지 읽어왔던 일본 추리 소설과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거든요. 담배냄새 쩌러서 "어이~ 어이~"거리는 형사가 등장하는 일본 특유의 하드보일드물도 아니거니와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의 명탐정류 추리소설도 아닙니다. 배경자체가 미국, 뉴잉글랜드의 툼스빌이라는 곳이며, 등장인물 중에서 완전한(?) 일본 사람은 단 한명 등장할 정도이니, 일본스럽지만 일본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보이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이야기하고 있다니, 이런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든다는 것 자체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시체가 줄줄이 되살아나는 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어째서 범인은 살인이라는 부질없는 짓을 했을까? 우리는 이 점을 먼저 고려해야  했습니다.

 

    시체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귀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살인 사건이 생긴 범죄 현장에 형사들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죽어서 시체가 되어있던 피해자가 살아나고, 형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은 것 같다며 설명한 뒤, 시체는 절규하며 건물을 뛰쳐나갑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장면입니까. 이런 판국에 추리는 무슨 놈의 추리란 말입니까. 그리고 살인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 짓입니까. 


 

텔레비전에서 매일매일 다른 대량 소비재와 똑같은 선반에 진열한 허구화된 죽음을 보여준다면 반대로 감성이 에민한 사람은 방어 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즉 그들은 마비되고 마는게야. 그렇게 현대인들은 매일같이 죽음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게 되지.

 

 

책에서 보여주는 죽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음이라는 것과 다른, 영혼의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살인자가 품고 있는 살인의 의도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체들이 되살아나는 상황 속에서 진정한 살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니 "아, 이 책은 추리 소설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말한 '살아있는 시체'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는 여러 단계들이 있어서 명확하게 경계선을 긋기가 어려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상적인 것이지....

죽음이란 그런 식으로 애매하고 유동적인 것이지. 산 자들이 자기 편의대로 단정짓는 경우도 있어. 어느 이름 높은 과학자가 말했듯이 그것은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구나. 로미오의 마음속에서 줄리엣이 죽은 순간이, 생물학적으로야 어떻든 줄리엣이 죽은 순간이지. 

 

    이런식의 구체적인 조사와 해박한 지식이 난무하는 소설은 다카노 가즈아키<13계단>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성서의 기록, 철학적인 성찰과 미국식 장례 풍습과 장례 기술, 공동묘지 산업 등,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로 인해 이 소설을 쓰기위해 작가 야마구치 마사야가 죽음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이 너무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종일관 썩소를 자아나게 했던 냉소적인 등장인물들의 태도와 쉴새없이 이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 때문에 으스스한 공동묘지가 배경이었지만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점은 가이도 다케루<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과 많이 닮았습니다. 도입부에 이어지는 대가족의 가계도에 대한 설명과 등장인물의 개성을 표현하는 장면은 리 퀸의 작품을 보는 듯했고, 완벽히 논리적인 추리의 트릭은 존 딕슨카의 작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오랜만에 "대단한" 추리 소설을 읽었습니다.


 

신은 없다.

시체 부활은 누구의 뜻도 아닌 단순한 현상 아닌가.

시체 부활뿐만 아니라 인간의 통상적인 삶이나 죽음 역시 거기서 완벽한 이유나 의미, 누군가의 뜻을 발견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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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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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타노 쇼고는 해피엔딩이 무척이나 싫은가 봅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그의 작품들은 (많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새드엔딩으로 끝이 났습니다. 아니, 새드엔딩이라는 단어 보다는 안티해피엔딩이라고 해야겠네요.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다수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모아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읽어갔습니다. 계속해서 우울한 이야기의 끝을 맛보니, 나중에는 "헐.. 지금 하는 이야기는 또 어떻게 끝내려고 하는 이야기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번 이야기는 어떤 안티해피엔딩으로 끝내려 할까를 마춰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기게 했습니다. 그만큼 반복되는 안티해피엔딩의 막장을 보여줬습니다.


 

무라노의 매일은 그것의 반복이었다.

8월 보름달이 뜬 밤에 오두막이 헤집어진 것을 제외하면 변화 없는 시간 속을 떠돌고 있었다.

다만, 그날그날 일어날 때의 느낌이 다르듯이, 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다가 사라지듯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는 다양한 파도가 발생한다. 

 

    하지만 다 비슷하고 같은 식의 결말로 이끌지는 않았습니다. 반복되고 있지만 다양한 파도가 발생한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처음부터 결국 어떠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발목을 잡을지 알게 해준 이야기도 있는 반면에, 완전히 말도 안되는 막장의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사건의 실마리가 풀림과 동시에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 막장의 결말로 이르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우울하고 씁쓸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보는 내도록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단편집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던 이야기 보따리같기도한 책이었습니다.


 

사고사와 자살은 뭐가 다를까.

죽음이란 결과는 똑같으니까 내 소원은 성취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어째서 마음이 이리도 무거운 걸까.

나는 나라는 인간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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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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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1969)는 1890년대 미국 서부에서 실제로 있었던 두 강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은행털이범들의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강도의 편에서 함께 울고 웃기를 반복합니다. 재기넘치는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유머스런 장면에서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고, 총을 쏴가며 말을 타고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스릴넘치는 액션 영화이기도 하며, 한 여인과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통해 로맨스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참 좋을 때였지'라는 뜬금없는 로망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부 영화입니다. 뚜렷한 대상이 없지만 그저 그리운 마음이 생기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밀실을 향해 쏴라>는 이 영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영화와 비슷한 이름의 제목을 보자마자 밀실에 대한 뜬금없는 로망이 느껴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무척 대단한 작명 센스를 발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밀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한 편의 영화같은 모험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소설은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작풍에 붙여놓은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격도 본격이지만 유머라는 부분을 고딕체로 강조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시덕거리는 개그, 그리고 썰렁하지만 피식 웃게 만드는 개그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배를 잡고 동동 구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책을 보며 배시시 쪼개는 저를 보고 옆사람이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면 이해가 빠른 적절한 설명이 될까요. 아님 말구요, 책을 직접 사서봐야 알지, 설마 이 글만 찍 읽고, 나는 책 한 권을 다봤다고 여기며 배불러 할 생각들인 것은 아니겠지요, 라고 말하는 이런 식의 개그와 재미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명탐정'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명탐정의 제자'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아무래도 지금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라도 이 세상에 명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명탐정의 제자'인 자신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5쪽)



    전편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와 연작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앞의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밀실을 향해 쏴라>를 보는데 크게 무리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두 이야기를 비교해서 보면 전작에 스쳐지나간 반가운 인물의 재등장을 발견하는 재미와 인물들 간의 변화된 등장 빈도와 비중있는 연기력 같은 재미를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발견의 재미는 별책부록 정도로 여기면 되겠습니다. 단지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그런 유머가 아니라, 그냥 이 책 한 권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밖에도 웃을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우카이 모리오라는 탐정을 중심으로 그의 조수와 두 형사, 그리고 대저택에 있었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밀실의 공간이 바로 이 대저택 옆에 위치한 해안가 절벽 위의 별채가 됩니다. 흔히 아는 완벽한 밀실의 공간은 아니지만 이 별채로 가는 길이 단 하나 뿐이고, 그 길을 사건과 관계된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밀실이 성립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처럼 총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디서 조달해내는지 끊임없이 쏴대는 영화 속 총질 장면이 아니라 추리소설 속 밀실의 정적을 깨는 한밤중의 총성이라 더욱 운치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권총과 관련된 알리바이 조사와 풀이가 이색적이고 재미있습니다. 마치 명탐정 코난이 나비넥타이를 입에 가져다 댄 순간의 맹쾌함처럼 말이죠.



    그야 앞뒤가 맞는 이야기이기는 해. 하지만 앞뒤가 너무 딱딱 들어맞는단 말이야. 꼭 누군가가 미리 준비해놓고 차근차근 보여주는 것 같잖아. (182쪽)



    도대체 이 탐정은 왜 이렇게 허둥거리는 걸까? 불가능 범죄가 어쩌구 하던데 그게 무슨 뜻일까? 불가능 범죄라면 밀실이나 완벽한 알리바이나 사람이 없어진다거나 그런 유의 범죄를 말하는데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소리인가? 말도 안 돼……. (228쪽)

 


    사실은 지금까지 권총이 유출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되었다면 앞으로는 권총 한 자루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현명한 독자 여러분은 결코 '리얼리티가 없다.'라는 생뚱맞은 말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25쪽)





    사건에 사용한 트릭의 풀이는 크게 어려운 편이 아닙니다. 탐정 우카이가 폼을 잡으며 트릭을 풀이하기 전에 아마 많은 독자들이 미리 예상하고 범인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용의선 상에 있었던 인물이 몇 안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렵게 밀실을 만들어 놓고 생뚱맞게 사실은 피해자가 자살한 것이다, 혹은 범인은 풍선같은 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 도망갔다는 식으로, 사건의 트릭까지 유머로 승화시키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범인이 만들어 낸 트릭은, 위험요소가 제법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트릭이고,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기타 세부적인 부분을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밀실이라고 해서 정말로 좌물쇠나 걸쇠가 잔뜩 걸린 방이 나와봐야 온갖 소설과 미디어로 눈이 높아진 독자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 하지만 그래도 본격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가 없게 마련이다. 그런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범인들은 살인현장에 온갖 자물쇠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본격 미스터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이렇듯 열성적이고 일편단심인 범인들의 끝없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문 잠그는 데 힘쓸 틈이 있으면 빨리빨리 도망칠 생각이나 하지.'라고 정곡을 찌르르는 말을 해서 그 사람들의 의욕을 꺾어놓으면 안 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문을 잠갔다면 분명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배려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절주절. (255쪽)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 치고는 무척 유쾌하고 명랑한 이야기입니다. 거의 모든 장마다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를 만들어두고 일관되게 과장된 유쾌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의 서술 능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독자를 묘하게 자신의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있는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소설을 읽은 열혈한 광팬들은 소설 속에 나왔던 보험증, 권총, 르노자동차, 사전, 합판조각 등등의 아이템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입니다. 최근에 봤던 가이도 다케루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우타노 쇼고 <시체를 사는 남자>, 구라치 준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과 급을 같이하는 일본식 유머가 돋보인 추리소설이었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집어든 소설인데 꽤 괜찮게 읽었습니다. 섬세하게 조각해놓은 정교한 퍼즐의 트릭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온갖 더러운 사회문제를 끄집어내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바랬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기대가 적었으니 크게 득템한 기분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밀실을 향해 쏴라>를 보는 시간들이 무척 즐거웠고, 책을 다 보고 덮을 때는 아쉽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계속 사건을 쫓아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두손모아 기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랬습니다. 이 소설 하나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팬이 되었습니다. 밀실살인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머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주었고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세요. 히가시가와 도쿠야 님, 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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