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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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받은 소설은 달라도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재미가 있습니다. '요고요고,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시나'하는 느낌으로 첫 페이지를 잠깐 열어 몇 문장들을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단번에 다 읽어버리도록 사람을 잡아 가두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은 심사위원들이 추구하는 어떤 심사의 방향 때문인지, 분위기가 다들 몽롱한 판타지 영화 속의 오프닝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안개가 잔득 껴서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지만, 분명 저기 저 안개 너머에서는 나를 놀래킬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영화의 거대한 서사시적 신호탄을 만들어 내겠지, 하는 당연한 기대감 말입니다. 이런 오묘한 맛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 '이상한'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집을 보고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들, 그러니까 수상 작품들에 담긴 깊은 뜻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작품집을 읽으며 제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답답함과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느낄 수 없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허탈함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존경하지만 한편으로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오들오들 떨면서 읽었습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의 흡인력은 정말 최고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짧은 글들이라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잡아 놓는 스킬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은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읽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 처음 몇 문장만 보고 내팽개쳐졌을 글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눈을 계속 붙잡고 있었고, 최종심까지 남아 있었다 라는 저력, 그건 역시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수상작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였을 테구요. 아무튼, 그런 치열한 전쟁을 치뤄 최종까지 남겨진 글들이라니. 역시 살아남은 것들은 존재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상작과 수상 소감, 대표작 등,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려있는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었습니다. 그들은 높고 멀리 날고 있어서 우리의 눈에는 하나의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한마리 매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먹잇감을 찾아냈고,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끝까지 추적해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작품을 낚아 챈 후 갈기갈기 찟어서 해체시켜 놓았습니다. 과연 내가 본 글이, 그들이 봤던 글과 같은 글이었는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평가와 감상은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같은 글 속에서 굉장한 의미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정작 작가 스스로도 과연 그런 의도를 갖고 의미를 부여해 글을 썼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들은 작가는 스스로가 「옥수수와 나」에 등장하는 편집장처럼,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읽었고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헷갈려하며 맞다맞다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그들의 분석과 해설이 오히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압도하고 있는 굉장함을 보였고, 저는 그런 광경을 보며 그들에게 압도당했습니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굉장한 작품들과 그것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사이에 끼어있던 저는, 그자리에서 압사당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낭비하는 것은 바로 섹스라는 관념이야. '나는 섹스를 한다'라는 무거운 관념을, 덤프트럭이 모래를 쏟아놓듯 훌훌 던져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섹스 파트너라는 이름의 상자를 공유하는 거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섹스 파트너라고 부르기로 정한 거야. 그리고 실은 그 뚜껑을 열지 않아. 우리가 뚜껑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안전해. (22쪽, 옥수수와 나)



    아, 그럼요. 원래 쓰려던 것을 그대로 쓰는 것. 그건 대중소설, 장르소설이죠. 본래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비로소 도달하는 것. 그게 문학이죠. 원래 그런 거예요. (57쪽, 옥수수와 나)



    너의 그 무거운 관념이 과연 가볍고 빠른 총알을 이길 수 있을까? (59쪽, 옥수수와 나)



    그렇다면 작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기 보다 글을 써야한다고 믿는(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작가는 글을 쓴다는 행위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무를 짊어진 존재를 일컫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하나의 직업이기 이전에 일종의 신분이며, 스스로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한 이 신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103쪽,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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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제국
외르겐 브레케 지음, 손화수 옮김 / 뿔(웅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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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소설은 영미소설과 다른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물론 번역에서 오는 어감 차이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루고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둔탁하고 침침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덜 예술적이다는 말은 아니고, 영미소설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느낌이 난다면, 유럽소설에서는 제3세계의 예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납니다. 비교적 덜 문학적이라는 스릴러 장르소설에서도 말입니다. 그런 독특한 느낌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요. 최근들어 국내에서 유럽권 스릴러 소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독특하게 북유럽 노르웨이의 스릴러 장르소설, 『우아한 제국』을 읽어 보았습니다.



 


 


    『우아한 제국』외르겐 브레케의 데뷔작입니다. 원래 모든 데뷔작들이 모두 다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소설도 데뷔작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엉성한 모습을 조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글을 준비하고 쓰면서 사전에 조사했던 지식들을 한 권의 책에 올인하려던 노력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려던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되짚어 본다면 그 이야기는 왜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는 그런 의문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영미 스릴러에서 주로 보이는, 뛰고 달리고 총쏘고 우당탕거리는 그런 속도감이 아니라, 서서히 인물과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지고, 이야기가 결론으로 치닿고 있다는 사실에 목죄여져 오는 느낌의 속도감입니다. 어쩌면 이건 굉장히 잔인한 방식의 살인 사건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파헤치듯 500년 전 과거의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났고,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때문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속도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스릴러 소설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방식의 살인 모습을 목격했지만, 이런 방식의 살인은 다시보는 것마저 매우 꺼려집니다. 아프고 무섭다기 보다는 꺼림칙한 무언가가 타올라서 터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역시 스릴러 장르의 진국은, 총보다는 전기톱이고, 깔끔한 슈트보다는 앞치마 두른 작업복이고, 경찰관보다는 정육점 주인이란 생각입니다. 이 소설, 『우아한 제국』의 느낌처럼 말입니다.



사과는, 조각나 잘려 먹히길 원할까, 아니면 껍질째 깍여 먹히길 원할까.

꺼림칙하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고고학 스릴러 매니아들에게 추천.



    소설을 쓰면서 과거의 사실에 무언가 연결지어 현재의 이야기를 만들고 사건을 구상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일 것입니다. 단지 신화적인 이야기를 차용하거나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고고학, 역사와 기록을 이용해서 사실다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럴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뤼스홀름  크누트존과 알레산드로 베네데티와 같은 실존 인물 뿐만 아니라, 애드거 앨런 포와 같은 베일에 쌓인 역사적 인물을 거론하며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토록 꺼림칙한 사건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500년 전의 시간대와 현재의 시간대를 왔다갔다 하면서 말입니다. 미국과 노르웨이를 오가며 휘몰아친 공간의 이동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주사건의 반전을 독자에게 보여줄 때, 과거에서도 현재와 연결되어 있던 어떤 형태의 반전이 연쇄적으로 팡팡 터졌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왕 상상하는 김에 작가가 역사적 사실에 칼을 대어 스윽 긋고 잘라내고 꿰메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과거의 사실이 극적이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그저 보여주기에 그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나니 이 이야기는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이었으면 매우 좋았을 텐데 필요조건만 만족시킨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아쉬움이자 바람입니다. 잔인한 살해방법이 담긴 충격적인 데뷔작이었던 만큼 앞으로 지켜봐야 할 작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제단 앞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은 걱정과 불안을 지닐지어다. 우리에게는 희열이 될지니. 섬뜩하고도 기괴한 군주가 우리의 의식을 진행할 것이다. (61쪽)



    살인범은 항상 책의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에 그 모습을 드러낸답니다. 그쯤 되면 작가에게 범인을 내비칠 용기가 생긴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부터는 이야기를 이리저리 꼬아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작업을 하죠. 그러니까 범인에게는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성립하고, 또 다른 미심쩍은 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거예요. (73쪽)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99쪽)



    당신도 알다시피, 포는 죽음과 환생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소. 죽어 있는 것들을 깨우고 잃어버린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이것이 바로 문학의 바탕이 아닐까 싶소. 모든 문학작품의 근본적인 주제 말이오. (347쪽)



    우주의 중심은 전역에 걸쳐있고, 그 주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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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사토 마사루 지음, 이혁재 옮김, 권성용 해제 / 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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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저는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 쇼의 퀴즈를 통해 처음 들었습니다. 퀴즈의 문제는 이랬습니다. 2012년 가을에 열릴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공산당 총서기에 오를 것으로 유력한 인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후진타오까지는 아는 이름이었지만, 그 뒤를 이을 인물의 이름은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퀴즈의 정답,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도 그 자리에서 바로 잊어버렸습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꽤 시간이 지났고 사토 마사루라는 일본인 기자가 쓴 책『시진핑 시대의 중국』의 제목을 보고, 문득 그때 그 퀴즈의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제 정말로 중국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렇게 몰라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책의 부제로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라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될까'라는 질문과 추측은 이미 늦어 보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제 지표의 수치나 그래프에서 이미 중국은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 경제에 있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직 1등이 아닌 분야에 대한 1위 등극은 시간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이 2020년을 예상하며 목표했던 GDP를 2010년에 이미 넘어서버렸고 미국의 경기침체를 틈타 외환 보유액을 대규모로 늘려 현재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거대한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때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었던 정치부 기자 사토 마사루는 현재 중국의 모습을 몇가지로 나누어『시진핑 시대의 중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중국 붕괴론이 거론되며 과거 중국이 안고 있었던 잠재적인 문제들부터 새로운 인물의 시대가 열리면서 떠오를 부가적인 문제들까지. 일본인 기자의 입장이라기 보다 세계인의 입장이 되어 꽤 중립적이고 폭넓은 시야로 중국이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이 2013년부터 시진핑의 시대가 열린다 하더라도 2022년까지는 후진타오의 영향력 아래의 시대, 즉 포스트 후진타오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시진핑이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와 정치 입문 과정에 대한 내용을 크게 할애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과거 중국의 모습을 분석하고, 현재의 움직임을 포착해내며,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포스트 후진타오 시대를 조심스레 예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은 당과 국가가 하나인 독특한 구조의 정치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특이한 구조이기에 서방 세계의 입장에서 그런 중국의 모습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고, 이런 정치형태와 경제구조에서 야기된 중국의 대응과 변화를 예측하고 대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특이한 힘을 이용해 신기하게도 '중국 붕괴론'을 '중국 위협론'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진단하고 분석했던 현재 중국이 당면한 문제들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의 시스템에 의해 그들이 결국엔 극복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는 이 책에서 보여준 중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중국이 모두 극복해낸 가상의 2022년을 예측해야만 할 것입니다. 2022년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재지명받고 세계를 본격적으로 호령하려 할 때, 우리는 중국에 대해 어떤 분석과 예측을 하고 있을 것이며,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또 10년 뒤 세계 미래의 어떤 모습을 예측하고 있을지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20년 뒤에 있을 일이라고 예측했던 미래가 10년만에 현재가 되어 실현될 정도로 세계는 중국으로 인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심한 세계 지각변화를 우리가 예상하고 적응해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정말로 다행이라 여겼던 점은, 이제 이 책을 읽은 저는 최근 중국의 정치와 외교 관련 TV 속 퀴즈를 꽤 많이 맞출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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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1 (양장) -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시리즈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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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았던 대단한 시리즈는 소설 속에서 나타난 작은 것 하나에도 큰 의미가 부여되곤 합니다. 특히 시리즈물의 '시작'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와 오랜 시간동안 회자되며 그 작품을 다른 작품들보다 더 그리워하고 추억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가 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패스티슈를 통해 영화와 소설의 형태를 하고, 그동안 시리즈를 기다려온 팬들의 곁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셜록홈즈에 대한 명성만 익히 들어왔던 추리소설 매니아들까지 오리지날 셜록홈즈 시리즈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셜록홈즈라는 이름이 부쩍 주목받으며 상업성있는 문화콘텐츠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셜록 홈즈 전집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때 봤던 시리즈가 어떤 내용의 어떤 소설이 있었는지. 책의 내용과 사건의 트릭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단지 재미있었다, 혹은 흥미진진한 모험의 시간이었다 정도로 부분적인 장면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리지날 셜록 홈즈의 이야기가 단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추리소설 팬이다, 미스터리 소설이 좋다, 라고 말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리지날 버전의 셜록 홈즈 전집,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시리즈의 출발이 되고 있는 <주홍색 연구>를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주홍색 연구>의 대단한 시작은 왓슨 박사의 독백으로 출발합니다.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 그리고 셜록 홈즈와의 첫 만남, 그리고 홈즈가 왓슨에게 내 뱉은 첫 대화, 베이커가 221B 하숙 생활의 시작 등. 스윽 스쳐 지나가듯 몇 마디 문장으로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짧게 묘사한 대화들이 저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때가 처음이었구나, 이래서 이랬구나 하며 혼자 웃고 감탄해가며 봤습니다. 특히 최근에 봤던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과 영국 BBC 드라마 <셜록sherlock>에서 나왔던 의미심장한 대화와 패스티슈들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에서 주홍색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 오던 찰라에 때마침 시원한 답을 얻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이와같은 패스티슈 작품들의 완성도를 오리지날 셜록 홈즈 작품을 통해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얻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리지날 이야기를 보았고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새로운 재미가 생겨나다니. 다시 한번 고전의 위대함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흔히 우리가 아는 식으로 베이커가 하숙집에 사람이 찾아오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몇몇 사람들을 의심하고 단서들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홈즈가 범인을 지목하는데, 그 범인이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아마도 이때 범인을 예상하고 홈즈와 같이 범인을 맞춘 독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어서 친절하게 '사실은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면'하며 2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2부 이야기의 몇몇 장은 '책 속의 책'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하며 새로운 다른 단편의 이야기가 시작한 줄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 꽤 괜찮은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이 때 나왔던 고전 추리소설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비약적인 전개와 일장연설하는 모양의 친절한 설명들이 이 소설에서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모양이라 좋았습니다.



수많은 시리즈끼리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주홍색 연구는 꼭 필요하다.

셜록홈즈 영화와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려면 꼭 읽어보도록 하자. 



    <주홍색 연구>를 오랜만에 다시 보고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거치니, 오랜 시간 미뤄왔던 숙제를 스스로 해낸 것과 같이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가짜' 추리소설 팬의 신분에서 벗어나 '진짜'가 된 느낌마저 듭니다. 그동안 제가 미스터리 소설을 추구하고 쫒아왔던 이유와 뿌리를 알 것도 같습니다. 수많은 추리소설 작가들이 이 한 권의 소설을 토대로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가 이제서야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셜록홈즈 시리즈를 읽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홈즈의 차갑고 논리적인 사고를 심어주었고, 가슴에는 추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주홍색 연구>를 통해 볼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한편으론 셜록홈즈라는 거대한 시리즈의 흐름 앞에서 제 자신은 한없이 작은 모습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뚱맞은 감상도 해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는,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 대단한 고전 추리소설이었습니다.







    "드디어 발견 했소! 내가 말이오! 나는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에 의해서만 침전되는 시약을 발견했소이다." (16쪽)



    "<Rache(라헤)>는 독일어로 <복수>를 뜻합니다. 그러니 레이첼양을 찾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는 마세요."

    마지막 일격을 가한 뒤 홈즈는 문 밖으로 사라졌고, 뒤에 남은 두 경쟁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58쪽)



    이것은 주홍색(비유적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빛깔) 연구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예술적인 표현을 좀 쓴다고 해서 안 될 건 없을 겁니다. 삶의 무채색 실 꾸러미 속에, 주홍빛 살인의 혈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그 실꾸리를 풀어서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어 그것을 가차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71쪽)



    보통 사람에게는 많은 사실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결과를 예측해 낼 수 있습니다. 즉 많은 사실을 머릿속에 입력하면 그걸 가지고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결과를 말해 주었을 때, 그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 전 단계들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내가 말하는 역추리, 또는 분석적 사고라는 것이지요.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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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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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대한민국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가문의 자녀들일까. 그리고 그들의 비극은 어떤 모습의 갈등구조를 지녀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절대로 서로 섞이지 못할 물과 기름이 될 양쪽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태생부터가 철천지원수라서 그들의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비극적일 수 밖에 없고, 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희극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응준 님의 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말합니다. 사랑은 그저 미친 짓이다, 라고.



 


    소설은 판사 출신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수영과 진보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처음부터 첫눈에 반한 고전적인 스토리를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여당과 야당. 대한민국에서 절대로 한데 섞이지 못할 두 집안 사람으로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개와 역시 만나기만 하면 우끼끼거리는 원숭이가 되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대립된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이들에게 기적과 같이 붉은 물체와 관련된 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은 이 사회에서 절대로 꿈꾸지 못할 발칙한 로맨스를 꽃피웁니다. 여당과 야당이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마티아스 크라우디우스는 말합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아무리 이를 막아도 모든 것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은 영원히 그 날개를 퍼득이고 있다, 라고.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당연히 예견되었던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일 수도 있고, 희극일 수도 있습니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풀어내려고 일관되게 노력하는 모습, 그것 때문에 소설이 보이고 있는 태도와 표정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배배꼬인 무언가를 꿍하게 품고 있으면서도 할 이야기는 다 뱉어내고, 비꼬아 웃어보기도 하고, 걱정하며 한숨짓기도 합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디서건 우리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계'로 만들어 놓고, 건조한 표정을 한채 째각째각 흘러가기도 하고, 혹은 초침으로 세상을 재깍재깍 찌르고 있기도 합니다. 로버트 폴포드는 말했습니다. 내가 미래를 보았는데, 별 볼일 없었다, 라고.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으며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고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는 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소설을 읽는 내도록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게 하고 감탄해 하며 밑줄 긋게 했던 멋진 표현들이 자주 눈에 걸려 듭니다. 누군가가 오래전에 했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작가가 직접 전하고자 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것이 소설 안에서 참으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복잡한 문장 구조 때문에 정말로 돌에 걸린듯 덜컹덜컹거리는 진행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소설을 오랫동안 꼭꼭 씹게 만드는 역할도 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가 최고로 극적인 부분을 치닿고 있을 때 영화처럼 보이던 연속된 장면들이 갑자기 소리가 지워지고 낱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또 이때 갑자기 벽에 붙어있던 시계가 튀어나와 격양된 표정을 짓고서 급히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듯해 보여서 아주 살짝 아쉬웠습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 끝을 조절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은 절대 없다, 라고.



    섞이지 못할 관계인데 영원히 붙어있어야만 하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장난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신은 우리들을 재미로 만들어 놓고 조금 장난쳐보다가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만 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속을 알길이 없기에 항상 답답해하고, 부디 관심을 가져주십사 애원하고, 답을 내려주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기도가 먹힐 때도 있습니다. 한대 섞이지 못할 우리와 그들, 나와 당신이 하나가 되고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꾸며나갈 그날이 분명 오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를 그때를 위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끝으로 제가 말합니다. 사랑. 그것은 먹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맛이 납니까, 라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의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오직 문학의 영역에서 발화된 정치 풍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즐기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여긴다면 이는 문학적 무지와 정신병리적 망상이 분명하므로 조속한 학습과 치료의 병행을 권합니다.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6쪽, 일러두기)



    다시 시작입니다. 당신과 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 속에서도 애틋한 이별을 음미하고 피어나는 붉은 꽃 속에서도 죽음의 충고를 듣고 태산같이 둘러싼 적들 앞에서도 죽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는 무사武士이기에, 죽은 이는 그리움마저 베어 버리고 죽은 이의 길로,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날숨과 들숨이 함께하듯 헤어지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74쪽)



    ……역사는 공짜가 없다. 우리가 노력하고 희생한 만큼 진보한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선함을 이룩해야 한다. ……아, 내가 이런 말 하면 지는 건데, 이 나라가 부끄럽다. (110쪽)



    사랑은 누구에서나 어디서나 가능하다. 사랑이 전쟁과 비슷한 것은 바로 그 무자비함 때문인 것이다. (130쪽)



    아무튼.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는 왜구가 불시에 침략해 와야 드러나는 법이다. 하긴 어디 그것만 그럴까. 그래서 적은 위대하다. 우리가 패도에 빠져 망해 가는지도 모를 때 혹은 모른 척하며 망해 갈 때 똥과 된장을 분명히 구분해 주는 정직한 비평가는 진정한 적밖에 없다. (153쪽)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다. 연애는 열병과 같은 것이어서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결국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연애는 항상 최대의 사업이었다. 아니 유일한 사업이었다, 라고. (202쪽)



    너는 이 바람을 번역할 수 있니? 너에게 인생은 의역이니 직역이니? (263쪽)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새 한 마리는 온 우주 속의 그저 한 마리 새일 뿐이지만 그 한 마리 새가 죽으면 그 새 한 마리에게는 온 우주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연과 운명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우연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일까. 이는 인생을 규정하는 가장 케케묵고 강력한 존쟁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연과 운명의 실체는 바로 인간이지 우연과 운명 그 자체일 수 없다. 우연과 운명이 뭔지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은 시간 속에서 우연과 운명을 행동한다.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이 우연과 운명인 것이다. (301쪽)



    ……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 모습을 본다. 지금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이 음악으로 내가 시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32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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