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제국
외르겐 브레케 지음, 손화수 옮김 / 뿔(웅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유럽소설은 영미소설과 다른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물론 번역에서 오는 어감 차이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루고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둔탁하고 침침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덜 예술적이다는 말은 아니고, 영미소설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느낌이 난다면, 유럽소설에서는 제3세계의 예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납니다. 비교적 덜 문학적이라는 스릴러 장르소설에서도 말입니다. 그런 독특한 느낌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요. 최근들어 국내에서 유럽권 스릴러 소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독특하게 북유럽 노르웨이의 스릴러 장르소설, 『우아한 제국』을 읽어 보았습니다.



 


 


    『우아한 제국』외르겐 브레케의 데뷔작입니다. 원래 모든 데뷔작들이 모두 다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소설도 데뷔작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엉성한 모습을 조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글을 준비하고 쓰면서 사전에 조사했던 지식들을 한 권의 책에 올인하려던 노력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려던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되짚어 본다면 그 이야기는 왜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는 그런 의문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영미 스릴러에서 주로 보이는, 뛰고 달리고 총쏘고 우당탕거리는 그런 속도감이 아니라, 서서히 인물과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지고, 이야기가 결론으로 치닿고 있다는 사실에 목죄여져 오는 느낌의 속도감입니다. 어쩌면 이건 굉장히 잔인한 방식의 살인 사건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파헤치듯 500년 전 과거의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났고,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때문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속도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스릴러 소설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방식의 살인 모습을 목격했지만, 이런 방식의 살인은 다시보는 것마저 매우 꺼려집니다. 아프고 무섭다기 보다는 꺼림칙한 무언가가 타올라서 터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역시 스릴러 장르의 진국은, 총보다는 전기톱이고, 깔끔한 슈트보다는 앞치마 두른 작업복이고, 경찰관보다는 정육점 주인이란 생각입니다. 이 소설, 『우아한 제국』의 느낌처럼 말입니다.



사과는, 조각나 잘려 먹히길 원할까, 아니면 껍질째 깍여 먹히길 원할까.

꺼림칙하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고고학 스릴러 매니아들에게 추천.



    소설을 쓰면서 과거의 사실에 무언가 연결지어 현재의 이야기를 만들고 사건을 구상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일 것입니다. 단지 신화적인 이야기를 차용하거나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고고학, 역사와 기록을 이용해서 사실다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럴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뤼스홀름  크누트존과 알레산드로 베네데티와 같은 실존 인물 뿐만 아니라, 애드거 앨런 포와 같은 베일에 쌓인 역사적 인물을 거론하며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토록 꺼림칙한 사건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500년 전의 시간대와 현재의 시간대를 왔다갔다 하면서 말입니다. 미국과 노르웨이를 오가며 휘몰아친 공간의 이동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주사건의 반전을 독자에게 보여줄 때, 과거에서도 현재와 연결되어 있던 어떤 형태의 반전이 연쇄적으로 팡팡 터졌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왕 상상하는 김에 작가가 역사적 사실에 칼을 대어 스윽 긋고 잘라내고 꿰메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과거의 사실이 극적이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그저 보여주기에 그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나니 이 이야기는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이었으면 매우 좋았을 텐데 필요조건만 만족시킨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아쉬움이자 바람입니다. 잔인한 살해방법이 담긴 충격적인 데뷔작이었던 만큼 앞으로 지켜봐야 할 작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제단 앞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은 걱정과 불안을 지닐지어다. 우리에게는 희열이 될지니. 섬뜩하고도 기괴한 군주가 우리의 의식을 진행할 것이다. (61쪽)



    살인범은 항상 책의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에 그 모습을 드러낸답니다. 그쯤 되면 작가에게 범인을 내비칠 용기가 생긴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부터는 이야기를 이리저리 꼬아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작업을 하죠. 그러니까 범인에게는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성립하고, 또 다른 미심쩍은 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거예요. (73쪽)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99쪽)



    당신도 알다시피, 포는 죽음과 환생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소. 죽어 있는 것들을 깨우고 잃어버린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이것이 바로 문학의 바탕이 아닐까 싶소. 모든 문학작품의 근본적인 주제 말이오. (347쪽)



    우주의 중심은 전역에 걸쳐있고, 그 주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12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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