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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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받은 소설은 달라도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재미가 있습니다. '요고요고,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시나'하는 느낌으로 첫 페이지를 잠깐 열어 몇 문장들을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단번에 다 읽어버리도록 사람을 잡아 가두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은 심사위원들이 추구하는 어떤 심사의 방향 때문인지, 분위기가 다들 몽롱한 판타지 영화 속의 오프닝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안개가 잔득 껴서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지만, 분명 저기 저 안개 너머에서는 나를 놀래킬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영화의 거대한 서사시적 신호탄을 만들어 내겠지, 하는 당연한 기대감 말입니다. 이런 오묘한 맛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 '이상한'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집을 보고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들, 그러니까 수상 작품들에 담긴 깊은 뜻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작품집을 읽으며 제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답답함과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느낄 수 없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허탈함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존경하지만 한편으로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오들오들 떨면서 읽었습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의 흡인력은 정말 최고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짧은 글들이라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잡아 놓는 스킬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은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읽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 처음 몇 문장만 보고 내팽개쳐졌을 글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눈을 계속 붙잡고 있었고, 최종심까지 남아 있었다 라는 저력, 그건 역시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수상작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였을 테구요. 아무튼, 그런 치열한 전쟁을 치뤄 최종까지 남겨진 글들이라니. 역시 살아남은 것들은 존재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상작과 수상 소감, 대표작 등,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려있는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었습니다. 그들은 높고 멀리 날고 있어서 우리의 눈에는 하나의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한마리 매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먹잇감을 찾아냈고,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끝까지 추적해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작품을 낚아 챈 후 갈기갈기 찟어서 해체시켜 놓았습니다. 과연 내가 본 글이, 그들이 봤던 글과 같은 글이었는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평가와 감상은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같은 글 속에서 굉장한 의미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정작 작가 스스로도 과연 그런 의도를 갖고 의미를 부여해 글을 썼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들은 작가는 스스로가 「옥수수와 나」에 등장하는 편집장처럼,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읽었고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헷갈려하며 맞다맞다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그들의 분석과 해설이 오히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압도하고 있는 굉장함을 보였고, 저는 그런 광경을 보며 그들에게 압도당했습니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굉장한 작품들과 그것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사이에 끼어있던 저는, 그자리에서 압사당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낭비하는 것은 바로 섹스라는 관념이야. '나는 섹스를 한다'라는 무거운 관념을, 덤프트럭이 모래를 쏟아놓듯 훌훌 던져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섹스 파트너라는 이름의 상자를 공유하는 거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섹스 파트너라고 부르기로 정한 거야. 그리고 실은 그 뚜껑을 열지 않아. 우리가 뚜껑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안전해. (22쪽, 옥수수와 나)



    아, 그럼요. 원래 쓰려던 것을 그대로 쓰는 것. 그건 대중소설, 장르소설이죠. 본래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비로소 도달하는 것. 그게 문학이죠. 원래 그런 거예요. (57쪽, 옥수수와 나)



    너의 그 무거운 관념이 과연 가볍고 빠른 총알을 이길 수 있을까? (59쪽, 옥수수와 나)



    그렇다면 작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기 보다 글을 써야한다고 믿는(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작가는 글을 쓴다는 행위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무를 짊어진 존재를 일컫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하나의 직업이기 이전에 일종의 신분이며, 스스로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한 이 신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103쪽, 수상소감)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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