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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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대한민국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가문의 자녀들일까. 그리고 그들의 비극은 어떤 모습의 갈등구조를 지녀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절대로 서로 섞이지 못할 물과 기름이 될 양쪽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태생부터가 철천지원수라서 그들의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비극적일 수 밖에 없고, 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희극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응준 님의 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말합니다. 사랑은 그저 미친 짓이다, 라고.



 


    소설은 판사 출신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수영과 진보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처음부터 첫눈에 반한 고전적인 스토리를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여당과 야당. 대한민국에서 절대로 한데 섞이지 못할 두 집안 사람으로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개와 역시 만나기만 하면 우끼끼거리는 원숭이가 되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대립된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이들에게 기적과 같이 붉은 물체와 관련된 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은 이 사회에서 절대로 꿈꾸지 못할 발칙한 로맨스를 꽃피웁니다. 여당과 야당이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마티아스 크라우디우스는 말합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아무리 이를 막아도 모든 것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은 영원히 그 날개를 퍼득이고 있다, 라고.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당연히 예견되었던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일 수도 있고, 희극일 수도 있습니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풀어내려고 일관되게 노력하는 모습, 그것 때문에 소설이 보이고 있는 태도와 표정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배배꼬인 무언가를 꿍하게 품고 있으면서도 할 이야기는 다 뱉어내고, 비꼬아 웃어보기도 하고, 걱정하며 한숨짓기도 합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디서건 우리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계'로 만들어 놓고, 건조한 표정을 한채 째각째각 흘러가기도 하고, 혹은 초침으로 세상을 재깍재깍 찌르고 있기도 합니다. 로버트 폴포드는 말했습니다. 내가 미래를 보았는데, 별 볼일 없었다, 라고.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으며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고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는 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소설을 읽는 내도록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게 하고 감탄해 하며 밑줄 긋게 했던 멋진 표현들이 자주 눈에 걸려 듭니다. 누군가가 오래전에 했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작가가 직접 전하고자 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것이 소설 안에서 참으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복잡한 문장 구조 때문에 정말로 돌에 걸린듯 덜컹덜컹거리는 진행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소설을 오랫동안 꼭꼭 씹게 만드는 역할도 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가 최고로 극적인 부분을 치닿고 있을 때 영화처럼 보이던 연속된 장면들이 갑자기 소리가 지워지고 낱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또 이때 갑자기 벽에 붙어있던 시계가 튀어나와 격양된 표정을 짓고서 급히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듯해 보여서 아주 살짝 아쉬웠습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 끝을 조절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은 절대 없다, 라고.



    섞이지 못할 관계인데 영원히 붙어있어야만 하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장난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신은 우리들을 재미로 만들어 놓고 조금 장난쳐보다가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만 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속을 알길이 없기에 항상 답답해하고, 부디 관심을 가져주십사 애원하고, 답을 내려주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기도가 먹힐 때도 있습니다. 한대 섞이지 못할 우리와 그들, 나와 당신이 하나가 되고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꾸며나갈 그날이 분명 오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를 그때를 위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끝으로 제가 말합니다. 사랑. 그것은 먹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맛이 납니까, 라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의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오직 문학의 영역에서 발화된 정치 풍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즐기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여긴다면 이는 문학적 무지와 정신병리적 망상이 분명하므로 조속한 학습과 치료의 병행을 권합니다.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6쪽, 일러두기)



    다시 시작입니다. 당신과 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 속에서도 애틋한 이별을 음미하고 피어나는 붉은 꽃 속에서도 죽음의 충고를 듣고 태산같이 둘러싼 적들 앞에서도 죽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는 무사武士이기에, 죽은 이는 그리움마저 베어 버리고 죽은 이의 길로,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날숨과 들숨이 함께하듯 헤어지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74쪽)



    ……역사는 공짜가 없다. 우리가 노력하고 희생한 만큼 진보한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선함을 이룩해야 한다. ……아, 내가 이런 말 하면 지는 건데, 이 나라가 부끄럽다. (110쪽)



    사랑은 누구에서나 어디서나 가능하다. 사랑이 전쟁과 비슷한 것은 바로 그 무자비함 때문인 것이다. (130쪽)



    아무튼.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는 왜구가 불시에 침략해 와야 드러나는 법이다. 하긴 어디 그것만 그럴까. 그래서 적은 위대하다. 우리가 패도에 빠져 망해 가는지도 모를 때 혹은 모른 척하며 망해 갈 때 똥과 된장을 분명히 구분해 주는 정직한 비평가는 진정한 적밖에 없다. (153쪽)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다. 연애는 열병과 같은 것이어서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결국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연애는 항상 최대의 사업이었다. 아니 유일한 사업이었다, 라고. (202쪽)



    너는 이 바람을 번역할 수 있니? 너에게 인생은 의역이니 직역이니? (263쪽)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새 한 마리는 온 우주 속의 그저 한 마리 새일 뿐이지만 그 한 마리 새가 죽으면 그 새 한 마리에게는 온 우주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연과 운명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우연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일까. 이는 인생을 규정하는 가장 케케묵고 강력한 존쟁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연과 운명의 실체는 바로 인간이지 우연과 운명 그 자체일 수 없다. 우연과 운명이 뭔지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은 시간 속에서 우연과 운명을 행동한다.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이 우연과 운명인 것이다. (301쪽)



    ……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 모습을 본다. 지금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이 음악으로 내가 시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32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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