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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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헝거게임의 모습은 <배틀 로얄>과 비슷합니다. 열두 구역에서 소년 소녀 한 명씩을 차출해 총 스물 네 명의 아이들이 야외 경기장에 갇힙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이 살아 남을 때까지 생존게임은 계속 됩니다. 또 이 게임은 전국에 생중계 됩니다. 과거 반란을 일으킨 열두 구역 사람들에게 싸움은 곧 죽음이라는 교훈을 주기위한 행사라고 하지만, 이미 열두 구역의 사람들은 이런 식의 불합리한 게임에 저항할 의지도 없고, 싸움을 걸어볼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매년 자신의 아들딸들을 헝거게임에 보냅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헝거 게임이 벌써 74회를 맞이했습니다.

 



 

    수잔 콜린스『헝거 게임』에서 보여준 미래의 모습은 참으로 암울합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굉장히 심하고, 빈곤층의 사람들은 그런 격차를 줄이려 하기보다 내일 먹고 살 걱정만을 하며 행여나 법을 어기다 형벌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 염려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헝거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이들은 이미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게임을 하고 있으며 수동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는 소설 속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지금의 현실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헝거게임의 우승자는 일약 대스타가 되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 한방이라는 말처럼 시궁창같은 삶에서 벗어나 상류층 사회에 오르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오로지 헝거게임에 참여해서 경쟁자들을 모두 죽이고 밟고 일어서야만 가능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경쟁자들 중에서 친구도 동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은 단지 경쟁해야할 대상이며 단 한 명의 우승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로또 당첨과 같은 행복을 쟁취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음 뿐이라는 설정이 참으로 잔인해 보입니다.



    헝거게임의 참가자는 로또와 같은 확률의 추첨을 통해 선별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불공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아이들과 부유한 자의 아이들이 헝거게임 참여자로 선택될 확률이 다를 수 있다는 규칙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공평한 규칙에 대해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납득하며 그것도 괜찮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현실 사회에서 세계의 아이들은 모두가 다같은 아이들로 보이지만, 누군가는 경기장 트랙의 몇발 앞에서 출발할 수 있고 누군가는 몇발 뒤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공평한듯해 보이는 현실이 실제로는 불공평하다는 것, 그런데 아무도 그걸 불공평하다고 여기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또한 굉장히 잔인해 보입니다.



    이런 잔인함은 소설의 게임이 어린 아이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더욱 잔혹함을 보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내몰리게 될 현실은 정말로 헝거게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랑도 우정도 동료도, 모두 임시적인 동맹일 뿐 결국 마지막에는 배신과 음모로 경쟁자들을 죽여서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 그런데 그것을 어린 아이들이 해야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배워가고 우정을 이해할 나이의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어리기 때문에 무엇이든 처음이고 이제서야 차츰 알아가게 된다는 사춘기 때의 감정의 기복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내몰리게 된 현실과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들, 예측할 수 없어서 우연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세상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헝거 게임』을 읽었습니다. 가상의 현실같은 소설 속 세상에서 주인공이 세상의 규칙을 바꿔버렸으면 하고 기대했습니다. 게임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으며, 강압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절대 굴복하지 않고, 완전한 체제의 전복을 이뤄냈으면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엔 규칙과 체제내에서 조금의 꿈틀거림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현실이나 마음 먹은대로,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대로 돌아가라는 법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헝거 게임』 3부작의 이야기 중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니 뒤에 이어질 이야기에서는 제발 통쾌하게 세상이 뒤집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낸 세상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배고픔'에 굴복해야만하는 세상이 아닌, 사랑과 평화, 우정, 동료애가 느껴지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헝거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반란을 일으킨 대가로 열두 구역들은 매년 소년 소녀 한 명씩을 참가시켜야 한다. 총 스물 네 명의 조공인들은 드넓은 야외 경기장에 갇히게 된다. 타는 듯한 사막부터 영하의 불모지까지 그 어느 곳이든 경기장이 될 수 있다. 조공인들은 몇 주 간에 걸쳐,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단 한 명의 조공인이 승리자가 된다. (22쪽)



    캐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나는 그저 헝거 게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148쪽)



    한순간 나는 거의 바보처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가 혼란에 휩싸인다. 우리는 이 연애질을 연기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척 하고 있는 것뿐아닌가? (301쪽)



    다시 달이 찰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저 달이 나의 달이기를, 내가 12번 구역 주위의 숲에서 보던 그 달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든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초현실적인 이 경기장에서 진짜 달을 본다면, 무언가 매달릴 대상이 되어 줄 것 같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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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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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자살생존자'라는 단어를 보고 글쓴이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살아남았고, 생존해서 삶을 살아보니 인생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말하려는 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살생존자라는 용어는,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자살로 인해 세상에 남겨진 사람,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의 그림자를 읽다』의 저자 질 비알로스키는 그런 자살생존자입니다. 막내 동생이 1990년에 자살하면서 그녀는 자살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라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란 참으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살한 사람들'이라는 범주 안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여기며 한데 모아 담아놓으려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선택한 자살이라는 결정이 결과로만 보이고, 자살까지 이르게 된 과정은 쉽게 생략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굉장히 복잡하고, 또 복합적이며, 시작도 원인도 찾기 힘든 내면의 고통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정확한 원인을 집어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당연히 살아있었던 당시의 당사자도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무튼 그들의 선택은 결국에 자살이었지만, 사람들마다 매우 다양한 자살의 원인을 가집니다. 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이 책에서 저자가 찾고 싶은 해답은 그녀의 동생, 킴에게만 해당하는 '왜'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해답을 구하기위해 동생 킴에 관련된 모든 흔적과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봅니다. 이 책에선 그것을 '심리적 부검'이라고 합니다. 동생이 남긴 일기, 동생이 했던 말, 그리고 행동들. 동생의 친구들, 부모와 언니들. 집과 학교. 동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자살의 징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저자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동생의 자살 이유를 읽어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보인 그런 노력은, 동생을 이해하고 애도하며 기리기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자 자신을 위한 행위였다고 여겨집니다. 동생이 자살한 날을 기점으로 저자의 인생은 전과 후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삶은 계속해서 이어질 연속적인 것이기에 저자는 그래도 살아가기위한 행동과 사고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경험담을 이 책을 통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 자살생존자들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중심은 자살한 동생 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저자 자신에게 있습니다. 결국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에 대한 기억은 자신의 추측과 느낌에 기인한 감상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킴이 자살한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생이 자살한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슬픔과 상실에 대한 자신의 감상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정신과전문의의 말을 인용하여 킴의 내면을 파고들어 심리적 부검을 하려고 시도해보지만, 저자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절대로 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 그 사건 이후 저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탓인지 이 책에 담긴 글에서도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에서 변덕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자살한 동생 킴이 무척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 결국 그녀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킴의 언니였던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할 자신만의 어떠한 세계를 확실히 만드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막을 둘러놓아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녀가 킴을 생각하며 쓴 글과 그녀가 이 책에 모아둔 자살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은 사건 이후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최소한의 노력을 행하기 위한 글로 여겨집니다. 동생이 자살한 이유는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는 일종의 변명과 동생에게 그것을 전하는 편지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불편했습니다. 저자 자신의 사생활을 파헤치면서까지 무리한 고백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동생은 동생대로 더 처참한 상태로 해부당해졌고, 저자는 저자대로 원하는 답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킴 뿐만 아니라 모든 자살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살아돌아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고, 모두가 패자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통해 질문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다른 자살생존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저자와 동질감을 느끼고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들이 원하는 답은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살을 이해하는 것은 잡히지 않는 삶의 환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 공포, 나약함의 힘. 그 힘은 바다처럼 신비롭고 거칠고 복잡하고 통제가 안 되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파괴력이 있다. (16쪽)



    우리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 즉 우리의 말은 그저 공허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37쪽)



    나는 몇 달 동안 이 이야기를 쓰며, 나의 어린 시절을 면밀히 되새기고 킴의 삶을 재구성해서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고자 애쓰고 있다. 내가 쓰고 있는 동안 마치 킴이 되살아나 키보드 위에 내 손가락들을 이끌며, 내가 공개해도 좋은 이야기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108쪽)



    십대의 자살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자살자들 사이에는 완벽주의라는 공통점이 있고,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가 십대들에겐 좌절감과 절망을 배가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절망감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곧 시도가 된다. (202쪽)



    가끔은 우리 자신의 본성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우리가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목숨을 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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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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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미조 세이시의 77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초창기 작품 정도로 분류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왔던 작품들이 대부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 지금까지 소개된 그의 작품들도 이때 발표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덟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읽어 봤습니다. 그 중에서 순위를 따지자면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하위권에 위치할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 하위권이란 것도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지,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이구나를 느낍니다. 이정도로 꾸준한 모습을 하고 일정 기대치 이상의 모습으로 평균 이상의 만족을 주는 시리즈는 역시, 대단하구나 입니다.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타는 스타일의 소설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소설 속의 Y라는 작가에게 자신이 겪은 사건을 정리한 정보들을 주고, Y는 이걸 독자들에게 글로 소개한다는 설정을 한 모습이 거의 모든 시리즈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미 Y는 사건의 모든 내막과 트릭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며 사건의 발단 부분부터 글을 써내려가려 하니 뭐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것입니다. 그래서 발단부터 허세를 가득 담아서 괜한 분위기를 몰아가고, 넌지시 증거나 힌트를 흘리듯 알려주려 하는 모습들이 어찌보면 꼴사나워 보이기도 합니다. 괜히 우월감에 도취된 작가가 독자들을 우롱하려 드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바람잡으려 하는 듯 보이고, 그것이 과장되어 보이기도하고 밉상으로 비치기도 하고. 분명 이런 모습들을 보고 반감을 느낀 독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의 추리소설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일부러 알려주는 척 과장된 몸짓을 하고 증거를 보여주고 있더라도 그의 추리소설의 트릭을 푸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건 치밀하게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을 부분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보여주지 않겠다라는 Y의 얄팍한 계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이런 트릭들은 독자가 전혀 알 길이 없는 전쟁 후 일본 사회의 복잡하고 개인적인 가족사와 맞물리면서 한없이 비밀스럽게 엉켜있는 모습이라 절대로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할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양 '사실 내가 알고 있었지만, 조금만 내가 더 일찍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하는 모양의 대사를 날리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밉상스런 모습이 사람을 더욱 열받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풀이를 듣고 그제서야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 수 밖에 없는 저로서는 '또 졌다, 젠장 또 이런 식이냐'라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는 없으니, 그리고 또 다른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읽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나 버리니. 이거 참 알면서도 속는 기분이 드는 묘한 기분입니다.


 

    모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그렇겠지만,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역시 매우 음울한 분위기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소설입니다. 탐미적이고 원색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요코미조 세이시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뱃속에 납덩어리가 내려앉은 듯 무겁고, 뱃속의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꺼림칙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역시 일본답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렇게 금기가 없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다루고 있는 글들을 일본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들어 독자들이 일본소설을 많이 찾고 즐겨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언가 굉장히 일본다운 소재의 꺼림칙한 사건.

이 소설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이 아니라 사회파 소설로 보자.



    한편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흔히 사람들이 평하는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틀 밖에 있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에서야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느끼기에 시대를 꽤 많이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시절의 사람들이 읽기에는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었을 테니 배경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테고 주로 사건의 트릭과 명탐정의 추리에 초점을 맞추며 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람들은 과거 일본 사회와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특히 과거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과 함께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문득 없던 역사적인 의의마저도 생겨납니다. 한 권의 소설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긴다이치 시리즈를 통틀어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팔묘촌』과 마찬가지로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도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제국은행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귀족 제도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몰락해가는 그들 가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굉장히 사회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트릭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회파의 느낌이 더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트릭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억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번거러운 작업을 굳이 해나가야 했던 이유를 명쾌하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찝찝함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밀실 트릭이란 것이 사실 해법을 알게 되면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어린얘 장난 같기도 해서 싱겁게 느껴지는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트릭이 약했던 반면 사회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설정과 그것을 그려놓은 그림이 꽤 괜찮았던 소설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 무서운 사건을 활자화해 발표하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도 음침한 사건이고 저주와 증오에 가득 차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해줄 만한 구석이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9쪽)



    아까부터 이상한 듯 형사의 행동이나 경부의 언동을 지켜보던 긴다이치 코스케는 그 순간 갑자기 박박, 벅벅, 무턱대고 더벅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그, 그, 그럼 경부님, 이, 이, 이건 밀실살인인 겁니까?" (116쪽)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어금니에 뭔가 낀듯한, 혹은 구두를 신은 채 가려운 발을 긁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48쪽)



    "그렇죠, 그렇죠. 그거예요. 그리고 모든 수법의 내막이 어린애 속임수인 것처럼 이 밀실 살인사건의 진상도 꽤 싱거운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만한 건 아니지만요." (410쪽)



    코스케는 이순간을 가능한 한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제부터 시도하려는 비밀의 해명은 거무죽죽하고 음침하고, 게다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그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항상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범죄탐구자로서의 양심과 누구나 갖고 있는 귀찮은 허영심이 그를 선동하는 것이다. (4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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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업 Coming Up 1
기선 지음 / 북폴리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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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청자가 주말 저녁 TV에 나오는 한 가요 프로그램을 봅니다. 새삼 새로울 것도 없지만, 매번 이미 알고 있는 가수보다 처음보는 가수들이 훨씬 많은 것에 놀랍니다. 아하, 또 어떤 무리들이 새로 그룹을 결성해서 나왔구나. 다음 주부턴 TV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겠지. 노래와 춤을 보니 다음 앨범 작업 또한 장담할 수 없겠구나. 그렇게 해서 어디 가수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으려나. 일단 TV를 통해 만난 그들의 첫인상은 대부분 약간의 질투심에서 우러난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게 됩니다.



    한 신인 아이돌은 그래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TV에 나와서 시청자들의 평가와 팬들의 반응―비록 냉소적일지라도―을 접한 신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출연이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큰 자본력을 가진 기획사의 아이돌이라는 점. 이들은 이 바닥 중에서도 비교적 따뜻한 빙산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신인일 것입니다. 빙산의 아래쪽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인들의 경우엔 연습생의 신분으로 몇년 동안 땀을 흘러가며 힘들게 준비했건만, 결국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꿈의 데뷔 무대에 서는 일없이 실패작으로 남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빙산의 아래쪽에서 위쪽을 수면 밖으로 들어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 유명한 연애기획사 사장이 명함을 내밉니다. 연애인 한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말이지요. 호기심과 기대감에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중간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결론만 바로 말씀드리자면, 제2의 장자연 사건이 되어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듭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몰라서 모를 뿐이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이시각 어디선가에도 이런 모습을 하고 유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의 사탕발림 제안이 건내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한 매니저가 또래의 아이 한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는 같은 팀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가 특별히 노래를 잘 하거나 춤을 잘 춰서 팀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같은 지향점이 추구하기에 의기투합해서 동행하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 팀에 합류하는가 하면 이 아이는 예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짜피 그룹은 돌아가면서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니까 랩 비슷하게 중얼거리는 한 소절의 파트만 주면 된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일종의 얼굴마담이라고나 할까요. 원래 그룹은 이런 식으로 결성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한 연습생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파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멀리 유학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그 연습생이 다시 연습실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외모가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아니, 발전했습니다. 아파서 몇달간 병원에 입원했더니 외모가 조금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젖살이 빠지다보니 조금식 예뻐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본 다른 연습생들은 사장님의 권유로 모두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다섯가지 '한' 이야기들은 『커밍업』에 담겨진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의 밝고 명랑한 걸그룹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도전이 이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걸그룹 만들기라고 하면 이런 갈등구조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또 반대로 웹툰이라면 매번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만 담을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책을 본 느낌이 참으로 이랬다저랬다, 제 자신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어른의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으로 봐야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웹툰을 보고 아이돌이 되길 꿈꾸는 어린 청소년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들에게 세상은 꿈과 희망, 그리고 우연과 행운, 꾸준한 노력보단 크게 대박으로 한몫 잡아볼 생각으로 가득찬 세상일 것입니다. 세상은 담임만큼이나 만만한 모습을 한 채 쉽게 돌아갈 것이고, 보기 싫은 어두운 장면은 외면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웹툰『커밍업』은 굉장히 밝고 명랑한 모습의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계속해서 어두운 쪽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커밍업』은 제가 했던 이야기들과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했던 노력들이 이들이 얻을 영광과 보상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이들이 겪는 아픔과 좌절이 현실적이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 그런 갈등구조까지 섬세하게 담아놓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매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깊이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책 속의 어린 친구들이 꼭 멋있는 가수가 되어서 해피엔딩했으면 좋겠습니다. 양쪽 모두에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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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해류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하윤 옮김 / 해문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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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일본 추리소설을 손에 쥐면 작가가 본격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인지,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인지를 알아보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본격을 주로 쓰는 작가라면 트릭이 얼마나 참신한가, 혹은 섬세하고 정교한가를 따져가며 그 부분을 집중해서 봅니다. 비록 범죄 동기가 조금 생뚱맞은 경향이 있더라도 그 생뚱맞음을 작가가 얼마나 자연스레 보이도록 노력했는가, 그러니까 그런 노력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그 때문에 결과물이 조금 어설퍼 보이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대로 사회파 작가라면 어두운 사회적 이면을 들쳐내고 문제점을 두각시키며 등장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잘 표현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보게 됩니다. 그리고 트릭이 조금 단순해 보이고 범인이 뻔히 드러나 보이더라도, 앞에서 말한 사회파 미스터리의 맛을 잘 살렸다면 그래도 괜찮은 소설이다고 결론 짓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소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주저없이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소설은, 치킨으로 비유하자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켜먹은 것이 아니라, 양념 한마리에 후라이드 한마리를 더 시켜먹은 것과 같습니다. 소설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한 것 이상의 것을 얻은 포만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강력히 추천한 추리소설은 본격과 사회파 양쪽 모두를 잘 버무려 놓은 소설인 경우입니다. 특히 요즘에 발표되고 있는 소설들은 잘 깍이고 다듬어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님은 일본 작가들 사이에서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주로 일본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던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도 근본적으로는 장르소설에 몸을 담고 있는 작가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장르소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세이초 님처럼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셨던 작가인 경우에는 더욱 그런 궁금증이 생겨 납니다. 트릭을 먼저 생각해내고 살인 동기에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할까, 아니면 문제 의식을 담은 주제를 정한 다음에 사건과 트릭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사회파 작가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추리소설 작가이였기에 '추리'의 요소가 분명 존재할 트릭을 실은 소설을 써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각종 기계적인 트릭과 과학적인 지식에 대해 메모하듯 작은 글을 써보기도 하고, 또는 그런 글들을 모아서 발표하기도 할 것입니다.



본격으로 시작해서 사회파로 귀결하는 세이초 단편들의 흐름.

습작처럼 남겨진 그의 글들이 궁금하다면.



    「불과 해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글입니다. 사회파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님이 본격의 트릭에 비중을 두고 쓴 단편 추리소설입니다. 아무래도 단편이다 보니, 장황한 시대의 모습과 깊이있는 문제를 담아내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가 쓴 본격의 모습, 혹은 본격을 우선시 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무척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본격다운 모습을 하고 굉장한 트릭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알리바이 트릭을 보이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세련된 추리소설의 트릭에 비해서 낡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요즘의 작가들 대부분이 세이초 님의 글을 읽고 느끼며 공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볍게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 불과 해류」외에 「 증언의 숲」, 「 종족동맹」, 「 산」이라는 세 편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특히 「 증언의 숲 」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인을 인정하고 번복하고, 또 범행사실을 인정하고, 번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증인의 진술도 인정과 번복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을 고백한다며 진실인 듯 말하는 모든 진술이 어느 순간부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거짓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는 증언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알아낼 수 없는 재판은 하나의 광대놀이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세이초 님의 소설은 본격으로 시작하는 듯 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사회파로 귀결하는 것일까요.







    '실종'은 웰메이트 영화긴 했지만, 실제 사건 앞에서는 결국 인공적인 것일 뿐이었다. 신키치는 실망했으나, 어쨌든 2시간 동안 오락적인 위안을 받은 것에 대해 약간의 만족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섰다. (38쪽)



    외견상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작업을 그들의 마음은 시험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접착제를 찾고 있었다. (72쪽)



    그 근처에서 쇼핑을 한다면서 아내와 헤어졌을 때, 갑자기 이대로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묘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불안의식을 현대인은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84쪽)



    단언할 수는 없어. 즉 사실은 뒷받침하는 건 대부분 우리의 추리지, 사실과 사실의 일치는 아니야. 사실과 추리의 조합이지. (126쪽)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됐다." (중략)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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