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해류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하윤 옮김 / 해문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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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일본 추리소설을 손에 쥐면 작가가 본격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인지,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인지를 알아보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본격을 주로 쓰는 작가라면 트릭이 얼마나 참신한가, 혹은 섬세하고 정교한가를 따져가며 그 부분을 집중해서 봅니다. 비록 범죄 동기가 조금 생뚱맞은 경향이 있더라도 그 생뚱맞음을 작가가 얼마나 자연스레 보이도록 노력했는가, 그러니까 그런 노력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그 때문에 결과물이 조금 어설퍼 보이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대로 사회파 작가라면 어두운 사회적 이면을 들쳐내고 문제점을 두각시키며 등장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잘 표현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보게 됩니다. 그리고 트릭이 조금 단순해 보이고 범인이 뻔히 드러나 보이더라도, 앞에서 말한 사회파 미스터리의 맛을 잘 살렸다면 그래도 괜찮은 소설이다고 결론 짓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소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주저없이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소설은, 치킨으로 비유하자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켜먹은 것이 아니라, 양념 한마리에 후라이드 한마리를 더 시켜먹은 것과 같습니다. 소설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한 것 이상의 것을 얻은 포만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강력히 추천한 추리소설은 본격과 사회파 양쪽 모두를 잘 버무려 놓은 소설인 경우입니다. 특히 요즘에 발표되고 있는 소설들은 잘 깍이고 다듬어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님은 일본 작가들 사이에서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주로 일본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던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도 근본적으로는 장르소설에 몸을 담고 있는 작가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장르소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세이초 님처럼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셨던 작가인 경우에는 더욱 그런 궁금증이 생겨 납니다. 트릭을 먼저 생각해내고 살인 동기에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할까, 아니면 문제 의식을 담은 주제를 정한 다음에 사건과 트릭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사회파 작가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추리소설 작가이였기에 '추리'의 요소가 분명 존재할 트릭을 실은 소설을 써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각종 기계적인 트릭과 과학적인 지식에 대해 메모하듯 작은 글을 써보기도 하고, 또는 그런 글들을 모아서 발표하기도 할 것입니다.



본격으로 시작해서 사회파로 귀결하는 세이초 단편들의 흐름.

습작처럼 남겨진 그의 글들이 궁금하다면.



    「불과 해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글입니다. 사회파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님이 본격의 트릭에 비중을 두고 쓴 단편 추리소설입니다. 아무래도 단편이다 보니, 장황한 시대의 모습과 깊이있는 문제를 담아내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가 쓴 본격의 모습, 혹은 본격을 우선시 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무척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본격다운 모습을 하고 굉장한 트릭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알리바이 트릭을 보이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세련된 추리소설의 트릭에 비해서 낡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요즘의 작가들 대부분이 세이초 님의 글을 읽고 느끼며 공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볍게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 불과 해류」외에 「 증언의 숲」, 「 종족동맹」, 「 산」이라는 세 편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특히 「 증언의 숲 」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인을 인정하고 번복하고, 또 범행사실을 인정하고, 번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증인의 진술도 인정과 번복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을 고백한다며 진실인 듯 말하는 모든 진술이 어느 순간부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거짓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는 증언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알아낼 수 없는 재판은 하나의 광대놀이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세이초 님의 소설은 본격으로 시작하는 듯 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사회파로 귀결하는 것일까요.







    '실종'은 웰메이트 영화긴 했지만, 실제 사건 앞에서는 결국 인공적인 것일 뿐이었다. 신키치는 실망했으나, 어쨌든 2시간 동안 오락적인 위안을 받은 것에 대해 약간의 만족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섰다. (38쪽)



    외견상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작업을 그들의 마음은 시험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접착제를 찾고 있었다. (72쪽)



    그 근처에서 쇼핑을 한다면서 아내와 헤어졌을 때, 갑자기 이대로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묘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불안의식을 현대인은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84쪽)



    단언할 수는 없어. 즉 사실은 뒷받침하는 건 대부분 우리의 추리지, 사실과 사실의 일치는 아니야. 사실과 추리의 조합이지. (126쪽)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됐다." (중략)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다." (16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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