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자살생존자'라는 단어를 보고 글쓴이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살아남았고, 생존해서 삶을 살아보니 인생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말하려는 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살생존자라는 용어는,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자살로 인해 세상에 남겨진 사람,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의 그림자를 읽다』의 저자 질 비알로스키는 그런 자살생존자입니다. 막내 동생이 1990년에 자살하면서 그녀는 자살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라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란 참으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살한 사람들'이라는 범주 안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여기며 한데 모아 담아놓으려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선택한 자살이라는 결정이 결과로만 보이고, 자살까지 이르게 된 과정은 쉽게 생략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굉장히 복잡하고, 또 복합적이며, 시작도 원인도 찾기 힘든 내면의 고통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정확한 원인을 집어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당연히 살아있었던 당시의 당사자도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무튼 그들의 선택은 결국에 자살이었지만, 사람들마다 매우 다양한 자살의 원인을 가집니다. 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이 책에서 저자가 찾고 싶은 해답은 그녀의 동생, 킴에게만 해당하는 '왜'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해답을 구하기위해 동생 킴에 관련된 모든 흔적과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봅니다. 이 책에선 그것을 '심리적 부검'이라고 합니다. 동생이 남긴 일기, 동생이 했던 말, 그리고 행동들. 동생의 친구들, 부모와 언니들. 집과 학교. 동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자살의 징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저자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동생의 자살 이유를 읽어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보인 그런 노력은, 동생을 이해하고 애도하며 기리기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자 자신을 위한 행위였다고 여겨집니다. 동생이 자살한 날을 기점으로 저자의 인생은 전과 후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삶은 계속해서 이어질 연속적인 것이기에 저자는 그래도 살아가기위한 행동과 사고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경험담을 이 책을 통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 자살생존자들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중심은 자살한 동생 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저자 자신에게 있습니다. 결국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에 대한 기억은 자신의 추측과 느낌에 기인한 감상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킴이 자살한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생이 자살한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슬픔과 상실에 대한 자신의 감상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정신과전문의의 말을 인용하여 킴의 내면을 파고들어 심리적 부검을 하려고 시도해보지만, 저자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절대로 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 그 사건 이후 저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탓인지 이 책에 담긴 글에서도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에서 변덕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자살한 동생 킴이 무척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 결국 그녀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킴의 언니였던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할 자신만의 어떠한 세계를 확실히 만드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막을 둘러놓아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녀가 킴을 생각하며 쓴 글과 그녀가 이 책에 모아둔 자살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은 사건 이후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최소한의 노력을 행하기 위한 글로 여겨집니다. 동생이 자살한 이유는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는 일종의 변명과 동생에게 그것을 전하는 편지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불편했습니다. 저자 자신의 사생활을 파헤치면서까지 무리한 고백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동생은 동생대로 더 처참한 상태로 해부당해졌고, 저자는 저자대로 원하는 답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킴 뿐만 아니라 모든 자살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살아돌아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고, 모두가 패자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통해 질문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다른 자살생존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저자와 동질감을 느끼고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들이 원하는 답은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살을 이해하는 것은 잡히지 않는 삶의 환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 공포, 나약함의 힘. 그 힘은 바다처럼 신비롭고 거칠고 복잡하고 통제가 안 되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파괴력이 있다. (16쪽)



    우리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 즉 우리의 말은 그저 공허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37쪽)



    나는 몇 달 동안 이 이야기를 쓰며, 나의 어린 시절을 면밀히 되새기고 킴의 삶을 재구성해서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고자 애쓰고 있다. 내가 쓰고 있는 동안 마치 킴이 되살아나 키보드 위에 내 손가락들을 이끌며, 내가 공개해도 좋은 이야기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108쪽)



    십대의 자살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자살자들 사이에는 완벽주의라는 공통점이 있고,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가 십대들에겐 좌절감과 절망을 배가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절망감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곧 시도가 된다. (202쪽)



    가끔은 우리 자신의 본성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우리가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목숨을 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23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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