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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ㅣ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헝거게임의 모습은 <배틀 로얄>과 비슷합니다. 열두 구역에서 소년 소녀 한 명씩을 차출해 총 스물 네 명의 아이들이 야외 경기장에 갇힙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이 살아 남을 때까지 생존게임은 계속 됩니다. 또 이 게임은 전국에 생중계 됩니다. 과거 반란을 일으킨 열두 구역 사람들에게 싸움은 곧 죽음이라는 교훈을 주기위한 행사라고 하지만, 이미 열두 구역의 사람들은 이런 식의 불합리한 게임에 저항할 의지도 없고, 싸움을 걸어볼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매년 자신의 아들딸들을 헝거게임에 보냅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헝거 게임이 벌써 74회를 맞이했습니다.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에서 보여준 미래의 모습은 참으로 암울합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굉장히 심하고, 빈곤층의 사람들은 그런 격차를 줄이려 하기보다 내일 먹고 살 걱정만을 하며 행여나 법을 어기다 형벌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 염려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헝거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이들은 이미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게임을 하고 있으며 수동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는 소설 속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지금의 현실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헝거게임의 우승자는 일약 대스타가 되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 한방이라는 말처럼 시궁창같은 삶에서 벗어나 상류층 사회에 오르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오로지 헝거게임에 참여해서 경쟁자들을 모두 죽이고 밟고 일어서야만 가능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경쟁자들 중에서 친구도 동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은 단지 경쟁해야할 대상이며 단 한 명의 우승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로또 당첨과 같은 행복을 쟁취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음 뿐이라는 설정이 참으로 잔인해 보입니다.
헝거게임의 참가자는 로또와 같은 확률의 추첨을 통해 선별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불공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아이들과 부유한 자의 아이들이 헝거게임 참여자로 선택될 확률이 다를 수 있다는 규칙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공평한 규칙에 대해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납득하며 그것도 괜찮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현실 사회에서 세계의 아이들은 모두가 다같은 아이들로 보이지만, 누군가는 경기장 트랙의 몇발 앞에서 출발할 수 있고 누군가는 몇발 뒤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공평한듯해 보이는 현실이 실제로는 불공평하다는 것, 그런데 아무도 그걸 불공평하다고 여기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또한 굉장히 잔인해 보입니다.
이런 잔인함은 소설의 게임이 어린 아이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더욱 잔혹함을 보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내몰리게 될 현실은 정말로 헝거게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랑도 우정도 동료도, 모두 임시적인 동맹일 뿐 결국 마지막에는 배신과 음모로 경쟁자들을 죽여서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 그런데 그것을 어린 아이들이 해야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배워가고 우정을 이해할 나이의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어리기 때문에 무엇이든 처음이고 이제서야 차츰 알아가게 된다는 사춘기 때의 감정의 기복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내몰리게 된 현실과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들, 예측할 수 없어서 우연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세상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헝거 게임』을 읽었습니다. 가상의 현실같은 소설 속 세상에서 주인공이 세상의 규칙을 바꿔버렸으면 하고 기대했습니다. 게임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으며, 강압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절대 굴복하지 않고, 완전한 체제의 전복을 이뤄냈으면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엔 규칙과 체제내에서 조금의 꿈틀거림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현실이나 마음 먹은대로,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대로 돌아가라는 법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헝거 게임』 3부작의 이야기 중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니 뒤에 이어질 이야기에서는 제발 통쾌하게 세상이 뒤집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낸 세상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배고픔'에 굴복해야만하는 세상이 아닌, 사랑과 평화, 우정, 동료애가 느껴지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헝거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반란을 일으킨 대가로 열두 구역들은 매년 소년 소녀 한 명씩을 참가시켜야 한다. 총 스물 네 명의 조공인들은 드넓은 야외 경기장에 갇히게 된다. 타는 듯한 사막부터 영하의 불모지까지 그 어느 곳이든 경기장이 될 수 있다. 조공인들은 몇 주 간에 걸쳐,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단 한 명의 조공인이 승리자가 된다. (22쪽)
캐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나는 그저 헝거 게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148쪽)
한순간 나는 거의 바보처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가 혼란에 휩싸인다. 우리는 이 연애질을 연기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척 하고 있는 것뿐아닌가? (301쪽)
다시 달이 찰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저 달이 나의 달이기를, 내가 12번 구역 주위의 숲에서 보던 그 달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든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초현실적인 이 경기장에서 진짜 달을 본다면, 무언가 매달릴 대상이 되어 줄 것 같다. (31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