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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업 Coming Up 1
기선 지음 / 북폴리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한 시청자가 주말 저녁 TV에 나오는 한 가요 프로그램을 봅니다. 새삼 새로울 것도 없지만, 매번 이미 알고 있는 가수보다 처음보는 가수들이 훨씬 많은 것에 놀랍니다. 아하, 또 어떤 무리들이 새로 그룹을 결성해서 나왔구나. 다음 주부턴 TV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겠지. 노래와 춤을 보니 다음 앨범 작업 또한 장담할 수 없겠구나. 그렇게 해서 어디 가수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으려나. 일단 TV를 통해 만난 그들의 첫인상은 대부분 약간의 질투심에서 우러난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게 됩니다.
한 신인 아이돌은 그래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TV에 나와서 시청자들의 평가와 팬들의 반응―비록 냉소적일지라도―을 접한 신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출연이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큰 자본력을 가진 기획사의 아이돌이라는 점. 이들은 이 바닥 중에서도 비교적 따뜻한 빙산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신인일 것입니다. 빙산의 아래쪽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인들의 경우엔 연습생의 신분으로 몇년 동안 땀을 흘러가며 힘들게 준비했건만, 결국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꿈의 데뷔 무대에 서는 일없이 실패작으로 남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빙산의 아래쪽에서 위쪽을 수면 밖으로 들어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 유명한 연애기획사 사장이 명함을 내밉니다. 연애인 한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말이지요. 호기심과 기대감에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중간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결론만 바로 말씀드리자면, 제2의 장자연 사건이 되어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듭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몰라서 모를 뿐이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이시각 어디선가에도 이런 모습을 하고 유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의 사탕발림 제안이 건내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한 매니저가 또래의 아이 한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는 같은 팀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가 특별히 노래를 잘 하거나 춤을 잘 춰서 팀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같은 지향점이 추구하기에 의기투합해서 동행하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 팀에 합류하는가 하면 이 아이는 예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짜피 그룹은 돌아가면서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니까 랩 비슷하게 중얼거리는 한 소절의 파트만 주면 된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일종의 얼굴마담이라고나 할까요. 원래 그룹은 이런 식으로 결성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한 연습생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파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멀리 유학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그 연습생이 다시 연습실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외모가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아니, 발전했습니다. 아파서 몇달간 병원에 입원했더니 외모가 조금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젖살이 빠지다보니 조금식 예뻐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본 다른 연습생들은 사장님의 권유로 모두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다섯가지 '한' 이야기들은 『커밍업』에 담겨진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의 밝고 명랑한 걸그룹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도전이 이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걸그룹 만들기라고 하면 이런 갈등구조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또 반대로 웹툰이라면 매번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만 담을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책을 본 느낌이 참으로 이랬다저랬다, 제 자신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어른의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으로 봐야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웹툰을 보고 아이돌이 되길 꿈꾸는 어린 청소년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들에게 세상은 꿈과 희망, 그리고 우연과 행운, 꾸준한 노력보단 크게 대박으로 한몫 잡아볼 생각으로 가득찬 세상일 것입니다. 세상은 담임만큼이나 만만한 모습을 한 채 쉽게 돌아갈 것이고, 보기 싫은 어두운 장면은 외면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웹툰『커밍업』은 굉장히 밝고 명랑한 모습의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계속해서 어두운 쪽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커밍업』은 제가 했던 이야기들과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했던 노력들이 이들이 얻을 영광과 보상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이들이 겪는 아픔과 좌절이 현실적이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 그런 갈등구조까지 섬세하게 담아놓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매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깊이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책 속의 어린 친구들이 꼭 멋있는 가수가 되어서 해피엔딩했으면 좋겠습니다. 양쪽 모두에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