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요코미조 세이시의 77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초창기 작품 정도로 분류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왔던 작품들이 대부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 지금까지 소개된 그의 작품들도 이때 발표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덟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읽어 봤습니다. 그 중에서 순위를 따지자면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하위권에 위치할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 하위권이란 것도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지,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이구나를 느낍니다. 이정도로 꾸준한 모습을 하고 일정 기대치 이상의 모습으로 평균 이상의 만족을 주는 시리즈는 역시, 대단하구나 입니다.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타는 스타일의 소설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소설 속의 Y라는 작가에게 자신이 겪은 사건을 정리한 정보들을 주고, Y는 이걸 독자들에게 글로 소개한다는 설정을 한 모습이 거의 모든 시리즈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미 Y는 사건의 모든 내막과 트릭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며 사건의 발단 부분부터 글을 써내려가려 하니 뭐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것입니다. 그래서 발단부터 허세를 가득 담아서 괜한 분위기를 몰아가고, 넌지시 증거나 힌트를 흘리듯 알려주려 하는 모습들이 어찌보면 꼴사나워 보이기도 합니다. 괜히 우월감에 도취된 작가가 독자들을 우롱하려 드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바람잡으려 하는 듯 보이고, 그것이 과장되어 보이기도하고 밉상으로 비치기도 하고. 분명 이런 모습들을 보고 반감을 느낀 독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의 추리소설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일부러 알려주는 척 과장된 몸짓을 하고 증거를 보여주고 있더라도 그의 추리소설의 트릭을 푸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건 치밀하게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을 부분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보여주지 않겠다라는 Y의 얄팍한 계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이런 트릭들은 독자가 전혀 알 길이 없는 전쟁 후 일본 사회의 복잡하고 개인적인 가족사와 맞물리면서 한없이 비밀스럽게 엉켜있는 모습이라 절대로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할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양 '사실 내가 알고 있었지만, 조금만 내가 더 일찍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하는 모양의 대사를 날리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밉상스런 모습이 사람을 더욱 열받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풀이를 듣고 그제서야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 수 밖에 없는 저로서는 '또 졌다, 젠장 또 이런 식이냐'라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는 없으니, 그리고 또 다른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읽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나 버리니. 이거 참 알면서도 속는 기분이 드는 묘한 기분입니다.


 

    모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그렇겠지만,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역시 매우 음울한 분위기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소설입니다. 탐미적이고 원색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요코미조 세이시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뱃속에 납덩어리가 내려앉은 듯 무겁고, 뱃속의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꺼림칙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역시 일본답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렇게 금기가 없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다루고 있는 글들을 일본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들어 독자들이 일본소설을 많이 찾고 즐겨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언가 굉장히 일본다운 소재의 꺼림칙한 사건.

이 소설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이 아니라 사회파 소설로 보자.



    한편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흔히 사람들이 평하는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틀 밖에 있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에서야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느끼기에 시대를 꽤 많이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시절의 사람들이 읽기에는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었을 테니 배경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테고 주로 사건의 트릭과 명탐정의 추리에 초점을 맞추며 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람들은 과거 일본 사회와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특히 과거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과 함께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문득 없던 역사적인 의의마저도 생겨납니다. 한 권의 소설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긴다이치 시리즈를 통틀어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팔묘촌』과 마찬가지로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도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제국은행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귀족 제도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몰락해가는 그들 가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굉장히 사회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트릭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회파의 느낌이 더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트릭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억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번거러운 작업을 굳이 해나가야 했던 이유를 명쾌하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찝찝함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밀실 트릭이란 것이 사실 해법을 알게 되면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어린얘 장난 같기도 해서 싱겁게 느껴지는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트릭이 약했던 반면 사회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설정과 그것을 그려놓은 그림이 꽤 괜찮았던 소설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 무서운 사건을 활자화해 발표하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도 음침한 사건이고 저주와 증오에 가득 차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해줄 만한 구석이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9쪽)



    아까부터 이상한 듯 형사의 행동이나 경부의 언동을 지켜보던 긴다이치 코스케는 그 순간 갑자기 박박, 벅벅, 무턱대고 더벅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그, 그, 그럼 경부님, 이, 이, 이건 밀실살인인 겁니까?" (116쪽)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어금니에 뭔가 낀듯한, 혹은 구두를 신은 채 가려운 발을 긁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48쪽)



    "그렇죠, 그렇죠. 그거예요. 그리고 모든 수법의 내막이 어린애 속임수인 것처럼 이 밀실 살인사건의 진상도 꽤 싱거운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만한 건 아니지만요." (410쪽)



    코스케는 이순간을 가능한 한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제부터 시도하려는 비밀의 해명은 거무죽죽하고 음침하고, 게다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그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항상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범죄탐구자로서의 양심과 누구나 갖고 있는 귀찮은 허영심이 그를 선동하는 것이다. (42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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