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시대 - 풀린 돈이 몰고 올 부의 재편
김동환.김일구.김한진 지음 / 다산3.0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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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마이너스 금리나 헬리콥터 머니 이야기가 많이 돌면서 온 세상이 디플레이션에 빠져 일본처럼 된다는 공포가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시장에선 어떤 현상이 극적으로 나타날 무렵이 단기 변곡점인 경우가 많다. 되돌아보면 그 때가 금리 바닥이었다. 그때 지배적인 분위기에 젖어서 투자했다면 성공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인플레이션까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은 극단적인 디플레이션 심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실업률에 비해서 여전히 낮은 물가는 앨런 의장에게도 미스테리하다. 


그러면 이제 디플레이션은 당분간 안녕이고 이 책의 말대로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할까? 유수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해온 3인의 대담집인 이 책에서는 "그렇다"고 하고 있다. (물론 과거와 같은 초인플레이션 주장은 아니다) 트럼프가 주도할 저금리와 재정 정책에 의해, 그리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라 그동안 수출로 먹고살던 국가들이 자국 내수부양에 나선다. 그리고 트럼프의 리쇼어링 정책은 4차 산업혁명을 더욱 자극한다. 따라서 미국 경기는 앞으로도 양호할 것이다. 자산시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버블을 맞은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트럼프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레이건 같은 공화당 스트롱맨 대통령의 정책과 비교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보면 트럼프의 정책 노선이 특별히 비정상적인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발언이 좀 튈 뿐이다. 그래서 그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주류 언론을 통해 보다보면 그 시각에 젖어들어 중요한 부분을 놓칠수도 있다. 실세였던 배넌이나 사위 크슈너는 뒤로 밀렸고 이제 골드만 alumni와 군부세력이 포진해있다. 트럼프는 비지니스맨이고 지기 싫어한다. 불명예스러운 퇴진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것이고 연임이 가장 큰 목표다. 얼마나 획기적일지는 알 수 없으나 재정정책도 시장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나올 수도 있고, 연준 인선도 크게 무리가 없는 선에서 해낼 수도 있다. 


저자 3인 중에서는 김일구 센터장이 제일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가지 기억에 남는 말이 많았다. 그는 몇몇 좋은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건 좋지만, "중국 증시"에 장기투자 하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중국 지수에 많은 부분을 은행이 차지하고 있는데, 신흥국으로써 앞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해야 하고 계속 증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성장 이머징 국가 증시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거둘거라는 믿음도 비판한다. 주식을 산다는건 주주가 된다는 얘긴데, 신흥국에서는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이익 배분에 있어서 종업원이나 정부, 또는 사회에 상대적 우선권을 주도록 충분히 강제할만한게 그들 국가다. 


한국은 3만~4만 달러에서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있는데, 여기서 한단계 도약하려면 혁신 밖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기보단 주어진 답을 풀어내는 데 익숙하다. 체질이 쉽게 바뀌는건 아니지만 혁신적 사고를 장려할 수 있는 제도 개선과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라고 대기업만 때리고 중소기업을 키운다고 경제가 좋아질 수 없다는 그의 지적에도 공감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투자에 있어 변동성이란 개념을 삶에 어떻게 끌어들이고 어떤 의미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나 자산배분의 관점도 흥미롭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스피커 3명이 제각각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형태라는 점이다. 분량이 적고 질문을 주로 던지는 사회가 있고, 여당과 야당이 있는 식이면 좀 구도가 선명할거다. 이 책은 그렇지는 않다. 다소 중구난방식이다. 시간이 없다면 김일구 씨 멘트만 보고 줄줄 넘겨도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분량은 가장 적다. 이분은 왜 따로 책을 안 쓰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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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 경제 혁명 100년의 회고와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
로버트 J.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 김두얼 감수 / 생각의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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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뉴 노멀'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저성장, 저금리, 저인플레가 지속되는 환경이다. 이면엔 천문학적 부채가 쌓여있고, 반대편엔 천문학적 저축이 쌓여있다. 근저엔 낮은 생산성이 있다. 미국 경제를,아니 세계 경제의 펀더멘털을 가장 잘 투영한다는 미국 10년 금리는 고작 2%언저리일 뿐이다. 바짝 힘을 내봐야 2.8% 부근을 잠깐 터치할 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슨 저주라도 받은걸까? 사람들이 집단최면 이라도 걸린건가? 거대한 착각인가? 아니면 축복인걸까? 금융은 단순히 사자와 팔자가 맞물려서 금융공학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이 아니다.결국 시장은 실물의 그림자다. 아무리 연준이든, 미국이나 중국 정부든, 또는 검은 정부든 장기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는 없다. 


결국 고통스러운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 저생산성은 실물으로부터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한마디로 이렇게 볼 수 있다. "알파고보다 냉장고가 인류에는 훨씬 큰 기여를 했다." 알파고니 자율주행차가 나온다고 해도 20세기 초반무렵 상하수도 시스템과 냉장고, 초기 자동차만큼 인간을 해방시키고, 생활수준을 높힐 수가 있나? 이 책은 단언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물론 전망은 어렵다. 틀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과거를 되돌아 봤을때 그 영향이 압도적이라면, 전망이 크게 틀리지 않는한 맞는 말을 하게 된다. 이 책에도 전망보다는 회고가 많다. 과거의 변천사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세심한 자료와 묘사를 보고 있자면, 사실 압도감을 느낀다. 크게 전망을 하지 않더라도 설득당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저자도 틀릴 수 있다. 겸손한 저자는 책 속에서 전망의 어려움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거의 충실한 회고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인류는 그간의 노력과 발전에 대해 스스로 너무 과소평가해왔다. 실제로 이 책에서 여러번 지적하는 부분도 20세기의 획기적인 발전이 정량적 GDP 통계에는 너무나 과소평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저자의 주장에 동감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한계는 미국만을 다뤘다는 점이다. 미국만 보다보면 중국이나, 인도 또는 다시 떠오를 어떤 나라를 놓칠 수 있다. 미국의 1920년대가 한국에서는 1960~70년대, 중국에서는 1990년대, 2000년대의 천지개벽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은 없지만, 지구상에서 다음 후보지는 충분하다. 인도나 중앙아시아, 또는 아프리카가 어쩌면 Next가 될 수도 있다. 현상만 봐서는 어렵다고 보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그렇다. 1950년대, 60년대 지금의 중국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면에서 <The rise and fall of global growth>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까도 언급한 전망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싶다. 뉴노멀도 뉴노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정말 인류의 미래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달이나 화성, 또는 우주개발이라도 본격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발측한 상상을 해보자면 그렇다. 만약 그런일이 벌어진다면, 이 책은 또 하나의 신화로 남을 것이다. 이래저래 문제적 저작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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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히어로즈 - 꿈을 성공으로 이끈 창의적인 엔지니어 스토리 헬로! 사이언스 시리즈 1
권오상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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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이나 엔지니어하면 낯설고,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실험식에 쳐박혀서 뭔가 알수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게 그들 아닌가 싶다. 한때 금융이 선진국들이 하는 고급 산업이고 기름때 묻고 더러운 제조업은 줄이고 금융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적인 부를 증진시키는건 엔지니어들의 몫이 크다. 한국에서 이만큼 전자, 자동차, 기계, 원자력, 조선 등 다방면에서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며 경제발전을 이룬것도 사실 산업일선에서 묵묵히 엔지니어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병철, 이건희, 정주영 같은 재벌 회장들을 칭송하기에 바쁘지만 말이다. 물론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그 분이 직접적인 엔지니어들은 아니었지만 엔지니어적 마인드가 충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실상 엔지니어였다. 그리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를 존중하고 잘 케어해줬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최고 인재들이 공대로 몰렸지만, IMF외환위기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의대가 더 각광받는게 현실이다. 한국도 IT강국이다 해서 앞서는 듯 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새로운 트렌드에서는 한발 뒤쳐져 있는게 현실이다. 엔지니어를 홀대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데서 이런 상황이 오는게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저자도 기계공학 박사까지 하고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금감원에서 일하시며 다방면에서 독특하고 인사이트 넘치는 책을 쓰신다. 이번엔 고향(?)인 엔지니어링을 잊지 않고 핫한 8개의 최첨단 회사와 슈퍼스타 엔지니어를 다루는 책을 썼다. 저자는 말한다. 정말 큰 돈을 벌고 싶으면 엔지니어링을 공부해서 창업해서 자신의 회사를 키우는게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미국에서??) 그리고 누가 시키는대로 근근히 일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밥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세상에 기여를 한다. 그 보상으로 여기에 소개되는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한국 돈으로 수조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8개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전압이 높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건 공대를 나오지 않은 특급 엔지니어들이다. 바로 혁신적 선풍기와 진공청소기를 만든 다이슨과 놀라운 이동기구인 세그웨이를 만든 데카이야기다. 데카의 데이먼은 직원들에게 답을 풀지말고 문제를 풀라고 주문한다. 다이슨에 다르면 엔지니어링은 학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 상태였다. 다이슨은 기존의 불편함을 혁신한 새로운 개념의 청소기를 만들기 위해 창고에 쳐박혀서 5,127번의 시제품을 만들고서야 성공했다. 


과학과 엔지니어링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명쾌하다. "과학은 있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고, 엔지니어링은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과학은 왜(Why)에 대한 것, 엔지니어링은 안 될께 뭐야(why not)?에 대한 것이다. 이는 혁신신적 엔지니어들에게 기존 관습을 뒤집는 반항아적 사고방식이랄까, 삐딱하게 보는 태도가 있음을 뜻한다. 실제 여기에서 소개된 대부분 엔지니어들은 학창시절에 대단한 학점을 받거나 학업태도가 성실하지 않았다. 그대신 새로운 물건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꿈이 있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은 한번에 되는 일이 없다. 다이슨이 5천번이나 시제품을 만들고 세상에 없던 청소기를 내놨듯이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정신상태가 엔지니어다.


모쪼록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어둠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됬으면 좋겠다. 그들을 더 우대하고, 대우해주고 격려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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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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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소설은 별로 안 읽었다. 비소설 위주로만 읽었다. 솔직히 소설이나 시는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이걸 읽어서 뭐하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나라도 새로운 지식이나 사실을 더 아는게 낫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역사나 경제, 금융 같은 비소설 위주로 끌렸다.


그러다가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소설을 읽어보니 너무 재밌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들을 따라가는 게 흥미로웠다. 기쁘기도 하고 슬픈, 안타깝고, 절절한 여러가지 감정을 겪어 나가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굳이 뭔가를 얻는게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읽는 순간 자체가 즐거우니 영화나 드라마 감상과 비교해서 괜찮은 시간보내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차츰 고전이나 현대 영미 소설, 한국 소설로 넓혀가며 이런저런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역설하는 책은 많겠지만, 이 책만큼 다채롭고 젊은 감각으로 설득력있게 제시한 책이 있을까 싶다. 50여명의 독자들과 함께 6일에 걸쳐 한 강의를 정리한 이 책에서 작가 김영하는 <마담 보바리>, <돈끼호테>, <호메로스>, <오딧세이> 등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서의 다양한 면을 풀어놓는다. 


인상적인 부분이 여럿이다. 우선 "책 속에는 길이 없다"는 말이 눈에 띈다. 보통 알고 있는 "책 속에 길이 있다"와 반대되는 내용이다. 독서는 작가가 설계한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메는 경험이라는 뜻이다. 독자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해석을 해가면서 하나의 내면을 덧씌운게 된다. 그런 과정이 충첩되면서 결국에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 속에는 길이 없는데, 또 길이 있기도 하다.


<리어왕>과 <오디이푸스 왕>을 예로 들어 독서를 통해 내면에서 자라고 있는 오만(휴브리스)과 투쟁한다고 본 부분도 인상적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무너지며 자아의 한 부분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는 것이 독서다. 안정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잘나고 훌륭한 인물들이 겪게되는 오만과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을 보면서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그들과 다를 바는 무엇인가라고 느낀다. 독자 자신의 오만과 무지를 돌아보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비평가 해럴드 브룸을 인용한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책속에서 즐겁게 기꺼이 헤맬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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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펀드매니저와 거래하라 - 냉혹한 투자 게임에서 내 돈을 지키려면
찰스 D. 엘리스 지음, 이건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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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하신 이건 님은 훌륭한 번역자다. 번역을 매끄럽게 할 뿐만 아니라, 워낙에 양서를 잘 골라서 번역한다. 이 분이 번역한 책을 몇권 읽었는데 전부 아주 훌륭했고 배울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본 제목이 좀 마음에 안든다. 협소하고 잘 안 와닿는다. 원제는 <Winning the loser's game>다. '패자 게임'에서 이기자는 거다. '패자 게임'이란 테니스나 탁구 같은 게임에서 잘 하는 사람보다 실수를 안 하는 쪽이 이기는 걸 말한다. 굳이 고급 기술을 익힐 필요도 없다. 그냥 네트만 잘 넘기는 쪽으로 집중하다보면 상대편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점수를 쌓아서 이기게 된다.


이걸 투자에 적용시켜보자. 다른 투자자들을 이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고민하지 말고 인덱스에 투자하면 된다. 교수들이 논문으로 써낸 효율적 시장가설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집단도 있고, 반대하는 집단도 반반쯤 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개인 투자자가 아닌 기관중심으로 재편되고 많은 분석가과 펀드매니저가 분석에 몰두할수록 그들의 의견이 집단적으로 반영된 인덱스를 이기기는 점점 어렵다는건 정설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과거에 그랬고 2000년대 이후 한국 시장에서도 관측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돈은 유명하다는 펀드에서 나와서 ETF쪽으로 흘러간다. 이건 글로벌한 추세다. 그런데 워낙 생물체 같은 시장이라, 이런 흐름이 극단으로 가면 또 어떤 반작용이 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해 하고 있긴 하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이긴 매니저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시장수준으로 수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렇고 하워드 막스의 명저 <투자에 대한 생각>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평균 회귀' 개념이다. 매니저의 특성을 지지해온 시장의 스타일이 180도 바꿀 수도 있다. 매니저가 계속 잘하다보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다. 잘하는 매니저에게 돈이 점점 몰리다보면 포트폴리오가 시장에 가까워지고 엣지를 발휘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장기간으로 시장을 꾸준하게 이기는 사례는 그만큼 희귀하다. 


인덱스에 의한 분산투자 뿐 아니라 장기투자를 강조한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공포와 탐욕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식 투자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식의 시각이 많다. 시장은 불안하고 펀드매니저도 못 믿겠으니 아예 짧게 치고나오자는 식의 투자관도 많다. 분기도 길고, 월간이나 주간단위 수익률에 집착해서 매니저를 달달 볶는게 일부 투자자들의 문화다. 


그러나 장기로 보면 노이즈와 감정이 희석되고 이성이 남는다. 논리적인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장기로 보면 이론에 따라 예측한대로 수익이 나온다. 그래서 합리적인 투자, 잃지 않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장기로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진짜 투자다. 특히 수백조, 수십조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이나 기관들은 이러한 틀과 관점 속에서 자산배분을 하고 원칙을 세워서 장기로 투자한다.


펀드매니저의 관계에서도 저자는 "위대한 고객이 위대한 펀드 매니저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성과는 표본에서 추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매니저가 잘하는지 판가름하고 싶다면 충분히 장기간 지켜봐야 된다. 투자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매니저를 볼 때 최근 단기성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리 합의된 투자 철학과 원칙을 어기지 않았는지 등을 잘 보는게 낫다.


그밖에도 장기간 투자할때 인플레이션이나 세금의 영향, 장기 자산배분시 유의점, 주식이나 채권의 기대 장기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인들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워드 막스의 <투자에 대한 생각>에 비견될 정도로 양질의 조언과 인사이트로 가득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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