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현실에 근거한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김훈의 <남한산성>이 100쇄를 찍고 판갈이해서 새로 나왔다. 그림도 새로 들어갔는데, 글과 잘 어울린다. 띠지를 보니 올해 가을에 영화도 개봉하는 모양이다. 쇠락하는 명만 섬기다가 청의 침입을 받고 남한산성으로 도피해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서날쇠라는 인물이 눈에 띤다. 산성 안에는 어쩌지도 못하면서 말의 전쟁만 넘쳐난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실천적인 인물이 대장장이 서날쇠이다. 직접 농기구와 병장구를 생산하며, 훌륭한 거름을 만들어 소출을 높힌다. 임금의 문서를 포위망을 뚫고 밖으로 내보내는 어려운 임무도 기지를 발휘해서 수행한다. 소설은 그가 대장간에 돌아와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장비를 수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임금과 사직의 굴욕과는 별개로 백성들의 일상은 이어진다는 얘기다.

임진왜란 때의 조정도 그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현실과 실리에 동떨어져서 명분이나 당위만을 내세운 말들로 조정은 넘쳐났고 번번히 이상한 의사결정을 하며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군사와 백성들이 뒤집어 쓴다. 조선시대 유교나 성리학 문화라는 게 이런 식으로 흐르다보니 결국 나라는 안타깝게도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실학이라는 실리를 추구한 흐름이 나왔다고하나 큰 흐름을 바꾼건 아니다. 

오늘날에도 말잔치는 여전하다. 물론 정치적 의견대립이나 자신과 자신이 대변하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야 동서고금 인간세상에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 근거가 없는 개념이나 낙인으로 공격하고 배척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선 더 서날쇠가 필요하다.

김상헌은 최명길에게 "웃으면서 곡하려는 자"라고 비난한다. 최명길은 그에 반발하지 않고 수긍한다. 마땅히 그럴때는 그래야 한다는 거다. 사실 두 사람을 놓고 누가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각자의 입장을 가지게 되는거는 원래 성향이나 인생관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적 필요에 의한 걸까. 두 사람은 정적이면서도 서로를 존중했고, 저자에 따르면 말년에 같이 감옥에 갇혀서 진정한 화해를 이뤘다고 되어있다.

마지막 저자 후기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이 두 인물에 대해 논한 일화를 소개한 부분이 흥미롭다. 그는 "최명길을 긍정하오. 이건 김상헌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인권운동가와 민주투사이면서도 훌륭한 현실적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