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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예전에 소설은 별로 안 읽었다. 비소설 위주로만 읽었다. 솔직히 소설이나 시는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이걸 읽어서 뭐하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나라도 새로운 지식이나 사실을 더 아는게 낫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역사나 경제, 금융 같은 비소설 위주로 끌렸다.
그러다가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소설을 읽어보니 너무 재밌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들을 따라가는 게 흥미로웠다. 기쁘기도 하고 슬픈, 안타깝고, 절절한 여러가지 감정을 겪어 나가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굳이 뭔가를 얻는게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읽는 순간 자체가 즐거우니 영화나 드라마 감상과 비교해서 괜찮은 시간보내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차츰 고전이나 현대 영미 소설, 한국 소설로 넓혀가며 이런저런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역설하는 책은 많겠지만, 이 책만큼 다채롭고 젊은 감각으로 설득력있게 제시한 책이 있을까 싶다. 50여명의 독자들과 함께 6일에 걸쳐 한 강의를 정리한 이 책에서 작가 김영하는 <마담 보바리>, <돈끼호테>, <호메로스>, <오딧세이> 등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서의 다양한 면을 풀어놓는다.
인상적인 부분이 여럿이다. 우선 "책 속에는 길이 없다"는 말이 눈에 띈다. 보통 알고 있는 "책 속에 길이 있다"와 반대되는 내용이다. 독서는 작가가 설계한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메는 경험이라는 뜻이다. 독자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해석을 해가면서 하나의 내면을 덧씌운게 된다. 그런 과정이 충첩되면서 결국에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 속에는 길이 없는데, 또 길이 있기도 하다.
<리어왕>과 <오디이푸스 왕>을 예로 들어 독서를 통해 내면에서 자라고 있는 오만(휴브리스)과 투쟁한다고 본 부분도 인상적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무너지며 자아의 한 부분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는 것이 독서다. 안정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잘나고 훌륭한 인물들이 겪게되는 오만과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을 보면서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그들과 다를 바는 무엇인가라고 느낀다. 독자 자신의 오만과 무지를 돌아보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비평가 해럴드 브룸을 인용한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책속에서 즐겁게 기꺼이 헤맬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