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GPE 총서 1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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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시장자유주의가 보였던 이론적․실천적 양 차원에서의 무능을 비판한다. 대립하는 양자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중장기적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해나갔던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역사를 부각시킨다. 이는 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그리지만 근본적인 이념과 가치만 앞세우거나 주먹구구식 운동을 벌이는 한국의 정치세력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책을 읽다보면 경제학자 장하준이 스웨덴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사회적 대타협'같은 모델이 한국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사민당 정부에 자본가들이 협조했던 것은 스웨덴 산업구조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에 스웨덴에서 수출위주의 산업에 비해 내수 중심산업이 더욱 성장함에 따라 세력을 키우며 등장하게 된 신흥 자본가들은 자유무역이나 노동탄압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사민당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정당이 관료보다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스웨덴은 한국과는 정치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런 스웨덴이 한국이 지향해야할 복지국가 모델로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좋은 사회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하나의 지표로서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려면 최대한 유사한 조건을 가진 나라를 그 대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노동 중심의 완전 고용과 모두가 고루 향유할 물질적 풍요를 위한 생산성을 강조했던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 고용 없는 성장과 생태위기가 심화된 오늘날에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결국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현재의 글로벌 정치경제적 맥락 안에서 자국의 현실에 맞는 실현가능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기획하고 제시하면서 경쟁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비그포르스가 몸소 보여주었던 유의미한 가르침에도 부합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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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인민주권 정당론 클래식 1
E. E. 샤츠슈나이더 지음, 현재호.박수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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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츠슈나이더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인민에 의한 통치’였던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는 다른 대의민주주의임을 강조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민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이며, 시민들은 그들 정치세력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상당수의 시민들이 그 과정에 참여하기를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때의 시민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이다. 샤츠슈나이더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투표참여에 대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정치지도자와 정당들이 이슈 제기를 통해 갈등(투쟁)을 조직하고 사회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쉽게 말해 정치세력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896년 이후 수십 년 간 북부에 근거를 둔 친자본 성향의 공화당이 집권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선을 포기하는 대신 남부에서의 영향력을 견고히 유지하려던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암묵적인 담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합으로 인해 굳어진 지역 기반의 보수 양당체제는 유권자들에게 있어 모든 정당 대안을 없애버렸다. 유권자들은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선거 참여를 포기했고, “시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체제”인 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상실했다.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은 지금의 한국을 연상시킨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을 통해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정치가 전국화 되었고, 민주주의는 의미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처럼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제’, 소위 ‘민생’을 갈등의 우선순위로 만들면서 민주정치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한국에서도 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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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지식의 초점 6-003 (구) 문지 스펙트럼 3
박성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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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은 크게 체계적(공시적)인 방향과 역사적(통시적)인 방향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역사적 접근방법을 통하면 시대별 수사학의 부침이 드러난다. 수사학은 어떤 시대의 특정한 조건을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깊은 역사를 지닌 다른 학문들처럼 수사학 역시 고대 그리스의 유산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공간을 창출하면서 수사학의 생성과 발전을 자극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플라톤과 정념의 소피스트 수사학 양극단을 중용으로 이끌어 통합했지만, 수사학의 일차적 목적은 '설득'이며 설득의 기본은 논리라고 여겼다. 자연스레 수사학의 요소들 중 '논거발견 및 배열술'이 부각되었다. 반면 이후로는 미학적이고 문학적인 측면과 관계된 '표현술'이 강조되면서 수사학은 왜소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 이유는 우선 아테네 민주주의가 로마 제정으로 대체되면서 정치적 토론이 예전만큼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중세에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말을 독점했던 까닭에 수사학의 공간이 더욱 협소해졌다. 절대적 권위의 교회가 무너지고 고대가 재발견된 르네상스 시기에야 수사학은 그 지위를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표현술로 '줄어든 수사학'의 경향은 여전했다. 이후 현대 민주주의의 등장으로 수사학의 번영 조건인 제약 없는 공론의 장이 다시 열렸고, 종합적 성격의 수사학이 재조명 되었다.


이렇듯 수사학의 성쇠와 그에 따른 변모는 민주주의의 발전 및 후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한 사회의 공적영역에서 드러나는 언어의 품격은, 그 사회가 가진 민주주의의 질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말들의 성찬은커녕 공허하고 반미학적인 말, 말이 아닌 물리적 대결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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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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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다. 아니,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다. 어린이 동화책 수준으로 성긴데다 남의 사생활을 탐닉하는 관음증 환자같은 기분이 들게하지만 나무들에게 완벽히 죄스러운 책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특수한 연애사에서 보편성을 충분히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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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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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이라는 책을 사고, 또 읽게 된 건 순전히 허지웅에 대한 개인적 호감 때문이다. 그 호감은 멘토라든가 매체에 등장하는 셀러브리티를 향한 수직적 그것이 아니라 지극히 수평적이며, 내 나르시시즘의 반영이다. 그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 그는 나와 유사한 부류의 인간이다. 여성편력 말고 사고나 정서적 측면으로. 그렇기에 내가 공감할만한 얘기들을 책에 담을 것 같았다.

누구라도 쉽게 눈치채겠지만 이 책은 허지웅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니,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다. 가격에 비해 책의 페이지가 너무 적고 페이지 당 활자도 애들 동화책 수준으로 성기게 열 맞춰 누워있다. 게다가 굳이 돈까지 지불하고 남의 사생활을 탐닉하는 관음증 환자같은 기분이 들게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에게 완벽히 죄스러울 정도의 책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사적 연애사의 특수함에서 보편성을 충분히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내가 그를 동종으로 느끼고 있기에 그렇게 여기는지도 모르겠지만.

허지웅의 페르소나인 주인공 김갑수씨는 끊임없이 연애하고 섹스한다. 그는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다. 근데 그의 사랑은 지속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건 고통스럽다. 그래도 그의 연애는 계속된다. 돌이켜보면 연애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다시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파국이 없도록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 연애 후 갑수씨에게 남는 건, '자기'를 객관화시켜 감행하는 '자기' 개선의 여지 희박한 '자기' 성찰 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애 후 자기 성찰의 산물이다. 그 산물은 예상과 다르지 않게 98% 정도 내 직간접적 경험을 통한 사유의 결과와 일치했다. 단지 내 것보다 좀 더 정돈된 생각과 맛깔난 문장으로 활자화 되어 세상 밖에 나왔을 뿐이다. 사람은 옳거나 아름다운 얘기를 해주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던가. 같은 가격으로 훨씬 좋은 질을 담보하고 있는 다른 책들을 제끼고 이걸 택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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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野 2014-03-2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적 소설'이라.. 그럴까요?
소설가들이 원래 제 얘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은 버릇이 있긴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러나오는 근원적인 정서가 너무도 다른데요? (딴지 걸려는 의도는 아닌데 덮어놓고 단정하려드니 좀 안타까워서-_-;;)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너무나도 흔히 보는, 스스로 '보통남자'이자, 그러므로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뭇 남성들에 대한 못마땅함과, 그러면서도 갖게 되는 연민을, 김갑수라는 인물 한 사람으로 응축시켜 스스로의 '작태들'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고 싶었 던 것이 아닐까요?

자기성애자 2014-03-29 22:49   좋아요 0 | URL
자전적 소설인지 아닌지는 허지웅씨나 그 사람 주변 지인들만이 알겠죠. 저랑 여기서 사실여부를 논하실 문제는 아닌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