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어느 TV 중독자가 보내는 서툰 위로
이승한 지음, 들개이빨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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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을 읽는데 내 맘 같아서 글 위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뒤따르는 글들도 넘 좋았다. 화려한 ‘연예인‘이 아닌 보통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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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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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관해 뭔가 유의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단지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말하고 싶다언젠가 80년 5월 광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80년 광주의 5을 안다고 말해왔다그러나 돌이켜보면 단지 자극적인 폭력의 이미지들이 잔상으로 남았던 것일 뿐이었다이 소설로 죽은 사람산 사람죽은 사람들을 그리는 산 사람들의 입장을 픽션으로나마 접한 지금에서야 ‘80년 광주의 5을 조금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예전에 강풀의 만화 26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 후기를 남겼던 적이 있다그때 나는사실 ‘80년 광주의 5은 그날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그 겉모습을 바꾸어 꾸준히 반복되고 있었다평택용산밀양강정 등에서라고 썼다한강 또한 에필로그에서 용산을 보고 광주를 떠올렸다’ 말하고 있었다어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욕심 때문에 누군가들이 희생당하는 것은 인간사에서 필연인 것인지인간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인 것인지.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흥미로운 사실은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강간을 서슴지 않으며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문학자가 쓴 저서 내용이 인상 깊었다.


80년 5월을 안다는 것은 단지 그날의 사정을 아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잔인함,그리고 숭고함과 같은 속성을 사유해보는 일일 수 있겠다답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다. “인간은 무엇인가.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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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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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라는 이름의 산업화는 인류에 풍요를 가져다줬다그 인류 중에는 지나친 풍요를 누리는 소수의 이들이 있는가 하면그 풍요의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다수의 사람들도 있다양 계급은 분배의 문제를 놓고 서로 갈등했다사회주의 같은 건 그 갈등의 산물이다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 갈등은 늘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축으로 한다고 했고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했다공정한 분배의 문제는 언제나 중요했다.


그런데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제 단순히 분배의 문제를 넘어 더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다고 말한다바로 안전의 문제다근대화는 단지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위험을 함께 불러왔다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핵발전소 사고가까이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또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문제 등인류가 편리하자고 만든 것들에서 파생한 것들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험들 역시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다같은 위험 앞에서도 돈이나 권력을 지닌 나라나 사람들은 대처 능력이 강하므로 상대적으로 덜 피해입고가난한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오히려 먹고 살기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후쿠시마 재난 지역을 정리하기 위해 한 사회의 불가촉천민인 노숙인들이 투입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게다가 소위 위험 시설들은 더 가난한 나라더 가난한 지역으로 자꾸만 이전된다하지만 돈과 권력으로 위험을 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전 지구적인 거대 재난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울리히 벡의 말처럼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니까.


사실 벡이 주장하듯이 '안전'이라는 가치가 정녕 '평등'이라는 가치를 몰아내고 핵심 의제로 자리잡을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생각 이상으로 근시안적인 동물이므로, 만약 '안전'이 '평등'을 대체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이미 손 쓰기 늦은 때이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윤을 위한 무분별한 발전을 멈추고 울리히 벡이 말하는 성찰적 근대화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아니진작에 했어야 했다.그런데 그것을 위한 전 세계적 협의체를 만들 권력이 있는 이들은 자국의 이해에 얽매여 교토협정 같은 그나마 협의해 놓은 사안들도 쉽게 위반하고자본력이 있는 이들은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보험 같은 상품을 파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모든 문제를 늘 정치 문제로 환원하는 감이 있긴 하지만 역시 문제는 또 정치다벡의 제안처럼 기술 관료의 합리성에 대한 맹신을 깨뜨리고 전문가의 정보 독점을 넘어 시민들이 자신들이 직면하는 위험의 관리에 쉽게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전 세계적 연대와 권력 독점의 해체를 지향하는 녹색당 같은 정당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등장했으며녹색당의 성장은 그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보다 근본적으로는 성찰적 근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성장과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다른 체제들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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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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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긴밀히 결합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어머니의 몸속에서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겪게 되는 분리 불안을 갖고 있다그 불안은 낯선 누군가와의 하룻밤 섹스나 술 마시고 취하며 실컷 떠드는 행위 같은 것으로도 해소될 수 있지만 단지 그 순간에만 유효할 뿐이다불안을 지속적으로 극복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다사랑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랑 무능력자들을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소비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구매한다그러다 그 물건으로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질리게 되면 금방 버리고 다시 상점으로 가서 새 것을 산다그와 같은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사랑 역시 물건과 같다나의 욕구가 상대를 통해 온전히 실현되지 않을 때우리는 새로운 더 나은 대상이 있을 거라 믿으며 쉽게 다른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모든 것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환 도구로 만드는 사회그런 사회에선 사람도그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도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히 사람은 사회 구조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나름의 자율성을 지닌다이 사랑 불가능의 시대에도 사랑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겠다그럼에도 우리 대다수는 쉽게 사랑에 실패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하므로,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에 골몰하기 때문이다또 사랑은 대상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훌륭한 사랑의 대상이 나타나면 사랑은 당연히 잘 할 수 있다고 여겨,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게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 속에 머물러 있다는 상태를 혼동하는 까닭에처음에 잠깐 존재하는 격렬한 감정을 진짜 사랑이라 간주하는 것 역시 사랑의 실패를 부추긴다.


이런 에리히 프롬의 지적을 뒤집어 보면 사랑의 실현을 위한 지침들을 엿볼 수 있다상대에 대한 보호,책임존경지식이라는 요소를 염두에 두면서사랑받으려 들기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고자신에게 완벽한 존재를 찾을 게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를 만나 완전한 사랑을 이루려 애쓰며사랑을 설렘이나 격정과 혼동하지 않으면서 인생 전반을 거쳐 꾸준히 실천해야할 어떤 가치로 여겨야할 것이다그 사랑, 보다 편히 실천하시라고 프롬은 방법까지 친절히 제시해 준다. “부단한 훈련정신 집중인내최고의 관심”, 그리고 아는 것을 넘어 실천하는 것그 모든 것을 일정 수준 이상 충족할 때우리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 능력자'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접한 사랑의 기술은 거의 모든 문장이 아포리즘으로 다가왔다그 문장들은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가령 나는 스스로가 긍정적 의미의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는데사실 그게 사랑 무능력자의 전형적 특성인 이기심에 가까웠다든가 하는물론 개선의 여지없는 자기 성찰이 특기인 나로서단지 실천 없는 공허한 앎의 양을 조금 더 늘린 것 뿐 아닌가 하는 냉소가 들기도 했지만. 나의 냉소와 별개로 특히 와 닿았던 부분은 형제애성애모성애신에 대한 사랑 등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랑에 대한 태도는 서로 긴밀하게 닿아 있으며사랑과 전반적인 삶의 태도 역시 분리될 수 없다는 프롬의 말이었다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처럼 성애적 사랑에만 집중하는데다 전방위적으로 냉소적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랑 무능력자일 수밖에 없겠다.


한편 개인에 초점을 두고 사랑을 이야기하던 프롬은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답게 사회구조 변화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해답으로서 사랑에 진지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사랑이 고도로 개인주의적이고 말초적인 현상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에 중요하고도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프롬이 문제 삼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천박하게 구현되어 있다더구나 오랜 권위주의 문화가 프롬이 공서적 합일이라고 칭하는, 다른 사람의 일부가 됨으로써 고립감과 분리감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미성숙한 사랑을 좇는 이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좋은 사회가 좋은 시민을 만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떠올린다면결국 사람들 간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를 줄이고 오히려 북돋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보다 성숙한 형태의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겠다그리고 그와 같은 조건 아래에서 개개인이 가꾸는 성숙한 사랑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채울 수 없는, 결합을 갈망하는 사회의 빈 곳 구석구석을 기꺼이 메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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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강상중 지음, 오근영 옮김 / 사계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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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츠시마 마사아키는 나의 룸메이트였다. 그가 인사말 이외에 구사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한국어 문장은 하나 정도였다. “야이노무 자식아!” 말썽을 피울 때마다 그의 할머니가 그에게 했던 말이라고 했다. 마사아키의 할머니는 재일 1세대였다. '구정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었던 마사아키는 재일교포 3세였겠다. 《어머니》를 읽으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의 할머니가 강상중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고, 유사하게 버거운 삶을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아키와 사는 동안 가끔은 의아했다. 그를 혼내는 순간에 자연스레 ‘조선말’을 꺼내고는 했던 할머니와 달리, 왜 마사아키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답을 내렸다. 재일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상존하고, 품어줄 조국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2. 일찍이 한국사회에서 서경식 같은 재일 ‘디아스포라’의 글이 꽤 읽힌 바 있다. 부끄럽게도 읽어본 적은 없다. 사실상 이 책 《어머니》로 재일조선인, 넓게는 디아스포라들의 사연을 처음 제대로 접한 것이다. 그들이 겪은 생활고가 같은 시기 조선 땅에 있었던 이들의 경험에 비해 더 힘들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재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경멸적 시선과, 각종 유무형의 사회적 자원을 차지하는 경쟁에서 쉽게 낙오될 수밖에 없는, 단순히 물질적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는 현실까지 견뎌내야 했다. 그런 현실을 비켜가 보고자 떠나온 조국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분단, 가난과 혼란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어떻게든 힘겹게 살아내야만 하는 하나의 선택지 정도만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야쿠자가 되는 등 어두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상중의 가족 정도면 일본에서 꽤 성공한 축의 재일조선인 부류에 속하는 것일지도.

 

3. 언제부터인가 내셔널리즘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집단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느껴졌다.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민족이나 국가는 근대적 개념이며, 상상된 것’이라는 탈근대주의의 관점을 수용했다. 같은 맥락에서 내셔널리즘보다는 코스모폴리터니즘이 훨씬 우월한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엄마와 함께 ‘고려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을 때, ‘역시 뿌리가 중요하다’는 엄마의 말에 ‘뿌리 같은 게 뭐가 중요하냐, 어디서든 한 인간으로 잘 살면 되지’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었던 것 같다. 그때와 달리 뿌리 뽑힌 채 여기저기서 표류하는 난민들을 보며, 또 《어머니》라는 책을 읽으며, 허울 좋은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세계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전유물에 가까운 반면, 현실적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한 인간’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국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밀양과 강정마을 등에서 국가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는 한국,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공세 앞에 안정된 국가들마저 허물어지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 하기엔 지나치게 공허한 생각일 수 있겠으나, 여전히 다른 대안적 울타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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