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역사가들 -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
마크 길더러스 지음, 강유원, 이재만 옮김 / 이론과실천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과제 때문이 아닌 지적 필요성을 위해 읽게 된『역사와 역사가들』은,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일종의 역사학 입문서이다. 역사 연구의 목적과 의도부터 시작해서 역사의식의 등장과 그 발전 과정, 그리고 역사철학과 최근 역사학의 경향 및 쟁점들까지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역사학 입문서 격에 해당하는 책으로는 이상신의『역사학 개론』과 한스 위르겐 게르츠의『역사학이란 무엇인가』정도가 있다. 부끄럽게도 모두 사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읽은 책들인데 매우 생소한 용어들이 많았고 어려웠으며(이는 물론 개론 정도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사학과 교수들의 직무유기와 더불어 나의 지적 태만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이 책은 역사학의 역사와 그 흐름 속에서 존재했던 대표적인 역사학자들의 입장 및 그동안 역사학과 관련해서 있었던 쟁점들에 대해, 앞서 언급한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다만 역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아무래도 역사 책이 아니라 역사학 그 자체에 관련된 딱딱한 책이다 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개론서와 비교했을 때 이 책의 특징은, 역사가들이 이룩한 업적과 그것들이 역사학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비록 간략하게나마 지금의 역사학을 있게 한 다양한 역사가들의 입장과 많은 역사학의 쟁점들이 실려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부터 아우구스티누스, 볼테르, 랑케, 그리고 마르크스 등, 그 여러 거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역사를 바라볼지를 선택하는 것은, 이제 막 역사학과 역사 탐구에 관심을 가지려 하는 난쟁이들의 몫일 것이다.

  또한 역사철학에 대한 서술에 큰 비중을 할애한 것을 눈 여겨 볼만한 데, 사변적 접근과 분석적 접근으로 나누어 두 챕터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일종의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역사의 행로와 목적을 파악하는 역사철학이 오늘날의 역사가들에게 있어 큰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인간'으로서의 개인 및 집단의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이 때에, 역사를 단지 흥미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공동의 기억'으로서 들여다보도록 해주는 역사철학에 시선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언급했듯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다수의 학문이 그렇듯이 역사학도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역사학 개론서들이 서구의 이론들로 채워져 있으므로, 서양사를 위한 책과 동양사를 위한 책을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서양사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연구와 역사학 그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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