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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하나님의 세계 - 영성신학 ㅣ 유진 피터슨의 영성 1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양혜원 옮김 / IVP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유진 피터슨의 영성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저술의 첫 번째 책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영성 시리즈 첫 권을 제일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현재(2009년 9월) 그의 영성 시리즈는 이 책을 포함해서 총 4권이 나와 있다. 4권을 다 읽게 된 지금, 책의 순서에 맞추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의 영성에 대한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한 뒤 다른 주제를 조금씩 더 깊이 읽고 싶다면 조금 두꺼운 분량이더라도 첫 권을 읽고 이어지는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첫 권은 분량이 영성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해 두껍다. 분량적으로도 두꺼울 뿐만 아니라 활자 크기, 간격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첫 권이 주는 조금의 부담인 셈이다.)
첫 권 답게 이 책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영성에 대한 신학적인 얼개를 상당히 오밀 조밀하면서도 조잡하지 않고, 깊이 있는 신학적 논의를 담으면서도 현실적이고 목회적 차원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폭넓고 속깊은 내용을 아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아주 묘한 느낌이다. 조직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조직신학은 아니며, 각 주제마다 성서 한 권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을 충실히 해석하함으로써 조직신학적인 체계를 강력하게 뒷받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학도 아니고, 예배와 함께 예배적 삶을 말하면서도 예배설교학은 아닌, 신학과 목회의 그 갖추기 힘든 균형을 갖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얼마나 공부하고 얼마나 실제적으로 살아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말그대로 영성신학이다.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영성신학은 다음과 같다.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울이는 주의,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자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을 가리킨다. '영성'은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해 계시하시는 모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영성'은 '신학'이 하나님 하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타락하지 않게끔 해준다. '신학'은 '영성' 그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이 되지 않게끔 해준다. 이 두 단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영성신학이란 신학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를 가리킨다. 신학을 살아낸다는 것은 먼저 신학을 기도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 ... 영성신학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믿는 바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기울이는 주의다. 우리 삶이 성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예배로서의 삶, 성자 하나님을 따라 걷는 희생 제사로서의 삶, 성령 하나님의 공동체를 포옹하는 또 그 공동체의 포옹을 받아들이는 사랑으로서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영성 신학은 조직신학, 성서신학, 실천신학, 역사신학 등과 나란히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는 또 하나의 신학 영역이 아니다. 영성신학이 표명하는 바 무릇 모든 신학은, 우리를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살아가는 살아 있는 창조물로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고나계 맺는 일이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 영성은 신학에서 시작되며, 신학의 인도를 받는다. 그리고 신학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사람들, 충만한 구원의 삶을 살도록 뜻하신 사람들의 몸을 통해 표현되는 바(영성)를 떠나서는 결코 참된 신학으로 존재할 수 없다. (26-28쪽)
그래서 그의 영성신학은 삼위일체를 구조로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복음으로 함께 풀어낸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차원을 성서 속의 이야기들 속에서 은유로서 풍성히 건져올려 그 구조에 알찬 살을 덧입힌다. 이 가운데 삶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조심하여 세심하게 경계해야 할 것들과 더 깊이 삶으로 드러내야 할 것들을 교차적으로 이야기 해준다. 그리하여 성서는 삶으로 녹아들어가고, 삶은 성서와 맞닿게 된다. 이것의 총체적인 모습이 예배의 삶, 삶의 예배다. 결코 근본주의적 보수성만 자리잡고 있지않으면서, 극단적이고 급진주의적인 진보성도 중심 축이 되지 않는다. 도덕적 율법주의도 정의 실현을 위한 투쟁도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자연스러운 길이다. 그래서 이념이 아닌 (재밌는 사실은 양 극단을 볼 때 어느정도 이념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성은 교리가 이념으로, 진보성은 정의가 이념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 하루를 풍성하게 살아내는 삶, 그 인격적인 관계성이다.
내게 최고의 관심사는 삶으로서의 기독교적 삶이다.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내 정체성이 서로 일치하는 삶, 이 분주하고 번잡한 북미와 하나님 나라의 교차점에서 사는 삶, 나의 사지와 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말이다. (577쪽)
바로 이것이 내게도 최고의 관심사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고 들었고 신나게 함께 놀이했다. 이 많은 내용들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하는 능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가 총 5권으로 출판 기획되었는데 아직 5권은 나오지 않았다. 기다려진다. 영성신학, 영적 독서, 영적 리더십, 영성 지도, 영성 형성의 순서로 짜여진 이 시리즈는 아마도 내게 있어서 최고의 읽기 즐거움을 가져다 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읽기 즐거움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삶을 살아내는 기대감도 가져다 준 책이다. 다른 그의 책들도 읽어야 겠다.
숲 속에 홀로 있을 때, 또 이 투쟁이 무의미하고 헛되게 느껴질 때, 또 대중 집회에서 번번이 거부당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나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나는 믿는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로 조금만 확고하게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기울여만 줘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흔들림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었던 그 곳에 마침내 얼음이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 평생, 아니 두 평생, 세 평생 동안 꾸준히 계속해 가라. 그러면 어느 날, 분명 마침내 그 얼음은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583쪽)
이 책에 대한 아주 짧은 정리라고 한 다면 다음의 인용문을 보면 될 것 같다..
성 삼위일체를 구조와 맥락으로 삼고, "수많은 곳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 은유로 삼고 있는 본서의 대화는 먼저 그 놀이터를 말끔히 치운 뒤, 창조, 역사, 공동체라는 우리 삶의 세 차원들, 그 서로 교차되는 차원들을 탐험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놀이터 치우기. ... 현재 영성의 놀이터는 온갖 즉흥적 시도와 미봉책들로 상당히 어지럽혀져 있다. 나는 기독교적 삶을 성경적이고 인격적인 견지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몇몇 기본적 이야기와 은유와 용어들을 통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치워내고, 대화를 위한 공동 지반을 다질 생각이다.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 모든 사물과 사람을 점점 더 기능화시켜 가는 이 시대에, 사물과 사람의 성스러움과 거룩함에 대한 감각이 점차 스러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모든 창조를 ,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며 충만하게 표현되는 거룩한 선물로서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고 경축하고 높이는 방식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그러나 삶은 단순히 창조의 선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죄와 죽음이 주름잡고 있는 역사 속에 던져져 있기도 하다. 그것은 고통과 아픔, 실망과 상실, 재난과 악의 역사다. ...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탐구할 것이다. 그 역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생명에서 결정적 의미를 얻는다.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기독교적 삶은 타자들과 더불어, 타자들을 위해 사는 삶이다. ...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전 존재, 전 행위에 충만히 참여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3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