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창비시선 238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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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시를 읽으면 흙먼지 뒤집어쓴 시골 찻길이 생각난다. ...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시골길 풍경이 1980년대까지 온존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본 60년대와 시인이 본 70년대 풍경이 많이 다르지는 않았을 성싶다. 그 길은 1.5차선 정도로 버스 두 대가 지나치기는 쉽지 않을 너비였고, 길가 미루나무와 '점방'들은 사철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버스는 자갈을 튕기며 먼지를 피우며 달렸고, 그 먼지는 멀리서도 보여 차가 가는 표시가 되곤 했다. 귀가 밝은 이는 30리 밖의 버스 소리도 듣던 시절이었다. ... 문태준의 풍경에는 사람의 숨결이 있다. 그의 풍경은 사람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풍경과 사람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점에서 그의 풍경은 동양화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 ... 풍경을 생산하는 시인의 독특한 재주에서 더 나아가 이 시를 주목할 만한 다른 이유는 이 시에, 새 시집의 몇몇 굵직한 줄기를 가늠할 단서들이 있기 대문이다. 그 세목을 들면, 첫째, 시인이 저녁 무렵을 애호한다는 점, 둘째, 인생 또는 세월에 대한 일말의 무상감을 드러낸다는 사실, 셋째, 낡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시인의 시선과 추억 속의 풍경을 되새기는 이유가 드러난다는 점, 넷째 어머니의 세계로 수렴되는 상상력의 흔적 등이다.   (시집에 대한 이희중의 해설, "풍경의 내력", 86-92쪽에서)

사람마다 익숙한 세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익숙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즐겨쓰는 언어와 편안한 느낌을 즐긴다. 그러나 때로는 다소 낯선 세계를 접할 때에 뭔가 알지 못할 느낌을 받을 때까 있다. 그것이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든 아니면 책과의 만남이든지 말이다. 그 낯설음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오래 갈 것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낯선 세계와의 접촉은 첫인상만큼이나 일정부분의 인식적인 선입관같은 것을 심어놓고 일종의 왜곡현상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 낯설음의 이유는 때로는 모호할 때도 있다. 그저 느낌, 어떤 감정적인 느낌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나'라는 자아의 익숙함 또는 자아의 희망이나 가치관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묘한 차이가 이를 더욱 부추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문태준의 시집을 읽으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느낌은 모호한 낯설음 같은 것이었다. 풍경과 사람을 그려내는 그의 세계에서 나는 뭔가 조금 불편하다. 노르스름한 저녁 분위기에 뭔가 아쉬움이 짙게 배여있는 듯한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이 내게는 그다지 반가운 것 같지 않다. 편견일 수도 있고, 왜곡일 수도 있고, 어찌되었든 뭔가 답이 없는 듯한 느낌에 당분간 조금 쉬었다가 다시 집어들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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