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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 톰 라이트, 성경을 말하다
톰 라이트 지음, 박장훈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1년 12월
평점 :
톰 라이트는 이 책에서 성경이 그동안 어떻게 읽혀왔는지 그 역사를 살피면서, 오늘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여기서 중심 논제는 성경의 권위이다. 성경의 권위야말로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략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톰 라이트는 성경의 권위를 ‘어떤 방식이든 성경을 통하여 발휘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위’의 약어일 경우에만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전제한다.(46) 이 문구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임마누엘로서 가졌던 권위가 성경에 위임되어 중재됨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렇게 이해할 때만 비로소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49) 여기서 ‘하나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맥락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54) 이것은 이야기이도 하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는 이야기’로서(52), ‘창조세계를 휩쓰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전능하신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죄를 없애고 새 창조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62)이 그 중심에서 역동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삶에서 차지하는 성경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구약과 유대교의 맥락 속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성경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목적들이 진행되는지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68)
셋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삶 속에서 성경에 의해 빚어지고 형성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참 이스라엘이셨다.(80)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그 분의 백성 안에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임하게 하는 일을 결정적으로 이루셨고, 그 절정에 이르게 하셨던 것이다. (80)
넷째, 초대교회는 구약을 읽으며 그 속의 이야기와 계명들 전부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내용에 되비추어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81)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구약의 언약 이야기의 완성이자 실현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였으며, 교회를 탄생시키고 교회의 사명과 삶을 형성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으로 이해했다.(86) 따라서 그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다층적이고 미묘한 차이를 살린, 신학적인 근거를 가진 해석 방식을 개발시켰다.(95) 그리고 새롭게 계시된 언약을 토대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나갈 수 있었다.(105) 이것이 신약성서이다.
다섯째, 그 이후 2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성경 이야기가 지닌 유대교적, 이스라엘적 요소를 상실하면서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개념도 이야기, 즉 내러티브의 맥락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차원과 분리되는 결과가 이어져 왔다.(115) 그 결과 역동성이 사라지고, 윤리적 지침서 혹은 경건 생활을 위한 영적 독서 차원의 교재로 취급되기 시작했다.(116) 톰 라이트는 그 과정을 성경 주해의 과정을 통해 증명한다. 중세의 알레고리적 해석, 종교개혁의 문자적 해석이 그것이다.
여섯째, 계몽주의의 도전은 더욱 심각한 것이었다. 이성의 역할이 극대화되면서 역사적으로 충실한 성경 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장 속에서 중립적이지도 못하고, 객관적이지도 못한 연구를 통해 성경의 권위를 해체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151) 한쪽에서는 성경이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책으로 치부되며, 한쪽에서는 학문과는 상관없이 단지 개인적 경건의 도구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참된 교리의 교과서로서만 취급된 것이다.(155) 반면 이성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성의 역할에 대한 무한 신뢰는 악의 존재 마저도 무력화시켰고, 세계의 운영권이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정치가들과 경제학자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155)
일곱째, 포스트 모더니즘은 자신의 기반이 되는 계몽주의의 성공적 성취를 부정하면서 서구 체계의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성경의 일부 텍스트가 제거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성경 해석은 제국에 항거할 수는 있었지만 제국에 대해 항거하도록 도와주는 성경의 능력을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이다.(171) 남은 것은 허무주의에 불과했다.(172)
여덟째,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톰 라이트는 그 대안으로 이야기, 내러티브적인 동시에 비판적 실재론적인 성경이해를 제시한다.(173) (그러나 비판적 실재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해의 양극단에 빠지는 것이 아닌 통합적 견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인 목표로서 자리잡고 있다.(196) 톰 라이트는 이를 위해서 교회가 일할 때 비로소 성경의 권위가 가장 충실하게 발휘됨을 강조한다.(198) 이 때 전통은 과거의 해석들과 대화하는 역할을 한다.(201) 이성은 컨텍스트, 의미, 모든 종류의 광범위한 지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204) 그리고 신약과 구약을 아우르는 다층적인 견해가 필요하다.(206) 이것은 일종의 기독교 세계관이기도 하다. 또한 켄텍스트를 고려하면서, 예배의식에 기초하여,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 또한 적합한 학문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가 승인한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성경을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216)
이상의 내용을 볼 때 무엇보다 주목하게 되는 점은 이것이다. 내러티브적 성경읽기의 필요성이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시각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소극적으로는 기독교 변증에, 적극적으로는 선교에 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세계가 안고 있는 파괴적인 문제도 외면할 수 없고, 상대화가 안고 있는 허무주의적 해체성도 외면할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자아와의 싸움은 피할 수가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