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하 일본 기독교사 - 국가를 넘어서지 못한 일본 프로테스탄트 교회
하라 마코토 지음, 서정민 옮김 / 한들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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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를 새삼 다시 보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 후 근대화 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진국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일본이 괜히 세계 대전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보수 우경화의 악연을 끊지 못하고 있는지, 허울을 벗고 그 속내를 드려다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일본 기독교의 모습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넘어 잊지 말아야할 과오라는 쓰라린 반성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마치 국가 기관의 일부처럼 철저히 지배받고 이용당했던 시기로서, 국가에의 순응 이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쓰라림이 담긴 시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쓰라린 반성으로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저자의 말대로 이 시기의 교회는 비록 교회로서 지향해야 할 존재해야 할 형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순수한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개인 신앙, 개인 구원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본적 기독교의 특성을 통해 바라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역사가 보여주는 증언과 같다. 정교분리를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통념은 분명한 오해다. 정교분리는 신앙의 적극적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논리임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본이 국가를 상대화 하지 못했고, 따라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부여받은 사명을 다하지 못한 일본 교회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예언자적 외침의 부재였다. 개인신앙, 개인구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반대로 사회의식, 사회구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전부가 아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이다. 신앙이 있고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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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리스도교사 - 교회사 번역총서 제1집
고노이 다카시 지음, 이원순 옮김 / 한국교회사연구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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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을 빌어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일본  기리시탄사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노년의 고노이 다카시 교수가 세계사적 시야에 서서, 동양 선교의 선두에 나선 예수회의 창설과 일본 선교를 시작하는 때로부터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에 이르기가지의 일본 그리스도교사를 통람할 수 있게 저술한 일본 그리스도교사의 통사서이다. 고노이 교수는 내외 연구자의 연구 성과까지 활용하는 한편, 그가 일본과 유럽의 여러 고문서고를 탐방하여 조사해 온 원사료를 운용해서, 일본 근세의 무가쟁란기로부터 도쿠가와 막번 체제하의 쇼군이나 지방 다이묘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력과 대응하며 선교에 진력한 서양 선교사의 활동을 추적하며, 교회와 신도의 동향을 추적하기에 힘썼다.

이 책을 통해 중세 말기의 전란과 통일과정이 급변하면서 혼란스럽게 전개되던 반세기 간에 35만 전후의 일본인들이 새로 전래된 이교인 그리스도교를 수용했으며, 그 후 전개되는 철저한 박해정책하에서 고난을 겪고 다수의 순교자를 양산하면서 어떻게 교회가 급속하게 와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일본의 박해가 얼마나 강하게 기리시탄을 몰아서 조식을 와해시켰는가 등에 관한 고찰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잠복 가쿠레 기리시탄 200년의 역사와 일본 개항 후의 가톨릭의 재선교와 프로테스탄트 각 교파의 일본 선교, 침략 전쟁하의 일본 그리스도교회의 고난의 역사 등도 더불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479-480쪽)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선교가 곤란한 이유는 불교나 신도 등 전통적인 종교와의 대결보다는 국가체제 및 이것과 관계되는 국시와의 대결에 있었다. 선교활동의 가부는 중앙정부나 국가권력과의 대응 여하에 깊이 관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대 일본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선교가 곤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에도시대에 막부를 중심으로 하고, 불승과 불교도 그리고 유교신자 등에 의해 형성된 사종교관(邪宗敎觀)이 농촌사회 전체로 깊이 침투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에도막부 이후 진종 사원세력의 조직적인 그리스도교 배척의 배야활동이 농촌 공동체 사회에 보다 더 깊이 있고, 광범위하게 전파 이식된 데 있었다.

또한 서양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거쳐야 했던 대외적인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후미에(繪踏)를 강요하여 기리시탄 여부를 행동으로 증명하도록 한 것처럼, 스스로 그리스도교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택하도록 증명하게 하는 행위를 여러 차례 거쳐야 했다. 어려운 선택을 강요당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여질 때마다, 일본교회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불문하고, 일본적 그리스도교로의 전환을 스스로 계속 꾀하여 왔으며, 또한 실제로 그 일에 구속되어 왔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계속된 15년 동안 그리스도교회가 매우 엄격한 통제상황하에 놓여져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일반 국민 대중이 그리스도교에 품은 이미지는 그리스도교가 아직 외국의 종교이며, 지식층의 종교로, 평상복을 입는 계층의 종교가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교도 스스로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점과 신자들의 그런 의식이 일반 서민의 그리스도교로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스도교회가 하비에르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토착화를 위해 소비한 에너지와 인적, 물적 노력의 크기는 이루 헤아려 알 수 없지만, 그런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일본토착화에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앞으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467-471쪽)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 그리스도교사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던 책이었다. 일본식 이름, 지명, 지리 등의 낯설음 때문에 읽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기리시탄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의 전문 분야가 기리시탄사라는 점에서 이미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고유한 기리시탄의 모습을 상세하게 읽어볼 수 있는 번역서는 아마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로마 가톨릭과의 접촉 이후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던 이들 기리시탄은 쇄국 정책 이 후 로마 가톨릭과 단절되고, 일본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박해로 인해 숨어 살 수 밖에 없었던 20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기리시탄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왔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읽는 것은 작은 감동이다. 옮긴이의 말과 저자의 결론 부분을 통해서 간략한 소개와 내용 흐름을 정리했다. 저자의 맨 마지막 평가 부분, 여전히 일본에서 기독교가 소수에 불과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논의의 여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외국의 종교, 지식층의 종교로서의 이미지 외에도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소 긴 책이었지만 그만큼 뿌듯함을 남겨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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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10주년 기념판, 은혜 없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
필립 얀시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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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상 사람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짐짓 거룩한 체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란 잘못을 청산한 후에 가는 곳이지 있는 모습 그대로 가는 곳이 아니다. 은혜보다 도덕이 먼저인 것이다. 교인들 중에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천국을 향한 여정의 기쁨을 놓치는 이들도 있고, 현대 '문화전쟁' 이슈에 관심을 갖느라 비은혜 세상에 은혜의 안식처라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이들도 있다. (10-11쪽)

은혜와 율법의 관계는 비단 현재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는 일대 혁명의 순간, 은혜와 율법의 기나긴 갈등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 이 후, 바울의 신학을 이어, 어거스틴 그리고 중세 스콜라를 지나다가 다시 어거스틴을 통해 바울로 접근하며 예수를 찾았던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이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이어오는 지금의 개신교 신앙의 흐름에서 은혜와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중요한 가늠자임에 분명하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는 여기서도 찾을 수 있겠다. 이미 바울 신학의 정수와 같이 볼 수 있는 로마서에 이어, 어거스틴의 저서와 루터의 저서에서 이 관계를 설명해 내는 거장들의 신앙을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살펴 볼 수 있다. 모든 이들이 예전의 작품을 다 읽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은혜와 율법의 관계에서 신앙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정치적인 문제, 곧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라는 사실을 풀어낸 측면은 한 번 즈음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기도 하다. 보수적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결벽증과 같은 의식이 겉으로 보기에는 비정치적이고 신앙의 순수성에 입각해 있는 듯해 보이나, 그 이면은 도리어 율법, 도덕 법칙의 일반화를 꾀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성의 여지를 분명 제공해 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은혜를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은혜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백 자체가 이미 개신교 전통에 서 있음을 의미하겠다. 이런 은혜를 날마다 어떻게 누리고 살 수 있을까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겠다. 사실 내가 관심을 두는 곳은 여기에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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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
서정민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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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챕터는 1부 1장과 2부 4장, 3부 3장으로 압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부 1장은 말그대로 일본기독교사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꾀하도록 도와준다. 이 장을 통해서 이 책 전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어질 주제들을 접할 수 있다. 2부 4장에서는 저자의 역사를 바라보는 폭넓고 깊이 있는 시각이 걸죽하게 제시된다. 표상으로 드러난 현상적인 측면과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한국과 일본 기독교의 관계로 풀어낸다. 3부 3장에서는 뒤돌아본 역사를 넘어서 내일을 바라보는 미래지향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 내용들을 엮어가는 중심 주제는 "교회와 민족,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이다. 이 책은 역사적 지식들, 수많은 자료들이나 정보들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풍성하고 넘쳐나는 자료들을 읽어내는 역사적 시각, 현상 이면의 의미들을 읽는 통찰력을 제시한다. 한일관계사, 한국교회사를 보다 폭넓게, 그리고 보다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는 유용한 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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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형성
E 트로크메 지음, 유상현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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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이는 간단하다. 알고 있는 것이 적기 때문에 이해를 추구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큰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문자적인 언어 자체가 가져오는 지루함이라든가 건조함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둘 모두 읽어내려가는 동안, 또한 정리하는 동안 내게 일깨워줬던 사실(fact)이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어줍지 않게 들어놓은 것들이 있어서 아무래도 접근하기가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예수 사후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 공동체와의 갈등, 또한 예수의 직계 제자들 및 친인척 인물들과의 갈등 속에서 유대 사회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 헬라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로 뻗어나가 자리를 잡는 과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란 더욱 낯설어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작업을 신약성서를 기초 자료로 삼아 - 이 말은 역사적 사료로서 신약성서의 문서들을 검토한다는 뜻이겠다 - 하나 하나 정리해 나간다. 그 역사에 있어서 드러나는 중심 인물은 바울이며, 바울의 후예들이다. 물론 그 당시 바울은 지금 기독교인들이 열렬히 추앙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추구했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기독교 공동체의 성숙에 있어서 그의 영향은 지대했던 것이다.

저자를 통해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신약성서의 각 문서들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기독교 공동체의 성숙과정, 특히 유대 공동체와의 결별 속에 홀로서기를 해 나가며 성숙해진 기독교 공동체의 현장성과의 연계를 꾀하며 읽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저자의 설명은 간략하게 아래에 정리했고 신약성서의 문서 이름은 고딕체로 표시했으니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이를 통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성서가 가진 역사적 맥락이겠다. 성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한 이들, 그것도 다양한 그룹에 속한 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의 고백을 정리해 내며, 마침내는 다른 이들에게 그 고백을 드러낸 문서들이 놀랍게도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다. 그 맥락과 삶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성서는 보다 풍부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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