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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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할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엿보는 자의 긴장은 커지고 몰입은 깊어진다.

왜, 인간은 공포를 알면서도 맛보려 하는 것일까... 무섭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싫지만, 그런 소재가 나오는 소설은 오히려 더욱 끌리는 이 심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에게 존재하는 '악'의 본성과 '엿보려는' 비이성적 심리 때문은 아닐까? 또한, 권선징악의 힘을 어려움없이 뿜어내는 소설의 능력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못견뎌 하던 욕구불만의 위선적인 여자와 짐승처럼 무위도식하며 살고자 했던 둔하고 다혈질적인 남자의 운명같은 만남이 만들어낸 광기와 공포는 엿보는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남편이 있는 여자 테레즈, 남편의 친구인 남자 로랑,  둘은 현재로썬 사랑해선 안될 운명이다. 하지만 얄궂은 것이 운명인것처럼 두 사람에게 내재되어있던 '악'의 본성은 서로를 자극적으로 끌어당긴다.

서로 다른 기질의 남녀는 하나의 목적을 품으며 피와 육욕으로 결합된 하나의 존재가 되어간다. 사랑이란 착각과 허울로 둘의 불륜을 포장하려 하지만, 차라리 사랑이라면 이리 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초라하고 답답한 '현실'이 재미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일단 시작된 어찌됐든 '사랑'은 서로를 눈이 멀게 만들었고,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용기를 생산했다. '사랑'이 있으니 '사랑'을 가로막는 어떤 것도 헤쳐나가리라는, 사랑의 본질도 모르면서 시작된 그 '사랑'이 과연 그들을 끝까지 이어줄까?

 

테레즈와 로랑은 남편이며 친구인 카미유를 죽이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다. 착한 사람의 분장을 하고 살인을 할 무대가 완성되길 기다린다. 기회를 노리는 자에겐 마음 먹는 것이 곧 기회인 것이다. 사고를 위장한 살인은 모두를 속이며 완전범죄로 마무리 지어지며, 이제 두 죄인은 마음 먹은대로 정욕과 재산을 누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처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눈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들 안에 있던 '양심'이 뒤늦게 일어나며 존재를 확인시킨 것이다. 이들의 양심은 참회의 눈물이 아닌, 두려움의 공포다. 신경에서 부터 시작된 공포는 정신과 온몸으로 퍼지고 곧 자신의 방을 넘고 온 집안으로 번져 나간다. 결국, 서로에게 전달되고 무서운 통증으로 서서히 미쳐간다.

어둡고 축축한 파리의 외딴 구석이 주는 공간적 배경의 칙칙함이 읽는 내내 섞은 내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마치 테레즈와 로랑의 망상 속에서 그들 곁에 붙어있던 카미유의 유령이 풍기는 냄새인 것처럼...

 

사랑하다 살인하고, 두려워하다 증오하고, 싸우다 미쳐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작가는 마치 시체를 해부하듯 분석적으로 기록한다. 초판에는 없던 서문을 제2판에 실어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만큼 당시에는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비평가들에게  개념없는 혹평이라며 지성적으로 따져드는 에밀 졸라의 당찬 글이 그가 어떤 작가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좆아가려고 노력했다...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라고 쓰고있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본다면 '테레즈와 로랑'은 완벽하게 영혼이 없는 인물들은 아닌 것 같다.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은 현대의 '사이코패스'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오히려 양심적인 것이다. 에밀 졸라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얼마나 놀랄까? 문명은 발전하고, 감정은 매마르고, 범죄는 잔인해지고, 양심은  무뎌지는 진정한 영혼의 부재로 접어든 것 같다.

 

읽는 동안, '나'란 존재도 변한다. 중매쟁이가 되었다, 공범자가 되었다, 밀고자가 되었다, 처벌자가 되는 과정을 겪으며 부도덕의 흔적을 만난다. 이것이 인간의 어둡고 깊은 진실인가.

 

문학작품에 어떤 문학이론이 쓰였는지는 나로썬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평범함과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적 표현이 배재된 객관적인 묘사에서, 에밀 졸라의 '인간에 관한 객관적 진리' 발견이라는 [자연주의] 신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인간을 그저 동물로 놓고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그의 말이 인간을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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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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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유머의 대가라는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이 궁금했다. 그 유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유머는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신호가 맞지않으면 그저 평범한 전달문일 뿐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한 실소와  부조리한 인물들에 대한 냉소....그 안에 그의 매력이 있는 듯하다. 처음 만나는 커트 보네거트, 아주 매력적이다.

 

책은 서문에서 '그저 우연히 알게 된 교훈이다. 그것은, 즉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화두를 던진다. 가면이라, 나도 가면을 쓰고 있을까? 가끔은 그런 것 같다. 한 번 쓴 가면은 좀처럼 벗기 힘들고, 벗겨지면 곤란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도 가면을 쓴 채로 나를 만났을까? 인간의 진실성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품고 있을까?  

주인공 하워드 W. 캠밸 2세는 2차세계대전 중, 나치당원으로 위장한 미국의 첩보원이었다. 하지만, 주변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첩보활동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행동하기에 마음이 닿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첩보원보다는 나치당원으로써의 자신의 삶이 더 마음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워드  스스로는 정체성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사명감도 정의로움도 하다못해 호기심도 없어보였지만, 자신은 진정한 '미국의 첩보원'이라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뉴욕에 숨어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란 말일세"

-"그것 때문에 여기 오게 되었죠."

감옥에서 전범과 나눈 대화를 보면, 애초에 그에겐 의지가 없어 보였다. 편하게 그저 밀리는대로 흘러가는 종이배 같은 모습이다. 특히, 그의 부인이 죽은 후, '둘만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이 사라졌을 때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이미 어느 나라에도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찾아와 첩보원으로 포섭했고, 그때 나라가 생긴 것 뿐이다. 그의 그런 줏대없는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똑똑히 알고 있다고는 해도 가면 속 이중성의 한 모습은 아니었을런지.

오히려 그의 주변인물들에게는 강한 의지가 있다. 강한 의지는 있으나, 도덕성과 합리성은 없다.
존스 목사는 유대인, 흑인, 가톨릭에 대한 편파적 증오가 가득 담긴 '백인 기독교 민병대'라는 신문을 발행하면서 운전기사인 흑인 지도자와 함께 있는 모순적인 인간이고, 유색인 편이라면서 중국인은 유색인이 아니라 역설하는 흑인 지도자도 상식 밖의 인간이다. 죽은 언니 흉내를 내며 형부에게 접근한 소련의 스파이인 레지의, 사랑 운운하는 비뚫어진 심리도, 우정을 내세워 하워드를 음모에 빠뜨리려하는 크래프트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하워드의 마지막 선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미래는 의미가 없어서였을까? 자신의 행동의 진정성에 대한 댓가를 치루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그의 조소였을까? 담담하게 남의 말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워드의 고백은 무거운 주제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어둡지만 우울하지 않은 것, 답답하지만 숨막히지 않은 것. 그것이 커트 보네거트의 힘인듯 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성은 없으며, 이미 끝난 전쟁의 복수를 꿈꾸며 또다른 전쟁을 이어가고 있을뿐이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하워드의 절규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세상을 향해 던지고싶은 메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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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강미경 옮김, 마우로 카시올리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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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인간은 결국 다양하고 모순된 인자가 각기 따로 모여 형성된 총합에 불과하다...









[보물섬]의 작가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며, 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썼다는 사실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듯 호들갑을 떨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소설을 두고 공통점을 찾으려 생각해 보았다. 인간 본성 중, 악한 모습을 보물섬에서의 실버 선장이 보여주었다면, 이 이야기에선 하이드씨로 넘어와 좀 더 철학적이고 깊이있게, 본격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어려서 보았던 영화나 어린이 프로그램의 짧은 연극으로 익히 알고있던 이야기라 책으로 굳이 읽히지 않았던 소설이다. 이미 뻔하게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 없으리라 한 켠으로 밀어 놓았던 것이다.  약을 먹으면 마치 헐크처럼 변신하여 괴물이 되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대강의 줄거리는 그저 공포를 느끼고픈 재미에만 초점이 맞춰져 그 진정한 속 이야기는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대로된 원작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했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 맞는 것인지, 순자가 말하는 성악설이 맞는 것인지...전부터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답은 여전히 어렵다. 이런 철학적 질문의 역사가 오랜만큼 인간이 풀기엔 어려운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겐 분명 두 가지 모두의 모습이 존재한다. 이를 인류가 짊어진 저주라고 결론지은 지킬 박사는 이 둘을 분리하기 위해 실험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물, 하이드씨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보기 좋은 인상에 사회적 지위도 있고, 풍족한 재산도 있는 인격자인 지킬 박사의 그 실험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한 본성만을 갖고 있는 하이드(hide-숨기다와 같은 소리의 hyde)를 끄집어 냈다. 왜소하고 기형적인 모습에 어딘지 악의 기운만 느껴지는, 선함이라고는 전혀 갖고있지 않은 존재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선과 악, 천사와 악마로 이분되는, 하지만 한 인간 안에 담겨있는 이중성이다. 과연 지킬 박사는 어떤 쪽에 더 가까운 인간이었을까?

 

이 둘 사이에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화자는 변호사 어터슨이다. 건조한 성격에 지루함 가득하지만, 차분하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지킬 박사의 실험이 성공하고 그는 자신보다 젊고, 힘이 넘치는 하이드의 출현을 반가워한다. 원래 쾌락을 밝히는 기질이었던 지킬은 그런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 실험과 함께 드러나게 된것 같다. 하지만, 지킬과 하이드를 넘나들던 생활이 점점 하이드로의 시간이 길어지며 지킬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은 지킬박사에게 깊이 내재되어있던 악의 본성의 힘이 아니었을까? 어느새,약이 없어도 하이드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지킬의 파멸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이드가 되어 저지른 악행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죄를 감추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하는 모순적인 지킬은 이미 하이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애초에 하이드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숨겨져 있었을 뿐...

사건의 전말은 어터슨 변호사에게 전달된 지킬박사로써 마지막 썼던 편지에서 모두 드러난다. 결국,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그 발견 때문에 나는 무시무시한 파멸을 맞이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던 것일세.'라고 말했던 것처럼 되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모두 갖고있다. 어느 것이 자신을 지배하느냐, 자신이 어느 것을 통제하느냐는 맹자나 순자가 말하려 했던 자기 수양을 통해 도덕적 완성에 이르느냐에 달린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내 안에는 어떤 자아가 자라고 있을까? 마음을 다듬어 본다.

 

문학동네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무시무시한 삽화가 들어있어 읽는 재미, 보는 재미 두 가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물섬]의 작가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며, 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썼다는 사실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듯 호들갑을 떨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소설을 두고 공통점을 찾으려 생각해 보았다. 인간 본성 중, 악한 모습을 보물섬에서의 실버 선장이 보여주었다면, 이 이야기에선 하이드씨로 넘어와 좀 더 철학적이고 깊이있게, 본격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어려서 보았던 영화나 어린이 프로그램의 짧은 연극으로 익히 알고있던 이야기라 책으로 굳이 읽히지 않았던 소설이다. 이미 뻔하게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 없으리라 한 켠으로 밀어 놓았던 것이다.  약을 먹으면 마치 헐크처럼 변신하여 괴물이 되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대강의 줄거리는 그저 공포를 느끼고픈 재미에만 초점이 맞춰져 그 진정한 속 이야기는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대로된 원작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했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 맞는 것인지, 순자가 말하는 성악설이 맞는 것인지...전부터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답은 여전히 어렵다. 이런 철학적 질문의 역사가 오랜만큼 인간이 풀기엔 어려운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겐 분명 두 가지 모두의 모습이 존재한다. 이를 인류가 짊어진 저주라고 결론지은 지킬 박사는 이 둘을 분리하기 위해 실험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물, 하이드씨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보기 좋은 인상에 사회적 지위도 있고, 풍족한 재산도 있는 인격자인 지킬 박사의 그 실험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한 본성만을 갖고 있는 하이드(hide-숨기다와 같은 소리의 hyde)를 끄집어 냈다. 왜소하고 기형적인 모습에 어딘지 악의 기운만 느껴지는, 선함이라고는 전혀 갖고있지 않은 존재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선과 악, 천사와 악마로 이분되는, 하지만 한 인간 안에 담겨있는 이중성이다. 과연 지킬 박사는 어떤 쪽에 더 가까운 인간이었을까? 

이 둘 사이에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화자는 변호사 어터슨이다. 건조한 성격에 지루함 가득하지만, 차분하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지킬 박사의 실험이 성공하고 그는 자신보다 젊고, 힘이 넘치는 하이드의 출현을 반가워한다. 원래 쾌락을 밝히는 기질이었던 지킬은 그런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 실험과 함께 드러나게 된것 같다. 하지만, 지킬과 하이드를 넘나들던 생활이 점점 하이드로의 시간이 길어지며 지킬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은 지킬박사에게 깊이 내재되어있던 악의 본성의 힘이 아니었을까? 어느새,약이 없어도 하이드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지킬의 파멸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이드가 되어 저지른 악행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죄를 감추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하는 모순적인 지킬은 이미 하이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애초에 하이드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숨겨져 있었을 뿐...

사건의 전말은 어터슨 변호사에게 전달된 지킬박사로써 마지막 썼던 편지에서 모두 드러난다. 결국,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그 발견 때문에 나는 무시무시한 파멸을 맞이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던 것일세.'라고 말했던 것처럼 되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모두 갖고있다. 어느 것이 자신을 지배하느냐, 자신이 어느 것을 통제하느냐는 맹자나 순자가 말하려 했던 자기 수양을 통해 도덕적 완성에 이르느냐에 달린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내 안에는 어떤 자아가 자라고 있을까? 마음을 다듬어 본다. 

문학동네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무시무시한 삽화가 들어있어 읽는 재미, 보는 재미 두 가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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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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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한적하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로의 여행을 다녀왔다. 소설가 한창훈이 이끄는대로 조용히 따라 가며 한 집 한 집 머물러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흔하게 가는 섬으로의 여행 한 번 변변하게 해본적 없어 멀고도 궁금했던 생활들이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사는 사람만의 비릿한 인생이 있지 않을까 .  

처음으로 만난 두 부부의 이야기(나는 여기가 좋다)는 너무도 안쓰러웠다. 떠나가야만 하는 부인의 마음도 따라갈 수 없는 남편의 마음도 답답하고 아릿할텐데, 담담한 부부의 대화가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다. 밤눈이 하얗게 소복이 내려 쌓이는 날 헤어진 사랑을 추억하며 들려주던 식당집 아줌마의 이야기(밤눈)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성공한 사랑'이라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순애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풍파 다 겪은 그녀의 입담은 왠만해선 이길 재간이 없을 듯 보인다.
"돈 아깝게 뭐 하러 커피 시키요. 그냥 내 것이나 좀 주무르고 말어.", "한 놈이 뒤에서 무작스럽게 끌어안고 잡아댕기등만 부라자가 다 돌아갔네." 이 대목에선 소리 높여 한 바탕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넉살이 좋아 그 집에 앉아 함께 술 한잔 주고받고 싶은 마음 가득했다. 

만난 사람들 모두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옆에서 그렇게 살고있는 우리네 이웃이면서도 각별히 이해되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연히 만났다 헤어진 과거의 어느 자락에 있던 여인이 자신의 아들을 낳아 키운다는 말에 평생 일해 모은 돈 꼬박꼬박 부쳐주던 노인이 드디어 아들이 찾아온단 소식 듣고 어찌할바를 몰라 긴장하던 이야기(가장 가벼운 생)는 특히나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맺어진 부자 간의 인연을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지, 오래도록 담아왔던 말들이 빠져나가 노인의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말에 코 끝이 찡해진다.

반대로, 칠순 노인 열댓 분을 모시고 마흔의 청년회장 역만이 제주도로 여행을 간 이야기(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답답하면서 재미있다. 믿음은 양보할 수 없어 절 근처에선 잠을 잘 수 없다는 할머니, 나는 비행기 안에서 휴게소 들려 우동 먹었으면 좋겠다는 분, 제주 특산품 다금바리를 내온 식당 주인을 앞에 두고 누군가 눈 똥을 개 싸우듯이 몰려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하는 할아버지...참으로 볼 만한 구경이었다. 

 바로 이거다.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우리 모습인 거다. 투박한 사투리도 좋고, 툭툭 던지는 욕도 좋고 ,어리숙한 답답함도 좋고, 드러내지 않은 속 깊은 정도 좋다.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함박 웃음 짓고, 눈물 찔금 흘리다가 어느새 박장대소하고, 울리고 웃기는 이야기. 

그렇게 여러 집을 다니며 그 사람들 인생의 한 순간들을 보고 느끼는 동안, 어느새 여행이 끝났다. 사랑하고, 기다리고, 이어가는 바다 삶의 순간순간들이 아직도 곁에서 떠들어 대는듯 하다.
<나는 여기가 좋다>고?  "저도 그곳이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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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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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인생은 아주 작은 거라도 해낼 수 있으면 아름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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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호텔들을 상상하며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본다.

격동의 세월을 보낸 체코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

 

"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넌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라는 지시와 함께 시작된 프라하 호텔의 견습 웨이터 생활. 10대 꼬마 디테는 호텔에 근무하며 여러 인간들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며 꿈을 키운다. 호텔에 일하며 그가 관찰하게 된 사람들은 밖에선 교양있는 모습이지만 호텔 안으로 들어오면 온갖 추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두 번째로 근무한 티호타 호텔은 내로라 하는 저명한 인사들이 남몰래 찾아와 비밀리에 흥청망청 쾌락을 즐기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아야 하는 곳이다. 공인된 사람들은 이런 곳이 절실히 필요하겠지. 누군가의 눈을 피해 본능에 따라 원초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 하지만 그 원초적인 것은 늘 타락을 동반하는 듯 보인다.

 

드디어, 최고의 호텔인 호텔 파리에선 영국 왕을 모셨다는 지배인을 만나 그만의 경륜을 배우게 되고, 아비시니아 황제로 부터 영광의 훈장도 받게 된다. 하지만, 어느정도 인정을 받던 그가 독일여인 리자를 만나며 체코인들의 미움을 받아 호텔 파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체코인이었고, 체코의 민족주의 운동의 단원이었다. 그런 그는 리자를 만나 결혼하며 자신에게 독일인의 피가 흐른다 한다. 옷을 바꿔입듯이 민족을 바꾼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의미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저 담담하게 , 자연스럽게 행동할 뿐이다. 

 

마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리자의 그늘에 디테는 목숨을 붙일 수 있었다. 전쟁과 함께 디테의 인생도 위태롭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도 그는 비교적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치에 충성하던 리자가 훔쳐둔 희소한 우표로 그는 백만장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무시했던 그들에게 힘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그만의 호텔을 짓고 명성을 쌓아, 백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 세상으로부터 백만장자임을 인정 받는 것이 오로지 목표다. 그것은 어린 시절 호텔 방 바닥에 지폐를 펼쳐놓고 행복해하던 투숙객을 봤을 때 그에게 생긴 열망이었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직원이었던 한낱 웨이터의 성공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만큼 너그럽지 않은 모양이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모든 걸 잃은 그는 그의 인생에 회의를 느낀다. 결국 인생은 외로운 것, 고독한 것이라고.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독한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있다.

그 속엔 어느때 보다도 차분하고 잔잔한 일상있다.

 

이야기는 디테가 자신의 인생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형태로 이어진다. 내 얘기를 들어 보세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게요....라며 마치 마주 앉아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는 듯하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던 흥미롭고 재미있는 초,중반을 넘어 후반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깊어지고 짙어지며 인생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많은 작품이 체코 정부의 검열로 출판 금지되기도 했다는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 불린다 한다. 그의 소설이 밝은 빛을 받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도 큰 다행이다. 격렬했던 체코의 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글로 '삶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에 대해 자문해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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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호텔들을 상상하며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본다. 격동의 세월을 보낸 체코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 

"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넌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라는 지시와 함께 시작된 프라하 호텔의 견습 웨이터 생활. 10대 꼬마 디테는 호텔에 근무하며 여러 인간들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며 꿈을 키운다. 호텔에 일하며 그가 관찰하게 된 사람들은 밖에선 교양있는 모습이지만 호텔 안으로 들어오면 온갖 추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두 번째로 근무한 티호타 호텔은 내로라 하는 저명한 인사들이 남몰래 찾아와 비밀리에 흥청망청 쾌락을 즐기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아야 하는 곳이다. 공인된 사람들은 이런 곳이 절실히 필요하겠지. 누군가의 눈을 피해 본능에 따라 원초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 하지만 그 원초적인 것은 늘 타락을 동반하는 듯 보인다.  

드디어, 최고의 호텔인 호텔 파리에선 영국 왕을 모셨다는 지배인을 만나 그만의 경륜을 배우게 되고, 아비시니아 황제로 부터 영광의 훈장도 받게 된다. 하지만, 어느정도 인정을 받던 그가 독일여인 리자를 만나며 체코인들의 미움을 받아 호텔 파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체코인이었고, 체코의 민족주의 운동의 단원이었다. 그런 그는 리자를 만나 결혼하며 자신에게 독일인의 피가 흐른다 한다. 옷을 바꿔입듯이 민족을 바꾼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의미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저 담담하게 , 자연스럽게 행동할 뿐이다.  

마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리자의 그늘에 디테는 목숨을 붙일 수 있었다. 전쟁과 함께 디테의 인생도 위태롭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도 그는 비교적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치에 충성하던 리자가 훔쳐둔 희소한 우표로 그는 백만장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무시했던 그들에게 힘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그만의 호텔을 짓고 명성을 쌓아, 백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 세상으로부터 백만장자임을 인정 받는 것이 오로지 목표다. 그것은 어린 시절 호텔 방 바닥에 지폐를 펼쳐놓고 행복해하던 투숙객을 봤을 때 그에게 생긴 열망이었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직원이었던 한낱 웨이터의 성공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만큼 너그럽지 않은 모양이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모든 걸 잃은 그는 그의 인생에 회의를 느낀다. 결국 인생은 외로운 것, 고독한 것이라고.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독한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있다. 그 속엔 어느때 보다도 차분하고 잔잔한 일상있다. 

이야기는 디테가 자신의 인생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형태로 이어진다. 내 얘기를 들어 보세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게요....라며 마치 마주 앉아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는 듯하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던 흥미롭고 재미있는 초,중반을 넘어 후반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깊어지고 짙어지며 인생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많은 작품이 체코 정부의 검열로 출판 금지되기도 했다는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 불린다 한다. 그의 소설이 밝은 빛을 받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도 큰 다행이다. 격렬했던 체코의 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글로 '삶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에 대해 자문해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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