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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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할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엿보는 자의 긴장은 커지고 몰입은 깊어진다.

왜, 인간은 공포를 알면서도 맛보려 하는 것일까... 무섭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싫지만, 그런 소재가 나오는 소설은 오히려 더욱 끌리는 이 심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에게 존재하는 '악'의 본성과 '엿보려는' 비이성적 심리 때문은 아닐까? 또한, 권선징악의 힘을 어려움없이 뿜어내는 소설의 능력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못견뎌 하던 욕구불만의 위선적인 여자와 짐승처럼 무위도식하며 살고자 했던 둔하고 다혈질적인 남자의 운명같은 만남이 만들어낸 광기와 공포는 엿보는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남편이 있는 여자 테레즈, 남편의 친구인 남자 로랑,  둘은 현재로썬 사랑해선 안될 운명이다. 하지만 얄궂은 것이 운명인것처럼 두 사람에게 내재되어있던 '악'의 본성은 서로를 자극적으로 끌어당긴다.

서로 다른 기질의 남녀는 하나의 목적을 품으며 피와 육욕으로 결합된 하나의 존재가 되어간다. 사랑이란 착각과 허울로 둘의 불륜을 포장하려 하지만, 차라리 사랑이라면 이리 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초라하고 답답한 '현실'이 재미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일단 시작된 어찌됐든 '사랑'은 서로를 눈이 멀게 만들었고,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용기를 생산했다. '사랑'이 있으니 '사랑'을 가로막는 어떤 것도 헤쳐나가리라는, 사랑의 본질도 모르면서 시작된 그 '사랑'이 과연 그들을 끝까지 이어줄까?

 

테레즈와 로랑은 남편이며 친구인 카미유를 죽이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다. 착한 사람의 분장을 하고 살인을 할 무대가 완성되길 기다린다. 기회를 노리는 자에겐 마음 먹는 것이 곧 기회인 것이다. 사고를 위장한 살인은 모두를 속이며 완전범죄로 마무리 지어지며, 이제 두 죄인은 마음 먹은대로 정욕과 재산을 누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처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눈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들 안에 있던 '양심'이 뒤늦게 일어나며 존재를 확인시킨 것이다. 이들의 양심은 참회의 눈물이 아닌, 두려움의 공포다. 신경에서 부터 시작된 공포는 정신과 온몸으로 퍼지고 곧 자신의 방을 넘고 온 집안으로 번져 나간다. 결국, 서로에게 전달되고 무서운 통증으로 서서히 미쳐간다.

어둡고 축축한 파리의 외딴 구석이 주는 공간적 배경의 칙칙함이 읽는 내내 섞은 내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마치 테레즈와 로랑의 망상 속에서 그들 곁에 붙어있던 카미유의 유령이 풍기는 냄새인 것처럼...

 

사랑하다 살인하고, 두려워하다 증오하고, 싸우다 미쳐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작가는 마치 시체를 해부하듯 분석적으로 기록한다. 초판에는 없던 서문을 제2판에 실어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만큼 당시에는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비평가들에게  개념없는 혹평이라며 지성적으로 따져드는 에밀 졸라의 당찬 글이 그가 어떤 작가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좆아가려고 노력했다...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라고 쓰고있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본다면 '테레즈와 로랑'은 완벽하게 영혼이 없는 인물들은 아닌 것 같다.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은 현대의 '사이코패스'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오히려 양심적인 것이다. 에밀 졸라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얼마나 놀랄까? 문명은 발전하고, 감정은 매마르고, 범죄는 잔인해지고, 양심은  무뎌지는 진정한 영혼의 부재로 접어든 것 같다.

 

읽는 동안, '나'란 존재도 변한다. 중매쟁이가 되었다, 공범자가 되었다, 밀고자가 되었다, 처벌자가 되는 과정을 겪으며 부도덕의 흔적을 만난다. 이것이 인간의 어둡고 깊은 진실인가.

 

문학작품에 어떤 문학이론이 쓰였는지는 나로썬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평범함과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적 표현이 배재된 객관적인 묘사에서, 에밀 졸라의 '인간에 관한 객관적 진리' 발견이라는 [자연주의] 신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인간을 그저 동물로 놓고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그의 말이 인간을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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