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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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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유머의 대가라는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이 궁금했다. 그 유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유머는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신호가 맞지않으면 그저 평범한 전달문일 뿐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한 실소와  부조리한 인물들에 대한 냉소....그 안에 그의 매력이 있는 듯하다. 처음 만나는 커트 보네거트, 아주 매력적이다.

 

책은 서문에서 '그저 우연히 알게 된 교훈이다. 그것은, 즉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화두를 던진다. 가면이라, 나도 가면을 쓰고 있을까? 가끔은 그런 것 같다. 한 번 쓴 가면은 좀처럼 벗기 힘들고, 벗겨지면 곤란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도 가면을 쓴 채로 나를 만났을까? 인간의 진실성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품고 있을까?  

주인공 하워드 W. 캠밸 2세는 2차세계대전 중, 나치당원으로 위장한 미국의 첩보원이었다. 하지만, 주변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첩보활동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행동하기에 마음이 닿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첩보원보다는 나치당원으로써의 자신의 삶이 더 마음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워드  스스로는 정체성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사명감도 정의로움도 하다못해 호기심도 없어보였지만, 자신은 진정한 '미국의 첩보원'이라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뉴욕에 숨어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란 말일세"

-"그것 때문에 여기 오게 되었죠."

감옥에서 전범과 나눈 대화를 보면, 애초에 그에겐 의지가 없어 보였다. 편하게 그저 밀리는대로 흘러가는 종이배 같은 모습이다. 특히, 그의 부인이 죽은 후, '둘만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이 사라졌을 때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이미 어느 나라에도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찾아와 첩보원으로 포섭했고, 그때 나라가 생긴 것 뿐이다. 그의 그런 줏대없는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똑똑히 알고 있다고는 해도 가면 속 이중성의 한 모습은 아니었을런지.

오히려 그의 주변인물들에게는 강한 의지가 있다. 강한 의지는 있으나, 도덕성과 합리성은 없다.
존스 목사는 유대인, 흑인, 가톨릭에 대한 편파적 증오가 가득 담긴 '백인 기독교 민병대'라는 신문을 발행하면서 운전기사인 흑인 지도자와 함께 있는 모순적인 인간이고, 유색인 편이라면서 중국인은 유색인이 아니라 역설하는 흑인 지도자도 상식 밖의 인간이다. 죽은 언니 흉내를 내며 형부에게 접근한 소련의 스파이인 레지의, 사랑 운운하는 비뚫어진 심리도, 우정을 내세워 하워드를 음모에 빠뜨리려하는 크래프트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하워드의 마지막 선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미래는 의미가 없어서였을까? 자신의 행동의 진정성에 대한 댓가를 치루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그의 조소였을까? 담담하게 남의 말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워드의 고백은 무거운 주제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어둡지만 우울하지 않은 것, 답답하지만 숨막히지 않은 것. 그것이 커트 보네거트의 힘인듯 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성은 없으며, 이미 끝난 전쟁의 복수를 꿈꾸며 또다른 전쟁을 이어가고 있을뿐이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하워드의 절규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세상을 향해 던지고싶은 메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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