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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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한적하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로의 여행을 다녀왔다. 소설가 한창훈이 이끄는대로 조용히 따라 가며 한 집 한 집 머물러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흔하게 가는 섬으로의 여행 한 번 변변하게 해본적 없어 멀고도 궁금했던 생활들이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사는 사람만의 비릿한 인생이 있지 않을까 .  

처음으로 만난 두 부부의 이야기(나는 여기가 좋다)는 너무도 안쓰러웠다. 떠나가야만 하는 부인의 마음도 따라갈 수 없는 남편의 마음도 답답하고 아릿할텐데, 담담한 부부의 대화가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다. 밤눈이 하얗게 소복이 내려 쌓이는 날 헤어진 사랑을 추억하며 들려주던 식당집 아줌마의 이야기(밤눈)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성공한 사랑'이라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순애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풍파 다 겪은 그녀의 입담은 왠만해선 이길 재간이 없을 듯 보인다.
"돈 아깝게 뭐 하러 커피 시키요. 그냥 내 것이나 좀 주무르고 말어.", "한 놈이 뒤에서 무작스럽게 끌어안고 잡아댕기등만 부라자가 다 돌아갔네." 이 대목에선 소리 높여 한 바탕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넉살이 좋아 그 집에 앉아 함께 술 한잔 주고받고 싶은 마음 가득했다. 

만난 사람들 모두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옆에서 그렇게 살고있는 우리네 이웃이면서도 각별히 이해되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연히 만났다 헤어진 과거의 어느 자락에 있던 여인이 자신의 아들을 낳아 키운다는 말에 평생 일해 모은 돈 꼬박꼬박 부쳐주던 노인이 드디어 아들이 찾아온단 소식 듣고 어찌할바를 몰라 긴장하던 이야기(가장 가벼운 생)는 특히나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맺어진 부자 간의 인연을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지, 오래도록 담아왔던 말들이 빠져나가 노인의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말에 코 끝이 찡해진다.

반대로, 칠순 노인 열댓 분을 모시고 마흔의 청년회장 역만이 제주도로 여행을 간 이야기(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답답하면서 재미있다. 믿음은 양보할 수 없어 절 근처에선 잠을 잘 수 없다는 할머니, 나는 비행기 안에서 휴게소 들려 우동 먹었으면 좋겠다는 분, 제주 특산품 다금바리를 내온 식당 주인을 앞에 두고 누군가 눈 똥을 개 싸우듯이 몰려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하는 할아버지...참으로 볼 만한 구경이었다. 

 바로 이거다.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우리 모습인 거다. 투박한 사투리도 좋고, 툭툭 던지는 욕도 좋고 ,어리숙한 답답함도 좋고, 드러내지 않은 속 깊은 정도 좋다.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함박 웃음 짓고, 눈물 찔금 흘리다가 어느새 박장대소하고, 울리고 웃기는 이야기. 

그렇게 여러 집을 다니며 그 사람들 인생의 한 순간들을 보고 느끼는 동안, 어느새 여행이 끝났다. 사랑하고, 기다리고, 이어가는 바다 삶의 순간순간들이 아직도 곁에서 떠들어 대는듯 하다.
<나는 여기가 좋다>고?  "저도 그곳이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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